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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에딘버러(Edinburgh)에서 출발한 기차는 정연하게 정리된 초원을 지나고 또 지난다. 기차 안에서 나와 마주 보고 앉은 신영이는 공책과 함께 필통에서 볼펜을 꺼내든다. 신영이는 어제 있었던 일들을 차분하게 여행기로 남기고 있다. 아내는 그 옆에서 밀린 잠을 자고 있다. 낮은 구릉에는 밀이 자라고 혹은 양들이 놀고 있다. 기차는 불과 4시간 만에 런던 킹스 크로스(kings cross)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열차를 타면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갈 수 있다.
▲ 킹스 크로스역 이곳에서 열차를 타면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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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이는 킹스 크로스 역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킹스 크로스역은 영화 <해리포터>(Harry Potter)에서 마법학교 호그와트(Hogwarts)로 통하는 플랫폼이 있던 역이기 때문이다. 해리포터가 기차를 탔던 킹스 크로스 역의 9 3/4 플랫폼에는 영화의 인기만큼이나 많은 관광객이 있었다. 신영이는 기차를 타고 해리포터의 마법학교에 가고 싶었을 것이다.

9번 플랫폼 쪽으로 들어서려면 기타 승차권을 가지고 자동 검표기를 통과해야 했다. 내가 잠시 망설이고 있었는데 신영이가 런던까지 올 때 사용했던 기차표를 개찰구에 넣고 플랫폼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신영이는 9번 플랫폼에서 영화를 이야기하며 잠시 서성였다. 신영이 머리 속에는 영화 <해리 포터> 속의 상상력이 다시 재연되고 있었을 것이다.

런던 해머스미스(Hammersmith) 지하철역 부근 호텔에 짐을 맡기고 지하철 피카딜리 (Piccadilly)라인을 탔다. 지하철 안은 일요일 오후라서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마음이 급했다. 오늘의 목적지 런던 타워는 오후 6시면 문을 닫기 때문이다.

나는 과거 런던 배낭여행 당시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라는 배낭족의 바이블을 들고 다녔다. 그 여행서에 '런던에서 한 곳만 입장료를 내고 가야 한다면, 그곳은 런던 타워(Tower of London)다'라는 글귀를 본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런던 초행길이었던 나에게 런던에는 볼 곳이 많았고, 입장료가 비쌌던 런던 타워는 여행 일정에서 제외됐다.

무시무시한 사자가 지키고 있는 성

높은 성벽은 런던 타워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었다.
▲ 런던 타워 성벽 높은 성벽은 런던 타워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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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즈(Thames) 강 북단, 타워 힐(Tower Hill)역을 나와서 연결통로를 나오자 런던 타워의 성벽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가족들의 발길을 재촉해 런던타워 매표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가 검색했던 정보와는 다르게 런던 타워는 오후 5시 30분에 문을 닫는다고 돼 있었다. 런던타워의 누리집을 검색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조금 아쉽지만 더 열심히 둘러보기로 했다.

런던 타워의 거대한 성벽을 보면서 밀려오는 기대감에 입장료가 비싼 것은 전혀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신영이에게 영어 오디오 가이드를 목에 걸어줬다. 신영이는 런던 타워에 늦게 입장하면서 성안을 가이드 해주는 비피터(Beefeater) 아저씨를 만나지 못하는 게 불만이다. 하지만 쾌활한 성격의 신영이는 금새 런던 타워 답사를 신나게 시작했다.

영국의 왕권을 상징하는 사자들이 침입자들을 노려보고 있다.
▲ 런던 타워 사자 영국의 왕권을 상징하는 사자들이 침입자들을 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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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기분으로 런던 타워 입구의 해자를 건너려는데 합성고무로 만든 사자상이 사람들을 노려보고 있다. 진짜 사자인양 서 있는 사자상 앞에는 구덩이가 파여 있다. 중세 시대에 이 성을 침입하던 적들은 이 구덩이에 빠져서 사자 밥이 됐다. 먹이를 노리는 사자들의 눈이 내 카메라를 보고 있었다.

나는 사자들 앞에 놓인 '무시무시한 성 입구'라는 안내문을 읽었다. 대한민국의 성장한 국력을 상징하듯 영어와 함께 한국어가 병기돼 있다. 중세 당시 런던 타워 입구에는 활을 쏘는 궁수들이 성벽을 단단히 방어하고 있었다. 예고 없이 방문한 침입자가 궁수들을 피해 깊은 물 가득한 해자를 건너더라도 게이트 타워 앞에서 위로 들리는 다리인 도개교(跳開橋)를 만나게 돼 있다.

이 도개교 아래에 진짜 사자들이 으르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중세 후기의 국왕들은 도개교 건너편의, 지금은 무너지고 없는 사자타워 감시 망루에서 사자와 같은 야수들을 키웠다. 도개교를 연결하는 핀을 풀어버리면 도개교가 들리면서 침입자는 아래 구덩이로 떨어지고 바로 사자 밥이 됐던 것이다. 울부짖는 사자들은 당시 런던 타워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영국의 왕을 상기시키는 동물이기도 했다. 중세 영국 왕실을 지키던 영국 군대의 상징 문장이 세 마리의 사자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런던 타워에 사자들이 으르렁거렸다는 것은 단지 전해 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다. 1936년에 고고학자들이 라이온 타워와 도개교 구덩이를 발굴했을 때 600년 이상이나 된 사자의 두개골 뼈가 발굴됐기 때문이다. 런던 타워의 성문 입구를 지키던 사자들은 1832년에 런던 리젠트 공원(Regent Park)의 동물원으로 옮겨졌다고 전해진다.

물을 가득 채워 적이 성벽까지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던 해자에는 물이 모두 빠져 있고 짙고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나는 해자를 건너면서 생각해 보았다. 해자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런던 타워가 더 운치 있을 것이라는 생각. 과거 모습 그대로 돌려놓는 것이 제대로 된 복원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평온한 비극의 무대

런던 타워의 중심 건물로 건립 당시에는 런던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 화이트 타워 런던 타워의 중심 건물로 건립 당시에는 런던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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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안으로 들어서자 런던 타워 내부는 평소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넓었다. 왜 이 거대한 성이 '타워'라는 이름을 아직도 쓰고 있는지 의문이 생길 지경이다. 11세기에 노르만의 정복왕 윌리엄 1세(WilliamⅠ)가 화이트 타워와 함께 3개의 탑을 지은 이후 영국의 역대 국왕들은 런던 타워를 확장시켜 총 13개의 타워를 건설했고 그 타워들은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였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런던 타워의 커다랗고 높은 담은 감옥의 담장을 연상시킨다. 런던 타워가 세워진 11세기 초 이후 왕의 거주지로 사용됐던 런던 타워는 17세기 이후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주로 감옥으로 사용됐기 때문일 것이다. 이 런던 타워 감옥 안에는 신분이 높은 왕족과 국사범(國事犯)들이 주로 투옥됐다고 한다. 영국의 왕좌를 둘러싼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인사들은 이곳에서 고문과 처형을 당했다. 영국의 역사를 읽고 나면 이 런던 타워는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부는 피의 무대라고 할 수 있다.

외벽에 만들어 놓은 목제 계단을 통해 화이트 타워에 들어설 수 있다.
▲ 화이트 타워 입구 외벽에 만들어 놓은 목제 계단을 통해 화이트 타워에 들어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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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무대는 지금 평화롭기만 하다. 나는 런던 타워 안의 크고 작은 건물들을 눈길로 둘러봤다. 반나절을 보내도 충분할 정도로 타워 안에는 다양한 중세의 건축물이 있고 그 건물마다 이야기가 녹아 있다. 나는 어느 건물의 역사 속으로 먼저 들어갈지 정해야 했다. 런던 타워 내에서는 가장 크고 핵심적으로 보이는 건물이 바로 화이트 타워다. 외벽을 하얗게 칠했다고 해서 '화이트 타워(white tower)'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오랜 역사성에 비하면 실로 단순한 이름이다.

약 1000여 년 전에 지어진 화이트 타워는 높이가 30미터인데, 그 당시에 런던에서는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타워 꼭대기의 빛 바랜 원형 청동지붕이 화이트 타워의 오랜 역사를 말해 준다. 화이트 타워 입구는 묘하게도 검은 목재 계단으로 1층을 올라서 건물 외벽에 난 문을 통해 들어가도록 돼 있다. 화이트 타워의 웅장한 벽면을 올려다보며 입장을 하기에 화이트 타워가 더욱 커 보인다.

화이트 타워 안으로 들어섰다. 화이트 타워 안에는 영국인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헨리 8세(Henry VIII)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화이트 타워 안을 돌다보니 헨리 8세의 갑옷이 관람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 갑옷은 헨리 8세가 젊었을 적에 입었던 도보용 갑옷(Foot Combat Armour)이다. 이 갑옷은 영화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마상전투용 갑옷이 아니라 도보전투 전용 갑옷인데 헨리 8세가 전투에서 입기 위한 갑옷은 아니었다. 이 갑옷을 입으면 말을 타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갑옷이 온몸을 막아서 공기도 통하지 않고 관절을 꺾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이 갑옷을 오래 입고 있으면 질식해서 죽었을 듯하다.

헨리 8세의 위엄... 도끼에 놀란 가슴

육중한 왕의 몸을 가렸을 갑옷이 강력했던 왕권을 보여주는 듯하다.
▲ 헨리 8세의 갑옷 육중한 왕의 몸을 가렸을 갑옷이 강력했던 왕권을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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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히 거구였던 헨리 8세답게 갑옷도 다른 왕의 갑옷보다 아주 크다. 바로 옆에 예술품같은 외모의 찰스 1세 갑옷과 비교해 봐도 위풍당당하게 생겼다. 이 갑옷을 보면 2미터의 키에 2백 킬로그램의 거구를 자랑했던 헨리 8세가 그 안에 숨어 들어가 있는 듯했다. 그는 결혼을 여섯 번이나 했지만, 두 명의 부인을 화이트 타워 앞의 사형장에서 목을 쳐 죽일 정도로 냉혹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런던 타워에서 왕비 등 수감자들의 목을 내려쳤던 도구들이다.
▲ 처형대와 처형 도끼 런던 타워에서 왕비 등 수감자들의 목을 내려쳤던 도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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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타워 안에는 영국의 역대 왕들이 사용했던 무기들이 전시돼 있다. 왕의 칼과 총, 마구들을 보다 보니 유독 잔인함이 느껴지는 유물이 있다. 영국의 사형 집행인들이 왕비 등 사형수의 목을 칠 때 썼던 도끼와 처형대가 한 전시관 안에 들어 있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조선 같이 왕비들에게 사약을 내려 죽음의 예우를 갖춰 준 것도 아니고, 도끼로 왕비들의 목을 내리쳤던 유물이니 전율이 느껴진다. 나는 헨리 8세의 두 번째 왕비 앤 불린(Anne Boleyn)의 가늘고 긴 목이 걸쳐졌을 처형대와 그녀의 목을 베었을 도끼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헨리 8세의 왕비들이 죽음을 기다리던 곳이다.
▲ 퀸즈 하우스 헨리 8세의 왕비들이 죽음을 기다리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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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끼의 잔상이 머리 속에 남은 채로 화이트 타워의 밖으로 나왔다. 화이트 타워 앞에 녹색의 싱그러운 잔디밭이 눈에 들어왔다. 이 잔디밭은 타워 그린(Tower Green). 타워 그린은 이름과 달리 영국 역사 속 인물들의 잔혹함을 보여줬던 악명 높은 곳이다. 이 타워 그린에서만 총 7명이 사형을 당했는데, 그 중에 영국 사람들의 역사적 인물이 있었다. 그녀는 바로 '천일의 앤 불린'이었다.

타워 그린 뒤편으로 들어서니 짙은 갈색의 목재와 하얀 벽면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퀸즈 하우스(Queen's House)가 눈앞에 나타난다. 내 머리 속에 이 퀸즈 하우스 1층에 유폐됐던 앤 불린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는 사실을 확인할 수 없는 간통죄에 몰려 처형을 눈 앞에 두고 있었다. 이 퀸즈 하우스에는 헨리 8세의 다섯 번째 아내였던 캐서린 하워드(Catherine Howard)도 갇혀 있었다.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이 왕비들은 사촌 간이었다. 사촌 자매를  아내로 두고 결국은 모두 참수해버린 헨리 8세의 잔인함은 놀라움을 넘어선다. 조선 왕조가 양반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죽였지만, 헨리 왕이 지배하던 영국 왕조에 비할 바는 아닌 것 같다.

부부는 살다 보면 사소한 일에서 시작된 다툼이 큰 싸움이 되고 헤어지기까지 한다. 지금이야 여권이 신장돼 여성들이 제기하는 이혼소송도 다반사지만, 왕정국가에서 왕을 남편으로 둔 여인은 부부싸움을 해도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을 것이다. 헨리 8세는 3년을 같이 한 아내의 목을 벨 정도로 분노에 차 있었던 같다. 하지만 앤 불린의 처형 이후에도 이어지는 헨리 8세의 여성편력과 괴팍함을 보면 왕비로서의 앤 불린의 삶은 고단했을 것 같다.  

이 퀸즈 하우스의 평범한 방에서 앤 불린은 무시무시한 눈앞의 처형장을 봤을 것이다. 그녀는 처형자들의 비명 소리를 듣고 자신들의 눈앞에서 처형되는 죄수들의 모습도 봤을 것이다. 그리고 앤 불린은 자신을 죽이려는 처형대를 만드는 모습도 지켜보고 밤새 타워 그린에 처형대를 만드는 소리도 들었을 것이다. 영화 <천일의 스캔들>에서 사형대로 올라가던 앤 불린(나탈리 포트만 분)의 모습이 퀸즈 하우스 앞에 겹쳐졌다. 천일 동안 왕비로 있던 그녀는 아들을 낳지 못해 누명을 쓰고 마녀가 됐다.

앤 불린은 그녀가 보았던 것과 같이 타워 그린의 처형대에서 목이 잘려나갔다. 1536년 5월, 앤 불린에 대한 처형은 그야말로 단칼에 끝났다. 그녀가 죽자 런던 타워에 설치된 총포는 불을 내뿜으며 일제히 왕비의 죽음을 알렸다. 앤 불린을 처형한 날, 헨리 8세는 진수성찬을 즐기며 누구도 앤의 이름을 입에 담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지금이야 많은 영국인들이 헨리 8세를 이야기 거리로 삼으며 즐기지만 당시 헨리 8세는 공포의 대상이었기에 앤 불린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왕비의 목이 잘리던 날... 하늘은 파랬다

피의 역사를 머금은 곳이지만 현재는 평화롭기만 하다.
▲ 타워 그린 피의 역사를 머금은 곳이지만 현재는 평화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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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죽음을 당한 때는 계절의 여왕, 5월이었다. 한참 아름다운 5월. 그녀는 타워 그린에서 목이 잘렸다. 그녀가 참수 당하던 날, 평소에 흐리고 비 내리기로 유명한 런던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영국 사람들은 슬프도록 푸른색은 역설적이게도 '앤 블루(anne blue)'라고 부른다. 지금도 그녀가 처형당한 날이 되면 런던 탑 주변에는 자신의 잘린 목을 팔에 끼고 마차를 몰고 달리는 앤 불린의 유령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유령 이야기에는 안타깝게 목이 잘려나간 왕비에 대한 동정심이 담겨 있을 것이다.

무소불위의 권력, 헨리 8세도 앤 불린이 처형당한지 11년 후인 1547년 1월에 런던 타워의 화이트 타워에서 사망한다. 그후 런던 타워는 앤 불린의 죽음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그녀가 죽은 후 몇 세기 동안 앤 불린과 헨리 8세의 이야기는 영국의 예술 작품에 다양한 영감을 줬다고 한다.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고 권력의 정점에 섰던 앤 불린의 처참하고 극적인 죽음은 영국 대중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았다. 수세기 동안 살아남은 앤 불린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은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입에 회자될 것이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흐린 하늘 안에 검은 먹구름이 흘러다니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바람은 시원했다. 런던 타워 안의 잔디밭은 더 없이 푸르렀다. 나는 아내, 신영이와 함께 아름답기만 한 런던 타워 곳곳의 답사를 계속 하기로 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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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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