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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관련 정보는 많지만 보험사 쪽 정보만 넘치고 소비자를 위한 내용은 찾기 힘듭니다.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기사는 넘치지만 사보험은 그렇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공보험이 불안하니 사보험을 자꾸 가입하고, 결국 가계 부담만 커집니다. 우선 공보험에 대한 바른 인식을 통해 공보험과 사보험 사이의 균형잡힌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과도한 사보험 지출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6회 걸쳐 사보험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소개합니다. <기자말>

'가정경제가 위기다' 식의 기사가 연일 쏟아진다. 많은 가정이 교육비까지 줄이며 허리띠를 졸라매도 적자가구와 가계대출 연체율은 계속 늘어만 간다. 경제 전망 또한 밝지 않고 장기불황에 대한 우려도 나오는만큼 어느 때보다 가정의 지출관리가 중요하다.

굳이 누가 따로 말해주지 않아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닥치면 지출을 줄인다. 하지만 잘 줄이지 못 하는 게 바로 '보험료'다. 미래가 불안해서 못 줄이고, 그동안 냈던 보험료가 아까워서 못 줄인다.

보험회사는 자산이 5배↑, 가계는 빚이 5배↑

보험상품의 증권과 설계서(자료사진)
 보험상품의 증권과 설계서(자료사진)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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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얼마전 보험료를 줄일 목적으로 지인에게 보험설계사를 소개 받았다. 160만 원 소득에 종신보험과 의료실비보험으로 28만 원을 내고 있던 A씨. 하지만 설계사는 A씨의 보험증권을 보더니 오히려 부족하다며 새로운 보험 가입을 권했다. A씨는 보장이 부족하다는 말에 불안했지만 보험료를 더 내야한다는 사실에 부담스러워 망설이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 해봄직한 고민이다. 생명보험협회가 3년마다 실시하는 생명보험 성향조사에 따르면, 2009년 기준 우리나라 가구의 생명보험 가입률은 87.5%이며 월평균 보험료는 41만5000원이다. 이는 생명보험만을 가지고 조사한 자료이며 손해보험까지 포함하면 가입률은 95%로 오르고, 가구당 보험료는 50만 원이 넘는다. 거의 모든 사람이 보험에 가입했고 350만 원 월평균 소득의 15%를 보험료로 내고 있다는 이야기다.

생명보험협회의 1997년 조사를 보면, 생명보험 가입률은 73.7%이고 납입보험료는 23만7000원이었다. 1997년에 비해 2009년 가입률과 보험료 모두 큰 폭으로 상승했다.
소득 상승분을 고려하더라도 전체 가계가 부담하는 보험료 지출 자체가 늘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이로 인해 보험회사들이 한해 동안 벌어들이는 보험료(연간수입보험료)는 10년 전에 비해 100% 가량 늘어났으며, 1999년 당시에 총 자산이 100조 원에 불과했던 전체 생명보험회사의 총자산은 올해 500조 원을 돌파했다. 삼성생명 한 회사의 총 자산만 162조 원에 이른다.

보험회사가 이렇게 몸집을 불리는 동안 가정의 재무구조는 점점 악화돼 가계부채는 1000조 원에 근접했고, 가계순저축률은 2.8%까지 하락했다.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저축보다 보험에 5배 많은 돈을 쓰는 셈이다.

특히 소득이 낮을수록 소득 대비 보험료 지출은 많아진다. 생명보험 성향조사에 따르면,  연소득 1200만 원 미만 가구들이 1년 동안 내는 보험료는 평균 182만 원, 소득대비 보험료는 24.7%로 나타난다. 소득의 1/4을 보험료로 지출하고 있다보니 저소득 가정의 절반 이상은 적자가구가 된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저소득가구로 갈수록 소득에서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 소득별 생명보험료 납입현황 저소득가구로 갈수록 소득에서 보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 고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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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축률이 낮아지고 가정의 재무구조가 악화된 것이 단순히 보험료가 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문제는, 저축이 보험보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는 점이다. 저축액보다 보험료가 많아진 배경에는 보험회사의 역할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불안을 조장해 돈 버는 보험회사

보험회사들은 2000년대 들어 대졸 남성들을 대거 채용하면서 보험설계사들을 전문가 집단으로 포장하기 시작했다. 명칭도 보험설계사가 아닌 FC(financial counsultant)나 FP(financial planner) 등으로 바꾸면서 금융전문가처럼 보이게 했다.

이들은 컴퓨터를 활용해 생애 전반에 필요한 필요자금을 계산해주며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활자금으로 최소 1억 원은 준비해야 한다" "암에 걸리면 수천만 원, 자녀 교육비는 1인당 2억 원, 노후자금으로는 밥만 먹고 살아도 10억 원이 필요하다" 등의 말들을 쏟아냈다.

위의 A씨도 기존 보험을 가입할 때 "당신에게 갑자기 사고가 생겨서 가족들만 남았을 때"를 상상하라고 했단다. A씨는 비싼 보험료가 부담스러웠지만, 가족사랑을 이야기하고 나중에 연금으로 전환할 수도 있다는 설계사의 말에 가입을 결정했다.

보험회사는 보험료를 내기 부담스러워하거나 아까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위험을 보장받기 위한 '비용'인 보험을 '보장자산'이라는 말을 붙여 판매해 왔다. 보험을 자산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사람들이 돈에 대해서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음에도 보험회사들은 여기에 대한 해결책으로 늘 보험만을 제시해왔다.

A씨도 처음 보험설계사를 만날 때는 재무설계를 해준다고 해서 만났다. 하지만 A씨가 제시받은 설계사의 해결책 안에 저축은 없었다. 미심쩍은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재무전문가가 찾아와서 이야기하는 불안한 미래를 듣고 보니 보험에 꼭 가입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결과적으로 죽거나 아플 때에 대해서는 충분히 대비했을지 모르지만, 인생 전반의 재무적인 위험은 더욱 커졌다. 재무적인 위험은 보험회사가 말하는 것 말고도 수없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경기가 어려워져 소득이 감소하기도 하고 맞벌이를 하던 가정은 맞벌이 중단으로 소득이 반 토막 나기도 한다. 또 자녀의 성장으로 지출이 증가하기도 한다. 이사나 자동차 교체 등으로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단위의 목돈 지출도 발생하며 가전제품 교체나 가족 여행 등 소소한 목돈 지출도 수시로 발생한다.

하지만 A씨 상담을 한 설계사는 인생에서 부딪히는 수많은 재무적인 위험중에 보험상품과 연관된 위험만 적극적으로 부각시켰다. 암에 걸리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진단금을 많이 가져가야 된다고 A씨를 설득했지만, 암에 걸려서 소득이 중단이 되든 회사의 경영사정이 악화돼 소득이 중단이 되든 개인에게는 똑같은 재무적인 위험이다.

결국, 보험회사는 저축으로 비상금을 준비하게 도와주는 것보다 암 진단금을 준비하는데우선순위를 뒀다. 그러다 보니 A씨는 매출이 줄어서 돈이 부족할 때마다 그동안 냈던 보험료를 담보로 약관대출을 받아서 써야 했다. 지금은 약관대출을 한도까지 모두 끌어쓰고도 돈이 부족해 카드론까지 활용하고 있다.

일상의 재무적인 위험을 무시하고 일찍 죽고, 아프고, 오래사는 위험만 강조하다보니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재무적인 위험은 모두 빚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재무구조가 되고 말았다.

보험보다는 저축이 우선시 돼야

돈을 써야하는 일은 보험회사가 이야기하는 암이나 사망 등 특수한 재무사건보다는 가전제품 및 차량교체, 이사자금, 교육비 등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재무사건이 훨씬 더 많다. 결국 재무적인 위험에 대비해 열심히 보험료를 내고도 정작 재무적인 사건이 생겼을 때는 자신이 낸 보험료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쓰게 된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전체 보험사 약관대출 규모는 42조1386억 원으로 1년 전 36조7486억 원에 비해 14.6%나 증가했다. 결국 가정은 보험료를 내고도 재무적인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대출이자를 보험회사에 낸다.

재무적인 위험에서 균형감을 찾아야 할 때다. 혹시 우리 가정은 저축액보다 보험료가 더 많지는 않은가? 아프거나 죽어서 들어가는 돈보다 살았을 때 들어가는 돈이 훨씬 더 많다. 치료비로 쓰는 돈이나 가전제품 교체로 쓰는 돈이나 같은 돈이다. 일상생활은 카드 할부와 빚으로 하면서 아플 때는 꼭 보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편견이다.

보험료 줄여서 20만 원씩 4년만 저축하면 1000만 원을 모을 수 있다. 현금으로 1000만 원 있으면 병원비 정도는 걱정 안 해도 된다. 약간의 조정만으로도 미래에 써야 할 중요한 재원들을 차곡차곡 만들어갈 수 있다. 불필요한 보험료를 내고 있지 않은지, 너무 많은 보험료를 내고 있지는 않은지, 충분한 저축이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태그:#보험, #재무상담, #저축률, #가정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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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돈에 관해 올바른 시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모두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행복을 소비하는 사람이 되는 그날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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