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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과 정부는 반값등록금 요구를 거부한 채 지난해 등록금 부담완화를 위한 방안으로 국가장학금제도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부터 적용되는 국가장학금제도에 대해 대학생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반값등록금국민본부와 참여연대를 통해 들어온 '국가장학금 분노기와 실망기'를 게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 부탁드립니다. 아래 글은 무기명으로 보내온 기사입니다. [편집자말]
반값등록금국민본부 안진걸·김동규 공동집행위원장이 제헌절인 17일 낮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헌법에 따라 평등한 고등교육권 확보와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108배를 하고 있다.
▲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해...' 비지땀 흘리며 108배 반값등록금국민본부 안진걸·김동규 공동집행위원장이 제헌절인 17일 낮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헌법에 따라 평등한 고등교육권 확보와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108배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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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IMF 이전까지 교복을 입고 다니는 사립 초등학교에 다닐 정도로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IMF 이후 직업군인에서 전역한 아버지가 잇따른 사업에 실패하면서 가족들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인 2008년, 고향이 대구인 저는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이 소식을 듣고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습니다. 두 살 터울인 누나는 공립대학교에 재학하면서 꼬박꼬박 장학금을 받는 한편, 과외를 해 어려운 집안에 보탬이 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무시 못할 고액의 등록금을 자랑(?)하는 서울 4년제 대학교에 제가 덜컥 합격했다는 소식은 또 다른 걱정을 안겨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역시 그런 집안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두 평 남짓한 방의 비용 28만 원이 아까워 동아리 방에서 자취를 시작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곧바로 학교 근처의 호프집에서 밤늦게까지 알바를 하며 부모님께 용돈을 받지 않고 생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 생활로 1학년을 겨우 마치고 겨울방학을 맞이했습니다. 부모님의 압박과 88만원세대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으로 군 입대를 준비하고 있던 차에 제안된 과 부회장 자리. 철이 없던 저는 선배들의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고 그렇게 대학교 2학년 생활을 했습니다. 알바에 과 부회장으로 생활하면서 시간을 쪼개 공부하는 것은 쉽지 않았고 성적은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군복무 시절 군인 월급으로 적금을 들고 있는 저에게 경제적 어려움으로 부모님이 별거하고 계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누나가 열심히 공부해 임용고시를 합격하여 최저생계수준의 자격을 박탈돼 100만 원씩 나오던 등록금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당면하게 되었습니다. 한창 연애하고 자신의 미래를 준비할 나이에 가족의 생계비를 책임지고 있는 누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군 제대 후 복학이 너무 하고 싶었지만 인상된 등록금 때문에 걱정이 앞섰습니다. 복학까지 2개월 남짓 시간이 남아 공장에 취직, 주 6일 근무를 하며 짧게는 12시간, 길게는 15시간씩 서서 일했습니다. 80시간에 달하는 단순노동을 하며 300만 원을 모았습니다. 그러나 1년 등록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부모님의 권유로 어쩔 수 없이 학자금 대출을 받아 복학하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지 고심했습니다.

악순환 고리 속 국가장학금 마저 못 받아

그러던 중 친구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국가장학금을 신청했냐는 내용의 문자였습니다. 곧장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PC방으로 달려가 일사천리로 국가장학금을 신청하였으나, 직전 학기의 성적이 미달된다는 이유로 탈락했습니다.

교과부와 한국장학재단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2학년도 1학기 기준, 국가장학금 150만 명 신청자 중 124만 명(82.4%)의 학생들만 성적 기준(B학점/80점 이상)을 통과했다고 밝혔습니다. 신청학생들 중 17.6%인 26만여 명이 성적 기준으로 탈락한 것입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는 것이 마땅하지만 경제적 상황으로 공부에 매진할 수 없는 학생들은 국가장학금도 못 받고 계속 알바와 학업을 병행해야만 합니다. 그런 악순환의 고리 속에서 졸업을 해도 알바밖에 할 수 없는 것이냐고, 그렇지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은 없었습니다.

제 글을 보고 어떤 분들은 '글 쓰고 있을 시간에 공부를 한자라도 더해서 장학금을 받지...' 라는 생각을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다만 이건 저의 문제만이 아닌 이 시대의 대학생들이 전반적으로 겪는 고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내 탓이니까 국가장학금을 못 받는 건 전적으로 저의 잘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친구들이 미래의 주역이 아닌 신용불량자가 되고 있다는 점을 알게됐습니다. 저의 친구, 저와 같은 자리에 있는 친구들과 선·후배들은 독서실 안에서 한여름 무더위보다 더 뜨거운 열정을 쏟으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하고도 약속을 지키는 것 대신 국가장학금 대상 확대라는 눈속임을 자행하는 정부 때문에 등록금 걱정에 허덕이는 학생들이 허다하다는 점입니다.

지금도 대학생들이 열심히 일하면서, 그 대가를 모조리 어처구니없이 높은 등록금에 쏟아붓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취업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마는 이 시대의 대학생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쳐 주시는 분들이 단 한 분이라도 생겼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 반값등록금국민본부와 참여연대 등은 7월 말까지 '국가장학금 분노기와 실망기'를 공모하고 있습니다. 장학금에 대한 문의나 분노기-실망기를 보내주실 분은 02-723-5303/min@pspd.org으로 연락주시거나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가입해 직접 기사를 입력해주시면 됩니다.



태그:#국가장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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