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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 관련 정보는 많지만 보험사 쪽 정보만 넘치고 소비자를 위한 내용은 찾기 힘듭니다.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기사는 넘치지만 사보험은 그렇지 않습니다. 소비자는 공보험이 불안하니 사보험을 자꾸 가입하고, 결국 가계 부담만 커집니다. 우선 공보험에 대한 바른 인식을 통해 공보험과 사보험 사이의 균형잡힌 시각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과도한 사보험 지출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 6회 걸쳐 사보험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소개합니다. <기자말>



"적금 하나 가입하러 왔는데요."

"네, 고객님. 요즘 금리가 낮은거 알고 계시죠? 이번에 새로 나온 상품이 있는데요. 일반 적금보다 금리도 높고, 심지어 요즘 복리상품 거의 없는데 이 상품은 복리로 나왔어요. 게다가 10년 이상 유지하시면 비과세까지 되는 복리 비과세 저축상품으로 추천해드려요."

은행 창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은행에 저축상품을 가입하러 간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두 번쯤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B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은행에 저축을 하러 갔다가 은행 직원의 권유에 10년짜리 복리 비과세 저축상품을 가입하고 왔다.

은행직원은 '저금리 시대에 목돈 만들기가 쉽지 않다', '장기주택마련저축 같은 비과세상품은 없어지고 있다'면서 마지막 남은 복리 비과세 상품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은행에서 일반 저축상품과 복리 비과세 상품의 만기금액을 비교해주는 비교표까지 보여주며 해당상품이 일반 저축상품보다 수익이 좋다고 설명해 별다른 의심없이 가입 신청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B씨가 가입한 상품은 일반 저축상품이 아니라 엄연한 보험상품이다. 저축을 하러 갔다가 보험에 가입하고 왔지만, B씨는 본인이 가입한 상품이 보험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보험회사보다 더 많은 보험을 파는 은행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은 방카슈랑스제도 때문이다. 방카슈랑스는 은행(Banpue)과 보험(Assurance)의 합성어로서 말 그대로 은행과 보험회사가 연계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2003년 도입됐다. 방카슈랑스를 통해 은행뿐만 아니라 저축은행, 증권사와 같은 금융회사들도 보험을 판매할 수 있게 됐다.

보험 판매가 가능해지자 은행은 일반 저축상품보다 보험상품 판매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은행의 저축성보험 판매는 펀드열풍이 사그라지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반토막 펀드를 경험한 사람들이 투자상품에 대해 불안해하는 심리 속으로 파고들어 복리를 강조하면서 보험상품을 판매해 온 것이다. 실제로 방카슈랑스 실적은 금융위기 이후 종합주가지수가 저점을 찍던 2009년 이후 급증했다.

방카슈랑스가 보험 판매의 주요채널이던 설계사를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카슈랑스가 보험 판매의 주요채널이던 설계사를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감원에 따르면 2010년 생명보험사들의 방카슈랑스 실적(초회 보험료 기준)은 5조173억 원으로, 2009년의 2조8866억 원에 비해 73.8%나 증가했다. 이는 1조8227억 원에 그친 설계사 판매 실적의 2.8배에 해당하는 금액이며 생명보험사 전체 실적에서도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방카슈랑스가 보험 판매의 주요채널이던 설계사를 훨씬 앞지르고 있는 것이다.

방카슈랑스의 취지는 은행을 방문하는 소비자들에게 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모집 비용을 줄여서 저렴한 사업비의 보험상품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단순히 은행을 통한 보험상품 판매가 늘었다고 비판할 수만은 없다.

문제는 은행이 실적을 높이기 위해 보험상품 판매를 무리하게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당수의 소비자들이 해당상품이 보험인지도 모르고 가입했으며 자신이 불입하는 금액 전체에 대해서 복리이자를 주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심지어 은행의 실적채우기식 영업으로 인해 방카슈랑스 계좌의 5%가 직원들의 자폭계좌라고 한다. 자폭계좌란 은행 직원들이 실적을 위해 본인 명의로 개설한 통장을 말한다. 지난 3월 통합민주당 이성남 의원실이 7개 시중은행들로부터 2011년 10월 말 기준 직원 본인 명의 계좌 자료를 받아 집계한 결과 시티은행은 무려 10.81%가 직원 본인 명의의 계좌였으며 우리은행,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이 그 뒤를 잇고 있었다.

이는 직원 본인 명의의 계좌만을 가지고 집계한 자료이기 때문에 직원 가족이나 친지 등의 지인 계좌까지 더하면 자폭계좌의 비중은 훨씬 더 클 것이다. 그만큼 은행들의 보험상품 판매에 대한 압박이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은행의 소비자와 직원들까지 피해를 보고 있지만 정작 은행은 작년 한 해만 8000억 원 이상을 보험 판매 수수료로 챙겼다.

은행은 2011년 한 해만 8000억 원 이상을 보험 판매 수수료로 챙겼다.
 은행은 2011년 한 해만 8000억 원 이상을 보험 판매 수수료로 챙겼다.

저축보험 정말 소비자에게 이득일까

은행이 열심히 판매하는 상품이 소비자에게도 실제로 이득이 된다면 가입을 꺼릴 이유가 없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저축보험이 소비자에게 이득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저축보험 가입을 결정하는 이유는 공시이율이 은행의 적금금리보다 높고 복리에 비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축보험의 공시이율이 은행의 적금금리보다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축보험이 적금상품보다 수익이 많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저축보험이 연복리로 운영된다 하더라도 불입 금액 전액이 복리로 운영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축보험은 보험상품의 특성상 사업비를 공제한 금액이 적립되는데 사업비는 보통 7~10% 정도다. 그래서 복리 이자율을 적용하더라도 원금이 되기까지 4~5년 이상 걸린다. 10년 이상 유지하면 보험상품이 유리하다고 하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

첫번째, 복리 상품이 보험사에만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요즘은 시중은행의 정기적금 중에서도 월복리 상품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 물론, 보험사처럼 10년은 아니고 보통 3년짜리 상품이지만 만기가 짧은 것이 상품의 단점이 될 순 없다.

그리고 굳이 복리상품이 아니더라도 복리 운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복리란 원금에만 이자가 붙는 단리와는 달리 이자에 이자가 붙는 것을 말한다. 굳이 다른 복리상품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만기된 예·적금의 원금과 이자를 합해서 그대로 정기예금에 가입하면 복리 이자를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년 만기 정기적금을 불입하고 만기 후에 원리금을 그대로 정기예금으로 가입하는 것을 반복하면 연복리 이자를 받을 수 있다. 1년에 1번만 은행에 가서 정기예금에 가입하는 것을 반복하면 된다. 저축보험의 10년 만기 수익률이 보통 115~120%정도인데 이 정도 수익은 앞서 언급한 방법대로 운영한다면 이자소득세(15.4%)를 떼는 은행의 예·적금을 통해서도 충분히 달성가능하다. 새마을금고나 신협, 단위농협 등의 조합원예탁금을 활용한다면 이자소득세를 내지 않고 농어촌특별세(1.4%)만 낼 수도 있다.

두번째, 10년 이상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저축보험 가입자 중 절반 가량인 45% 정도가 3년 안에 계약을 해지한다고 한다. 또한 보험연구원의 '생명보험 상품별 해지율 추정 및 예측 모형(2010)' 보고서에 따르면 금리연동형 상품의 9년차(108개월) 유지율이 23.8%에 불과하다.

10년을 유지하는 사람이 네 명 중 한 명도 안 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론 속의 복리효과를 논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가계 저축률이 2%대에 불과하고 고용이 불안정해 10년 이상 한 직장에 머무르기도 쉽지 않으며 소득이 유지된다 하더라도 자녀의 진학으로 지출이 급격히 늘어가는 상황에서 장기저축을 꾸준히 유지하기란 굉장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장기상품 가입에 있어서 더욱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은행에 대한 믿음을 버려야 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은행에 대해 필요이상으로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은행에서 알아서 최적의 상품을 제안했을 것이라 여기게 된다. 같은 상품을 제안해도 다른 금융회사가 제안했을 때보다 은행이 제안했을 때 더 신뢰를 보인다. 일종의 '은행프리미엄'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은 이익을 추구하는 사기업이다보니 금융소비자들의 믿음을 바탕으로 은행 입장에서 고수익이 될 만한 상품판매에 열을 올린다.

결과적으로 방카슈랑스 도입으로 보험사뿐만 아니라 은행, 증권사, 카드사까지도 보험을 판매하려 하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보험판매에 더 자주 노출되는 셈이다. 꼭 필요한 상품이라는 전제로 보험에 가입하는 것이야 좋은 기회이지만,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에 가입한다면 문제가 된다.

앞서 언급한 B씨의 경우처럼 저축을 적금이 아닌 보험으로 가입하면 재무관리에 상당한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장기상품은 충분한 단기자금이 확보된 상태에서 현재의 저축여력이 아닌 미래의 저축여력까지 따져보고 가입해야 한다.

하지만 은행들은 단기 예·적금을 가입하러 온 사람들까지 장기상품 가입으로 유도하면서 가정의 재무구조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소비자들의 현재 재무상태와 미래의 재무사건을 충분히 전제하지 않고 은행의 수익성에만 집중된 탐욕적인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CD금리 담합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은행은 결코 소비자 편이 아니다. 은행에 대한 믿음을 버려야 할 때다.


태그:#방카슈랑스, #복리비과세, #저축성보험, #복리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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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돈에 관해 올바른 시각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모두가 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 행복을 소비하는 사람이 되는 그날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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