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1년 7월 초 경기 부천 한 요양원을 찾아가 촬영한 사진이다. 이윤옥 시인과 함께 찍은 생존 이병희 애국지사.
▲ 생전의 모습 2011년 7월 초 경기 부천 한 요양원을 찾아가 촬영한 사진이다. 이윤옥 시인과 함께 찍은 생존 이병희 애국지사.
ⓒ 김철관

관련사진보기


"고 이병희 애국지사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 8월 15일은 67주년 광복절이었다. 국경일인 광복절을 되새기면 왠지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떠오른다. 현재 정부에 의해 항일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은 사람은 1만 2200여 명(남성 1만 2000명, 여성 200여 명)이다.

통계를 보더라도 여성독립운동가가 현격히 적다. 정확히 216명이다. 그만큼 가부장적이고 유교주의 사회에서 남성들만이 조명의 대상이었다고 할까. 하지만 수많은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남성 1만 2000명의 부인 대다수가 남편의 독립운동 뒷바라지를 하며 힘겹게 살았다. 이렇게 보면 이들 아내들도 모두 독립운동가 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부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생존한 여성독립지사가 한 분이 요양원에서 외롭게 투병생활을 하다 생을 마감했다. 이병희(李丙禧, 1918.1.14~2012.8.2) 애국지사의 별세 소식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이는 장례를 치룬 후, 한 인터넷신문의 기사를 보고 소식을 접하게 됐다. 왠지 모르게 지난 11일 오후 안국역 문화쉼터 광복절 67주년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 전시장에 모습을 나타낸 오희옥(85) 애국지사도 머리를 스쳤다.

지난 2일 별세한 이병희 독립운동가의 영정, 서울중앙보훈병원에 마련됐다. 지난 4일 대전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치됐다.
▲ 이병희 애국지사 영정 지난 2일 별세한 이병희 독립운동가의 영정, 서울중앙보훈병원에 마련됐다. 지난 4일 대전 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치됐다.
ⓒ 김영조

관련사진보기


그는 67주년 8.15광복절을 열사흘을 앞두고 지난 2일 96세의 일기로 외로운 투병생활을 하다 조용히 영면한 것이다. 고 이병희 애국지사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조국 광복 66주년을 맞아 이윤옥 시인이 펴낸 항일여성독립운동가 헌시를 모은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1>(얼레빗, 2011년 8월)을 읽은 후였다.

시집을 읽고 난후 이 애국지사가 각인된 것은 일제 강점기 때 올곧은 문학정신으로 무장해 한 길을 갔던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청포도, 광야 등 주옥같은 시를 남긴 이육사의 경성감옥(서대문 형무소)에서 시신을 거둔 사람이 바로 고 이병희 애국지사이기 때문이다. 이육사 선생은 누구인가. 일제강점기 때 많은 수많은 문학인들(이광수, 최남선 등)이 친일행위를 하며 변절했지만 식민지정책에 반기를 든 사람이 바로 육사 선생이다. 그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이 지난 2일 별세한 고 이병희 애국지사이다. 이 애국지사가 없었더라면 청포도, 광야 등 육사의 시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육사 시인은 이병희 애국지사와 친척으로 알려져 있다.

이윤옥 시인의 <서간도의 들꽃이 피다> 시집을 보면 그와 관련한 역사에 기록될 만한 사료들이 상당수 기록돼 있다. 고 이병희 애국지사의 삶은 처절했다. 광복 이후 정착한 고국에서 50년 동안 자신의 독립운동을 숨기고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계열 여성 독립운동가라는 이유로 조국 광복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그늘진 곳에서 숨죽이며 살아야 했다. 하지만 1996년 정부가 독립운동자로 인정해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에 생전 이병희 애국지사의 모습을 남긴 사진이 설치됐다.
▲ 사진 빈소가 차려진 장례식장에 생전 이병희 애국지사의 모습을 남긴 사진이 설치됐다.
ⓒ 김철관

관련사진보기


이병희 애국지사 할아버지 이원식 독립지사는 동창학교를 세워 민족교육을 이끈 독립 1세대이다. 1925년 9월 부친 이경식 애국지사는 대구에서 조직한 비밀결사 암살단 단원으로 활약했다. 아버지 이경식 선생이 죽음을 맞으면서 딸(병희)에게 유언을 통해 "너는 끝까지 나라를 지켜라, 깨끗이 살다가 죽어라"고 했다고. 이병희 애국지사도 생전에 아들에게 "독립정신을 최고의 가치로 삼아라. 나라가 망했을 때는 모두 달려들어 독립운동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뿐, 내가 한 일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애국지사는 동덕여자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열여섯 살에 경성 '종연방적'에 입사해 500명의 근로자를 모아 항일운동을 주도하다 잡혀 4년 반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40년 북경으로 건너가 의열단에 가입해 독립군 비밀문서 연락책을 담당했다. 1943년 북경으로 온 이육사와 독립운동을 협의하던 중 그해 9월 일경에 잡혀 북경감옥에 구금됐고, 이어 잠시 국내로 잠입, 이육사와 잡혀 함께 옥살이를 했다. 그는 1944년 1월 11일 석방됐고 함께 투옥됐던 이육사는 닷새 뒤인 1월 16일 옥중에서 순국했다. 이 애국지사에게 경성감옥 간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지난해 8월 14일 <오마이뉴스> 책동네 섹션에 '광복 66주년 맞은 여성독립운동가 20인 시로 승화'란 제목으로 이윤옥 시인의 <서간도에 꽃이 피다1> 시집을 소개했다. 당시 생존했던 이병희 애국지사에 대한 소개한 글을 발췌해 본다.

"조국 독립을 위해 열일곱 번이나 투옥한 저항시인 이육사 선생과 함께 경성감옥(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이병희(95) 애국지사. 경성감옥에서 옥사한 이육사 선생의 시신을 직접 거둔 장본인이다. 현재 그는 경기 부평 사랑마루 요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이육사 시인과 함께 옥살이를 한 이병희 애국지사는 지난 1944년 1월 11일 석방됐고 바로 며칠 뒤인 1월 16일 이육사 시인이 순국을 하게 돼 유품과 시체를 수습한 사람이다. 최근 이병희 애국지사는 이윤옥 시인과의 만남에서 마흔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이육사 시인의 죽음과 관련한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났다."

이병희 애국지사는 "그날 형무소 간수로부터 육사가 죽었다고 연락이 왔어, 저녁 5시가 되어 달려갔더니 코에서 거품과 피가 나오는 거야, 아무래도 고문으로 죽은 것 같아. 내가 출옥할 때만해도 멀쩡하던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아"라고 회고했다고 <서간도에 들꽃 피다> 시집 저자인 이윤옥 시인은 밝히고 있다.

지난 2012년 8월 2일 별세한 고 이병희 애국지사의 빈소는 서울 중앙보훈병원 영안실 11호실에 차려졌다. 생전 그에 대한 헌시를 <서간도 들꽃 피다> 시집에 남긴 이윤옥 시인과 김영조 한국문화사랑협회장이 지난 3일 장례식장을 찾았다. 이들에 의하면 "사람이 거의 없었고, 가족들만 조용히 고인의 넋을 기리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조국의 해방을 위해 싸운 한 여성독립운동가의 최후가 너무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는 국가독립유공자법에 따라 지난 4일 대전 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했다.

지난해 7월 초 이윤옥 시인이 요양원을 찾아 이병희 애국지사와 대화하며 헌시를 보여주고 있다. 그 옆 해바라기는 이 애국지사가 요양원에서 직접 그린 해바라기이다.
▲ 생전모습 지난해 7월 초 이윤옥 시인이 요양원을 찾아 이병희 애국지사와 대화하며 헌시를 보여주고 있다. 그 옆 해바라기는 이 애국지사가 요양원에서 직접 그린 해바라기이다.
ⓒ 김영조

관련사진보기


다음은 작년 7월 초 이윤옥 시인이 투병생활을 하고 있던 한 요양원을 찾아 이병희 애국지사에 받친 헌시 '이육사 시신을 거두며 맹세한 독립의 불꽃(이병희)'이란 '시'이다.

"경성감옥 담쟁이 서로 손잡고 올라가는 여름
요즘 아이들 밀랍인형 고문실에 멈춰서 재잘대지만
차디찬 시멘트 날바닥 거쳐 간 독립투사 그 얼마더냐

지금은 공부보다 나라 위해 일을 하라
아버지 말씀 따라 일본인 방적공장 들어가서
오백 명 종업원 일깨운 항일투쟁의 길
감옥을 안방처럼 드나들 때
고춧가루 코에 넣고
전기로 지져대어 살 태우던 천형(天刑)의 세월

잡혀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너만 죽어라
동지를 팔아먹지 마라 결코 팔아먹지 마라
혼절 속에 들려오던 아버님 말씀 새기던 나날 

광야의 육사도 그렇게 외롭게 죽어 갔으리
뼈 삭는 아픔 숯 검댕이 영혼 부여잡으면서도
그러나 결코 비굴치 않았으리라

먼데 불빛처럼 들려오는 첫 닭 우는 소리를
어찌 육사 혼자 들었으랴"

열혈 항일 여성독립운동가 고 이병희 애국지사의 명복을 빕니다.


태그:#고 이병희 애국지사, #열혈 독립운동가, #이육사 시인 시신 거둔 이병희 지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