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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에도 '맹모삼천지교'는 여전히 존재한다. 아니 맹자 시절보다 지나칠 정도로 극성이다. 하지만, 그런 극성스러운 맹모삼천지교가 진정 자식 교육에 도움이 될 것인가? 오히려 이웃을 외면하고 자신의 욕심만 차리는 부작용이 더욱 심해질 뿐이다. 그런 세태에 진정한 맹모들이 창원에 있다고 해서 다녀왔다. 경남 창원 외동초등학교(교장 맹종호)의 어머니독서동아리 '우리말바라기' 회원들을 만나보고 나니 이들이 진정한 이 시대의 맹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월 4일 국화꽃이 반기는 교정을 지나 2층 어머니교실로 오르는 현관은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교실에는 외동초등학교 어머니들의 독서 동아리인 '우리말 바라기' 회원들이 필자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다. 어머니들은 필자가 이른 아침 서울에서 내려 간 터라 속이 출출할 것을 생각하여 다과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차 한 잔을 마시고 나니 어머니들의 따스한 마음이 전해온다.

필자가 외동초등학교 어머니들을 만나러 간 것은 취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들에게 "우리말 토박이말 어휘"에 대한 특강 요청이 있어서였다. 필자는 <사쿠라 훈민정음(인물과사상사, 2010)>이란 책을 낸 바 있다. 그 책을 쓰게 된 까닭은 한 초등학생의 인터넷 상의 질문이 계기였다.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 특강에 활용된 사진(1) - 갓길과 노견, 길어깨
▲ 갓길과 노견, 길어깨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 특강에 활용된 사진(1) - 갓길과 노견, 길어깨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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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 특강에 활용된 사진(2) - 갓길과 노견. 길어깨
▲ 갓길과 노견. 길어깨 2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 특강에 활용된 사진(2) - 갓길과 노견. 길어깨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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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 특강에 활용된 사진(3) - 함바
▲ 함바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 특강에 활용된 사진(3) - 함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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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께서는 유도리란 말을 자주 쓰시는데요. 이 뜻이 무슨 뜻이에요?"

필자는 한참 동안 이 말 '유도리'를 마음 한 구석에 품고 살아야 했다. 어린 학생이 오죽 궁금하면 이런 질문을 할까? 그러나 '유도리'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따라서 무심코 쓰는 할머니의 일본말찌꺼기를 어딘가에 물어 볼 곳이 없는 나머지 인터넷에 올린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인터넷에는 "시다바리 뜻이 뭔가요?"라는 질문도 있었는데 어떤 이가 답하기를 "시다발이의 전라도 사투리입니다"라는 답을 보면서 "안 되겠구나. 대중을 위한 일본말 찌꺼기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해서 30여 년간 일본말을 공부하면서 느꼈던 우리말 속의 일본말 찌꺼기의 유래를 밝힌 게 이 책이다.

책을 내고 나니 여러 군데서 특강 요청이 들어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초등학생을 둔 어머니들이 필자를 부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어머니들이 우리말 속에 남아 있는 일본말 찌꺼기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이 기뻐 단걸음에 창원까지 내려갔던 것이다.

어머니교실에는 영상을 볼 수 있는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필자는 그동안 주변에서 여전히 잘못 쓰고 있는 우리토박이말 사진을 보여주면서 어떻게 우리가 우리 토박이말을 아껴서야 할지를 이야기 해주었다. 어머니들은 학생이라도 된 양 글쓴이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일본말찌꺼기를 중심으로 토박이말 어휘에 대한 글쓴이의 특강
▲ 토박이말 특강 일본말찌꺼기를 중심으로 토박이말 어휘에 대한 글쓴이의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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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어머니들이 외동초등학교 '우리말 바라기'회원 들만 같다면 우리의 말글살이는 훨씬 다듬어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우리 말글의 깊은 뜻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욕심 많은 어머니들의 손에 이끌려 영어 현장으로 내몰려야 하는 게 우리 아이들의 현주소이기 때문이다. 영어 조기 교육을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영어에 쏟는 정력의 몇 십 분의 일이라도 우리 토박이말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솔직히 더 크다.
  
더구나 아이들에게 올바른 우리 말글을 알려주고 가르쳐주어야 할 어머니들이 이에 무관심한 데 견주어 외동초등학교 어머니들은 스스로 공부하여 아이들에게 토박이말의 중요성을 가르치고 있으니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 한 것은 스스로 배달말지기를 자처하며 어린이와 어머니들께 끊임없이 우리 말글을 사랑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이 학교 이창수 선생님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566돌 한글날을 맞아 외동초등학교에서는 10월 8일부터 10월 12일까지를 한글 주간으로 정하고 이 주간을 앞뒤로 책 읽고 겨루기, 토박이말 겨루기, 지은이 초청 특강 등 다채로운 행사를 하였다.

김슬옹 교수의 ‘한글의 우수성과 세종대왕’ 특강 모습, 김슬옹 교수(오른쪽)
▲ 김슬옹 교수 특강 김슬옹 교수의 ‘한글의 우수성과 세종대왕’ 특강 모습, 김슬옹 교수(오른쪽)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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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4일에는 <사쿠라 훈민정음>, <서간도에 들꽃 피다>를 가지고 필자가 '우리말 바라기(외동초교학부모 독서동아리)회원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우리말 속 일본어 찌꺼기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10월 9일 한글날에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글자인 한글의 뿌리 '토박이말'을 배우고 익힌 학생들이 그동안 익힌 토박이말로 '토박이말 겨루기'를 펼쳤다. 아직은 낯선 말이 많아 고개가 갸우뚱해지지만 더 자주 더 많은 토박이말을 배우려는 열기는 뜨거웠다.

창원외동초등학교 어머니독서동아리 ‘우리말바라기’ 회원들과 필자
▲ ‘우리말바라기’ 회원들과 필자 창원외동초등학교 어머니독서동아리 ‘우리말바라기’ 회원들과 필자
ⓒ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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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0일에는 창원교육지원청에서 마련한 '학부모와 함께하는 독서 캠프'행사의 하나로 4-6학년 학생들이 <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의 지은이자 세종대학교 세종연구원 '김슬옹 교수'를 초청하여 '한글의 우수성과 세종대왕'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 김슬옹 교수는 다양한 자료와 놀이를 곁들여 한글의 우수성을 재미있게 풀어주었으며, 세종대왕의 훌륭한 점을 알기 쉽게 알려주었다.

행사에 참여한 박윤희(학부모)씨는 "한글날을 앞두고 우리말의 소중함과 잘 몰랐던 우리말 속 일본말,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에 대해 알게 된 뜻 깊은 자리였다"고 했으며, 김현민(6학년) 학생은 "한글이 얼마나 과학적인 글자인지 그리고 정보화사회에서 얼마나 효율적인 글자인지를 알게 해 준 좋은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교육은 교사의 질을 넘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말글을 사랑하는 외동초등학교의 훌륭한 선생님 아래 훌륭한 학부모와 학생이 있어 큰 위안을 받은 하루였다. 영어 제일주의로 치닫는 요즈음 한글을 사랑하고 토박이말을 닦고 이어가기 위해 애쓰는 외동 학부모 독서 동아리(우리말 바라기) 회원들과 선생님께 큰 손뼉을 보낸다.

토박이말의 종요로움을 알자
[인터뷰] 배달말지기 외동초등학교 이창수 교사

배달말지기 외동초등학교 이창수 교사
 배달말지기 외동초등학교 이창수 교사
ⓒ 이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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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동초등학교에는 <슬기주머니>, <우리말 바라기> 같은 독서동아리가 있는데 어떤 성격의 동아리인가?
"<슬기주머니>는 어휘력 신장을 통한 국어능력 향상을 목표로 만든 동아리(회장: 김수인)로 회원은 학생들 10여 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다.  2009년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에서도 어휘력과 관련된 성취 기준을 많이 반영하고 있지만 제한된 국어과 교과 학습 시간만으로 학생들의 어휘력을 신장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어휘력을 늘리기 위한 책을 읽으며, 우리말로 학생들의 슬기주머니를 채움으로써 국어능력 향상, 나아가 학력 향상의 바탕을 튼튼히 해 주고 싶어 만든 동아리이다.                  

또한 <우리말 바라기>는 잘 몰라서 틀리게 쓰는 말, 우리말의 숨겨진 속살과 그 참맛을 알아 우리말 부려 쓰는 힘을 기르기 위한 어머니들의 책 읽기 동아리(회장 박윤희)로 10여명이 활동 중이다. 온 나라가 영어라는 커다란 바람에 휩쓸리고 있다 보니 영어를 못하는 것은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말을 잘못 쓰거나 틀리게 쓰면서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특히 아이를 기르면서 아이가 툭툭 던지는 우리말과 관련된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하는 학부모를 대상으로 독서 동아리를 통해 잘 몰라서 틀리거나 잘못 쓰는 말들, 우리말의 뿌리인 어원, 조상들의 삶과 얼이 스며있는 우리말의 속살과 그 참맛을 알아서 우리말 사용 능력을 길러 보고자 만든 동아리이다." 

- 특히 어머니들의 독서모임인 <우리말 바라기> 모임 회원들에 대해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말에 관심을 갖고 우리말을 더 잘 알고자 하는 데 뜻이 있는 어머니들의 모임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우리말바라기' 동아리가 외동초등학교의 자랑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 선생님은 이러한 동아리 말고도 우리 말글살이 활동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두 가지 소개해준다면?
"우리말 가운데 가장 우리말다운 우리말 하면 '토박이말'이다. 우리 한아비들의 슬기와 얼이 담긴 토박이말을 잘 가르치고 배워서 부려 쓰는 누리를 만들고 싶어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토박이말>이란 이름의 동아리를 꾸려가고 있다. 모두 여덟 명이 모여서 2주마다 모임을 갖고 있으며 토박이말을 가르치고 배우는 데 도움이 될 거리들을 만들려고 함께 공부하고 있다.

또 내가 만든 배달말누리 누리집(http://baedalmal.kr)을 바탕으로 토박이말 관련 정보를 나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정보와 자료들로 누리집을 채워 갈 것이다. 그리고 트위터, 페이스북에서 '배달말지기'라는 또이름으로 '토박이말 맛보이기' 활동을 꾸준하게 하고 있다. 더욱 많은 분들이 토박이말의 종요로움을 알고 즐겁게 배워 익히는 데 마음을 모아 주시길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

덧붙이는 글 | 대자보에도 보냄



태그:#토박이말, #이창수, #외동초등학교, #우리말 바라기, #이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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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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