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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선생 암살의혹규명 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2월 5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도리 장준하 공원에서 고인의 사인 규명을 위한 유골 정밀감식을 위해 개묘작업을 해 고인의 두개골을 수습하고 있다.
 장준하선생 암살의혹규명 국민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12월 5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성도리 장준하 공원에서 고인의 사인 규명을 위한 유골 정밀감식을 위해 개묘작업을 해 고인의 두개골을 수습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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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나라 '민주주의와 인권 회복'의 중대한 갈림길이 될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불과 하루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이번 선거가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말로 최선을 다해온 기간이었습니다. 저 역시 지난 11월 26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더 이상 지킬 수 없어 서울시교육청 공무원직 사표를 낸 후 많은 분들에게 책과 글과 강연을 통해 투표에 동참해줄 것을 호소해왔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새로운 민주 정부'를 만들어야 합니다. 친일과 쿠데타, 그리고 부패한 독재세력이 득세하는 암울한 과거의 시대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민주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부패한 보수 세력은 유신 독재를 비판하는 이러한 지적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과거 독재를 비판하면 말로만 사과할 뿐 '과거에 매달려 미래를 말하지 않는다'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과거를 회피하고 싶은 세력에게는 미래에 대한 그림이 없습니다.' 과거를 마주볼 자신이 없는 세력이 미래를 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제대로 된 미래를 이야기하려면 그 잘못을 '밑에서 들어 엎어 바라볼 때 가능한 일'입니다.

쉽게 말해서 '완벽한 과거 청산이 이뤄질 때 진짜 미래를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쿠데타 세력을 청산하지 못했고 친일파 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우리 현대사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그 쿠데타와 친일파의 원조 후손이 지금 '과거 청산 없는 미래'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 사건을 조사했으며, 그 후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에서 이완용 등 친일파의 재산을 국가로 귀속하는 조사관으로도 일했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이들 쿠데타 세력과 친일 세력이,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바로 그 정점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있습니다. 만주군관학교에서 일본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친일파의 길을 걸었고 이후 대한민국 쿠데타 세력의 원조로 18년간 유신 독재자로 살아온 박정희가 그의 아버지입니다.

그뿐입니까. 박정희는 죽어서도 이 나라를 지배했습니다. 쿠데타와 독재, 그리고 어마 어마한 부정부패 세력의 대명사가 바로 '전두환과 노태우'입니다. 그들은 박정희가 키워낸 정치적 양자였으며 독재자의 양자였습니다. 박정희가 5·16 쿠데타를 일으킨 그해, 당시 육사 3학년 생도였던 전두환과 노태우가 중심이 되어 육사생도 지지 퍼레이드를 주도했습니다. 쿠데타로 맺어진 인연으로 키워진 그들이 다시 그때로부터 18년이 지난 1979년 12·12 군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것입니다.

그렇게 전두환 정권 7년, 노태우 정권 5년을 합치면 12년입니다. 그런데 이런 친일파요, 군사 쿠데타의 원조이며 대부인 박정희가 사실상 지금 다시 부활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건국 후 64년 중 박정희 18년, 전두환과 노태우 12년을 합치면 30년입니다. 그런데 지금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무려 35년 동안 대한민국이 박정희 쿠데타 유신독재 세력에 의해 장악되는 것입니다. 이러고도 이 나라의 양심과 정의는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습니까?

민주주의자 김근태의 명령 "2012년을 점령하라"

9월 26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성당에서 박정희 정권때 의문사 당한 고 장준하 선생 아들 장호권씨와 고 최종길 교수 아들 최광준씨가 참석한 가운데 '우리는 왜 유신의 부활을 반대하는가' 좌담회가 열리고 있다.
 9월 26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성당에서 박정희 정권때 의문사 당한 고 장준하 선생 아들 장호권씨와 고 최종길 교수 아들 최광준씨가 참석한 가운데 '우리는 왜 유신의 부활을 반대하는가' 좌담회가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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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미래를 말할 수 있는 진정한 세력은 민주 세력이 되어야 합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한 자신의 몸을 던져 싸워온 김근태의 후배들이 바로 우리입니다. 우리가 노력한다면 민주 시대, 인권 시대를 만들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만날 것입니다. 새로운 민주 시대, 새로운 인권 시대를 두고 저 야만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민주화를 말했다고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시대가 바로 '유신 독재'였습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 그러했고 장준하가 그러했으며 서울대 법대 최종길 교수 살인 사건이 그러했습니다. 그 외 일일이 다 그 이름을 열거할 수 없는 이들이 죽어갔으며 감옥으로 끌려갔습니다. 

군대에서 죽어갔으며 거리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거리에서, 감옥에서, 군대에서, 그리고 이름 없는 산과 바다에서 죽어갔습니다. 그런데 그 가해자들이 지금 또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부패한 보수 세력을 통해 부활을 꾀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금 다시 권력을 찬탈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또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고서야 이 야만의 시대가 끝나야 합니까?

친일세력 끝장내고 부패한 쿠데타 세력을 청산합시다. 그 길 위에서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권교체를 위해 헌신해야 합니다. 안철수는 안철수 방식으로, 심상정과 이정희는 또한 그들의 방식으로, 그리고 저와 여러분 역시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투표할 수 있는 자는 투표로서, 지식이 있는 자는 지식으로, 그리고 말할 수 있는 자는 지금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적 요청에 화답하여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민주주의자' 김근태가 마지막으로 남긴 명령에 화답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1년 전, 민주주의자 김근태는 '2012년을 점령하라'는 처절한 명령을 우리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 명령에 어떻게 화답할 것인가 기로에 서 있는 것입니다.

싸웁시다. 우리는 해낼 수 있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모친 고 이소선 어머니가 저에게 생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상만아. 우리가 왜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도망가지 않고 거리에 서 있었냐. 그것이 그 독재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하는, 그리고 역사가 우리를 불러서 거기 서 있었던 것 아니냐?"

그렇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우리를 이곳으로 불러 모은 것입니다. 우리만이 아닙니다. 장준하 역시 장준하의 방식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박정희 유신 독재가 부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장준하는 37년 만에 자신의 상처를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이 상처를 드러내기 위해 장준하는 2012년 8월, 천둥 번개가 내리치던 그날 자신이 누워 있던 뒷산을 무너뜨렸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던 그날, 장준하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영혼의 힘을 모아 뒷산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묘를 파 낼 수밖에 없게 만들었고 이를 통해 자신이 품고 견뎌온 37년간의 참담한 상처를 세상에 드러낸 것입니다.

장준하 선생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했을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자신의 상처를 세상에 드러내어 만약에 다시 올지 모를 '박정희 유신 독재 2기 정부'가 세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이미 37년 전,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못난 조상이 되지 않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몸부림을 친 것이라고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단 말입니까.

못난 후손이 되지 않고자 평생을 독립운동가로, 언론인으로, 야당 지도자로, 그리고 민주화 투사로 싸웠고, 또한 죽어서도 다시 싸우고 있는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앞에서 우리도 약속해야 합니다.

못난 후손이 되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싸우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약속을 해야 합니다. 반드시 우리가 나서서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열겠다고 말입니다. 무너진 민주주의를 회복시키고 짓밟힌 인권의 나라에서 다시 인권이 살아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시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장준하와 박정희, 누가 올바른 삶을 살았는지 우리가 심판해야

오종선 작가가 9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고 장준하 선생 의문사의 재조사를 촉구하며 고 장 선생 유골을 본떠 만든 조각 작품을 들고 전시회를 하고 있다.
 오종선 작가가 9월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고 장준하 선생 의문사의 재조사를 촉구하며 고 장 선생 유골을 본떠 만든 조각 작품을 들고 전시회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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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기준으로 본다면 장준하는 평생 모난 돌이었습니다. 일제의 징병을 회피할 수 있었으나 그는 사랑하는 연인이 정신대에 끌려가는 것을 막고자 대신하여 일본군에 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탈영하여 그는 6000리 길을 걸어 임시정부를 찾아가 광복군이 되었습니다. 이 후 장준하는 사상계 언론인으로, 야당 지도자로, 민주화 투사로 유신독재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1975년 8월 17일, 끝내 포천 약사봉에서 유신독재 권력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반면 박정희는 '폭력이 권력이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칼을 찬 군인이 되어 권세를 누리고 싶어 일본 왕의 군인이 되고자 스스로 혈서를 써 충성 서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러한 충성을 인정받아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졸업했고 이후 독립군과 싸우는 일본 군인으로 살았습니다.

박정희는 필요하면 친일파가 되었고 남로당에 가입했으며 또 필요하면 동지들을 배신한 후 그들을 팔아 자신이 살았습니다. 수많은 이들이 이승만 독재 정권에 맞서 4·19에 죽었으나 박정희는 그들의 피를 탱크로 깔아버리고 그 위에 자신의 권력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찬탈한 권력을 박정희는 이후 긴급조치와 계엄령으로 18년간 유지했습니다. 그렇게 '폭력이 권력화'되는 것을 확인하고 살아온 이가 박정희입니다.

묻고 싶습니다. 누가 정의로운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까. 누가 이 나라를 위해 제대로 살아온 인생입니까. 이제 역사가 심판하지 못했다면 우리가 심판해야 합니다. 이 나라는 박정희 유신독재 일가의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가 투표로서 심판할 수 있습니다. 투표가 부정한 권력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는 소원합니다. 2012년 12월 19일. 우리가 만날 새로운 민주 시대에 우리 모두 승리의 찬가를 부릅시다. 다시 돌이킬 수도 없고 후퇴할 수 없는 민주와 인권의 시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특권이 판을 치고 반칙이 성공하는 시대가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 시대보다 더 완벽한 '민주정부 3기 시대'를 열 것을 우리가 약속합시다.

1932년 12월 19일. 이날은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일본왕의 생일 자리에 폭탄을 던진 매헌 윤봉길 의사가 순국한 날입니다. 그로부터 80년 후인 2012년 12월 19일. 우리는 지금 무엇을 던져 이 시대 친일 세력을 단죄하시겠습니까. 투표로서 '친일 쿠데타 유신독재' 세력의 부활을 막아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제2의 윤봉길이며 '애국'입니다. 

안중근의 권총처럼, 윤봉길의 폭탄처럼 우리가 애국할 용기가 없다 해도 그것은 비난받을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누가 대통령이 되든 상관없이 투표하지 않는다면 저는 그러한 무관심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죽어서도 싸우고 있는 장준하 선생이 웃고, 민주주의자 김근태 의장이 환하게 웃는 12월 19일. 그 길 위에서 우리는 하나가 될 것입니다. 모두가 투표할 것을 진심을 다해 호소합니다.


태그:#투표, #장준하,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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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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