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을 보내며 몇몇 예능 및 개그 프로그램들에서 정말 웃겼다고 생각나는 장면들을 위주로 개그 코드들을 추출해 본다. 단, 여기에서 종편은 제했으며, 특정 유행어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하이브리드·외모·일상어·사회풍자 등의 네 가지 코드를 통해 여러 다양한 코너들을 새롭게 살펴보고자 한다.

하이브리드 코드 : "하이브리드 샘이 솟아 리오레이비"

 <무한도전> 2012년 10월 6일 방송분 캡처

<무한도전> 2012년 10월 6일 방송분 캡처 ⓒ MBC


하하는 <무한도전>(이하 <무도>) 속 임시 가설 코너 '행쇼'에서 돌연 '하이브리드 샘이 솟아 리오레이비'를 자처한다. 정체불명의 긴 합성어 이름은 필시 <무도>의 변화무쌍 캐릭터 생성술의 기류를 업고, 스페인식 이름의 긴 작명을 본 딴 가운데, 평소 악쓰며 띄엄띄엄 단어들을 뱉어내는 하하 특유의 말투에서 자연스레 '샘솟아'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는 그가 출연하는 <런닝맨>의 '판타지 월드'에 접속해 게임의 룰을 따라 마법 역량을 지니는 세계와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이름에서부터 하이브리드를 내세우는 하하를 비롯해, 이질적인 요소들이 섞여 탄생한 이종, 혼합 등을 가리키는 '하이브리드'는 개그맨 정성호가 <세바퀴> 홍보 영상에서 화면 분할을 통해 "좌-박근혜 우-문재인"을 표현했을 때 극에 달했다. 문재인-코스프레가 진작부터 등장해 브라운관을 수놓았다면 '이미지 정치'의 측면에서 문재인 대선후보에 대한 친밀도가 조금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아쉬움도 남는다.

 <세바퀴> 2012년 12월 8일 방송분 캡처

<세바퀴> 2012년 12월 8일 방송분 캡처 ⓒ MBC


평소 '박근혜-코스프레'로 독보적이었던 '성대모사의 달인' 개그맨 정성호의 '한 얼굴 두 사람'은 분신처럼 상대방을 흉내 내는 그의 탁월한 기예적 개그 감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실 <snl코리아>에서도 배우 김슬기가 박근혜에서 이정희로 역할을 옮겨 다녔다. 대선 후보를 검증하는 TV토론의 뚜렷한 공세와 수세의 분위기가 누군가에게는 통쾌함을 줬고, 이는 <snl코리아>에서 패러디되어 정치 풍자의 화끈함으로 확장되며 화제가 됐다.

<snl코리아>는 한 명의 스타가 끊임없이 여러 역할을 전유하며 평소 그 스타의 이미지를 새롭게 창출해 내는데, 여기에는 기예에 가까운 스피디한 변신술이 기반이 된다. 원래 손담비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의자 춤의 다리를 꼬는 움직임은 <원초적 본능>에서 샤론 스톤이 배심원들을 홀리는 다리 꼬기의 유사 계열의 이미지를 형성하며, 자기 패러디의 정점을 찍는다. 이 매혹적 스릴러에서 B급 코미디의 전환에는 익숙한 대중물의 전유와 두 유사 이미지의 합성 코드를 찾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전형적인 하이브리드 코드를 가진 프로그램으로는 <비틀즈코드>를 들 수 있다. <비틀즈코드>는 세기의 종말 코드로 연관해 비틀즈(The Beatles)의 '노란 잠수함'(yellow submarine)이란 노래를 해석하는 것에서 착안해, 인류 멸망의 시기에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에 태울 스타들을 새롭게 선별한다는 콘셉트를 기저에 깔고 있다. 여기에 두 뮤지션 그룹의 대표곡들을 섞어 하나로 만든 '비비곡'(곡들을 비벼 한 곡으로 만든다는 조어로, 일종의 매시업Mashup에 가깝다)을 정점으로 두 음악 그룹 사이에 유사점들을 끄집어낸다.

외모 코드 : "저는 못생기지 않았습니다!"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12월 1일 방송 캡처

<무한도전> 못친소 페스티벌 12월 1일 방송 캡처 ⓒ MBC


'얼짱'에서 '훈남'으로 온갖 외모 관련 수식어들의 양산을 부추기는 '외모지상주의'의 여파는 연예계에까지 미쳤다. 주로 잘생기거나 예쁜 연예인들은 화장 안 한 평소 모습을 연출한 '셀카'(셀프카메라)로 자기의 타고난 외모를 증명(해야)했고, 평소 자신이 잘 생겼다고 생각하냐 라는 질문이 어김없이 그들에게 따랐고, 여기서 겸손이 다소 지나치면(?) 곧 이어 망언 스타로 검색어를 장식해야 했다.

'네가지'에서 각각 키 콤플렉스와 비만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허경환과 김준현은 일관되게 자신들의 콤플렉스에 얽힌 평소 일화들과 그에 대한 부당함 내지 억울함을 토로했고, 실제와 개그를 섞으며 <개그콘서트>(이하 <개콘>)에서 비중 있는 코너의 중핵을 가져갔다.

그러나 진정한 외모의 반란은 <무한도전> '못친소(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 페스티벌'에서 일어났다. 못생겼다고 추천 받은 연예인들이 한데 모여 "우리들은 미남이다"를 외치는 웃지 못 할 진풍경은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뮤지컬식 화법을 섞은 개그 코드로 녹여 승화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개그콘서트> 2012년 12월 23일 방송분 캡처

<개그콘서트> 2012년 12월 23일 방송분 캡처 ⓒ KBS


또 다른 '반란'은 박지선의 스스로의 외모에 대한 저항적 선언이 있겠다. "저는 못생기지 않았습니다."는 가령 '저는 잘생기지 않았다'는 예의를 차리는 겸손과는 전혀 상관없으며, 오히려 '너는 못생겼다!'라는 금기시화된 말을 직접 향한다. 이러한 주장은 스스로의 외모를 비하하는 듯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직구를 날리는 것이지만, 스스로를 그 외모 비하의 담론에 위치시키는 것이어서 꽤 용기가 필요한 고백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외모에 대한 강한 집착이 내재한 우리 사회에서는 그녀의 발언이 꽤나 통쾌한 측면 역시 있었다.

일상어 코드 : "조으다"_'유행어에서 일상어로'

 <코미디 빅리그> 시즌4 2012년 10월 6일 방송분 캡처

<코미디 빅리그> 시즌4 2012년 10월 6일 방송분 캡처 ⓒ tvn


허경환의 '거지의 품격'에서 "궁금해요? 궁금하면 오백원!"은 분명히 그 유행어를 칠 타이밍에 약간의 정적을 끌어 그 유행어가 등장할 것임을 예고하는 측면에서 전형적인 유행어 구사 방식을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김지민은 거지에 상반되는 일상인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 등장하는 측면이 강하고, 주로 허경환이 주인공의 자리를 장식하는데, <코미디빅리그>(이하 <코빅>)에서 라이또의 '게임폐인'은 코너 전반이 거의가 유행어였고, 또한 코너 자체가 독특한 캐릭터들의 집합 장이기도 했다.

"자리주삼"에서 시작해 "헤헤헤" 게임에 홀린 게임폐인 세형(양세형)의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었고, 게임에 쓰는 아이디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은 다른 게임폐인들, '찐찌버거'(박규선)와 '예삐공주'(이용진)의 등장 이후, '예삐공주'의 "조으디", "조으다" 등의 유행어는 거의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상어와 같은 수준으로 확장됐다.

일종의 혀 짧은 유아어 같은 발음 구사에서 비롯된 이러한 유행어들은 인터넷 채팅의 영향 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게임폐인'은 유행어를 넘어 게임 현실이 일상으로 확장된 게임폐인들의 삶 자체를 적나라하게 풍자하며 재미를 줬다. 게임의 가상현실에 빠져 게임 스킬을 현실에 적용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게임폐인들을 향해, 정신 차리라고 윽박지르는 PC방 알바의 일갈은 게임으로만 표상할 수 없는 현실의 진실을 드러내며 그 끝을 맺던, 이 코너의 인기는 꽤나 컸다. 현재 "조으다"는 <코빅> '남조선인민통계연구소'에서 이용진의 "조으디. 음~ 조으디"로 변주되어 사용되고 있다.

 <개그콘서트> 2012년 12월 23일 방송분 캡처

<개그콘서트> 2012년 12월 23일 방송분 캡처 ⓒ KBS


일상어에 가까운 유행어는 <개콘>의 '생활의 발견'에서, 민폐 끼치는 손님(사실상 스타이지만)에 대한 종업원의 항변, 김기리의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도 들 수 있다. 이는 '장소 파악' 못하는 공중 질서에 어긋나는 행위에 잔잔한 일침을 날리는 말로, 손님들의 민폐를 겪어내야 하는 종업원의 고충을 드러냈다. 또한 이는 처음 신보라 내지 송준근의 상대방을 향한 "지금 장소가 중요해?"라는 말로 시작해, 실은 장소에 적합하지 않은 말들로 아이러니함의 웃음을 줬던 '생활의 발견'이 어느새 게스트에만 의존하는 코너라는 불명예에 시달리는 가운데에서도, 유일하게 그 '장소'의 개념을 살려주는 말이기도 하다.

패러디 코드 : "지금은 해야 합니다."_백수의 취업 분투기

 <개그콘서트> '정여사' 방송 캡처

<개그콘서트> '정여사' 방송 캡처 ⓒ KBS


<개콘>의 '정여사'는 기업을 상대로 구매 상품에 관해 악성 민원을 의도적으로 제기해 보상금을 노리는 소비자인 블랙슈머를 그리는 동시에 천박한 부르주아를 패러디한다. "있는 사람들이 더 하네"로 끝나며 그 풍자의 기능을 살리고자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상품 '브라우니'를 존재화시키는 것처럼 상품에 대한 왜곡된 시선과 그로부터 유래한 물신주의 성격이 더 짙다. 곧 '정여사'는 백화점에 진열된 상품들에 매혹되고 이를 갖고자 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정여사를 통해 드러내는 것에 가깝다. 따라서 '정여사'는 패러디 형식을 차용하는 듯하지만, 패러디의 풍자적 성격을 생각해 본다면, 굉장히 얕은 패러디에 불과하다.

<개콘>의 위용에 가려져 있고, 늦은 시간대로 제약이 크지만 <코미디에 빠지다>에서 몇몇 코너들은 그 신선한 형식과 소재로 눈에 띈다. 그중에서도 '두 이방인'은 고학년 백수 둘이 몸을 쓰는 일용직 취업에 용쓰는 내용의 코너로, 그들의 "해야 합니다! 지금은 해야 합니다!"는 지금은 몸 사리지 않고 그저 일을 해야 한다는 젊은이들의 악전고투 취업 도전기의 비애를 적확하게 현상해 낸다. 꽤나 큰 울림이 거기에 있다.

 <코미디에 빠지다> 2012년 10월 19일 방송분 캡처

<코미디에 빠지다> 2012년 10월 19일 방송분 캡처 ⓒ MBC


이 둘은 노동 현장에서 적응 못하는 이방인이고, 나아가 취업을 강요하고, 직업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회의 잣대 속에서 백수라는 점에서 역시 이방인이다. 온갖 현학적이고 지적 언어들로 이 둘은 노동을 궁리해 내지만, 이는 실제 그 노동을 실행함에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교훈 역시 제시하며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실제 현장에서의 일 사이의 간극이 큼을 비판적으로 드러낸다.

외모지상주의 영향에서 비롯된 일명 '꽃거지' 담론으로부터 출발한 '거지의 품격'이 거지 역시 스타일을 갖춰야 한다는 역설을 내포하며 진정한 거지의 모습은 오히려 은폐한다면, 고학력자임에도 쓸모없는 잉여 인력밖에 되지 못하는 젊은 세대의 슬픈 초상을 드러내는 '두 이방인'은 구청 청소부를 뽑는 시험에 대졸자가 넘친다는 학력 인플레 현상을 나타내는 한편, 신자유주의 시대의 구조적인 일자리 부족의 문제점까지를 파악케 하며, 미래가 불투명한 사회 이면을 적시해 낸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아트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개콘 코빅 박지선 세바퀴 저는 못생기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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