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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7번방의 선물> 중 한 장면.
 <7번방의 선물> 중 한 장면.
ⓒ 화인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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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구는 딸에게 세일러문 가방을 사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를 믿지 않았고, 용구는 하루아침에 빨간 명찰을 단 사형수가 된다. 올해 첫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7번방의 선물> 줄거리다. 그런데 용구는 현실에도 있었다. 1975년 4월 9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용구'는 8명이었다. 나라 안팎에서 '사법 살인'으로 평가받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희생자들이다.

이밖에 수많은 '용구'가 있었지만, 한국사회는 아직 사형제 폐지 여부를 두고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1997년 12월 30일 이후 한 번도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사실상 사형 폐지국'이지만, 아동 성범죄나 연쇄살인 등 흉악범죄사건이 있을 때마다 여론은 늘 엇갈렸다. 다만 누구든 '집행'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이명박 정부도 21명을 죽인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을 저지른 정남규, 안양 초등생 납치살해사건의 정성현 등 3명의 사형집행을 2009년 검토했다가 포기했다. 여러 모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었다.

'박근혜 그림자' 조윤선 "사형 집행해야 한다"... 정말 개인 뜻?

그런데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달랐다. 그는 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 특히나 아동 상대로 한 성폭력 사건 보면 너무나 이 부분은 국민들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인 경우 많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형제도는 이런 일어나서는 안되는 범죄를 예방하는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의지 갖고 실천돼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게 제 개인적 생각입니다."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해 새누리당 선관위 대변인을 시작으로 당 경선캠프, 대선캠프, 인수위를 거치며 계속 박근혜 대통령을 '그림자' 수행해왔다. 사진은 지난 2월 8일 박 대통령과 함께 서울 광진구 중곡제일시장을 찾은 모습.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해 새누리당 선관위 대변인을 시작으로 당 경선캠프, 대선캠프, 인수위를 거치며 계속 박근혜 대통령을 '그림자' 수행해왔다. 사진은 지난 2월 8일 박 대통령과 함께 서울 광진구 중곡제일시장을 찾은 모습.
ⓒ 인수위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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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유승희 민주통합당 의원이 "(이 발언을) 한시적으로 극악범에게는 사형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해석해도 좋냐"고 묻자 "예, 용납하기 힘든 범죄는 사형제까지 선고하고 집행해야 할 경우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사형 집행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또 "작년에 저희가 목격했던 몇 건의 잔인한 사건들이나 점점 포악해지는 범죄를 봤을 때 불가피하게 (사형을) 집행해야 하는 기관이 있어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조 후보자는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2012년 7월 새누리당 선거관리대책위원회를 시작으로 경선 캠프·대선 캠프를 거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까지 계속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박근혜의 그림자' 역할을 해왔다. 그만큼 박 대통령의 의중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조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자신이 발탁된 이유가 "박 대통령이 제게 '선거 때 오랫동안 같이 다니면서 내가 여성정책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지 않느냐'고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조 후보자의 발언을 그저 개인 견해라 보고 넘어가기 어려운 까닭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껏 '사형을 집행할 수도 있다'는 뜻을 여러번 내비쳤다. 그는 2012년 9월 4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사형제가 좋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끔찍한 일(아동성폭행)에 대해 '그러면 너도 죽을 수 있다' 그런 것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 대통령이라면 (사형 집행을) 하겠느냐"는 질문이 이어지자 "저는 예전에도 그렇게 주장한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해 11월 21일 영화 <돈 크라이 마미> 시사회에서도 "(아동성폭행범을) 사형까지 포함,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박근혜 정부 내각 다수가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외치지는 않는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지난 2월 20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사형제는 존치하는 게 옳지만, 집행은 신중하게 판단할 문제"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사형 집행권한이 있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 역시 청문회에서 "사형 (집행) 문제는 정말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많은 고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계는 사형 폐지 추세... 한국만 '집행' 말하는 건 후퇴"

1975년 4월 9일 새벽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사법살인' 당한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도예종(삼화토건 회장), 서도원(전 대구매일신문 논설위원), 하재완(무직), 이수병(일어학원 강사), 김용원(경기여고 교사), 송상진(양봉업), 우홍선(무직), 여정남(전 경북대 총학생회장) 8명의 사형이 집행된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1975년 4월 9일 새벽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사법살인' 당한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도예종(삼화토건 회장), 서도원(전 대구매일신문 논설위원), 하재완(무직), 이수병(일어학원 강사), 김용원(경기여고 교사), 송상진(양봉업), 우홍선(무직), 여정남(전 경북대 총학생회장) 8명의 사형이 집행된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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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박 대통령과 측근이 '사형 집행'을 거론하는 현재 상황은 우려스럽다. 한국의 시간만 거꾸로 가는 모습이다.

변정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팀장은 "유엔(UN·국제연합)이 지난해 11월 총회에서 '사형 모라토리엄(집행 유예)'를 추진하며 지적한 내용을 되새겨봐야 한다"며 "당시 UN은 사형의 범죄 예방 효과를 입증할 결정적 증거가 없고, 오히려 사형을 하지 않는 게 인권을 증진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변 팀장은 "이런 논의가 다시 불거지는 것 자체가 '사형으로 모든 범죄를 예방한다'는 왜곡된 의식을 줄 수 있다"며 "세계는 지금 사형 폐지로 나가는데 한국만 역행해 '집행'이라는 더 예민한 카드를 들고 나오는 것은 후퇴"라고 지적했다.

김덕진 천주교 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은 "(조 후보자의 발언은) 신중하지 못하고, 포퓰리즘적인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또 "15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고, UN 인권이사회 이사국에 세 번째로 당선됐고, 반기문 사무총장을 재선시킨 나라에서 (다시) 사형을 집행한다는 건 정말 국제사회에 역행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한국이 그동안 아시아에서 사형 폐지운동을 거의 이끌어왔는데, 자꾸 주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발언을 하면 창피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창피한 일'이 여기까지라면 차라리 낫다. 혹여나 또 다른 '용구'를 만날까 두렵다. 그때에는 '창피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테니...


태그:#박근혜, #조윤선, #7번방의 선물, #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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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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