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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8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공직자가 100만 원을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영란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8월,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공직자가 100만 원을 넘는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받으면 대가성이 없어도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부정청탁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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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스폰서를 해오다가 '청탁 시'에만 대가 없이 하는 것과 대가를 주며 하는 것, 나는 둘 사이에서 차이를 알 수가 없었다. 굳이 두 사례를 나누어 놓은 그들의 섬세함을 이해해보려 안간힘을 썼다. 감정을 억누르며 최대한 숙고했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 몇 번을 되뇌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찾아 스스로를 이해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헛수고였다. 도통 생각해도 수긍이 가질 않는다. '과잉금지의 원칙'을 들어 권력을 보호하려는 그들의 박애정신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법안'(이하 김영란법) 얘기다. 김영란 전 대법관이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발의한 입법예고안은 정치 성향을 초월해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만큼 우리가 느끼고 있던 부정부패 척결에 대한 갈증이 심했다는 얘기다.

그런 법률안이 지난달 30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며 알맹이가 쏙 빠져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김영란법'과 관련해, 지난 6일 국무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공직윤리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청탁을 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청렴한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소 애매한 표현이다. '김영란법'은 이정도로 됐으니, 이제 '청렴문화 확산 운동'이라도 펼치자는 얘긴가. 그러나 이를 어쩌나. '김영란법' 정부안은 그런 감성적인 표현으로 포장하기에는 도를 지나쳤다.

알맹이 쏙빠진 '김영란법' 놓고 대통령은 "청렴문화 만들자"니

6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모습.
 6일 박근혜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모습.
ⓒ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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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국민권익위가 입법예고한, 그리고 국민이 열광했던 '김영란법'의 중심에는 제11조1항(금품 등의 수수금지)이 있었다. '공직자는 직무상의 관련 여부 및 기부·후원 등 명목여하를 불문하고 사업자 등이나 다른 공직자를 포함한 어느 누구로부터도 일체의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는 한 문장이 가진 무게감은 컸다.

직무 관련성과 명목여하를 불문해 처벌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종전 권력부패 사건에서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딱 잡아떼던 피의자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꼈던 우리는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박수를 쳤다.

그러나 이 한 문장이 국무회의를 거치며 쪼개졌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입법예고한 원안과 국무회의를 거친 정부안의 비교. '금품등의 수수 금지'에 해당하는 조항이 정부안에서는 둘로 나뉘어 있다. 이는 단순 친분에 의한 '스폰서'는 과태료로 처벌을 낮추겠다는 뜻이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입법예고한 원안과 국무회의를 거친 정부안의 비교. '금품등의 수수 금지'에 해당하는 조항이 정부안에서는 둘로 나뉘어 있다. 이는 단순 친분에 의한 '스폰서'는 과태료로 처벌을 낮추겠다는 뜻이다.
ⓒ 김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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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안의 제11조에 해당하는 정부안 제8조에서는 1항과 2항이 존재한다. 1항은 '공직자는 자신의 직무와 관련하여 또는 그 지위·직책 등에서 유래하는 사실상의 영향력을 통하여 어느 누구로부터도 금품 등(그 직무수행과 대가관계가 있는 금품 등은 제외한다)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해서는 아니 된다'라 하고 있다. 2항은 종전 11조와 같다.

왜 굳이 둘을 나누어 놓은 것일까. 직무관련성과 명목여하를 불문하겠다는 포괄적인 조항과 직무와 관련해서 금지하겠다는 협소한 조항, 두 가지가 존재하는 이유는 징계 및 벌칙을 규정한 제32조에 있다.

제32조 5항에는 '직무관련성이 없는 경우'에는 받은 금액의 2배~5배에 상당하는 과태료 부과를 명시하고 있다. 이는 법률안의 취지를 뒤흔드는 독소다. 과태료는 공무원 신분과 연금 혜택의 유지가 가능하고, 전과기록도 남지 않는다. 그야말로 솜방망이 처벌이다.

언론에 따르면 법안이 쪼개지는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법무부'였다. 그들이 들었던 주된 이유는 '과잉금지의 원칙'이었다. 선한 범죄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이유다. 나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법무부가 주장한 '과잉금지의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다.

법무부의 '과잉금지의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작성한 '김영란법' 설명자료.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에만 형사처벌이 가능하고, 동창이나 연고에 의한 스폰서는 과태료 처분을 하도록 했다.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작성한 '김영란법' 설명자료. 직무관련성이 있을 경우에만 형사처벌이 가능하고, 동창이나 연고에 의한 스폰서는 과태료 처분을 하도록 했다.
ⓒ 국민권익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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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미 우리 사회의 부패정도는 심각한 수준이며, 이로 인해 사회가 점차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2년 부패인식지수에서 대한민국은 전체 45위에 머물렀다. OECD가입 34개국 중에서는 27위로 하위권이다. 점수로는 100점 만점에 56점을 받았다.

눈부신 경제성장과 국제적 지위 향상에도 불구하고, 15년 넘게 10점 만점에 4~5점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은 기업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수익을 창출하기보다는 정치권력에의 청탁이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국민들이 생업 과정에서 난관에 봉착할 경우 정당한 행정이나 사법 절차에 따르기 보다는 학연·지연·혈연에 의지한 공무원이나 정치인에게 청탁함으로써 문제를 타개하는 것을 이 사회의 상식으로 학습하게 된다.

우리가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를 혐오하는 이유가, 공정하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바라는 열망과 상통한다면 견고한 사회의 카르텔을 부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한다. 계층적 카르텔이 견고함으로써 나타나는 경직된 사회구조는 승자에게 탄탄하고 잘 정돈된 앞길을 깔아주고, 반대로 열패자에게는 꿈과 희망을 빼앗는 사회를 고착화시킨다.

둘째, 사회적 자본으로 공무에 대한 신뢰가 가지는 엄중함을 고려할 때, 보다 강화된 행동규범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 의심할 바가 없다. 국제투명성기구가 지난달 발표한 '2013년 세계부패바로미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패에 취약한 분야로 인식된 상위 5개는 정당, 국회, 종교단체, 공무원, 사법부로 한 곳을 빼면 모두 권력과 공무에 치중돼 있다.

2013년 세계부패바로미터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관련 자료. 공공부문의 부패와 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대답이 각각 51%와 56%로 과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 조사는 107개국 총 11만4000명을 대상으로 했다.
 2013년 세계부패바로미터에서 발표한 우리나라 관련 자료. 공공부문의 부패와 정부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대답이 각각 51%와 56%로 과반 이상을 차지했다. 이 조사는 107개국 총 11만4000명을 대상으로 했다.
ⓒ 한국투명성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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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식은 단순한 기우가 아니다. 현행 '뇌물죄'나 '알선수뢰죄'는 직무행위와 금품 사이의 명확한 대가관계가 증명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이를 이용해 빠져나간 이가 몇이던가. 정부안만 가지고는,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벤츠 여검사'나 '그랜저 검사'가 또다시 등장하더라도 형사적으로 처벌하기는 쉽지 않다.  

셋째, 법안 발의취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고착화된 계층을 기반으로 한 견고한 카르텔이 서로 간에 돈이 오가지 않는 '청탁 품앗이'마저 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후퇴하는 법안을 통과시켜선 안 된다. '김영란법'의 입법 취지도 여기에서부터 시작했다. 입법 취지를 고려하지 않고 현실에 타협한 법안은 형해화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단언컨대, 권력층에 제공되는 '공짜밥'은 없다.

"그래서 권익위에서는 뇌물을 받지 않거나 돈과 무관한 청탁도 과태료, 과징금 또는 징계처분 등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의견을 모았고, 담당부서에서 이를 바탕으로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한 겁니다." - 김영란 교수와 김두식 교수의 대담집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 중에서

넷째, 선진국에서는 이미 유사한 법령이 시행중이다. 영국에서는 '공공부처부정행위법(PBCPA 1889)'과 '부패방지법(PCA 1916)'의 시행을 통해 공직 담당자의 뇌물수수에 대한 처벌의 법적 근거를 만든 이래 부정청탁, 직무수행과 대가관계가 없는 금품의 수수 및 공·사익간 이해충돌에 대해서도 독자적인 규제를 발전시켜왔다. 2010년에는 '뇌물법(UK Bribery Act)'을 통해 외국에서 발생한 외국공무원에 대한 뇌물제공까지 10년 이하의 징역과 벌금을 부과하고 있다.

미국은 '뇌물 및 이해충돌 방지법'에서 공직자가 공직수행 중에 정부외의 출처로부터 금품 등을 수수하는 경우 형사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도 형법 331조(이익의 수수죄)에서 공직자가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이익을 수수하거나 요구하는 경우 대가성을 불문하고 형사처벌하고 있다.

김영란법, 국민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가 남았다. 소위 어장관리와 스폰서 문화의 근절을 위해서 원안 처리는 꼭 필요하다. 청탁을 위해서만 대가가 오간다고 해석하는 것은 너무 고전적이다. 평소에도 자본이 다양한 권력층에 대해 '관리'를 하는 행태가 만연해있기 때문이다.

가상의 장면 1

A씨와 B씨는 고향 선후배사이다. A씨는 검사가 됐다. 종전에도 가끔 선배 B씨에게 식사를 얻어먹었기 때문에, 검사가 된 후에도 별 거리낌 없이 B씨를 만났다. 검사가 된 후 B씨는 A씨에게 더욱 비싼 식사와 선물 등을 대접했다. A씨는 별다른 부탁이 없는 B씨의 호의를 순수한 친분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B씨가 A씨에게 형사사건에 관해 부탁을 했다. 그에 대한 대가는 없다고 했다.  

가상의 장면 2

C씨와 D씨는 대학 선후배사이다. C씨는 검사가 됐다. 종전에도 가끔 선배 D씨에게 식사를 얻어먹었기 때문에, 검사가 된 후에도 별 거리낌 없이 D씨를 만났다. 검사가 된 후 D씨는 C씨에게 더욱 비싼 식사와 선물 등을 대접했다. C씨는 별다른 부탁이 없는 D씨의 호의를 순수한 친분의 표시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D씨가 C씨에게 형사사건에 관해 부탁을 했다. 그에 대한 대가로 골프채 세트를 줬다.  

둘 사이에 차이를 느낄 수 있는가? 원안은 둘 모두 똑같이 처벌하지만, 정부안은 둘의 처벌이 다르다. A씨는 과태료만 내면 그만이다. 청탁에 대한 대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를 돕기 위해 상황과 결론을 단순화시킨 면이 있지만, 지금껏 우리가 목도한 현실은 이와 크게 다를 것 없는 법의 이중잣대였다. 이래서야 스폰서 문화가 근절되겠는가. 두 눈 똑바로 뜨고 '김영란법'의 국회 처리 과정을 지켜봐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영란법'에 대한 국민들의 갈증을 보라. 속마음까지는 알 수 없더라도, 그 어느 누구도 쉽사리 반대를 외치지 못하는 상황은 국민들의 갈증이 최고조에 달했음을 알게 해준다. 지금이 적기다. 국회에 거는 국민들의 마지막 기대를 저버리지 마라. '김영란법'을 제자리로 되돌려라.


태그:#김영란법, #투명성기구, #부패, #스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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