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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사에 갈 때에는 우리나라의 홍살문과 비슷한 도리이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서 세심정을 거쳐 신사 본전에 이릅니다.
 신사에 갈 때에는 우리나라의 홍살문과 비슷한 도리이를 지나고 다리를 건너서 세심정을 거쳐 신사 본전에 이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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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5일 오후 후쿠오카시를 출발하여 서남쪽에 있는 다자이후덴만구(大宰府天満宮) 신사에 다녀왔습니다. 이곳은 학문의 신 지성의 신, 재액의 신으로 추앙을 받고 있는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 道真)를 섬기며 그의 힘으로 시험의 어려움을 돌파하고자 하는 일본 학생들의 필수 코스이기도 합니다.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 道真)는 어떻게 사람에서 천신으로 추앙을 받으며 학문의 신이 될 수 있었을까요? 스가와라는 845년 8월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한문에 능통하고 총명하기로 소문이 났습니다. 20대에 관리로 진출하여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좋은 평판으로 조선식으로 말하면 우의정까지 지냅니다.

그러나 반대파의 진정으로 56세 되던 해에 후쿠오카 다자이후 군수로 좌천됩니다. 마침내 2 년 뒤 다자이후에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집무를 보던 곳에서 죽은 스가와라의 주검을 소달구지에 실어 다른 곳으로 옮겨 장사지내려 했지만 소가 움직이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 道真)가 죽은 뒤 교토와 일본 전국에 천둥 번개가 끊이지 않아서 그 이유를 알아보니 스가와라의 혼이 억울하게 죽은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스가와라를 천신으로 칭하고 그의 혼을 모신 곳을 텐만구라고 이름을 지어 섬기게 했다고 합니다.

   다자이후 역 건물 입구와 한글로 된 승차 안내판입니다.
 다자이후 역 건물 입구와 한글로 된 승차 안내판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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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에는 텐만구 신사가 1만2000여 개 있습니다. 이것은 일부 유치원부터 입시를 치러야 하는 시험 중심 일본 사회에서 시험을 통과하여 더 나은 삶을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는지도 모릅니다.

스가와라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고 이른 나이에 관리로 진출하여 승승장구하였지만 마침내 정치 싸움에 밀려 좌천을 당하고 맙니다. 그렇지만 그것에 항거하나 반대하지 않고 묵묵히 받아들여 지방 관리 생활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는 여기까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수동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스가와라는 죽은 뒤 소와 천둥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밝히고 사람에서 신으로 추앙을 받게 됩니다. 어쩌면 이것은 가장 일본적인 삶의 태도인지도 모릅니다. 권위나 상급자의 명령에 끝까지 복종하고 절대로 반대하거나 항거하지 않습니다. 반대나 항거는 사람의 힘으로 하지 않고 죽은 뒤 사람이 아닌 동물이나 자연물로 나타냅니다.

다자이후텐만구 신사 입구에는 지금도 소를 신성시하여 신사 입구에 상징물로 세워놓았습니다. 묵묵히 사람을 위해서 노동과 고기로 봉사하는 소가 지배자 입장에서는 당연시 되고 고마운 존재라고 하겠습니다.

   다자이후텐만구 신사의 수호신으로서 사자상과 스가와라 신의 심부름꾼으로서 소입니다.
 다자이후텐만구 신사의 수호신으로서 사자상과 스가와라 신의 심부름꾼으로서 소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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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다자이후 텐마구 신사를 찾아서 스가와라 신에게 어려운 시험을 무사히 통과 할 수 있도록 기원하고 시험에 통과하여 일을 할 때는 소처럼 묵묵히 일에 열중하는 다짐을 한다면 지배자나 사용자 입장에서는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을 것입니다.

다자이후 텐마구 신사에서는 스가와라를 섬기면서도 불교의 사상도 받아들였습니다. 진자 입구에 마음 심 자 형의 연못을 신지이케(心字池)라고 하며 아치형 다리를 다이고바시(太鼓橋)라고 하여 이 다리를 건너면 전생과 이승과 저승의 더러움을 씻고 깨끗한 마음으로 참배를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신 앞에 나갈 때 목욕재계하여 부정을 씻고 깨끗한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시험을 앞둔 입시생들 역시 몸과 맘을 깨끗하게 하여 정신을 집중하여 공부해야 바라는 대로 좋은 입시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매화 모치 떡집에서 떡을 사는 학생들과 떡을 굽는 모습입니다.
 매화 모치 떡집에서 떡을 사는 학생들과 떡을 굽는 모습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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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와라는 좌천되어 교토를 떠나 다자이후로 오기 전 집에 있는 매화를 보고 시를 짓습니다. 그리고 스가와라가 죽었을 때 마을 사람들이 매화 꽃잎을 넣어 만든 찹쌀떡을 제물로 드렸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다자이후텐만구 신사 입구에서는 여러 곳에서 매화 떡을 구워서 팔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신앙적인 목적에서 참배객을 위한 전차가 운영되기도 합니다. 이곳 다자이후 텐마구 신사에 갈 때에도 후쿠오카 텐진 니시테츠후쿠오카역에서 니시테츠후스카이치(西鉄二日市)역까지 간 다음 다시 다자이후 전차를 갈아타고 갑니다. 약 18 km 에 36분 걸립니다. 교토에서 출발하는 텐리행 열차도 그렇습니다.

시험과 경쟁을 통하여 사람을 고르고, 가르치는 것이 효율적이고 경제적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일방적인 가르침과 동일한 사지 선다형 시험을 치루고 준비하면서 말살되는 개성과 창의적인 생각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수험합격 부적을 파는 곳, 소원을 적어 놓는 에마 부적, 단체사진을 찍은 수학여행 학생들, 뽑기 점을 확인하고 묶어두는 곳입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수험합격 부적을 파는 곳, 소원을 적어 놓는 에마 부적, 단체사진을 찍은 수학여행 학생들, 뽑기 점을 확인하고 묶어두는 곳입니다.
ⓒ 박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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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이트> 다자이후텐만구 신사, http://www.dazaifutenmangu.or.jp/, 2013.8.16

덧붙이는 글 | 박현국 기자는 일본 류코쿠(Ryukoku, 龍谷)대학 국제문화학부에서 주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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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일본에서 생활한지 20년이 되어갑니다. 이제 서서히 일본인의 문화와 삶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과 일본의 문화 이해와 상호 교류를 위해 뭔가를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달되 인터넷망과 일본의 보존된 자연을 조화시켜 서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교류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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