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린 울타리 밖의 무언가를 동경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취업난에 청년들은 그럴싸한 직장을 동경하며, 말단 직원은 대기업 회장이 되는 막연한 상상을 하고, 큰 가게 사장님은 안정적인 직장을 부러워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일이 종종 재미가 없을 때, 부쩍 PD라는 직업을 동경했습니다. 같은 언론계라지만 뭔가 재기발랄해 보이거든요. 행복의 파랑새가 결국엔 자기네 창문 앞에 있다고 하지만, 이 기획은 일단 철저히 남 부러운 마음에서 시작됐음을 고백합니다. - 편집자 말

 14일 오후 서울 화곡동 KBS스포츠월드에서 진행된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 배드민턴단 연습공개에서 최강창민이 진지한 모습으로 연습을 하고 있다.  앞은 이종수.

지난 14일 오후 서울 화곡동 KBS스포츠월드에서 진행된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 배드민턴단 연습공개 현장. 최강창민이 진지한 모습으로 연습을 하고 있다. 앞은 이종수.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영웅은 난세에 난다'는 옛말을 요즘 예능판에 적용해보면 가히 독보적인 몇 개의 프로가 머릿속을 스쳐갈 것이다. 각 지상파별로 아성을 떨쳤던 대표 프로그램들이 명멸했고,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지만 새로운 강자들이 속속 나타나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보통 특정 프로가 큰 인기를 얻으면 경쟁 방송사에선 비슷한 골격에 방향성만 약간 튼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방송가에선 소위 '물빼기 전략'이라고도 하는데 최근까지도 식지 않고 있는 각종 오디션 프로들이 대표적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KBS <우리동네 예체능>(이하 '예체능')을 돌아보면 다소 변종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단순히 스포츠를 소재로 한 연예인들의 놀이판 같지만, 사실상 진행자와 게스트는 절반 정도의 비중을 차지할 뿐이다. 이들과 상대하는 각 동네 체육 동호회원들이 또 하나의 축이며, 이들이 있기에 매번 각본 없는 드라마처럼 극적인 장면이 나올 수 있다는 걸 기억하자. 그냥 스포츠가 아닌 생활 스포츠이며, 운동선수가 아닌 아마추어 일반인이 주인공이라는 점이 <예체능>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세상과 사람을 따뜻하게 보는 눈, 그것이 핵심!"

<예체능>을 연출하고 있는 이예지 PD에게 물었다. 스포츠도 안 좋아하고, 매번 전국을 돌아다니며 연출하고 편집하느라 일주일 중 온전히 하루를 쉬지 못하면서도(관련기사 : <"'우리동네 예체능' 덕분에 88체육관 수익도 올랐대요">), <예체능>을 끌고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말이다.

 이예지 PD

이예지 PD ⓒ 이정민


"사실 그게 PD들의 딜레마죠. 제 경우엔 작가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아요. 우리 팀에서 제가 가장 나이가 많거든요. 메인 작가를 빼면 다 20대예요. 요즘의 트렌드를 그 친구들에게 배워요. 틈나는 대로 어떻게든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도 하고요.

소모되는 직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우리가 트렌드를 만드는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요즘엔 자막을 재밌게 쓰려면 뭐라도 봐야 해요. 나름 감을 안 잃으려고 노력하는데 오히려 프로그램을 놓고 길게 쉬는 것보다 시간에 쫓기다 틈틈이 쉬는 게 꽤 많은 도움이 돼요."

이예지 PD는 스스로 운이 좋다고 표현했다. <달빛 프린스> 이후 <예체능>으로 팀을 꾸릴 때 <1박2일>을 경험했던 팀과 함께 준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경험이 적었던 이 PD에게 해당 스태프들은 그 자체가 간접 경험이자 배움이었다. 더운 여름에 그냥 물을 챙기는 게 아닌 아이스박스를 준비하는 것, 상비약을 챙기는 등의 세세한 부분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여러 모로 사람 복도 있는 이예지 PD였다.

"어쩌면 PD의 역할은 그 이후에 있다고 봐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에게 베스트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죠. 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고 사람을 아껴야 해요. 또 우리 프로가 사회에 영향을 주기에 어떤 메시지 전달할 때, 세상을 따듯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시각도 필요하죠. 자막 하나를 써도 성정에 따라 느낌이 다르거든요. 한 마디에도 정말 시니컬한 사람이 쓰느냐 따뜻한 사람이 쓰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에요."

 14일 오후 서울 화곡동 KBS스포츠월드에서 진행된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 배드민턴단 연습공개에서 이수근이 이를 앙다문채 셔틀콕을 받아넘기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화곡동 KBS스포츠월드에서 진행된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 배드민턴단 연습공개 현장. 이수근이 이를 앙다문채 셔틀콕을 받아넘기고 있다. ⓒ 이정민


  14일 오후 서울 화곡동 KBS스포츠월드에서 진행된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 배드민턴단 연습공개에서 존박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강호동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화곡동 KBS스포츠월드에서 진행된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 배드민턴단 연습공개 현장. 존박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강호동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다. ⓒ 이정민


"<예체능>이 잘되는 것도 좋지만 사람이 잘 돼야 행복해"

이예지 PD에게 첫 연출작이었던 <대국민 토크쇼-안녕하세요>(이하 '안녕하세요')에 대해 물었다. 지난 2010년에 이 PD의 데뷔작이나 마찬가지인 그 프로도 지금의 <예체능>처럼 대민 방송이었고, 시청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공통점이 있었다. 3년째를 맞이한 <안녕하세요>가 자리를 잡고 잘 흘러가는 데에는 나름 탄탄했던 기획 의도와 진행자들의 찰떡 호흡이 바탕이었다.

"신동엽씨나 이영자씨 같은 분들이 농담 삼아 말씀 하는 게 MC 중에 누가 사고만 안치면 끝까지 망하지 않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하더라고요. 사실 제가 마지막 조연출을 했던 게 <유희열의 스케치북>이었는데 그때 게스트였던 컬투에게 방청객이 '나중에 하고 싶은 프로가 무엇'인지 물었어요. 찬우씨가 송해 선생님을 이어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하고 싶다 하더군요.

그게 시초가 돼서 제가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 모셨죠. 두 사람이 이야기를 잘하니까 처음엔 <전국이야기자랑>으로 가제를 잡았고, 그게 다소 막연하다는 의견을 수용해 시청자들이 보다 쉽게 이야기를 보내도록 '고민'으로 축소한 거예요. <전국고민자랑>이 된 거죠(웃음). 원랜 밤 12시 대에 할 걸로 생각했는데 회사에서 11시 대로 한다기에, 컬투에게 양해를 구하고 신동엽씨와 이영자씨를 함께 모셔서 시작했죠."

<안녕하세요>의 네 진행자는 모두 지난해 방송대상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최우수상에서 우수상까지 고른 결과였다. 이 PD는 "일하면서 가장 보람되고 기억에 남는 순간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사실 프로그램이 잘되는 것도 좋지만 저와 함께 했던 사람이 잘되는 게 가장 좋거든요. 그래서 이번 <예체능>을 통해서 그런 걸 기대해요. 강호동씨나 이수근씨도 그렇지만 조달환씨가 이 프로로 보다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거 같아 좋아요. 지금 참여하는 분들에게도 같은 마음이고요(웃음)."


다채널 시대, "지상파 방송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

아무리 좋은 의도와 따뜻한 성향을 지닌 책임자라고 해도 기본은 결국 '잘 만들어야 한다'였다. 이예지 PD 또한 그 점을 인정하면서 또 다른 고민 지점을 털어놓았다. PD 본연의 역할과 방송 제작 환경에 대한 이야기였다.

"방송 제작 형태를 보면 우린 대부분 인하우스(자체 제작)지만 외국은 아웃소싱(외주 제작)이거든요. 근데 작가들은 다 프리랜서니까 우리가 현재 일하는 시스템이 100% 적합한 형태는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더 좋은 제작 환경이 있으면 옮기게 되고, (옮겨서도) 장기적으로 서로 불안해하죠. 종합편성채널 종사자든 케이블 종사자든 다들 불안해하면서도 서로를 부러워하기도 해요. 

지상파 쪽은 창작할 시간을 보장해준다는 장점이 있고, 케이블 쪽은 투자가 과감하다는 장점이 있어요. 어디가 좋고 나쁜지 분명하진 않지만, 더 좋은 작품이 나오려면 경쟁 체제가 맞지 않나 생각해요. 편성권이 있는 지상파라지만 사실 인하우스는 예산이나 몇몇 부문에서 한계가 있기도 하고요.

문화 산업 측면에서 봤을 때 그럴 수밖에 없는 흐름이죠. (그런 흐름은) 단순히 종편이나 케이블로 PD가 적을 옮기는 정도가 아닐 수 있다고 봐요. 그들이 포털사이트나 통신 업계로 옮겨 갈 수도 있고, 심지어 '카톡'(모바일 SNS 대화서비스의 일종)으로 갈 수도 있다고 봐요."

이예지 PD는 지상파, 공영방송으로서의 고민으로 나아가 있었다. 시청률 지상주의 속에서 분명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걸 바꿔 보여줄 수 있는 게 동시에 지상파 방송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TV는 유일하게 서민이 즐길 수 있는 문화라고 생각해요. 당장 영화나 공연을 보려고 해도 돈이 들어가지만 지상파 TV 프로는 아니잖아요. 자본 중심의 소비패턴이 강화될수록 공영방송은 '행복하는 법'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게 제 기저에 깔린 가치입니다.

<예체능> 예심을 끝내고 가족들이 치킨과 맥주를 먹으러 경기장을 떠나는 모습이 너무 행복해 보였어요. 물질적으로 풍요롭진 않지만 그런 순간에 누구보다 행복감을 느끼는 분들이죠. 저를 포함해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린 너무 타이트한 삶을 살고 있진 않은지 반성하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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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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