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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주차 홈런이의 초음파 사진. 엉덩이 아래 하얀 동그라미의 정체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12주차 홈런이의 초음파 사진. 엉덩이 아래 하얀 동그라미의 정체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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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 병원에 갔을 때 홈런이(우리 아기의 태명)는 2.4cm까지 자라 있었다. 병원에서는 '아가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으며 엽산을 잘 챙겨먹으라'는 메모와 함께 '다음에는 기형아 1차 검사를 한다'고 써줬다. 궁금한 게 많았지만 나는 기형아 검사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돌아왔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는 목이 메고 눈물을 참느라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못해봤고, 두 번째인 그날은 난생 처음 산부인과 의자에 앉아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느라 유체이탈 상태가 돼 아무 말도 못했다.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시기는 하지만 난생 처음 산부인과 의자에 누워 마치 무언가를 고치는 듯한 끼긱대는 소리만 듣고 누워 있자니 정신이 스르륵 놓아졌던 것이다. 그렇게 유체이탈 상태가 된 탓에 기형아 검사가 필수인 건지, 어떤 기형을 어떻게 검사하는 것인지 등 궁금한 것을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왔다.

2주 동안 고민을 많이 했다. 기형아 검사를 하는 것이 옳은 것일지. 검사 결과가 좋지 않게 나오면 남은 임신 기간 동안 걱정하느라 행복할 수만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그동안 잘 자라온 홈런이를 검사 결과에 따라 어찌 한다는 것은 생각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그런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도 했다). 검사 후 단지 확률로 찍혀 나올 그 몇 자리 숫자에 연연하는 것이 참 어리석어 보이기도 했다.

내가 20대에 홀딱 빠져 지낸 독일의 철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말에 따르면 생명은 이 세상에 오기 전 자신의 인생을 대부분 계획하여 오고, 장애아의 경우 전 생애를 힘껏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이번 생애에는 쉬는 삶을 계획하여 오는 것이라 했다. 뭐 그 말을 전적으로 믿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마음으로 장애아를 만나면 시각이 달라지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무튼 부모라는 사람이 자식을 낳는다고 해서 자식의 목숨에 대한 선택권까지 행사할 수는 없다. 고로 나는 기형아 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말할 참이었다.

"기형아 검사 안 한다" 말하려 했는데, 또 감동만 하느라...

그리고 다음번 병원에 간 날인 16일, 접수대에서 간호사 선생님께 기형아 검사를 하지 않을 계획이라 말했다. 그랬더니 자신이 상담할 부분이 아니니 의사 선생님과 이야기해보라고 한다. 예약은 낮 12시 15분이었는데 그날따라 대기자가 많아 한 시간여를 기다렸다. 그리고 남편에게 휴대전화 메신저로 물어봤다.

"나 기형아 검사 할까?"

남편의 답은 그동안의 내 고민을 무색하게 할 만큼 간단했다.

"해야지, 바보."

그러고 보니 '그게' 없었다. 뭐가? 남편과 함께 고민한 시간이 없었다. 기형아 검사가 예정돼 있다는 것도 남편은 모르고 있었고 내가 그렇게 많은 고민을 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분명히. 결국 나는 그날도 의사 선생님과 기형아 검사는 물론 그 어떤 대화도 하지 못했다. 오늘은 초음파 사진에 손가락 발가락이 나와 또 감동했기 때문이다. 지지난주에는 젤리곰 같은 모양으로 팔다리만 '뿅뿅' 나온 상태였다면 오늘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보이고 관절도 생겨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서 다리를 꼬고 있는 홈런이를 보여줬는데 요염하게 다리를 꼰 모양이 백숙(?) 같았다. 각도를 이리저리 옮기는 사이사이 홈런이는 팔다리를 꼬물거리며 움직이기도 했다. "딱 보기 좋은 각도를 안 보여주네" 하고 의사선생님이 아쉬워하자 엄마를 닮아 배려가 몸에 배어 있는지(!) 각도를 바꿔준다. 기특한 녀석. 처음에는 2014년 2월 28일이었던 예정일이 지난번엔 3월 4일이더니 이번에는 2월 25일이다. 내심 3월 '봄의 아이'로 태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내 맘대로 될 리가 없지.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나는 어느새 병원 밖을 나서고 있었다.

진료 후, 산부인과 누리집에서 확인해봤는데 그날 내가 한 기형아 검사는 '트리플마크' 검사였다. 보통 임신 15~22주에 모체혈청 트리플마크 검사를 하는데 산모의 혈액을 채취하여 약 60%의 다운증후군과 약 80%의 개방성 신경관 결손(무뇌아·척추이분증 등)태아를 발견하며, 60~80%의 정확도가 있을 뿐 100%는 아니라고 설명돼 있다. 이 검사로 약간 높은 기형아 확률이 나오게 되면 양수검사를 선택적으로 하게 되는데 검사의 정확도는 70%, 검사 후 태아손상·간염·양막파열·출혈·유산·조산 등의 합병증이 따를 수 있고 태아의 유산율은 0.5%라고 한다.

검사의 목적은 조금 더 빨리 기형아 여부를 알 수 있다는 것이겠지. 조금 더 일찍 몇 퍼센트의 확률로 확인받고자 하는 검사를 한 후 지불한 돈은 초음파비용과 합해 8만 원 정도였다. 임부가 된 후 병원에서 정석처럼 자리 잡고 있는 검사와 검진을 하면서, 마치 내가 컨베이어 벨트에 태워져 순차적으로 병원에서 정한 '공정'을 거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엄마는 "아들!" 아빠는 "딸!"... 홈런이도 웃겠네

그렇게 인터넷 검색으로 기형아 검사에 대해 알아보다 보니, 임신 12주에는 성별을 알 수도 있다고 했다. 흠 시어머님께서 태몽을 꾸셨다고 했는데, 사자가 나왔댔지? 검색을 해본다. '태몽, 사자'. 역시 이 세상에 사람은 많고 나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 역시 많구나 생각하며 하나하나 찾아봤는데 '숫사자가 남편 등에 업혀 있었다'는 시어머님의 꿈에 대한 정확한 풀이는 없다. 임신 후 가입한 카페에서 태몽에 대한 글을 찾아보니 사자꿈을 꾸고 딸을 낳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 사자는 '아들 꿈'인 줄 알았더니 실망이다.

그럼 시어머님의 또 다른 태몽 호박! 돌아가신 시외조부님이 나온 잔치에서 누가 예쁘고 탐스러운 호박 두 개를 주시기에 시어머님이 두 개까지는 필요 없으니 하나만 가져가겠다 하셨단다. 이번 검색어는 '태몽, 호박'이다. 호박꿈을 꾸고 딸을 낳은 사람 또한 많다. 그럼 홈런이는 결국 딸인 걸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검색과 생각을 하며 초음파 사진을 펼쳐보니, 이럴 수가! 옆으로 누워 있는 홈런이의 엉덩이 아래로 동그랗고 하얀 뭔가가 보인다.

내가 바라던 남자아이구나! 신나서 남편에게 사진과 함께 "잘 보면 고추 같은 게 보이는 것 같아" 하고 메시지를 보내니 "의사가 그래?"라며 믿을 수 없다는 대답을 한다. "엉덩이 쪽에 뭔가 동그란 게 보이기는 하"지만 "이게 어떻게 변할지는 모른다"며 딸 욕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그러더니 한참 후 "다리 사이에 있으면 고추고 배 쪽이면 탯줄이며, 음핵일 수도 있고 탯줄일 수도 있어 의사들도 16주는 돼야 확신한대"라면서 딸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강력한 의지(!)를 또 보인다.

남편은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하고 나는 아들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게다가 남편은 '아들이면 어머니한테 갖다줘버리겠다'는 위험한 발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홈런이는 안에서 이런 엄마 아빠를 한심하게 생각하며 웃고 있지 않을까? "그냥 하늘이 주시는 대로 받아들이세요" 하면서. 그리고 그날 저녁 아들딸 논쟁은 친정엄마의 한마디와 함께 허무하게 끝난다.

"하이고, 그거 반대쪽 발가락이 찍힌 거거든요~."


태그:#태교, #초음파, #엄마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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