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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바람이 분다>의 한 장면 ⓒ 대원미디어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오프닝 자막에 나오는 이 말은 폴 발레리의 시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이 문장은 작품의 중요한 메타포이다. 여기서 '바람'은 비가시적인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 또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이 순식간에 왔다가 붙잡을 수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연적인 마주침은 '알 수 없는 운명의 흐름'을 의미하는 한편, 주인공 호리코시 지로의 감각을 자극하여 깨어나게 하기도 한다.

비행기가 하늘을 유유히 나는 광경, 언덕에서 자연을 벗 삼아 그림을 그리는 나호코와 언덕 밑을 지나가는 지로의 이미지가 대자연에 수렴되는 이미지는 자연이 인간의 정신적 고향임을 뜻한다. 이 작품이 한 인간의 꿈과 사랑을 낭만적이며 환상적으로 그린 꽤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실존 인물인 지로는 일본 전쟁에 사용된 전투기 '제로센'의 개발자. 그렇다면 지로의 전투기 개발이라는 정치·역사적인 혐의는 영화에서 의도적으로 은폐 내지는 망각되어 있는 것일까. 이를 두고 단순히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현실을 바라보는 감독과 작가의 시선에서 오는 문제의식일 것이다.

'수많은 바람'이 이동하는 하늘은 지로에게 제약 없는 꿈의 공간이다. 여기서 속도에 비례하는 바람의 저항은 극복되어야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람은 삶에 가해지는 대타자의 손길로, 조건 없는 부정적 대상이 아니다. 지로가 초기 비행기를 타고 바람과 하나가 되어 나는 이미지는 바람(자연)과 지로, 비행기의 물아일체를 떠올리게 한다.

극 초반, 어린 지로가 꾸는 꿈은 마치 현실이 펼쳐지는 것 같은 착각을 안긴다. 이후 잠든 지로가 깨어나는 장면이 더해지며, 관객은 이것이 꿈인 걸 뒤늦게 깨닫는다. 지붕에 달린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꿈은 확장된 신체로서의 집과 비행기가 굉장한 애착의 대상임을 알린다. 꿈과 현실이 교대하는 장면은 영화 전반 서사 진행의 주요 양식이다. 여기서 꿈은 강한 의지로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아니다. 그저 비행기와 한 몸이 되고, 다시 자연과 하나가 되어 끝없는 지평선을 평행하게 달리는 도취이다.

꿈의 의미 차는 꽤 중요하다. 꿈에 도취한 지로의 모습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역시 한없이 꿈을 꾸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지로의 꿈은 전투기를 만드는 것보다 날고 싶은 것에 대한 갈망 그 자체에 순수하게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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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대지진(관동 대지진)으로 지로와 나호코의 첫 만남이 이뤄진 열차가 서는 광경은 꽤 비중 있는 부분이다. 이 역시 자신의 고향 같은 자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괴물 같은 음향 효과가 지진을 먼저 알린다. 이러한 경험은 비행기를 만드는 과학자로 옮겨 간 지로의 꿈을 형성하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 거라 짐작할 수 있다. 지진이 일시적으로 가라앉고 마지막까지 떨리는 돌멩이를 보는 지로의 시각은 물질적인 장애가 없고, 공간의 경계 역시 없는 하늘에서의 유유자적한 비행으로 옮겨가는 장면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극 초반, 전투기가 검붉은 하늘을 날아가며 전쟁의 상흔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는 장면도 주목할 만하다. 이는 지로가 원하던 꿈, 원하던 비행과는 거리가 있다. 후반에 반복되는 장면은 현실에 대한 적확한 인식보다는 잠재된 비행에 대한 순수한 꿈에 어떤 외상을 남기는 데 가깝다. 바람이 부는 것을 내가 제어할 수 없는 것처럼 전투기들은 참혹한 현실이되 내가 꿈꾸는 세계 반대편의 현실이며, 일본이라는 국가적 경계를 벗어나 사라지는 다른 세계의 현실이 된다.

오히려 전쟁 같은 대지진의 경험이 그와 일본인에게 한층 더한 외상으로 남으며, 전쟁은 그가 비행기를 개발한 이후의 시점에서 발생하는 무엇으로 축소된다. 바람이 잡을 수 없듯 전쟁 역시 그러한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전쟁에 대한 별다른 인식이 없는 순수한 과학자로, 또 영원한 비상과 바람을 느끼는 자유를 꿈꾸던 어린 지로의 모습으로 꿈꾸고자 한 게 아니었을까.

지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낭만주의적 자아가 체현된 인물일까. 아니면 과학자 지로의 알려지지 않았던 낭만적인 면모를 그가 새롭게 조명한 것일까. 두 물음이 실제 명확히 분간되지 않는 것은 이 영화가 영원할 수밖에 없는 유년기의 꿈과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 영원한 사랑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근대를 거쳐 가는 한 인간의 실제적 여정에 아름답게 구현했다는 것의 방증일 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전투기가 그리는 '저 너머의 세계'로 전쟁의 참혹한 현실이 문을 닫고, 가만히 응시할 수 있는 찬란한 하얀 점의 풍광이라는 꿈의 세계로 넘어갈 때, 그리고 돌연 저 너머 세계에 영화에서 호명되지 않는 한국이라는 유령이 부상할 때, 관객은 이 지로의 꿈에서 돌연 깨어나게 하는 지점이 생긴다. 역사의 화해와 반성이 온전히 청산되지 않은 탓에 이 영화의 낭만 역시 어쩔 수 없이 균열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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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자 지로'가 바람을 이기고 잡고자 했던 것은 몇몇 소소한 물건이었다. 이는 나호코와의 사이에서 사랑의 매개체 역할을 한다. 지로의 비행에 대한 어릴 적 꿈과 낭만적 사랑에 가린 것은 전쟁의 잔혹한 현실과 그의 주변을 벗어나는 보이지 않는 타자에 대한 인식이었다. 이는 앞서 말했듯 의도적인 은폐라기보다는 엄정한 역사 해석과 함께 공통된 인식을 획득하지 못한 것의 인류적 부채이거니와 지로의 동시에 하야오의 '한없는 꿈 꾸기'라는 형식을 빌려 또 다른 망각의 형태로서, 저 너머 세계로 사라져 가는 것 아닐까. 영화는 그렇게 한없는 낭만과 또 다른 공허의 문제를 남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아트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분다 미야자키 하야오 폴 발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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