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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어디지? 사방이 어둡다. 살살 배가 아프더니 점점 심해진다. 이게 진통인 걸까.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자 진통은 더 심해지고 나는 어느새 병원에 도착했다. 남편은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남편이 없으니 더 무섭다. 나는 침대에 누워 진통에만 집중한다. 병원 침대에 누워 드는 느낌은 무서움과 불편함. 후회가 몰려온다. 조산원에 가볼 걸. 조산원도 병원처럼 이렇게 차갑고 무서울까? 그 순간 나는 조산원으로 '순간이동' 한다.

임신 15주 된 내가 겪을 만한 일은 아니고, 어젯밤 꿈에 겪은 일이다. 꿈이었지만 직접 겪은 듯 생생하다. 출산에 대한 두려움이 내 마음 속 어딘가에 늘 자리 잡고 있다. 임신을 하고 나니 '겪어보지 않고는 아무도 그 고통을 모른다'는 말을 더 절실하게 느끼게 된다. 예전엔 흘려들었을 출산 경험 이야기를 이제는 흘려들을 수가 없다.

친한 언니가 어떤 웹툰이 재밌다며 소개해줬다. 만화가가 자신의 출산 경험을 그려놓은 것이었는데, "이분의 만화는 가식이 없어 좋다"며 한번 보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언니를 만난 후 처음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무서우니까 이런 거 제발 보내지 말아달라"고. 쿨하게 "그래?" 하시더니 그 뒤로는 동물 관련 웹툰을 소개해주는 착한 언니, 그땐 미안했어요. 정말 무서웠거든요. 이런 두려움들이 차곡차곡 쌓여 그런 꿈까지 꾼 것이겠지.

임신 후 얼떨결에 따라간 여성병원... 조산원이 더 끌리네

처음 임신 사실을 안 후 나는 평소 엄마가 눈여겨봐두셨다는 여성병원에 가게 되었다. 나도 딱히 생각해 둔 병원이 없었고 경황도 없어 여러 생각을 해보지 못한 채 그 병원에 가게 되었지만, 이런저런 정보를 접하다보니 조산원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조산원 출산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 또한 많았다.

5년쯤 전에 <인간극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외국인과 결혼한 한 여성이 집에서 출산하기로 결정하고 조산원 원장님을 집으로 모셔 출산하는 장면을 보았다.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우리 부모님 세대 때 끝난 것인 줄만 알았는데(그런데 남편도 집에서 태어났단다), 외국인과 결혼도 하고 개방적으로 보이는 그 여성은 왜 옛날 옛적 출산 방법을 고집한 것인지 궁금했다. 나도 자연스럽게 병원에서 분만하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당사자가 되고 나서 나도 '인권분만'을 생각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한 조산원 사이트에 들어가 보게 되었다. 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써놓은 어떤 엄마는 '자연주의 출산'이라는 것에 관심이 많아 찾아봤다고 했고, 어떤 엄마는 '굴욕 3종세트'가 없다는데 진짜냐?며 문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대부분 산부인과 병원에서는 아기를 쉽고 빨리 나오게 하기 위해 '관장, 제모, 내진'(임산부들에게 '산모 굴욕 3종세트'라고 불린다)을 한다고 한다. 이 세 가지는 출산 때에는 산고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느껴진다고 하지만 미리 알게 되니 무섭다.

또 다른 사람은 둘째까지 조산원에서 낳고, 셋째가 생겨도 조산원에 낳으러 가겠다고 한다. 그리고 셋째를 조산원에서 낳겠다고 상담하러 간 산모에게, "둘째까지 낳아봤으면 셋째는 집에서 낳아보지 그러냐"며 원장님이 진담인듯 농담인듯 건넸다는 이야기도 대단하게 들린다.

병원이냐 조산원이냐 '팔랑귀'가 문제로다

이렇게 여러 질문들과 대답들 그리고 후기를 보니 조산원에서 낳는 것이 좋겠다 싶어 몇 사람에게 말을 꺼내보았다. 그런데 괜히 말 꺼냈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대부분이 부정적이다. 얼마 전 득남한 중학교 동창은 자기는 7시간 진통하다가 태반이 자꾸 내려와 수술하게 되었는데, 그렇게 응급상황이 생길 경우에 어쩔 거냐며 '절대 반대'라고 했다. 아기에게 응급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무조건 산부인과와 소아과가 함께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한단다. 게다가 엄마로서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인 산후조리원도 함께.

마치 병원에서 상담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그 친구의 상황을 들어보니 '병원에서 분만하는 게 나을까' 하며 '팔랑귀'가 펄럭거린다. 친정엄마께 말을 꺼내보니 또 돈 아끼려고 그러는 거냐며 몹시 탐탁찮아 하신다. 옷 사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성격 때문에 내가 만날 편한 옷만 입고 만나서 그런지, 어느새 엄마는 나를 '찌질이 궁상'으로만 보고 있다. 흥.

그런데 조산원에서 출산하고 싶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산원마다 조금씩 다른지만, 내가 알아본 조산원에서는 자연출산이 가능한 사람만 그곳에서 출산할 수 있고 부모교육도 선행되어야 하며, 태동 후부터 36주 이전에 꼭 방문해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 또 출산 전까지 엄마가 자연출산을 위해 몸관리도 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모든 노력을 다 했지만 출산 당일 돌발상황이 생기면 병원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두려움 없이 엄마 되기> 중 가장 인상깊은 사진과 이야기가 있는 부분.
 <두려움 없이 엄마 되기> 중 가장 인상깊은 사진과 이야기가 있는 부분.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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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조산원에 관심이 생길 무렵, <두려움 없이 엄마 되기>(신순화, 민들레)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저자는 조산원에서 첫째를 낳고 둘째와 셋째 아이는 집에서 낳았다. 저자는 엄마와 아기, 가족과 아기의 온전한 만남에 대한 이야기, 아이들을 키우며 누구나 겪을 법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과 함께, 저자의 철학과 방식을 지켜가며 엄마가 되어가는 이야기들을 책에 담았다. 저자도 처음엔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도 했지만 병원의 비인간적인 태도에 실망하고, 친언니가 출산한 조산원으로 간 것이었다. 응급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몸과 아이의 생명력을 믿고 그렇게 결정했다고 한다.    

홈런이를 만나고 싶다, 조산원에서!

나는 아직 병원과 조산원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는 상황이지만, 먼저 조산원 출산을 한 사람들의 사례들을 보며 계속 용기를 얻어가고 있다. 나와 홈런이(우리 아기의 태명)가 모두 건강해서 조산원 출산이 충분히 가능하다면 난 조산원에서 홈런이를 만나고 싶다. 인간에 대한 신뢰와 존중의 태도가 출산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 세상을 처음 만날 홈런이를 존중하며 만나기에는 병원보다 조산원이 더 낫지 않을까.

홈런이가 스스로 애쓰며 이 세상에 나오려는 노력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내가 몸을 다져놓아야 한다. 홈런이는 스스로 태어날 준비를 하고 몸을 돌리며 나오기 때문에, 회음부 절개를 통해 일부러 출산시간을 단축시킨다든가 하는 부자연스러운 것은 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종교의 신념도 아니고 미련한 감상도 아니다. 그저 엄마와 아기 그리고 가족과 아기가 만나는 그 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탄생을 위한 아기의 노력을 존중하려는 것뿐이다.

사실 나중에 진통이 오기 시작하면 내가 먼저 무통주사를 찾지는 않을까, 조산원 출산을 포기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도 된다. 내가 원래 겁이 많아서 내년 2월에 생길 일을 지금부터 걱정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서 무서운 것일지도 모른다. 매달 조산원에서 부모교육 강좌가 열리니 강좌에도 열심히 가보고 보건소에서 하는 출산교실에도 가봐야겠다. 아는 것들이 늘어나고 같은 걱정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고민을 나누다보면 걱정도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


태그:#출산, #임신, #굴욕3종세트, #산부인과, #조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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