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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 남상일
 국악인 남상일
ⓒ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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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익살맞은 농담에 동의를 구하는 적극적인 눈, 구성지게 울려 퍼지는 한 자락 노래가 이야기의 맛을 더한다. 국악인 남상일은 소리꾼답게 범상치 않은 말재간을 풀어놓는다. 그가 본업인 국악과 함께 유수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이유다. 최근 몇 년 동안 정부, 국회, 언론 등이 주최한 각종 시상식에서 수차례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

2013년의 끝자락, 그간 왕성한 활동을 펼쳐 온 국악인 남상일이 본업으로 돌아가 신명 나는 한마당을 벌인다. 12월 28일 함안문화예술회관 '송년국악콘서트'가 그 무대다. '송년국악콘서트'에는 그와 더불어 오정해, 이희문, 고금성 등 내로라하는 국악계 스타가 총출동한다. 공연을 앞두고 국악인 남상일과 이야기를 나눴다.

- 그간 많은 단체의 상을 휩쓸며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어떻게 지냈나?
"국립창극단에서 올 3월에 퇴단했다. 지금은 아주 바쁘게 지내고 있다. KBS '국악한마당'을 비롯해 라디오나 특강에도 출연 중이다. 역마살이 끼었는지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웃음)

다행히도 많은 분이 좋아해 주신 덕에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수여하는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다. 이 상은 40대 예술인까지만 주는 상이다. 지난해에는 KBS 국악대상에서 판소리상을 받았다. 여러 상을 받으며 느낀 점은 일부러 무엇을 하려고 하기보다 열심히 하면 자연스럽게 인정해 주신다는 것이다."

- 국립창극단에 소속돼 있을 때와 프리랜서로 활동할 때 차이가 크게 나는가?
"프리랜서로 활동하면서 오히려 시간 여유가 없어졌다. 국립창극단은 직장에 가깝다. 바깥 활동을 시작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은 많은 분들이 국악을 어려워하고 안 들으려 한다는 걸 깨달으면서부터다. 방송에서 얼굴을 노출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남상일이란 이름을 알리려는 것도 있지만, 국악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국악을 더 많이 보여드리려고 하는 것이다.

방송에 나가서는 이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조금 들려주기도 한다. SBS 라디오 '박영진, 박지선의 명랑특급'에서는 청취자들이 사연을 보내면 소리로 마무리하는 코너를 했다. 한 프로그램이 1년 넘게 지속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국악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됐고 국악의 대중화에도 기여한 것 같다."

- 최근 '국악소녀' 송소희가 국악계 샛별로 주목받고 있다. 그의 음악적 역량을 어떻게 생각하나?
"송소희는 어렸을 때부터 재능을 보인 친구다. 하지만 미디어에서는 음악적 역량보다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부각되는 부분이 있다. 한 방향으로만 가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본다. 저와 같은 선배 국악인들이 다리가 되어 그를 진짜 국악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하고 싶다. 송소희와 같이 젊고 유망한 친구들이 우리 전통을 올곧게 해서 국악계 스타로 성장하길 바란다."

국악인 남상일
 국악인 남상일
ⓒ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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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악인들에게 국악은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국악이 더욱 널리 사랑받지 못한 이유를 대중에게 돌릴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언론이나 방송이 해야 할 역할이 크다. 국악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려면 미디어에서 국악을 재조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상파 방송 3사 모두 음악방송을 하지만 국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프로그램은 몇 되지 않는다.

일본의 전통예술인 노(能, 가면악극의 일종)나 가부키는 현재까지도 고유의 색깔이 변하지 않고 전해 내려온다. 우리나라는 창극만 하더라도 대중의 입맛에 맞게 바뀌어 버렸다. 예전에는 옛날 것 그대로 했는데 최근 창극 작품들은 연극적 요소가 강하다. 대중의 기호에 맞추려다 보니 국악을 들려주려다 다른 것을 들려주게 되는 것이다.

특강을 다녀 보면 많은 분이 국악을 좋아하신다. 음식에 비유하자면 먹어보지 않았으니 맛있는지, 맛없는지 모르는 것이다. 진정으로 국악을 대중화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이 듣고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 유럽에서는 오래된 건물 그대로 지금까지 사용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기와집 같은 옛 건물을 다 허물고 아파트를 짓는다. 문화예술의 유행에 너무 민감한 탓이다."

- '국악인 남상일'에게 국악은 어떤 의미인가?
"일각에서는 우리 음악을 '한'(恨)의 문화라고 하는데 저는 다르게 생각한다. 영화 '서편제'의 한 장면처럼 가난하고 눈이 멀어야 소리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음악은 흥의 문화이고 신명의 문화다.

우리는 슬퍼도 노래를 부르는 민족이다. 상여를 옮길 때, 곡을 할 때 내는 소리도 다 노래다. 또 국악이 전부 느리고 슬프고 한스러운 음악은 아니다. 판소리를 들어보면 랩보다 박진감 넘치는 것들도 많다. 국악은 흥과 신명이 제대로 어우러지는 음악이다.

판소리는 정말 훌륭한 예술이다. 최근 '창극' 판소리가 '뮤지컬' 판소리에 너무 밀려 있다. '뮤지컬' 판소리는 판소리에 나오는 인물들의 역할을 나눠 뮤지컬처럼 하는 형식이다. '창극'이 아닌 '극창'이 돼 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 다른 예술가들이 판소리를 지나치게 현대화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옳지 않다고 본다. 춘향이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댕기 머리를 해야 춘향이다. 중국 경극에 파마를 하고 나오는 배우는 없다. 일본 가부키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이들의 전통이 오랫동안 유지되는 이유 중 하나다.

전통은 전통대로 지켜나가야 한다. 전통도 클래식인데, 푯값이 십만 원을 호가하는 해외 오케스트라가 내한하면 앞다투어 보러 가면서 우리 클래식인 국악 공연은 몇만 원만 돼도 비싸다고 한다. 정신적인 것을 중시하는 인도에서는 그 나라 음악을 하는 사람이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볼쇼이 발레단이 와도 비할 데가 못 된다고 한다. 이것 또한 그들의 전통에 저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우리도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나?
"공연할 때마다 늘 기억에 남지만 다른 에피소드도 있다. 이전에 KBS '아침마당' 고정 패널로 출연할 때 병원에 봉사활동을 하러 간 적이 있다. 마지막 생을 두 달 남겨 놓은 여성 환자가 있었다. 보호자인 남편분이 '아내가 남상일 씨 팬이다'라며 환자분을 꼭 한 번만 만나달라고 하셨다. 환자분이 저를 보고 '죽기 전 남상일 씨 같은 분을 한 번 보는 게 소원이었다'며 우셨다. 저도 같이 울었다. 예술인으로서 제가 '주는' 것보다 그 환자분이 '받은' 감동이 훨씬 큰 것 같았다. 그것이 우리 소리의 힘이고 전통의 힘이 아닐까 한다."

- 많은 세월이 지난 뒤 어떻게 기억되고 싶나?
"'편안하고 익숙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 꿈이다. 국악을 대중화하겠다는 거창한 목표보다 '남상일 그 판소리꾼, 그 사람이 하는 게 재밌지'라는 말을 듣고 싶다. 저 자신이 곧 국악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 올해 마무리를 함안에서 하게 됐다. 관객에게 전할 말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해준다면.
"12월 28일 함안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는 '송년국악콘서트'는 외국인들이 와도 신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한 해 동안 받았던 스트레스를 던져버리고, 같이 울고 웃고 노래 부르다 가셨으면 좋겠다. 이번 공연이 우리 음악을 편하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저는 '계획'이 없다. 사람이 계획대로 살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주어진 하루하루에 충실하자는 입장이다. 대외적인 계획은 창극을 우리 식의 소박하고 전통적인 무대로 마련하는 것이다. 별개로 남상일의 개별적인 쇼를 펼치고 싶은 것도 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테이지에 동시 게재됩니다.



태그:#남상일, #국악인, #송년국악콘서트, #함안문화예술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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