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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이가 눈을 살짝 뜬 모습과 혀로 손을 핥고있는 사진이다. 입과 볼의 모습이 남편과 닮았다.
▲ 홈런이의 얼굴 홈런이가 눈을 살짝 뜬 모습과 혀로 손을 핥고있는 사진이다. 입과 볼의 모습이 남편과 닮았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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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이(우리 아기 태명)가 생긴 지 28주차, 홈런이를 보고 왔다. 이번에는 입체 초음파 촬영이었다. 입체 초음파 영상 속의 아기 얼굴이 태어난 후의 얼굴과 비슷하다고들 해서 많이 기대했다. 홈런이가 얼굴을 잘 보여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됐다.

병원에 가자마자 하는 것은 혈압과 몸무게를 재는 것이다. 혈압은 정상이었고 몸무게도 정상이라고 했지만 훅 늘어 버린 몸무게를 보고 '멘붕' 상태가 됐다. 보통 임신 기간 중 10kg은 자연스럽게 늘 수 있다고 한다. 약 5kg은 아기와 양수, 태반 등의 무게이고 나머지 약 5kg은 임신으로 인해 늘어난 혈액량과 체내 수분의 무게다. 그러니 10kg 정도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지만 막상 체중계에 난생 처음 보는 두 자리 숫자가 뜨자 낯설음을 넘어 충격이었다.

작년에 아기를 낳으신 교수님과 통화하면서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울증의 원인 중 첫 번째가 '내 몸이 변해서'였다고 하셨는데 그 마음을 이제야 나도 알게 됐다. 지난달부터 급격히 배가 불러왔다. 배가 나오고 중심 잡는 것이 어려워져서 걷는 모습도 뒤뚱뒤뚱하고 앉았다 일어설 때는 기우뚱한다.

내가 예상하는 동선과 내 몸의 실제 동선이 달라 당황할 때도 많다. 내가 생각할 땐 충분히 지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 공간인데 지나고 나면 곁에 있던 물건이 떨어진다. 또 신발을 신거나 바닥에 떨어진 물건을 주을 때는 한껏 나온 배 덕분에 나도 모르게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난다. 내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것도 서러운데 몸무게까지 날 서럽게 한다.

뱃속에서 이미 얼짱 각도를 습득한 홈런이

남편이 보기 전에 몸무게가 적힌 진료수첩을 얼른 가방에 넣고 입체 초음파 촬영을 하러갔다. 간호사는 내 옷을 걷어 올리고 내 배에 젤을 발랐다. 의사 선생님을 5분 넘게 기다렸을까, 조금 춥다고 생각될 때쯤 의사선생님이 들어왔고 홈런이의 얼굴을 보기 시작했다. 누런 화면에 뭐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홈런이의 옆얼굴이 보인다. 눈도 보이고 코도 보이고 퉁퉁 부은(?) 입도 보인다.

홈런이가 정면을 보지 않고 있어서 또 다시 얼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번엔 홈런이가 웃는다. 그러더니 눈도 살짝 뜨고 손을 입으로 가져가서 혀로 할짝거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얼굴의 각도는 여전히 정면이 아닌 '얼짱 각도'. 남편과 나는 웃음이 절로 났다. 배 속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어느새 이렇게 컸다니 감격스럽다.

한참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어지러워졌다. 시야가 어두워지더니 속도 안 좋다. 그동안 홈런이한테 혹여나 아토피가 생길까봐 인스턴트 음식을 안 먹으려고 노력했는데, 그날은 병원에 가기 전에 두 달 동안 안 먹고 기다린 햄버거 런치 세트를 신나게 먹었다. 이러다가는 아까 먹은 햄버거와 감자 튀김이 입 밖으로 나올 것만 같아서 일어날까 어쩔까 생각하느라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러다가 결국 의사 선생님에게 잠깐 일어나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의사 선생님은 옆으로 돌아누워도 된다고 했다. 남편이 왜 그러냐고 하니 의사 선생님은 "아빠는 모르는군요. 똑바로 누우면 아기가 엄마 대정맥을 눌러서 어지럽기도 하고 속도 메슥거리고 그럽니다" 했다. 앗. 나도 몰랐던 건데.

진료를 마치고 남편에게 "홈런이는 벌써부터 얼짱 각도도 아나봐. 중학생 돼서 '노는 언니' 되면 어쩌지?" 하니 남편은 "뭔 돌+I 같은 소리야?"하며 개그우먼 박지선의 유행어로 날 웃겨줬다.

시부모님과 함께한 사랑의 밥상

집에 돌아와서 우리는 여행 준비를 했다. 10월에 '갈 뻔' 했던 휴가를 내 실수로 날려 버리고 침울해져 있던 내게 남편의 일 주일 휴가 소식은 정말 반가웠다. 태교 여행을 부르짖으며 해외로 가볼까, 제주도로 가볼까 고민하던 우리는 소박하게 이천쌀밥을 목적으로 여행을 계획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표는 조식 뷔페가 맛있는 호텔에서 하루 묵는 것이었다.

이천쌀밥 정식은 정말 감동이었다. 22첩 반상이 통째로 우리 식탁으로 옮겨졌다. 반찬도 반찬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돌솥 누룽지를 먹을 수 있다니 먹기 전부터 내 침샘은 폭발할 지경이었다. 홈런이는 진작부터 신이 났는지 계속 움직였다. 뜨끈한 누룽지와 숭늉을 두 솥이나 먹었다. 밥을 먹으니 또 방광이 눌렸는지 일어나자마자 소피가 마려워 화장실에 가야 했다.

우리의 휴가는 그야말로 '힐링'이었다. 나는 밥할 일이 없으니 여유롭게 여행을 만끽했고 남편도 예전부터 소원이었던 이천쌀밥과 조식 뷔페를 먹었으니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을 것이다. 이천 옆 여주에 있는 호텔에서 하루를 묵고 우리는 대구로 내려갔다. 일 주일이나 쉬니까 시댁에 한 번은 가야 하지 않을까 싶었고, 시부모님도 뵙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휴가기간 동안 말로만 듣던 이천 쌀밥을 먹고왔다. 젓가락이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춤을 추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 이천 쌀밥의 정체 남편의 휴가기간 동안 말로만 듣던 이천 쌀밥을 먹고왔다. 젓가락이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춤을 추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 최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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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모님은 예상치 못한 우리의 방문을 무척 반겨주셨다. 밤엔 함께 과메기를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했다. 어머님은 "과메기를 먹으면 아기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니 열심히 먹으라"고 해주셨고 난 정말 신나게 먹었다. 또, 내 배가 딸 배처럼 안 생기고 아들 배처럼 생겨서 신기하다고 하셨다.

나는 친정 엄마 얘기를 하면서 "내가 배 속에 있었을 때 다들 아들 배라고 했는데 낳고 나니 딸이었다. 그래서 우리 할머니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가 버리셔서 엄마는 병원에 얼마 안 있다가 바로 집으로 가서 밥을 차려드렸다"는 이야기를 해드렸다.

아버님은 아들, 딸 같은 건 중요하지 않고 하늘이 주시는 대로 감사히 낳아 잘 기르라는 말씀을 또 해주셨다. 난 이제야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아버님은 또 "새 아가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다 말해라, 아버지가 사줄게" 하셨고, 남편은 냉큼 우리가 여주에서 먹지 못한 산채비빔밥을 사달라고 말했다.

다음 날 점심, 우리는 산채비빔밥을 먹으러 떠났다. 사실 남편과 내가 생각한 산채비빔밥 집은 산 아래 관광지에 흔히 있는 밥집이었다. 파전도 팔고 막걸리도 파는 집을 생각했고 남편은 파전을 먹겠다며 기대에 차있었다. 하지만 아버님은 고급 음식점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가주셨다. 산채비빔밥 집은 생각보다 찾기가 어려웠다. 대부분 오리나 닭백숙을 하는 집이었고, 비빔밥이 있다고 해서 들어가 보면 곤드레 나물밥 정도밖엔 없었다.

휴가 이틀째, 비가 멈추고 호텔 창문에서 남한강과 신륵사가 보인다. 조식 뷔페를 먹으면서 그곳의 경치도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 호텔에서 보이는 남한강과 신륵사 휴가 이틀째, 비가 멈추고 호텔 창문에서 남한강과 신륵사가 보인다. 조식 뷔페를 먹으면서 그곳의 경치도 함께 감상할 수 있었다.
ⓒ 최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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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곤드레나물밥이라도 괜찮으니 식당에 들어가고 싶었다. 화장실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집에서 나서기 전에 화장실을 들렀는데,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를 가는 동안 또 내 방광은 아우성치고 있었다. 길을 가다 보니 산채비빔밥 집이 있었다. 아버님이 주차하시는 동안 남편과 먼저 식당에 들어가려고 하니 문이 닫혀 있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이동, 다른 밥집에 들렀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비빔밥은 팔지 않는다고 했다.

이럴 땐 무념무상이 도움이 된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멍하게 있으니 방광의 아우성이 조금 잦아드는 것 같았다. 드디어 우리는 산나물 전문 음식점을 찾았고 나는 방으로 안내해 주시는 아저씨의 시선은 보지도 않고 화장실로 바로 가버렸다.

인내의 열매는 달콤하다고 했던가. 산나물과 각종 반찬들은 나를 흥분하게 할 만큼 훌륭했고 거의 흡입하다시피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게다가 남편이 남은 반찬을 다 먹겠다는 의지로 추가한 밥 한 공기 중에 반도 내가 먹었다. 아마 그 밥에 시부모님의 사랑이 담겨서 더 달콤했던 것 같다. 집에 돌아와서도 시부모님의 웃음 가득한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남편과 나는 헤어져 돌아온 아쉬움을 어머님이 챙겨주신 김치와 반찬으로 달래고 있다.


태그:#임신, #태교여행, #입체초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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