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마이뉴스>는 '2013 특별상' 수상자로 박도 기자와 이우영-김부일 기자를 선정했습니다. '특별상'은 한 해 동안 좋은 기사와 기획 등으로 활약한 시민기자들에게 드리는 상입니다.

시상식은 2014년 2월 14일 <오마이뉴스> 상암동 사무실에서 치러집니다. '특별상'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금 50만원을 드립니다. 이 자리에서는 '2013 올해의 뉴스게릴라상'과 '2014 2월22일상', '2013 올해의 기사상', 시민기자 명예의 전당 시상식도 함께 열립니다.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인사 드립니다. [편집자말]
박도 시민기자
 박도 시민기자
ⓒ 박명수

관련사진보기

올해 <오마이뉴스>에는 '어떤 약속' 이란 소설이 연재됐다. 기존에도 종종 소설이 연재됐지만, '어떤 약속'은 좀 특별했다. 우리 민족의 아픈 부분인, '한국전쟁'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한 그날부터 시작한 이 소설은 6개월여 동안 <오마이뉴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 소설이 독자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한국전쟁 당시를 생생하게 서술했기 때문이었다. 그 중심엔 소설의 저자인 박도 시민기자가 있다. 예전부터 박도 선생을 알고 있었고 그 전에도 몇 번 뵌 적이 있기에, 박 선생이 2013 특별상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에 기뻤다.

사실 최근 박도 선생을 직접 뵐 기회가 있었다. 경기도 안성시에 있는 '유무상통마을'에서였다. 그날(12월 16일) 미처 듣지 못한 이야기들을 이메일로 물었다.

- 먼저 '오마이뉴스 특별상'을 받으시게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우선 수상소감 한 마디 들려주시지요.
"앞으로도 계속, 더 열심히 쓰라고 늙은 말에게 주는 당근과 채찍으로 알겠습니다."

- 상복(賞福)은 좀 있으신 편인가요? '오마이뉴스 특별상' 외로 전에 받으신 상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지요.
"학교 다닐 때는 해마다 우등상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고1 때는 교내 백일장에서 시 부문 차석을, 고2 때는 교내문예현상공모에 소설부문 당선을 하는 등 제법 문명을 날렸습니다. 그때 여대생에게 팬레터를 받을 정도로. 그것이 저를 교만케 했는지 대학시절과 사회 나와서는 별로였습니다. 아, 2004년 <오마이뉴스>에서 2월22일상을 받았군요."

- 최근 <오마이뉴스>에 올리신 <어떤 약속> 후기 <340만여 글자 한 자 한 자에도 정성을 다 바쳐 썼다>를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그 후기에 미처 기록하지 못한 얘기, 꼭 밝히고 싶은 또 다른 얘기가 있으신지요?
"2005년 7월 22일, 남북작가대회에서 북한의 오영재 계관시인을 백두산 가는 길 삼지연에서 만났습니다. 그분은 한국전쟁 당시 전남 강진에서 중학교를 다니다가 의용군으로 입대하여 북으로 후퇴한 뒤 그때까지도 남녘의 어머니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번 소설의 주인공 김준기와는 반대되는 인물이지요. 그 이튿날에도 배개봉 호텔에서 그분을 만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모두 세 컷의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표정에 초점이 없었어요. 아마도 남녘 작가들을 보니까 당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이 문명사회에 혈육이 60, 70년 동안 만나지 못한다는 것은 짐승만도 못한 야만의 세월이고 세상입니다. 이런 면에서 그동안 남북의 정치지도자들은 백성들 앞에 무릎 꿇고 반성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을, 형제들을 서로 만나지 못하게 하는 이 분단의 시대를 후세 사가들은 아마 '암흑의 시대'로 기록할 겁니다. 저는 이 작품이 휴전선 철조망을 자르는 한 펜치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으로 썼습니다. 사실 작가는 쓰는 기쁨에 삽니다. 이 작품을 쓰는 동안 무척 행복했습니다."

"초고보다 700매 늘어... 순희 탈출 장면 늘렸다"

- 구미가 고향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곳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기도 한데요...
"늘 관심을 가지고 살펴온 분입니다. 제가 그분을 모델로 소설을 여러 번 썼으나 한 번도 탈고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얼치기 역사공부를 하고 항일유적지를 답사한 계기도 그분의 발자취를 더 알고자 그렇게 된 겁니다. 나 혼자 일부러 창춘에 가서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만주군관학교도 살펴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단정해서 말하기 어렵군요. 질문의 핵심을 피한 답 같아 미안케 생각합니다만 더 자세한 이야기는 언젠가 작품으로 말하겠습니다."

- 서부원 기자의 <제자들에게 '몰상식한' 교사로 낙인찍혔습니다>란 기사를 읽다보니 또 불현듯 박도 선생님께서 10년 전에 쓰신 글 생각이 났습니다. 구미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광복투사 허형식 장군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동북 제일의 파르티잔, 아! 허형식 장군>이었는데요. 허형식 장군의 생가는 지금도 그렇게 폐허가 되어 있는지요?     
"제가 당시(2000년) 김관용 구미시장에게 편지로 또 직접 만나서 말씀드렸습니다. 임은동 왕산 생가를 폐허로 둔 채 박 대통령기념관을 먼저 지어서는 안 된다고. 그런 말이 먹혀든 탓인지 왕산 생가 자리는 왕산기념공원이 되고, 2009년 9월 28일 구미시 임은동 왕산로 산자락에는 왕산허위선생기념관이 우뚝 세워졌습니다. 그날 저도 초대받아 참석했는데 식장에 참석한 세계 곳곳에 유랑민이 된 후손들을 보니까 '정말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원래 내 고향 구미는 충절의 고장인데 이즈음에는 서리 맞은 국화보다 벚꽃이 더 만발한 것 같아 씁쓸했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나라 백성 가운데 많은 이들이 말과는 달리 실제로 벚꽃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입니다. 나는 우리나라 모든 백성들이 남을 탓하기 전에 내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외세의존이나 숭배사상을 버려야 비로소 이 나라가 번듯한 자주독립국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어떤 약속>은 2011년 10월부터 2013년 3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일단 초고 집필을 내놓은 상태에서 6월 25일부터 <오마이뉴스>에 연재를 하셨는데요, 연재를 하시면서 손질을 많이 하신 것 같습니다. 초고보다 분량이 얼마나 더 늘어났는지요?
"초고는 1180매 정도였는데 이번에 연재 후 다시 정리해보니까 1880 매로 약 700매 정도 늘어났습니다. 준기와 순희의 탈출 장면을 좀 더 보완했습니다. 사실 순희의 탈출 장면은 삭제될 줄 알았는데, 그대로 통과했고 무사히 통과될 줄 알았던 준기와 순희의 진한 섹스 장면은 원고 보류 처분을 두 차례나 받았습니다."

- 안중근 장군 이야기와 백범 선생 암살범 안두희를 추적하여 그려낸 이야기들이 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만, 박 선생님께서는 30여 권의 저서들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은 뭔가요.
"가장 고생하며 쓴 <영웅 안중근>입니다. 그 책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행적을 뒤쫓으며 썼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1909년 10월 초순 어느 날 갑자기 엔치아(延秋)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간 뒤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으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처단코자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열차를 타고 하얼빈을 갑니다. 저도 그 길을 따라 블라디보스토크 역에서 하얼빈 가는 열차를 타고 갈 때 마치 전사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 대목을 한번 옮겨 보지요.

'열차가 아무르만을 끼고 북으로 달리자 왼쪽 차창으로는 장관이 펼쳐졌다. 곧 수평선으로 넘어갈 해가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열차 뒤로는 곧게 뻗은 시베리아 철도가 뒤따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체첸의 비애가 담긴 '백학'이 들려오는 듯하다.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싸우다 '죽은 전사'를 찬미하는 이 노래는 약소민의 아픔이 물씬 묻은 노래다. 가사에는 '돌아오지 않은 병사'라는 노랫말이 있는데 꼭 일백년 전 열차를 이 길을 달렸던 안중근도 끝내 '돌아오지 않는 전사'가 아닌가. - 박도 지음 눈빛출판사 <영웅 안중근>  100쪽 (관련기사: 답사 중 죽어도 억울하지 않겠다, 생각했다)"

장편소설 <어떤 약속>의 배경 중의 한 곳인 '다부동전적지' 조지훈 시비 옆에서, 2010년 10월의 모습
▲ 조지훈 시비 옆에서 장편소설 <어떤 약속>의 배경 중의 한 곳인 '다부동전적지' 조지훈 시비 옆에서, 2010년 10월의 모습
ⓒ 박도

관련사진보기


"가족을 위해서 단 1달러짜리 선물도 사오지 마세요"

- 선생님은 글을 쓰시기 위해 만주도 여러 번 가시고 미국도 다녀 오셨는데, 건강 문제나 비용 문제는 없는지요? 
"저는 역마살이 있는지 답사를 떠나면 안내인조차 혀를 내두릅니다. 현지 안내인들은 산 정상 같은 곳은 "거기 가 봐야 볼 것 없다"고 하면서 돌아가려 하지요. 저는 그때 산꼭대기까지 단 걸음에 앞장서 오르지요. 비용문제는 이영기 변호사님이 후원해 주셨는데 그분은 내 아들의 대학 등록금까지 4년간 대주셨어요. 이밖에도 여러분이 노잣돈을 보태주었고 나머지는 주머닛돈을 썼지요.

아내는 답사여비만은 잔소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권장하지요. 백범 암살 진상 규명을 위한 미국 여비 마련할 때 저는 솔직히 걱정이 많았습니다. 3천만 원 목표 모금이 일부에 머물면 어쩌나 하고. 그때 아내가 명쾌한 답을 가르쳐주더군요.

'여비가 모자라면 당신 퇴직한 다음 퇴직금으로 가세요.'
다행히 누리꾼들의 성원으로 목표액을 초과하여 제 퇴직금을 쓰는 일은 없었습니다. 미국 떠나는 날 아내가 인천공항까지 배웅하면서 두어 번이나 잔소리를 하더군요.

'가족을 위해서 단 1달러짜리 선물도 사오지 마세요.'
'아, 알았다니까!'
'만일 사오시면 저 집 나갈 거예요.'"

-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의 자부심이나 사명감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오마이뉴스> 는 지난날 신문고와 같은 역할을 하지요. 제도권 언론이 제 사명을 다 못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나선 겁니다. 이 시대의 대안 언론이지요. 그래서 저는 시민기자로서 기사 한 꼭지마다 혼신을 다해 씁니다. 해외동포들이 의외로 <오마이뉴스>를 많이 보더군요."

- 지금은 원주의 어느 곳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계신가요?
"가난하고 소박하게, 그리고 조용히 살고자 강원 산골로 내려왔습니다. 그동안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말무더미 마을에서 꼬박 7년을 살다가 주인에게 돌려주고 지금은 원주 우산동의 조그만 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 선생님께선 대중교통만 이용하시는데, 불편하지 않으신가요?
"조금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가진 사람 입장에선 무언가가 없어지면 불편하지만, 전 원래부터 가지지 못하였으니까요. 좀 창피한 얘기지만 우리 부부는 그동안 늘 한 세대 뒤지게 살았습니다. 서울 종로구에 살면서도 1990년대 후반까지 연탄을 땠고, 흑백텔레비전을 보아 이따금 동회에서 TV시청료를 부과하려고 실사도 나왔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자기가 만든,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지요. 우리 부부는 늘 대중교통을 이용하지만 급할 때 콜택시를 부르면 5분 안에 도착합니다."

- 저는 여러 가지 생활 여건 때문에 소설 창작에 몰두하지 못하는 비애를 안고 삽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많이 부럽기도 합니다. 집필 계획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현재 <미군정기>를 마무리 중이고, 계속해서 '사진으로 보는 대한민국 현대사'를 펴낼 예정입니다. 그밖에도 구상한 게 많습니다."


태그:#박도 소설가, #장편소설 <어떤 약속>, #<영웅 안중근>
댓글10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