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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새해 벽두부터 국민들은 긴급조치라는 날벼락을 맞았다. 유신헌법이 보장한 대통령의 "헌법상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 할 수 있는 권한을 박정희 대통령이 사용한 것이다. 이때부터 긴급조치 시대가 시작됐는데 1972년 말 유신헌법이 통과됐으니 유신독재 시대와 긴급조치 시대는 사실상 하나라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이 긴급조치 1, 2호를 공포한 것은 유신체제 1년 만에 위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김대중 납치 사건으로 외교마찰이 발생하고 측근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갈등도 생겼다. 가장 심각한 것은 국민의 유신반대 운동이었다. 1973년 가을부터 대학생들의 유신반대 시위가 터져나왔고, 언론인들이 언론자유수호투쟁을 시작했으며, 지식인 15인 시국선언도 나왔다.

12월 24일 장준하를 중심으로 김수환, 지학순, 백기완, 계훈제 등 재야인사 30명이 모여 개헌청원운동본부를 만들고 헌법 개정 백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상황이 심상치않음을 파악한 박 대통령은 12월 29일 담화를 통해 개헌청원 서명운동을 과대망상에 빠진 불순분자들의 선동과 유언비어 유포로 매도하고 "즉각 중지할 것을 엄중히 경고"했다.

1974년이 되어서도 유신반대 운동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서명운동을 시작한 지 8일 만인 1월 1일에 서명자가 5만을 넘어섰고, 이틀 후에는 30만 명을 돌파했다. 박 대통령은 4일 시무식 유시를 통해 "이른바 민주회복을 내세우고 있는 그들의 주장은 민주의 회복이 아니라 민주의 패배를 자초하려는 것"이라고 경고하며 "(유신체제는) 불평보다는 인내를" 앞세우는 체제라고 강조했다.

국민들의 유신반대 운동이 고조되자 야당인 민주통일당이 5일 정무위원회를 열어 개헌청원운동에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제1야당인 신민당도 8일 오전 정무회의에서 "참된 민주주의 헌정체제로의 복귀를 위하여 현행 헌법을 개정하는데 진력할 것"을 결의했다. 신민당의 신도환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을 통해 유신체제를 "극단적인 정보정치, 공포정치체제의 대명사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은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긴급조치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긴급조치는 계엄령의 전단계라고 볼 수 있으며 '짐이 곧 법이요 국가'라는 봉건왕조에서나 통하는 제도다. 긴급조치 1, 2호의 핵심 내용은 유신헌법에 대해 입도 뻥긋 하지 말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긴급조치 1, 2호를 통해 개헌운동을 불법화하고 장준하, 백기완을 구속했다. 서명운동을 주도했던 이들은 서명자 명단을 압수당할 경우 서명한 이들에게도 피해가 갈 것으로 판단하고 서명용지를 모두 불태웠다.

유신체제 1년도 못 가 개헌운동이 불붙고 이를 막기 위해 긴급조치까지 선포해야 했다는 점은 유신체제가 얼마나 심각한 반민주 독재체제였다는 여실히 보여준다.

개헌운동을 불순분자들의 유언비어 유포로 매도하고 탄압한 유신독재정권과, 철도·의료민영화 반대 목소리를 SNS 유언비어 유포로 간주하고 적극 대응을 지시한 박근혜 정부가 겹쳐 보이는 것은 결코 착시가 아닐 것이다.

1974년 1월 9일 <동아일보> 1면.
 1974년 1월 9일 <동아일보>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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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월 9일 동아일보 1면
개헌언동 금지 긴급조치 선포

박정희 대통령은 8일 오후 헌법 제53조에 의한 대통령긴급조치 제1호 및 제2호를 선포했다. 8일 오후 5시를 기해 시행케 된 이 대통령긴급조치는 이날 오후 3시 박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되어 선포된 것인데 제1호는 ①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고 ②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제안 또는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하며 ③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고 밝히고 있다. 동조치 1호는 이어 ④앞의 ①②③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하고 ⑤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되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고 ⑥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하며 ⑦이 조치는 1월 8일 17시부터 시행한다고 밝히고 있다.

김성진 청와대 대변인은 "다만 이 조치가 취해지기 이전의 행위는 불문에 붙일 것"이라고 말했다.
긴급조치 2호는 대통령긴급조치에 위반한 자를 심판하기 위해 비상군법회를 설치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그 명칭은 비상고등군법회의와 비상보통군법회의로서 각각 전국을 관할구역으로 하여 국방부 본부에 두기로 했으며 이 비상군법회의는 대통령긴급조치를 위반한 자가 범한 일체의 범죄를 관할 심판한다고 밝히고 있다. ...(후략)



태그:#긴급조치, #유신독재, #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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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번영을 여는 북한 전문 통신 [NK투데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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