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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상급학교 진학을 앞둔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특히 가슴 설레고 있을 텐데요. 친일역사교과서 논란으로 심란한 마음도 없지 않을 겁니다. 오늘은 학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 동네 동작구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고가 유독 많은 편인데요. 우선 1899년 관립상공학교로 출발한 서울공고가 있고, 1903년 평양에서 출발한 기독교계 사립학교 숭의여고가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성남고는 이들 두 학교보다는 비록 짧지만, 1938년에 만들어졌으니 제법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고등학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남고는 한국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넥센의 박병호, 두산의 노경은을 배출하기도 했고, 전국대회에서도 여러 차례 우승한 '야구 명문'이기도 한데요. 우리 동네 학부모나 학생들 사이에서는 '보내고 싶은 학교, 가고 싶은 학교'로 통합니다. 학생들의 대학진학 성적표 역시 뛰어난 학교로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3·15 부정선거에 맞서 서울 최초로 시위를 벌인 성남고

성남고는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에서 자랑스러운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맞선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효시인 1960년의 4·19 혁명과 관련해서 서울에서 벌어진 최초의 시위가 바로 우리 동네 성남고 학생들이 일으킨 '3·17 의거'입니다.

성남고 학생들은 마산에서 3·15 부정선거에 맞서 일어난 시위를 이어받아 이틀 후인 3월 17일에 규탄투쟁을 전개합니다. 성남고 학생들은 영등포시장 로타리에서 4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경찰은 자숙하라', '정의를 위해서 싸우는 학생을 구타하지 말라', '경찰은 학생사살 사건을 책임지라', '체포한 학생을 석방하라' 같은 내용을 담은 '삐라'를 자필로 써서 뿌리면서 영등포구청까지 데모를 감행했고, 이어서 200여 명씩 나뉜 시위대는 인천 방면과 수원 방면으로 각각 행진합니다.

이에 경찰은 공포 한 방을 쏘면서까지 학생들을 해산시키고 100여 명을 강제 연행합니다. 학부형들이 영등포경찰서에 대거 몰려가 항의하면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곧 풀려나는데요. 주동자로 몰린 3명의 학생(유무거, 김만옥, 김종운)은 구류 3일 처분까지 받습니다. 물론 마산에서 '3.15 부정선거'에 맞선 시위가 먼저 일어났지만, 대학생들도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우리 동네 성남고 학생들이 서울에서 처음으로 과감하게 '3.17 의거'를 단행했다는 건 아무리 칭찬해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성남고 교정에는 성남고 학생들의 이런 자랑스러운 민주항쟁 참여를 기리는 뜻에서 '3·17 의거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성남고 교정의 '3.17의거기념비' 성남고 학생들은 1960년 3월 17일 서울에서 최초로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 성남고 교정의 '3.17의거기념비' 성남고 학생들은 1960년 3월 17일 서울에서 최초로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 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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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고 교가, 친일설립자 숭배로 얼룩지다

이렇듯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성남고지만, 태생적 한계에 가까운 부끄러운 역사가 학생들이 부르고 있는 교가에 지금도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먼--동이 트--니이 온누리- 환하도다
환---한 이강산에 원석두님 나셔서-
배--움길 여--시니 크신공덕 가이없네
성남성남 우리모교 무궁탄탄 할지어다

성남고 교가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교 교가에 상투적으로 보이는 무슨 산이나 무슨 강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독특한 교가라고 해야 할까요? 얼핏보면 우선 '원석두님'의 크신 공덕을 칭송하는 대목이 눈에 들어옵니다. 설립자를 유치하게 칭송하는 대목인데요. 그래서 성남고의 교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성남고의 탄생 과정과 그 설립자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1938년 2월 성남고등보통학교로 개교한 성남고는 기업가 원윤수((1887∼1940)와 일본군 출신의 군인 김석원(1893∼1978)이 공동설립자입니다. 성남고 재단인 재단법인 원석학원은 원윤수의 '원'자와 김석원의 '석'자를 따서 지은 거지요. 우리 동네 사람 중에도 성남고 설립자를 김석원만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설립자금의 상당수(80만 원)는 공동설립자인 원윤수가 냈습니다.

원윤수는 남대문 잡화상(1907∼), 과일위탁판매업(1915∼) 등을 하다가 일화광업(日華鑛業)을 설립하고 백년광산(텅스텐, 황해도곡산)을 개발하여 더 큰 부를 축적하는데요, 이렇게 쌓은 부를 일본군에 군량미(3,000석)와 비행기 대금으로 헌납하는 등 최창학(경교장 주인), 방응모(조선일보 사주)와 함께 일제강점기 3대 광산재벌로 통하면서 광산 성금으로 이름을 널리 알린 대표적인 친일 기업인입니다. 1935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인공로자연감"에 353명 중 한명으로 등재되어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해방 전인 1940년에 병으로 일찍 사망한 탓입니다.

김석원 역시 1915년 일본 육사를 제27기로 졸업하고 1917년부터 보병 소위로 임관해서 해방될 때까지 일본군 장교를 지낸 인물입니다. 그는 1931년 일제의 만주침략 때는 중대장으로 화려한 전과를 올렸고, 1937년 중국침략 때는 대대장으로 출전했습니다. 태평양 전쟁 때는 조선인 학생들에게 학병으로 참전할 것을 권유하는 강연회를 같은 일본군 장교였던 이응준 등과 함께 수행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일본군국주의의 화신'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는데요. 김석원의 해방 직전 일본군 최종 계급은 대좌(대령)였는데, 일본군에 복무한 조선인 중 필리핀 포로수용소장을 역임한 홍사익 중장, 관동군 보급부대장을 역임한 박병두 중장에 이은 최고위급 인물이었습니다.

김석원은 해방 이후에도 줄곧 성남고의 교육과 운영에 관여하는데요. 대한민국 육군장교로 복무하다 예편한 1956년 이후부터는 줄곧 성남고등학교 교장과 원석학원의 이사장을 맡습니다. 1978년 사망하면서 학교 뒷산에 묻히는데, 생전에 성남고 교정에 세워진 그의 동상은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잔재청산을 요구하는 항의시위를 하게 되면서 2002년에 철거되는 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제 왜 "환---한 이 강산에 원석두님 나셔서- 배--움길 여--시니 크신공덕 가이없네"라는 두 친일파 설립자를 추앙하는 내용의 가사가 교가에 담겨 있는지 이해하셨을 겁니다.

'먼--동이 트--니이 온누리 환하도다' 헉! 이런 뜻이

성남고 교정에 새워져 있는 교가비 성남고 교가는 1938년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 일제를 찬양하고 친일파 설립자들을 숭배하고 있는 내용이 담긴 채 지금도 그대로 부르고 있다.
▲ 성남고 교정에 새워져 있는 교가비 성남고 교가는 1938년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데, 일제를 찬양하고 친일파 설립자들을 숭배하고 있는 내용이 담긴 채 지금도 그대로 부르고 있다.
ⓒ 김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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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고의 역사를 좀 더 알아야 하는데요. 성남고는 대표적인 친일파 원윤수와 김석원이 세웠을 뿐만 아니라, 설립 당시 아베(安倍)라는 일본군 소좌가 교장을 맡습니다. 그러다보니 교가에 건강한 내용이 담길 수는 없었습니다. "먼--동이 트--니이 온누리- 환하도다"라는 교가의 앞부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는 동쪽에서 뜬다'는 자연의 섭리를 단순히 표현한 거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남고가 설립된 1938년은 아시다시피 일제의 식민지배가 더욱더 노골화되던 시점이었습니다. 1931년 만주침략에 성공한 일제는 1937년부터 중국본토마저 침략합니다. 성남고가 설립되던 1938년은 이른바 중일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던 거죠. 일제는 그것도 모자라 얼마 후인 1941년에는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키잖아요. 일제의 군국주의화가 본격화되는 시점이 바로 1930년대였던 거죠. 이 과정에서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도 '대동아전쟁'이니 '내선일체'니 '황국신민'이니 하는 논리로 전쟁에 동원되는 거죠.

이제 좀 달리 보이지 않나요? 성남고 교가에는 바로 일제와 일본천황이 위치한 동쪽에서 먼동이 트면서 온누리가 환하게 된다는, 일본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연상케 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던 겁니다. 일본 천황이 있는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니 온누리가 환하게 된다는 논리인 거죠. 성남고 교가가 담고 있는 이러한 정세인식, 시대인식은 당시 식민지 조선의 독립을 염원하던 독립운동가와 민중들의 인식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내용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제 원윤수와 김석원을 추앙하는 그 다음 구절은 이런 앞구절 해석과 결합될 때 그 진정한 의미가 살아납니다. '원석 두님'도 일본 천황이 비춘 은혜로운 '환한 이 강산에' 나심으로써 비로소 배움의 길을 열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충격적이지 않나요? 그렇다면 일제를 찬양하는 이런 교가가 일제 강점기 때는 그렇다 쳐도 어떻게 지금까지도 불리고 있을까요? 해방이 되면서 시대가 바뀌니까 '먼--동이 트--니이 온누리 환하도다'가 갖는 의미를 사람들이 신경쓰지 않았던 겁니다. 더군다나 설립자 김석원이 계속 학교를 이끌다보니 교가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제잔재 청산을 게을리 한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요. 아무런 죄도 없는 어린 성남고생들이 이 노래의 참의미조차 모른 채 지금도 부르고 있다는 겁니다.

제대로 된 역사와 전통을 담는 성남고 교가를 새로 만들자

1994년에 동작구청이 발간한 『동작구지』는 성남중고가 설립된 사연을 "김석원 장군은 당시 일제치하에서 광복의 원동력이 될 인재양성을 위해서는 민족학교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것을 자각, 같은 뜻을 품고 있던 원윤수의 사재를 기반으로 재단법인 원석학원을 설립함으로써 학교의 출발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이젠 이런 식으로 역사를 호도하면서 계속 덮고 갈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성남고보 출범 당시 원윤수와 인연이 있던 일본인 광산업자 소림(小林)이 50만원의 거액을 기부하기도 합니다. 당시 매일신보는 "육군사관학교의 준비교가 되는 특성을 가지고 데뷔하게 되었다"고 자신의 위상을 설정하고 있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바로 그 이유에서 일본군 소장 아베(安倍)가 교장으로 취임했던 것입니다. 아베는 스파르타 교육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성남고보 아베교장 취임을 알리는 기사(매일신보, 1938. 3. 30) 성남고보는 친일기업가 원윤수와 일본군장교 김석원이 공동설립자인데, 초대 교장으로 스파르타교육으로 유명했던 아베 일본군 소장이 취임했다.
▲ 성남고보 아베교장 취임을 알리는 기사(매일신보, 1938. 3. 30) 성남고보는 친일기업가 원윤수와 일본군장교 김석원이 공동설립자인데, 초대 교장으로 스파르타교육으로 유명했던 아베 일본군 소장이 취임했다.
ⓒ 한국언론진흥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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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라도 성남고는 두 설립자에 대한 찬양을 중단해야 하며, 학생들이 부르는 교가도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성남인의 자랑스러운 역사 '3.17 의거'도 들어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공립학교인 경우에는 대부분 해방이후 교가를 새롭게 제정했더군요. 다른 학교 교가에도 그런 식으로 일제를 찬양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을 테니까요. 인근 서울공고의 경우도 공립학교이다보니 1946년에 교가를 새로 제정했다고 '서울공고 연혁'에 나와 있습니다.

사실 '새 교가 제정'을 이제와서 한다는 게 좀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이런 노력이 이제라도 결실을 맺을 때 성남고 학생들의 자랑스러운 '3.17 의거'도 그 빛을 더 발하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학생과 학부모, 동문들의 학교에 대한 자부심도 더 높아질 것이고, 지역사회와의 결합도 보다 용이해질 겁니다. 학교동문, 학생, 학부모, 교사 등 성남고 관계자와 지역사회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올해 2014년에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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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역사문화연구소에서 서울의 지역사를 연구하면서 동작구 지역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사)인권도시연구소 이사장과 (사)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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