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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다. 작년에는 등산용 겉옷 두 개로 추위를 버텼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였지만 얇은 파카 하나와 바람막이 점퍼 하나를 겹쳐 입는 것이 한겨울에도 꽤나 도움이 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어느새 배가 부쩍 나와 버려 웬만한 겉옷은 단추를 채울 수가 없다. 죄송하지만 작년에 엄마에게 드린 오리털 점퍼를 다시 달라고 했다. 사이즈가 넉넉해 단추도 잘 잠겼고, 이걸로 올 겨울을 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정 엄마가 검은 코트 하나를 꺼내주셨다.

"이거 한번 입어봐. 지금 그 점퍼는 너무 작아 보여."

작아 보이는 줄 몰랐는데 엄마가 그렇다니 한 번 그 코트를 입어봤다. 팔은 좀 짧았어도 넉넉한 사이즈여서 단추가 다 채워졌다.

"맞긴 맞네. 이거 근데 무슨 코트야?"
"네 둘째 이모가 비싸게 주고 외할머니한테 선물한 코트인데, 가족들 모임에 갔다가 친척들이 안 어울린다고 했대. 그래서 한 번 입고 안 입으신 코트야. 이거 진짜 좋은 모직코튼데."

사실 지금 입기엔 예쁘지도 세련되지도 않은 오래된 코트였지만 외할머니 것이라고 해서 집으로 가져왔다. 외할머니가 내 옆에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하다. 외할머니는 8년 전 내가 영국에 어학연수 가 있을 때 돌아가셨다. 가기 전에도 간암 투병 중이셨긴 했지만 돌아가실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생전에 외할머니는 날 무척 예뻐해 주셨다. 스무 살이 넘어서까지 '아가'라고 불러주시고, 가끔 외가에 놀러가 늦잠을 잘 때면 "똥꾸녁에 해 뜬다"고 웃으며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려주셨다.

날 예뻐해 주시는 건 알았어도 난 살가운 말 한 마디 할 줄 몰랐다. 그냥 외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맛있게 먹는 것밖엔 몰랐던 철없는 손녀였다. 그런데도 외할머니는 엄마나 이모들보다 더 자주 내 꿈에 찾아오신다. 임신 6주쯤 때였을 것이다. 그때는 홈런이가 생긴 줄도 몰랐다. 하고 있던 지역아동센터 일이 너무 힘들었고, 난 일을 그만두고 더 늦기 전에 내 꿈인 대안학교 교사 준비를 하고 싶었다. 그때 꿈에서 외할머니가 사슴탕(내 생애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을 내 일터로 싸오셨다. 난 맛있게 먹으면서 외할머니 얼굴을 봤는데, 아픈 얼굴이 아니라 환하고 건강해진 얼굴이었다.

그때는 내 결심을 지지해 주러 오셨나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홈런이(우리 아기 태명)를 가진 것을 아시고 몸보신 하라고 사슴탕을 가져오신 것이 아닐까 싶다.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외할머니가 꿈에 나왔을 수도 있다. 꿈에 외할머니를 뵙고 나면 기분이 좋다. 홈런이가 태어나면 또 내 꿈에 찾아와 주시려나? 홈런이 꿈에 나타나 인사해 주시면 좋겠는데.

외할머니 덕에, 그리고 홈런이를 생각해 주는 많은 분들 덕에 홈런이는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34주째인 지금, 홈런이의 머리는 왼쪽 골반 쪽에, 척추 뼈는 내 왼쪽 배 쪽에, 그리고 다리는 내 오른쪽 갈비뼈 쪽으로 뻗어 있다. 열정적인 태동도 여전하고, 홈런이 다리가 있는 내 갈비뼈 쪽이 점점 더 아파오는 걸 보니 키도 쑥쑥 크고 있나 보다.

'잘 먹어라, 일찍 자라, 운동해라'

뻣뻣한 내 몸 요즘 요가교실에 다니는데 몸이 잘도 접히는 다른 엄마들과 달리 내 몸은 어찌나 뻣뻣한지. 부끄럽다.
▲ 뻣뻣한 내 몸 요즘 요가교실에 다니는데 몸이 잘도 접히는 다른 엄마들과 달리 내 몸은 어찌나 뻣뻣한지. 부끄럽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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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일, 조산원에서 열리는 출산준비교육에 다녀왔다. 남편과 함께 세 시간 동안 임신 중 몸 관리와 출산 과정에 대한 공부했다. 조산사 선생님이 임신 중 몸 관리에 대해 한 말은 '잘 먹어라, 일찍 자라, 운동해라' 이 정도로 간추릴 수 있다. '현미밥은 건강에 좋지만 꼭꼭 씹어 먹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라거나, '하루에 필요한 고기의 양은 우리 몸무게의 1/1000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고기 많이 먹지 마라', 그리고 '아기를 낳아 키우려면 운동을 해야 한다'는 내용들이었다.

우리는 장이 안 좋은 남편을 위해 진작부터 현미밥을 해먹었다. 그래서 그 부분은 패스. 고기도 자주 먹는 편은 아니었고, 앞으로 수육의 형태로만 먹기로 했다. 문제는 '잠'. 남편이 퇴근하면 저녁을 먹고 그 후엔 따로 또는 같이 논다. 남편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그때뿐이라 놀다가 새벽에 자는 때가 많았다. 그러면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고, 나중에 홈런이가 태어나면 이런 생활습관 때문에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 때가 많았다.

교육 후 우리는 새벽까지 노는 날을 줄이고, 적어도 밤 12시에는 잠을 자기로 했다. 아직 적응되진 않았다. 또 하나 달라진 것은 운동이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뻣뻣했다. 초등학교 때 달리기 하는 내 사진을 보면 마네킹이 뛰는 듯했다. 체력장 때 다리를 펴고 앉아서 팔을 발 쪽으로 나란히 쭉 뻗는 유연성 테스트를 하면 보통 '10' 정도의 기록이 나오는 친구들과 달리 난 '-5'에서 '-10'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조산사 선생님은 아기를 낳기 위해서는 골반이 유연해야 한다며 운동하라고 하셨다. 걸레질을 하거나 손빨래를 할 때도 쪼그려 앉아 하고, 설거지를 하면서도 싱크대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하거나 앉았다 일어나는 운동 등으로 하체를 단련하라고 했다. 요가교실에 다니길 잘했다 싶다. 하지만 아직 몸이 많이 뻣뻣해서 집에서 미리 운동을 하고 요가교실에 가야 덜 창피하다. 때로는 남편이 운동을 도와주기도 한다. 확실히 몸을 움직이면 그만큼 예전보다 몸이 부드러워진다.

출산준비교육의 핵심은 바로 이것!

조산원의 출산준비교육 내용은 세 시간 동안 옮겨도 모자랄 만큼 많았지만 핵심은 하나였다. 임신과 출산의 전 과정을 부부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은 아내가 올바른 생활습관으로 지낼 수 있게 아내에게 맞춰줘야 한다. 건강한 음식을 함께 먹고, 운동도 함께 하고, 잠도 일찍 자게 함께 노력해야 한다. 출산 때 남편의 역할은 더 크다.

"출산할 때, 우리(조산사)는 거의 개입 안 합니다. 어떤 부부는 우리를 너무 방치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기도 하더라고요. 우리는 아기가 나오기 시작할 때쯤 들어와서 아기가 다 나올 때까지 지켜보고 도와주는 것이지, 그 전까지의 과정은 (아기) 아빠와 함께할 수 있도록 합니다. 아이를 낳는 것은 엄마가 해야 하는 부분이고 옆에서 아빠가 많이 도와줘야 해요. 진통 중에는 아빠가 엄마를 마사지하면서 긴장을 풀어주면 진통을 줄일 수 있어요. 엄마들 다 엎드려 보세요. 그리고 아빠들은 엄마 꼬리뼈 부분을 지그시 눌러보세요."

경상도 사투리를 걸쭉하게 쓰는 조산사 선생님의 카리스마에 열 쌍의 부부들은 슬슬 몸을 일으켜서 조산사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했다. 남편이 내 꼬리뼈 쪽을 눌러주자 시원했다. 평소에도 약간 뻐근하던 부위였다. 이쪽을 눌러주면 골반뼈가 조금 들려서, 아기 머리가 나오는 공간을 넓힐 수 있단다.

"진통하는 동안 부인들 마사지해 주는 걸 보면, 평소에 둘이 스킨십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알아요. 평소에도 잘 만져주고 그래야 도움이 되지 평소에 안 하던 걸 진통 때 하면 귀찮지 않겠어요? 막 엄마는 진통하고 그러는데 어떤 아빠는 어쩔 줄 몰라서 혼자 문 옆에 쪼그려 앉아 있고. 또 다른 아빠는 엄마 진통하는데 소파에 앉아서 자고 있는 것도 봤어요. 여기 계신 분들은 안 그러길 바라겠어요. 그리고 진통 중에 중요한 것 하나는 뭐? 바로 립서비스. 잘하고 있다고 옆에서 응원해 주는 것도 아빠의 큰 역할입니다."

남편의 필기 조산원에서 교육하는 동안 남편이 열심히 필기를 했다. 우리 남편은 내가 배운 것을 실천할 수 있게 옆에서 많은 힘이 된다.
▲ 남편의 필기 조산원에서 교육하는 동안 남편이 열심히 필기를 했다. 우리 남편은 내가 배운 것을 실천할 수 있게 옆에서 많은 힘이 된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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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기자 아니랄까 봐 남편은 세 시간 동안 강의 내용을 수첩에 열심히 적었다. 그리고 조산원에 다녀온 얘기를 자기도 글로 쓰고, 배운 것들을 잘 실천해보자고 독려해준다. 내 임신 기간은 두 시기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남편이 함께 하기 전과 함께 한 후. 지난달부터 태동이 느껴질 때마다 남편의 손을 내 배 위로 끌어올려 놓는다. 처음엔 남편 손이 닿으면 낯가리는 것처럼 움직임을 멈추던 홈런이가 이젠 아빠인 줄 아는지 아빠 손이 올라와도 열심히 논다.

"2월에 우리 이사하면 바로 홈런이 나왔으면 좋겠어."

얼마 전 남편이 이런 얘기를 했다. 난 조금 놀랐다. 늘 우리는 홈런이가 3월에 태어나길 바라고 있었으니까. 왜냐고 묻는 나에게 남편은 말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홈런이가 궁금하고 빨리 보고 싶어."

오호라, 이제 홈런이랑 좀 친해지셨나요? 우리 아기 홈런이와 곧 엄마와 아빠가 될 우리. 우리는 이렇게 서로 점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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