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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본래 잘 변하지 않는다. 성선설, 성악설 따위의 철학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우연히 또는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주위 환경의 변화가 사람들의 기질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환경에 따라 적응해 온 한 사람의 역사가 각자의 고유한 성격과 성향 등을 결정짓는다는 환경 결정론적 시각은 '맹모삼천지교'등의 고사를 숱하게 인용하며 어느 정도 논리적인 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니까 사람이 변할 수 있는 스펙트럼의 양 극단은 자신이 경험했던 환경의 양 극단이라는 이야기다. 이 이론에 근거한다면 우리는 딱 그만큼만 '변한 척' 하며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변하지 않는 본질은 '변화 코스프레'가 실패했을 때 방어기제로 사용하기 위해 남겨두면서 말이다. "안 될 줄 알았어! 나 원래 이렇잖아!"라는 변명에서 '원래'라는 단어. 흔히들 변화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 찾는 최적의 '변명 부사'다.

23일 개봉한 영화 <위험한 패밀리>의 한 장면 영화 <위험한 패밀리>에서 프레드 역을 맡은 배우 로버트 드 니로

▲ 23일 개봉한 영화 <위험한 패밀리>의 한 장면 영화 <위험한 패밀리>에서 프레드 역을 맡은 배우 로버트 드 니로 ⓒ 프레인글로벌


다행히 영화 <위험한 패밀리>에 등장하는 프레드(로버트 드 니로 분)의 가족은 의도적으로 변화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들이 '원래' 따위의 변명 부사를 찾아 쓸 필요는 없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영화가 이 변명부사를 찾아 이들 가족에게 덧씌운다는 것이다. "우리가 뭐 그렇지! 우리 원래 이렇잖아!"가 아니라 "너희는 변할 수 없어! 너희는 원래 그래!"라고 말하는 꼴이다. 영화의 시선이 이들의 변화를 막고 있다.

단적으로 프레드 가족을 감시하는 역할의 로버트 스탠스필드(토미 리 존스 분)가 프레드를 대하는 태도에서 영화가 이들 가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 수 있다. 로버트는 프레드가 마을에서 잠자코 있기를 바란다. 로버트의 눈에는 프레드가 작가인 척 하며 글을 쓰는 것, 수도에서 누런 물이 나온다며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는 것, 영화 모임에 가서 궤변을 늘어놓는 것 등 하나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프레드가 노출될수록 이들 가족을 보호해야 하는 자신도 그만큼 신경을 곤두세워야하기 때문이다. 프레드가 로버트와 영화 모임에 가며 뱉는 "자네를 존중해야만 보장되는 자유"라는 대사는 이런 둘의 관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사람은 이래서 좀처럼 변하기가 쉽지 않다.

조직을 밀고한 대가로 걸핏하면 마을을 떠나 살아야하는 프레드의 가족이 바라는 것은 사실 소박하다. 바로 '변화된 안정'이다. 이들이 바라는 변화는 거칠고 포악했던 과거를 청산할 수 있는 '내적 성숙'을 의미한다. 처음 이들이 노르망디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각자가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며 내적 성숙을 이루고자 부단히도 애썼다. 아버지 프레드는 낡은 타자기 하나를 꺼내 자신의 회고록을 적으며 지난 인생을 차분히 되돌아봤고, 어머니 매기(미셸 파이퍼 분)는 성당에 나가 기도를 했다. 딸 벨(다이아나 애그론 분)과 워렌(존 드리오)은 학교생활에 충실하며 마을 안에서 조용히 지내고자 했다.

이들이 바랐던 '변화된 안정'은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기어코 발톱을 드러내야만 하는 불편부당한 순간들이 이들을 시험에 들게 했기 때문이다. 매기는 자신을 흉보는 슈퍼마켓에 불을 지르고 도망갔고, 워렌은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에게 복수를 감행했다. 벨은 자신을 농락하는 녀석들을 흠씬 두들겨 패줬고, 프레드는 자신의 말을 잘라 먹는 배관공을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패 병원으로 보냈다.

23일 개봉한 영화 <위험한 패밀리>의 한 장면 영화 <위험한 패밀리>에서 벨 역을 맡은 다이아나 애그론

▲ 23일 개봉한 영화 <위험한 패밀리>의 한 장면 영화 <위험한 패밀리>에서 벨 역을 맡은 다이아나 애그론 ⓒ 프레인글로벌


이 영화의 코미디는 이처럼 이들 가족이 '참고 참고 또 참다'가 폭발할 때 함께 터진다. 명분이 확실한 이들의 폭력은 수위가 상당히 세다. 하나 같이 과격한 액션을 선보이며 상대를 곤죽으로 만든다. 그럼에도 이들의 폭력이 코미디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은 앞서 말한 나름의 명분과 특유의 분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관객은 이런 장면을 보고 '저렇게 맞아도 싸! 아무리 맞아도 죽지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블랙 코미디에 슬랩스틱 코미디를 섞은 것처럼, 배우들의 표정과 행동이 냉소적이며 진지한데도 장면에 삽입된 엉뚱한 멜로디의 음악 때문인지 정반대로 이들의 행동이 과장되며 우스꽝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몇 해 전 방영됐던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양은 냄비에 머리를 맞고도 기절했던 장면을 떠올린다면 해당 장면의 이해가 쉬울 것이다.

영화 <위험한 패밀리>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제작자로 참여하고, 각본만 맡기로 했던 뤽 베송 감독이 명배우들의 참여에 감동해 연출까지 맡은 작품이다. 그의 마음을 움직인 배우들은 로버트 드 니로, 미셸 파이퍼, 토미 리 존스 등. 그 어떤 수식도 필요 없는 할리우드 영화의 장인들이다. 제작자부터 배우들까지, 그들의 면면은 정말 예사롭지가 않다. 영화가 가진 스펙만으로 흥행이 당연한 작품. 하지만 현재 이 영화의 흥행 성적은 기대보다 훨씬 좋지 않다. 흥행 부진의 이유야 당연히 복합적이겠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이들의 이름값이 예전만 못하다는 사실이다.

전반적으로 이 영화의 전개 속도는 느리다. 좋은 말로하면 차분하다. 차분한 흐름의 사이를 소소한 코미디가 메우고 있는 구조다. 액션은 앞서 말한 대로 코미디를 위해 쓰인다. 코미디와 액션 모두 적은 분량임에도 다행히 그 임팩트는 강하다. 차분한 흐름을 깨고 나온 것이기에 그렇다. 뿜을 정도의 코미디는 아니지만 키득 거릴 수는 있다. 특히 조직 생활을 접고 자신의 회고록을 쓰겠다며 갖은 허세를 부리는 프레드와 그의 자유분방함을 통제하려는 로버트가 맞붙는 장면들은 묘한 긴장감과 웃음을 자아낸다.

다만, 문제라면 이게 '다' 라는 것이다. 키득거리는 수준의 코미디 이상을 이 영화에서 기대할 수 없다. 또한, 마지막 20분의 액션 장면을 제외하고 긴장감과 박진감을 느낄 정도의 장면들이 턱 없이 부족한 것도 취향이 맞지 않는 관객들에게는 고역일 수 있다. 보는 이에 따라 지루할 수 있는 영화란 것이 이 영화의 함정이다.

빛나는 것은 배우들의 존재감이다. 로버트 드 니로와 미셸 파이퍼, 토미 리 존스야 등장만으로 스크린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연륜을 지닌 배우들이지만 이런 대배우 틈바구니 속에서 벨과 워렌 역시 성실하고 정직한 연기로 본인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벨 역의 다이아내 애그론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녀는 카메론 디아즈와 귀네스 펠트로의 얼굴을 섞은 것처럼 성숙미와 우아미가 공존하는 외모를 지녔다. 그런 그녀가 테니스 채로 건장한 남자를 날려 버리고, 전화기로 친구의 이마를 찍는 것도 모자라 하얀 색 원피스를 입고 총격전까지 벌이니 그 반전 매력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다. 영화 <위험한 패밀리>는 배우들의 매력이 빛나는 영화다. 어딘가 모자란 액션과 코미디지만 배우들에 집중해서 본다면 이 영화를 재밌게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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