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칭 '듣보'(듣도 보도 못한)까지는 아니지만 얼굴과 이름이 쉽게 매치되지 않는 수준의 인지도를 가진 '클라스'의 연예인들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 작품에서는 '주인공의 친구', '신 스틸러'로까지 불리는 이들은 극강의 인지도를 가진 연예인 옆에 서야만 그 존재감이 확실한 불행한(?) 운명을 갖고 있다.  

MBC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이하 <라스>)는 이런 애매한 예비 스타들을 발굴하는데 꾸준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얼마 전 출연해 콤비처럼 활약했던 개그맨 윤성호, 조세호 등을 비롯해 전 남친, 전 여친의 인지도에 묻혀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힘들었던 가수 레이디 제인, 슬리피 등이 <라스>가 최근에 발굴한 스타였다. 달콤한 인기의 맛이 불과 며칠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 <라스>형 스타들의 한계이지만, '백일몽'이면 어떠랴.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연예인들이 태반인 것이 현실인데 말이다.

<라스>가 차린 밥상은 게스트 4명의 건강한 생존 경쟁을 보는 자리다. 그래서 <라스>에 출연한 저인지도의 연예인들은 한 번의 출연으로 인생을 바꿔보겠다는 포부를 내비치기도 한다. 이들은 욕심을 채우기 위해 많은 이야기 거리를 준비하는데 그도 그럴것이 이 프로그램의 영향력이 아직은 꽤 괜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라스>에 출연하면 해외 진출도 가능한 것 아니냐고 들떠있던 최우식의 말이 괜한 허풍으로 들리지 않는 것도 그간 <라스>가 쌓아올린 업적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라디오스타>를 <마녀사냥>으로 바꿔 놓은 여자

 5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 배우 라미란이 출연해 최강의 존재감을 뽐냈다

5일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 배우 라미란이 출연해 최강의 존재감을 뽐냈다 ⓒ MBC


지난 5일 방송된 <라스>는 '거지, 내시, 몸종 그리고 변태특집'으로 꾸며졌다. 주연만큼 작품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4명의 조연 배우 이병준, 라미란, 김기방, 최우식이 출연해 방송을 빛냈다. 이날 방송 최고의 수혜자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은 단연 라미란. 그는 방송 초반 MC 김구라의 공격으로 너덜너덜해질까 두려워하면서도 MC들의 질문에 재치있는 대답으로 응수하는 여유를 보였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누구의 친구'로 활약했던 그는 이날 방송을 통해 '누구의 친구도 아닌 미란'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그는 올해 마흔이라는 나이에 걸맞게 모든 영역의 토크에서 막힘이 없었다. 노출연기와 쉽게 결부되지 않는 보통 몸매라며 자신을 소개하면서도 데뷔작인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자신의 엉덩이가 스크린을 장악했다는 발언을 해 주위 사람들을 경악케 했고, 공사(주요 부위를 가리는 것) 없이 베드신을 찍었던 경험도 털어놓으며 <라스>를 순식간에 <마녀사냥>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야말로 화끈한 19금 입담이었다.

그의 야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본 토크 사이를 메운 그의 깨알같은 애드리브가 고스란히 전파를 타며 프로그램을 더욱 뜨겁게 달궜다. 영화 <댄싱퀸>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 엄정화의 친구 역으로 등장했던 그는 엄정화보다 나이가 많아 보인다는 MC들의 짓궂은 공격에 '엄정화씨가 69년생이다. 참 야한 나이다'라고 말해 순간 MC들을 당황케 했다. 또 자신의 고향을 '강원도 고한'이라고 소개하며 MC들이 고한을 '고환'으로 듣도록 유도하는 토크 스킬도 뽐냈다.

그의 매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이미지를 바꿔 줄 노래라는 주제로 진행된 음악코너에서 수준급 가창력이 아니면 따라 부르기 힘든 BMK의 노래 '물들어'를 선곡, 훌륭히 소화하며 코너의 주제에 맞게 자신의 이미지를 반전시켰다.

방송 후 라미란은 실시간 인기 검색어를 장악하고 있다. 지난해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이래로 다시 한 번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올해 라스가 발굴한 또 한 명의 스타, 라미란. 앞으로 그를 영화나 드라마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여성들의 입담이 필요한 프로그램에서 조만간 그를 다시 한 번 만나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 든다. 인기의 돛을 제대로 달은 만큼 앞으로도 계속 순항하기를. 어제 <라스>의 라미란은 누구의 친구도 아닌 본연 그대로의 라미란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라디오스타 라미란 김구라 김기방 최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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