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체르노빌 다이어리>의 포스터

영화 <체르노빌 다이어리>의 포스터 ⓒ PARIS FILMS


1986년 4월 26일. 사상 최악의 방사능 누출 사고가 발생한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당시 원전 사고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갔고 주변 생태계를 파괴했다. 피폭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수천에서 수십만 명으로 추정되었고, 현재도 수많은 피폭자가 암과 백혈병 등으로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전 반경 30km 이내 지역은 지금도 여전히 사람이 살 수 없는 통제구역이다. 주변의 방사능 수치가 아직도 정상치를 크게 웃돌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를 충격에 몰아넣었던 충격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영화 <체르노빌 다이어리>는 그 후를 조명한다.

유럽을 여행 중인 크리스(제시 맥카트니 분), 나탈리(올리비아 더들리 분), 폴(조나단 새도스키 분), 아만다(데빈 캘리 분)는 현지 가이드 유리의 특별한 제안을 받는다. 원전 사고로 버려진 유령 도시 체르노빌에서 '익스트림 여행'을 해보자는 것. 이미 여러 번 그곳에 사람들을 데려간 경험이 있는 유리는 폴 일행에게 안전할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크리스는 왠지 모를 꺼림칙함에 그의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머지는 다수의 논리로 크리스를 설득하고, 폴 일행은 결국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마이클과 바이킹 커플이 합류해 가이드 유리와 폴 일행 4명, 마이클과 바이킹까지 총 7명이 체르노빌 지역의 프리피야트(Prypiat)로 향한다. 이때부터 이들의 여행은 정말 익스트림(?)하게 진행된다.

<파라노말 액티비티>의 시나리오를 썼던 오렌 펠리가 제작과 각본을 맡아서인지 <체르노빌 다이어리>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파라노말 액티비티>와 상당히 유사하다. 이 영화 역시 <파라노말 액티비티>처럼 모큐멘터리 형식을 차용하고 있는데, 이는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역사에 실재했던 최악의 원전 사고라는 것을 감안할 때 가장 영리한 선택이다. 모큐멘터리 연출 방식은 가장 일상적인 앵글과 쇼트로 관객의 일상을 흔들고, 그들의 공감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영화는 실제 사고를 소재로 한 점, 그 사고 장소에 관객을 대신해 누군가가 여행을 떠나 있다는 설정 등으로 극 중 크리스처럼 그 장소에 가기 싫었던 관객까지 가볍게 대리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스크린이라는 현실과 극의 안전한 벽을 통해 관객은 실제로 체험할 엄두도 못 내는 일을 대리 체험한다. 그러한 점에서 특별한 촬영 기술 없이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쇼트의 문법을 생략한 채 다양한 앵글과 쇼트의 크기를 오가는 모큐멘터리식 촬영 방식은 관객을 이 영화에 오롯이 집중하게 하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영화 <체르노빌 다이어리>의 한 장면

영화 <체르노빌 다이어리>의 한 장면 ⓒ PARIS FILMS


영화는 일부러 전반 40분을 큰 소동 없이 끌고 나간다. 7명의 여행자는 황량한 도시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사고 흔적을 구경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들의 머릿속에 체르노빌은 여행기를 특별히 채울 한 공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1986년 4월, 원전 사고가 있기 전이었다면 수많은 사람이 이웃하며 살았을 이 공간에 대해 여행자들은 깊이 생각할 의지도, 여지도 없어 보인다. 수많은 생명이 타의에 희생당한 공간에서 이들이 보인 가벼운 태도는 곧 이들에게 엄청난 고난이 닥칠 것을 은연중에 예고하고 있다. 이들이 그곳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때문으로 생각된다.

커플 관광이 공포의 기운을 머금을 때, 정확히 이들은 떠날 채비에 분주하다. 하지만 이제는 이곳이 이들을 놔주지 않는다.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는 이 영화가 공포 영화로 본격화 되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상처의 공간에서 가벼운 관광을 즐기고자 했던 인간은 넓게는 체르노빌에 갇힌 것이고, 좁게는 차 안에 갇힌 신세가 된 것이다.

'갇혀 있다'는 것.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려던 이들이 갑자기 시동이 걸리지 않는 차 안에서 옴짝달싹 못 하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은 당시 원전 사고의 피해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피해자들도 이들처럼 자신의 공간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며 전전긍긍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손과 발을 묶어 둔 공포적 대상의 대표적 속성이 '모호함'이라는 것도 여행자와 피해자를 동일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차에 갇힌 채, 자신의 공간에 갇힌 채 마냥 흘러버린 시간, 그 누군가는 답답함을 견디지 못하고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현재의 유리와 크리스처럼 말이다. 유리와 크리스는 이 여행을 가운데에 두고 대척점에 섰던 인물이다. 유리는 여행을 제안했고, 크리스는 가장 먼저 그 제안을 거부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둘 때, 유리는 책임감에 차를 뛰쳐나온 것으로, 크리스는 답답함, 불안감에 뛰쳐나온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사고 당시 역시 가장 먼저 자신의 공간을 벗어난 이들은 '책임감'과 '불안감'이란 감정을 지고 밖으로 뛰쳐나온 것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다. 이처럼 영화는 현재의 상황을 통해 과거를 유추하게 한다.

곱씹어 생각해 볼 소재를 선정해 장르 영화를 만든 이 영화의 기획력은 참으로 훌륭해 보인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이 영화가 잘 고른 소재만 믿고, 대강 공포 영화 흉내만 낸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 영화를 대부분 좀비 영화로 보는데 정확히 말해 그 대상을 좀비로 단정 지을만큼 충분히 목격하지 못했다. 이 영화의 공포 생산 전략이 기본적으로 '모호함'을 콘셉트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공포는 무지에서 온다'는 기본 개념에 충실하고 있다. 느슨한 전반부에 자신의 감정을 인물에게 이입한 관객은 공포로 무장한 후반부에 이들이 놀라는 것을 보고 따라 놀란다. 현장을 보지 못한 관객은 이들이 무엇 때문에 기겁하고, 나가떨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무지해서 더 무서운 것도 있지만, 이런 방식이 반복되니 한편으론 답답하다.

공포의 실체가 정체도, 정처도 없이 부유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까지 기대하는 것은 당연히 어려운 일이 된다. 기발한 소재를 떠받칠 만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미처 준비하지 못한 영화가 결국 선택한 결말이란 공포의 얼굴을 극강으로 클로즈업하며 한 번 놀란 관객 두 번 놀라게 하는 잡기술(?)이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다분히 장르 영화의 소재로 쓰였을 뿐, 이 영화도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이 사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공포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조마조마해하는 나를 느닷없이 놀라게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체르노빌 다이어리>는 기본은 하는 영화다. 공포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권하지 않겠지만, 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볼만한 영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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