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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일본 고려박물관 전단 (표지 그림 김향화 애국지사, 한국화가 이무성 )
▲ 고려박물관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 전단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일본 고려박물관 전단 (표지 그림 김향화 애국지사, 한국화가 이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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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8일 토요일 오후 2시. 일본 도쿄 한복판 신오쿠보에 있는 고려박물관 7층 전시실 안은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많은 일본인들이 모여들었다.

특강 강연자인 필자는 하루 전날 고려박물관을 찾아 이날 있을 특강 준비를 하면서 와타나베(渡辺泰子)간사와 차를 마시면서 "몇 명이나 올까요?"라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와타나베 간사는 "글쎄요. 많이 알렸는데... 걱정이네요"라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다음날 특강 장소를 찾고는 깜짝 놀랐다.   

오후 2시 강연인데 숙박 장소인 아사쿠사에서 여러 번 차를 갈아타고 가는 바람에 1시 30분이나 되어 도착해서 보니 강연장인 고려박물관 안은 이미 강연을 듣기 위해 입장한 청중들로 초만원 상태였다.

1천 엔씩 내는 유료 입장인데도 153명이 입장하여 고려박물관이 생긴 이래 (23년째) 최고의 참석자였다는 후문을 듣고 강연자인 필자는 물론이고 주최자인 고려박물관 쪽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또한 장소가 협소하여 발걸음을 돌린 사람들도 많았다는 이야길 듣고 나는 '일본의 양심'을 확인했다.

"저는 오늘 강연을 마치면서 일본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일본의 희망입니다. 최근 아베정권의 극우화와 수많은 일본인들이 이에 동조하는 현상을 보면서 일제강점의 쓰라린 역사를 겪은 나라의 국민으로서 매우 안타까운 마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한국의 '여성항일독립운동가들을 말한다(女性抗日独立運動家を語る)'에 이렇게 큰 관심을 갖고 강연장을 찾아준 여러분들의 눈빛에서 저는 일본의 희망과 미래를 보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일본 최초로 이뤄진 한국의 '여성항일독립운동가들을 말한다' 강연장에 참석한 일본인들은 숨을 죽이며 불굴의 의지로 조국 광복을 지켜낸 용감한 한국의 잔 다르크에 대한 이야기에 눈과 귀를 기울였다.

시화전 전시 기간 중 '여성독립운동가를 말한다' 특강(3월 8일 )에 모인 일본인들, 특강자인 필자는 한복의 뒷모습이고 왼쪽의 분홍 한복은 통역을 맡은 시인 김리박 선생
▲ 고려박물관 항일여성독립운동가 특강 시화전 전시 기간 중 '여성독립운동가를 말한다' 특강(3월 8일 )에 모인 일본인들, 특강자인 필자는 한복의 뒷모습이고 왼쪽의 분홍 한복은 통역을 맡은 시인 김리박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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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강연은 '여명을 찾아서(夜明けを求めて)'라는 제목으로 지난 1월 29일부터 3월 30일까지 두 달 동안 도쿄 고려박물관에서 열린 시와 그림으로 엮은 독립운동여성들(詩と画でつづる独立運動の女性たち)에 대한 시화전 기간 중에 특별 초청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연합뉴스에서 깊은 관심으로 보도한 기사
▲ 연합뉴스 기사 연합뉴스에서 깊은 관심으로 보도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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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화전 그림은 맛깔스런 여성독립운동가들을 그린 한국화가 이무성 화백이 맡았고 시는 필자가 쓴 여성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 1, 2권>에 나오는 40명 가운데 30명을 골라 시와 그림으로 전시하게 된 것이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153명의 청중들은 고려박물관 쪽의 설문지를 통해 필자의 특강에 대해 소감을 밝혔다. 간단한 소개를 하면 다음과 같다. (번역 필자)

"일본에 1945년까지 여성들이 활동한 책이 있습니까? 라는 질문(필자의 질문)을 받고 숨이 막혔습니다. 자국의 역사에 깊이 천착하여 여성의 역사를 소중히 하는 마음 그리고 한·일(아시아)의 미래까지 생각하는 것에 정말 진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강연을 들으면서) 아주 심한 화상을 입은 느낌이었습니다. 일본인도 분명히 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한글 시의 일본어 번역과 함께 다시 강연을 마련해주세요"

(日本への1945年までの活動家の本はありますか?の質問にハッとしました。自国の歴史への深い思い、女性の歴史を大切にする心そして日・韓(アジアの)未来に託す思い、をとても強く感じました。とっても熱い思いにヤケドしそうです。日本人もしっかりしなきが思いましたった。ハングルの詩の和訳をつけてまたやってください。)

*이번 도쿄 전시 작품은 모두 일본어 번역이 있었으나 참가자의 주문은 전체적인 인물에 대한 번역을 말하는 것 같음.

"많은 여성독립운동가가 계시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독립운동가들은 발굴 단계라는 이야기와 이윤옥 선생과 이무성 선생의 그림과 시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혼이 살아난 느낌입니다. 많이 가르쳐주셔서 고맙습니다."

(数多くの女性抗日独立運動者がいらっしゃることはじめて知り驚いています。まだまだこれからも見つかるだそうで李潤玉先生と李茂盛先生の絵文で魂をとりもどしたのですね。多く教えていただき、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

"최근 전쟁(태평양전쟁) 전으로 회귀하려고 오로지 한 길로 돌진하는 아베정권의 위기감과 '국가가 관여한 위안부는 어느 나라나 있었다' 같은 발언으로 심한 분노를 느끼던 참에 꼭 오늘 강연을 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후쿠오카에서 왔습니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강한 책임감을 갖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여성들을 나도 기억하고 싶으며 일본에도 야만적인 천황제 하에서 싸운 여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기회에 한국 여성들, 일본 여성들이 서로 기억하여 한일평화의 교류를 확대해 가게 되길 크게 희망합니다. '왜놈'이라는 말이 가슴을 찌릅니다. 젊은 세대에게 어떻게 전해갈지에 대해 생각 중입니다.

(最近の戦前回帰への道をひたすらに突き進む安倍政権への危機感、として「慰安婦はどこの国にもいた。国が関与などでっち上げたり」との発言に強い怒りを感じて是非とも今日の講演を聞きたいと思い、福岡から来ました。儒教の国の朝鮮で強い意思を持って祖国の独立のために闘った女性たちのことを私もきおくしていたい、日本にも野蛮な天皇制のもとで闘った女性たちが沢山います。ともに韓国の女性たち、日本の女性たちが記憶し合い、ともに日韓の平和な交流が広がって行くことを強く願います。"倭奴"という言葉が身に突き刺さりました。若い世代にどうやって伝えて行くかを考えます)

이번 시화전을 위해 애쓴 하라다쿄코 고려박물관 이사장, 히구치이치요우 고려박물관장, 와타나베야스코 간사
▲ 고려박물관 공로자들 이번 시화전을 위해 애쓴 하라다쿄코 고려박물관 이사장, 히구치이치요우 고려박물관장, 와타나베야스코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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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을 마치고 이번 시화전에 애쓴 고려박물관 회원들과 한국에서 참석한 분들과 함께 (뒷줄 왼쪽에서 2번째 박경목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장, 4번째 모자 쓴 분 이무성 화백 , 그 옆은 김리박 시인)과 앞 줄의 한복차림이 필자
▲ 특강을 마치고 특강을 마치고 이번 시화전에 애쓴 고려박물관 회원들과 한국에서 참석한 분들과 함께 (뒷줄 왼쪽에서 2번째 박경목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장, 4번째 모자 쓴 분 이무성 화백 , 그 옆은 김리박 시인)과 앞 줄의 한복차림이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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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감문은 끝이 없지만, 일일이 다 소개할 수 없어 안타깝다. 중요한 것은 일본인들이 과거 침략 시기에 조선인과 아시아 각국 사람들이 겪은 이야기에 대해 잘 모른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듣게 되면 한결같이 '정말 몰랐다. 반성하며 참회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높이 사고 싶다.

문제는 아베정권을 비롯한 권력층, 그리고 교과서를 만드는 학자와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명백한 과거의 역사를 부정하고 선량한 국민을 속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고려박물관 특강에 참여했던 시민들처럼 일본의 우경화에 깊은 우려를 넘어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점은 희망적인 일이다. 이러한 사람들이야 말로 우리가 함께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며 손잡고 전쟁 없는 평화의 세계를 가꾸어 나갈 동반자라는 점을 기억했으면 한다.

이번 도쿄 전시회를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뛴 분들은 많다. 전시회를 마치며 한분 한분께 고개 숙여 그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특히 한국 쪽에서 경제적인 어려움의 난관 속에서도 수고를 아끼지 않은 비영리단체인 한국문화사랑협회 김영조 회장, 일본 쪽에서는 도쿄 고려박물관의 히구치유이치(樋口雄一)관장과 하라다 쿄오코(原田京子)이사장 그리고 전시회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애써준 와타나베 야스코(渡邊泰子)씨를 비롯한 조선여성사연구회 회원들의 60일에 걸친 자원봉사에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번 행사를 위해 애쓴 한국문화사랑협회 김영조 회장(왼쪽 회색 한복)
▲ 김영조 회장 이번 행사를 위해 애쓴 한국문화사랑협회 김영조 회장(왼쪽 회색 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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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특강이 있던 날 멀리 교토에서 단걸음에 달려와 통역을 맡아주신 김리박 시인과 우에노 미야코 시인의 일본어 시화 번역 작업에도 큰 손뼉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이번 전시회는 한일 양국의 순수한 시민들이 발 벗고 나서서 이룩한 성공적인 전시회였다.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도쿄 고려박물관 쪽에서 시화전 행사 소식을 알리기 위해 찾은 재일본 한국문화원의 푸대접과 무관심 그리고 제 95주년 2·8독립선언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를 찾은 한국 쪽 관계자들이 지척의 전시장을 외면했다는 점은 두고두고 섭섭하다.

입으로야 한일간의 우호증진과 교류가 중단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행사를 해보면 몸을 사리고 '우리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태도야 말로 '진정한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는 '어느 특정한 시기의 한 역사'가 아니다. 이들이 목숨을 바쳐 구국의 정신을 실천한 그 배경에는 침략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가 똬리를 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따라서 여성독립운동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또 다시 그러한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하는 것이며 현재의 이야기이자 미래의 이야기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더 나아가 인류의 평화를 깬 일본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현 상황에서 불굴의 의지로 헌신적인 삶을 산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일본과 전 세계에 알리는 일은 '평화를 갈망' 하는 전 세계 사람들의 공통 선(善)과 인류 평화를 위해 필요한 작업임을 꼭 말해두고 싶다.

안중근 의사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의 시화를 이무성 화백(맨 왼쪽)이 고려박물관 하라다쿄오코 이사장(오른쪽에서 둘째)에게 증정하고 있다.
▲ 시화 증정 안중근 의사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의 시화를 이무성 화백(맨 왼쪽)이 고려박물관 하라다쿄오코 이사장(오른쪽에서 둘째)에게 증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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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특별히 준비해 간 서예가 청농 문관효 작가의 작품 "함께" 라는 족자를 하라다쿄오코 이사장(오른쪽)에게 증정하는 이윤옥 시인
▲ 붓글씨 작품 증정 한국에서 특별히 준비해 간 서예가 청농 문관효 작가의 작품 "함께" 라는 족자를 하라다쿄오코 이사장(오른쪽)에게 증정하는 이윤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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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박물관을 함께 방문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박경목 관장이 숱한 독립운동가를 잡아 가두었던 서대문형무소 벽돌을 고려박물관에 선물하는 모습
▲ 서대문형무소 벽돌 증정 고려박물관을 함께 방문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박경목 관장이 숱한 독립운동가를 잡아 가두었던 서대문형무소 벽돌을 고려박물관에 선물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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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영어, 일본어, 한문으로 번역)으로 표현한 이번 전시회는 전쟁을 불식시키고 인류평화를 갈망하는 전 인류에게 하나의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는 작업이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그리고 더 나아가 전 세계를 순회하며 '역사 속에 이름없이 들꽃으로 지고 말았지만, 우리의 가슴에 언제까지나 피어 있는 한국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알리고 싶다.

*도쿄 시화전에 음으로 양으로 도움을 주신 국내외 여러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 말씀 올리며 그 은혜 오래도록 잊지 않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국문화신문 '얼레빗'에도 보냄.

*여성독립운동가 시화전 문의 전화: 02-733-5027, 전송:02-733-5028



태그:#항일여성독립운동가, #고려박물관, #여성독립운동, #독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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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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