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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림(53ㆍ자영업ㆍ충남 태안군 태안읍 원이로) 유 창(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ㆍ율창 예능보유자) 선생 전수자
▲ 한수림(53ㆍ자영업ㆍ태안읍 원이로) 유 창(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ㆍ율창 예능보 한수림(53ㆍ자영업ㆍ충남 태안군 태안읍 원이로) 유 창(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ㆍ율창 예능보유자) 선생 전수자
ⓒ 이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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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소리꾼. 하지만 정작 나이 오십이 돼서야 그 좋아하던 소리에 푹 빠져 지낼 수 있었다는데.

한 많은 세월을 탓하면 무엇 하랴. 다만 오십 줄에 들어서니 과거 친정엄마가 남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구슬프게 울부짖던 서글픈 한을 온전히 깨달을 수 있게 됐다고 털어놓는다.

지난달 28일 충남 태안군 태안읍 나무그늘아래 커피숍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었다.

전라남도 해남 땅에서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한수림(53ㆍ자영업ㆍ충남 태안군 태안읍 원이로ㆍ사진) 전수자는 경기민요이수자인 이정례(현 서산국악협회이사ㆍ국악협충남도지회민요분과위원장ㆍ유창선생서산지부장) 선생의 열두 제자 중 한사람으로 지난해 9월 서산국악경창대회 장려상 수상에 빛나는 타고난 소리꾼이다.

뭐가 그리 바빴던지 쏜살같이 달려온 세월에 소리로 한을 풀던 엄마를 보고 자란 그녀는 언젠가 소리를 본격적으로 배워보겠노라 마음먹었단다.

그랬던 그녀의 피 같은 열정이 통했던 것일까. 3년여의 노력 끝에 얼마 전 소리꾼의 대가 명창 유 창(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ㆍ율창 예능보유자) 선생에게서 전수자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됐다.

'일방통행'으로만 살아온 그녀 삶에 소리꾼 전수자라는 이름은 남들이 보는 화려함을 넘어 수고한 그녀 자신에게 주는 귀한 선물이자, 젊은 나이에 운명을 다한 부모님들에 대한 값진 보답이었다.

해남 땅. 파란 바람이 어린소녀의 볼을 찰싹 간질이고 갈 무렵 척박했던 유년시절을 빨리 이기고파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울유학길을 선택한 그녀. 하지만 삭막한 서울은 그녀의 소리 혼을 잠시 잊게 만들었을 뿐 곧 고향과 같은 바다가 그리워졌다.

한 10년 전이었나. 그녀가 태안 땅을 처음 밟던 순간이 그녀 눈에 선하다. 고교시절 미용기술을 연마한 걸 시작으로 정말 안 해본 일 없이 도전에 모든 걸  쏟았던 거침없는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낯선 타지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낡고 처량한 식당이었다.

"남면소재지에서 식당을 열고 몇 년간은 그곳에서 살았죠. 당시에는 아들이 어려서 많이 힘들었어요."

남면 사람들의 소박하고 정성스런 마음에 끌려 태안에 뼈를 묻고 살기로 했다는 그녀. 해서 6년 전 이곳 태안읍내로 이사와 작은 아파트 단지 내 장사도 시작했다고.

소리뿐만 아니라 그녀가 좋아하는 일은 붓글씨다. 마음이 서글퍼질 때면 그녀는 지금도 붓을 잡는다. 소리와 글은 그녀 삶의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그런 그녀에게 몇 해 전 유방암이라는 난제가 찾아왔다. 12번의 항암치료와 33번의 방사선치료로 몸도 맘도 많이 쇠약해졌고 벌써 3년째 투병중이다. 그래도 살 수 있는 건, 그녀가 살아 있음을 느끼는 소리 때문이다.

"50대 때가 아닌 20대부터 소리를 했다면 아마 전 소리와 결혼했을 거예요."

그녀가 이토록 소리를 좋아하는 까닭은 인생사 모든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을 수 있음이다.

이번 유 창 선생 전수시험 당시 그녀는 명심보감 중 송소율창을 불렀다. 어느 선비의 꿈을 표현했다는 노랫가락에서 왠지 모를 우울함이 느껴진다. "한이 많냐"는 질문에 짐짓 "그렇다"고 대답하는 그녀는 소리를 "민초들의 표현"이라는 말로 대신했다.'부모의 사랑은 하늘과도 같고, 자식의 마음은 뜬구름 같다' 그녀가 좋아하는 청춘가 중 한 구절이다.

"꼭 전수자가 되기 위해 소리를 시작한 건 아니지만, 소리로 인해 제 두 번째 인생을 찾은 것 같아요. 또 인생일대 이정례 선생님을 만난 건 어찌 보면 가장 큰 행운이죠. 아마 죽을 때까지 소리의 끈을 놓지 못할 것 같아요."

일주일에 한번 소리를 하는 서산ㆍ태안 소리꾼들이 모여 무료봉사활동 길에 오른다. 얼마 전 서산본향장로교회와 음암수림요양원으로 소리 봉사활동을 마쳤다. 또 3월 12일에는 국립극장 무대에서 국악인 이춘희, 경기명창 이은주 선생과 함께 경기민요 유산가 12작가와 제비가 등을 부르며 소리의 음역대를 넓히고 있다.

한수림(53ㆍ자영업ㆍ태안읍 원이로) 유 창(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ㆍ율창 예능보
▲ 한수림 한수림(53ㆍ자영업ㆍ태안읍 원이로) 유 창(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41호 송서ㆍ율창 예능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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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무대에서 선보이는 소리. 요양원 외로운 어르신들과 덩실 장구춤으로 선보이는 소리. 고리타분하다는 세인들의 원초적 관념에서 벗어나 누구나 아우를 수 있고 삶의 애환과 민초들의 한을 아름다움으로 승화할 수 있는 소리.

그녀가 추구하고 바라는 진정한 소리란 이런 것이다.

태안.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고운 한복으로 반듯한 매무새를 마친 그녀가 바닷가 한 가운데에 서서 노래하는 환영이 스친다.2012년 12월 유네스코 세계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우리의 아리랑이 그녀의 구슬픈 음색에 스며 파도에 젖고 바위에 찢긴다.

"언제가 춘향전을 앉아서 5시간 불렀어요. 인간문화재 고 박동진 선생님이 한 번도 안 쉬고 6시간동안 판소리를 했다고 하는데 소리꾼들에게 시간은 무의미한 것 같아요."

자신의 한을 언젠가 이곳 태안에서 소리로 표출하겠다는 그녀의 꿈이 그녀가 말하는 '순리'대로 그렇게 흘러갈 수 있길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태안미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소리꾼, #유창, #한수림, #태안,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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