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월화드라마 <태양은 가득히> 마지막 회의 한 장면. 한영원(한지혜 분)과 정세로(윤계상 분).

KBS 2TV 월화드라마 <태양은 가득히> 마지막 회의 한 장면. 한영원(한지혜 분)과 정세로(윤계상 분). ⓒ kbs


KBS 2TV <태양은 가득히>가 8일 16회를 마지막으로 종영했다. 시청률은 2.7%(닐슨코리아 전국기준). 아무리 낮은 시청률을 기록해왔다 할지라도 후반부, 특히 마지막 회 시청률은 평소보다 높은 수치를 보이는 것인 일반적인데, <태양은 가득히>에게는 그마저도 무리였다. 결국 3%도 넘기지 못한 채 그야말로 '애국가 시청률'로 씁쓸한 종영을 맞이해야만 했다.

배우들의 열연은 그들의 자화자찬이 아니었다. 윤계상을 비롯, 한지혜, 조진웅, 김유리, 김영철, 전미선 등 모든 배우들이 제 역할에 충실하면서 호연을 펼쳐 보였다. 무엇보다 드라마 주연을 처음 맡은 윤계상은 두 개의 이름으로 살아가면서 사랑과 복수 사이에서 방황하고 고뇌하는 캐릭터를 훌륭히 그려내어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러나 대중들은 <태양은 가득히>라는 작품 자체를 외면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뛰어나고 스토리도 탄탄하고 연출력에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익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의 채널은 MBC나 SBS, 혹은 케이블이나 종편 방송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애써 위로를 하려고 해도 2% 대의 시청률은 대중들의 철저한 외면을 의미한다.

시청률 낮았지만, 세련된 표현력 돋보였던 대사는 일품

<태양은 가득히>에 제 2의 <비밀>을 기대했었다. 멜로와 스릴러라는 두 가지 장르를 세련된 포장과 적절한 긴장감으로 융합하여 내는 것이 서로 흡사하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결과물은 극과 극이었다. 섣불리 기대했다는 원성이 들렸고, <비밀>과 비교될 정도로 우수한 수준은 아니었다는 저평가가 이어지기도 했다.

분명히 문제는 있었을 것이다. 주연 배우의 인기도나 호감도가 동시간대 방송되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약했다거나, 초반에 홍보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기선제압 할 타이밍을 놓쳤던 것이 대중을 잡아끌지 못하고 시청자들을 확보하지 못한 이유일 수 있다. 어쨌든 이것도 실력이니만큼 자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월화드라마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태양은 가득히>에게만 대부분의 책임을 돌리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현재 월화드라마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MBC <기황후>는 역사왜곡이라는 비난으로 시작해 지금은 막장드라마라는 오명을 듣는 처지가 됐음에도 여전히 시청률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욕을 하든, 비난을 하든, 대중들은 꾸준하게 시청하고 있다는 뜻이다.

SBS <신의 선물> 역시 지나치게 꼬아 놓은 설정과 개연성을 잃어가고 있는 스토리 진행 때문에 초반에 비해 피로감이 몇 배는 증가하는 듯하다. 무겁고 암울하며 음산한 분위기는 좀처럼 걷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시청률 2위 자리는 굳건하다. 고정 시청자들을 확보한 덕분이다.

대중의 심리에는 묘한 구석이 있다. 논란이 되는 드라마를 호기심으로 시청하는 심리 말이다. 막장드라마로 불리는 드라마를 마지막 회까지 지켜보는 것이 그러하고, 짜증과 조소와 원성이 가득한 작품을 흥분된 상태에서 끝까지 노려보는 것이 그러하다. 중독 현상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대중들은 작품성 좋은 드라마보다는 무언가 떠들썩한 드라마를 먼저 선택하는 편이다. 말로는 작품성이 우선이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말이다.

 KBS 2TV <태양은 가득히> 정세로(윤계상 분).

KBS 2TV <태양은 가득히> 정세로(윤계상 분). ⓒ kbs


작품의 질적인 면으로 봤을 때, <태양은 가득히>는 <기황후>나 <신의 선물>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 다만 대중들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 초반에 교태를 부리지 않은 어리석음이 흠이라면 흠일 게다. 씁쓸한 종영이라는 수식어를 달아야 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 된 것이 애석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 속에서 가능성이라는 숨겨진 보석이 발견되기도 했다.

<태양은 가득히>를 집필한 허성혜 작가는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을 집필하기도 했다. 개봉 당시 스토리 면에서 반향을 일으켰고 꽤 만족스러운 흥행 성적을 거두기도 한 작품이다. 몇 편의 단막극을 거친 후 처음으로 미니시리즈 집필을 맡은 것이 이번 <태양은 가득히>다.

<태양은 가득히>에서 돋보였던 것은 배우들의 대사였다. 사건 정황이나 심리 묘사를 길지 않은 몇 줄로 함축시켜 놨다. 그 표현법이 무척이나 세련되고 정갈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순간 지금은 스타작가로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노희경 작가가 언뜻 떠올랐다. 그녀의 필력과 흡사한 면면들이 대사를 통해 묻어 나온 듯해서 말이다.

노희경 작가의 필모그래피에도 애국가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이 있다. 2000년 방송됐던 배종옥, 이재룡 주연의 <바보 같은 사랑>이다. 이 작품은 당시 2%에도 못 미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비운의 드라마가 됐다. 지금보다는 평균 시청률이 높았던 당시를 생각하면 이는 매우 심각한 성적이 아닐 수 없다.

허성혜 작가는 <태양은 가득히>를 노희경 작가의 <바보 같은 사랑>처럼 여겨도 될 듯싶다. 비록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그 작품을 발판으로 삼아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결국 <그 겨울 바람이 분다>와 같은 명품 드라마를 집필해낸 그녀의 이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실패의 순간이 있기 마련이듯, 작가에게 실패작은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약일 수도 있다.

<태양은 가득히>를 통해 허성혜 작가의 가능성이 발견됐다. 아직은 숨은 원석과도 같은 존재이지만 충분한 시간을 들여 정교한 세공력으로 다듬는다면 언젠가는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보석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막장보다 작품성에 의존하는 대중들의 성향이 조금만 더 받쳐준다면 명품드라마들의 라인업으로 월화극 판도가 재구성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테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기자의 개인블로그(DUAI의 연예토픽),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태양은가득히 한지혜 윤계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