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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후 그들은 전자인식과 음주측정기를 통과해야 일할 수 있었습니다.
▲ 출근하는 건설 노동자 사고 후 그들은 전자인식과 음주측정기를 통과해야 일할 수 있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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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파트 건설 현장에 일당 8만 원 받고 다닌 지 2개월이 되어갑니다. 처음 다니던 때와 지금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처음엔 출퇴근을 해도 무방했었습니다만 일주일 전부터 숙소에 들어가 출퇴근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몇 주 전 공사 현장에서 인부 한 명이 트럭에 치여 숨을 거두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우리가 일하는 공사 현장에서 가까운 건설 현장에서 또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높은 곳에서 작업하다 발을 헛디뎌 떨어져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원청사가 안전 작업을 해야한다며 그동안 해오던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작업 일보만 주면 출근으로 인정하던 방식을 작업 일보와 회의록을 제출해야 하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출근했다가 하루는 원청사에서 우리 업체 작업자들에게 작업 금지령을 내렸습니다. 새벽 밥 먹고 일당 벌러간 우리는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알고보니 우리업체에서 잘못하고 있었습니다. 개인 기업이고 2차 하청업체다보니 기업의 체계가 전혀 없는 업체였습니다. 원청사에서 누누히 시정 사항을 이야기 했었는데도 작업자에겐 전달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오후에 소장급 회의에 들어가야함에도 일이 바쁘고 사람 없다는 핑계로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우리는 현장에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업자가 원청사 사무실 찾아가 사정을 한 후에야 다시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자네 안 되겠어. 숙소 들어가. 앞으로 체조 참석 안 하면 큰일나. 숙소가서 자고 아침에 같이 출근해. 체조해."

저는 체조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참석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습니다. 아침 6시 30분에서 40분경 일터로 가는 대중교통이 도착합니다. 건설현장까지는 30분 정도 걸립니다. 아무리 급하게 가도 7시 10분 정도나 되어서야 공사현장에 도착하게 됩니다.

원청사는 작업 일보에 올라오는 인원보다 체조 참석자가 적자, 업자에게 주의를 준 거 같습니다. 업자는 저에게 명령하다시피 말했습니다. 가족 생계를 위해 벌어야만 하는 저는 그러고 싶지 않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저는 퇴근하면서 짐싸들고 숙소를 찾아 갔습니다.

생소한 건설 공사현장

아침에 일어나 저는 트럭 운전을 했습니다. 모두 중국 교포분들이라 운전할 사람이 없어서 저도 아직 서툰 운전을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아침 5시경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고 숙소 옆에 있는 식당까지 6시 10분경까진 가야만 합니다.

아침 식사 후 40분까진 공사 현장에 도착해야 합니다. 그동안은 출근하면 그냥 큰 문으로 현장에 들어갔으나 그날 아침부턴 출근 방식도 달라져 있었습니다. 트럭이 다닐수 있는 정문은 닫혀 있었습니다. 옆으로 작은 통로가 있었습니다. 그리로 사람들이 줄줄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저도 따라 들어갔습니다. 주민번호를 치고 손등을 기계에 대니 전자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본인 확인이 인증되었습니다. 들어가도 좋습니다"라는 여자 음성을 들으며 들어가니 서울서 전철탈 때와 똑같은 출구를 밀고 들어갔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원청 건설사 직원들이 여럿이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서 작은 기구를 입에 대고 있었습니다. 제 차례가 오자 저에게도 차례가 왔습니다. 그 기구는 다름 아니라 음주측정기였습니다. 후 하고 부니 삐 하고 소리가 났습니다. 원청사 직원은 들어가라 했습니다.

우리는 체조를 하기 위해 지하로 들어갔습니다. 지하는 주차장으로 쓰일 예정으로 아파트 10여 동 넒이 만큼이나 넒은 공터가 있었습니다. 체조와 조회 장소라는 간판이 있었습니다. 어디서 지내다 오는지 대충 인원을 헤아려 봐도 500여 명은 되어 보였습니다.

간간이 여성 노동자도 보였습니다. 한국 사람은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90% 이상이 외국인으로 보였습니다. 1980년대 학교에서 줄기차게 하던 국민체조 음악을 틀어 놓고 체조를 했습니다. 국민체조가 끝나자 다시 목 돌리기,어깨 돌리기, 허리 돌리기, 팔다리 돌리기 같은 운동을 시켰습니다.

체조가 끝나자 오늘 할 중요한 사항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이어 중국말로 쏼라쏼라 했습니다. 그만큼 중국 언어가 통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장 곳곳을 다녀보니 한국말과 중국 한자어가 같이 쓰여 있는 간판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작업자는 체조와 조회가 끝난 후 현장 곳곳으로 흩어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점심때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낮 12시 50분부터 체조를 시작해 제대로 쉬지도 못하니 일하는 사람들이 불만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일하는 사람들이 "아침엔 체조를 해도 점심 땐 안해도 되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아무도 원청사에 그런 말을 하지는 않고 있었습니다.

저는 집에서 다니다 숙소로 들어가니 할 일이 더 생겼습니다. 운전수 노릇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기업체에서 운전을 하면 운전수당 같은 게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일용직 건설 노동자라 그런 수당 자체가 없습니다.

요즘 건설현장에 저처럼 잡부 노릇하는 노동자는 일당 8만 원 주더군요. 그 일당은 잡부나 기술직이나 같은 거 같습니다. 우리업체는 환기구 다는 일을 하는데 더러 힘든 일도 있습니다. 그런 일을 고정적으로 하는 노동자에겐 일당을 높여 수고비를 더 주어야 할 거 같은데 업자는 그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중국 교포는 불만이 많습니다. 한 젊은 중국 교포는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처럼 총쏘는 사람, 다른 지역가면 13만 원 준답니다. 그런데 우리 업체는 8만 원 주지 않습니까. 보조일 하는 사람이나 우리처럼 기술을 요하는 사람이나 일당이 같으면 누가 그 돈 받고 일하겠습니까? 몇 개월 전엔 임금도 절반만 주지 않았겠습니까? 이래서 이거 일 할 맛나겠습니까? 중국에서 왔다고 사람 차별하는 겁니까? 우린 밀린 임금 받고 일당 더 안 올려주면 조만간 다른 곳으로 갈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야 뭐 어디가거나 돈벌러 왔젠습니까."

현재 우리 업체는 중국 교포분들이 핵심적인 일을 주도해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빠지면 작업 자체가 이어지지 않을 것 입니다. 경험해 보니 우리 업체 중국 교포 분들은 모두 착한 분들이었습니다. 모두 책임감도 있고, 성실했습니다.


태그:#아파트 공사현장, #건설 현장, #노가다, #일용직, #건설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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