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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ㆍ해직 언론인들이 KBS 본관 앞에서 모여 현직 언론인들의 행동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원로ㆍ해직 언론인들이 KBS 본관 앞에서 모여 현직 언론인들의 행동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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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대참사로 국민 모두가 유족이 돼 함께 슬퍼하고 분노하고 있다. '세월호'는 우리 사회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드러냈지만, 그중에서 한국 언론의 참담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이런 상황에서 원로 언론인들과 해직 언론인들이 현직 언론인들에게 "정론직필의 참언론을 만들어 달라"는 호소문을 전달하고, KBS·MBC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80년해직언론인협의회·언론광장·새언론포럼·방송독립포럼 등 원로 언론인과 YTN·MBC 해직 언론인들은 함께 나섰다. 이들은 16일 오후 2시 KBS 본관 앞에서 호소문을 통해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 때문에 겪고 있는 고통스런 현실을 진실 되게 보도하지 않는 언론은 그 자체가 폭력의 도구"라면서 "언론인들이 온갖 역경 속에서 좌절과 무기력에 빠져 있던 날들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이제 자유언론·공정방송 건설을 위해 하나가 돼 떨쳐 일어나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사고 현장에서 희생자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이 가장 통탄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무정부적 대응'과 그것을 비호하는 언론의 보도 행태"라면서 "특히 '공영방송'인 KBS 기자들은 '기레기'(기자와 쓰레기를 합쳐 부르는 표현)라는 모욕을 받으면서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라고 말했다.

해직 언론인이 후배 언론인에게 전하는 호소문

KBS 본관 앞에 걸린 항의 현수막들
 KBS 본관 앞에 걸린 항의 현수막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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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직언론인인 MBC 이용마 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호소문 전달식 겸 기자회견은 언론 상황에 대한 규탄과 후배언론인에 대한 호소로 이어졌다.

김중배 언론광장 공동대표는 "이제는 행동을 해야 할 때"라고 강하게 호소했다. 김종철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1974년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 선언을 했던 그날로 돌아가자, 선후배가 하나가 되자"라고 간곡하지만 엄중한 꾸짖음을 내렸다. 또 "청와대가 보도국장을 내부반 전령 임명장 주듯이 하는 구조는 이제 끝내야 한다"라면서 "낙하산 사장이 오지 못하게 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신홍범 전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장은 "언론은 이미 자본과 권력에 동일체가 돼 거대한 권력이 돼 버렸다, 대통령을 만들기도 하고 집권당을 갈아치우기도 한다, 그러기에 집권세력의 위기를 자신의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라면서 "정치권과 한 몸이 돼 있는 언론을 이제 떼어내야 한다, KBS·MBC 기자들이여, 죽어있는 언론을 되세우기 위해 일어나자, 공정보도 앞에 사즉생의 각오로 싸우자"라고 호소했다.

"국민들은 공정보도 위해 싸우는 당신을 구해줄 것"

원로ㆍ해직 언론인들이 현직 언론인들에게 호소문을 전달하고 있다.
 원로ㆍ해직 언론인들이 현직 언론인들에게 호소문을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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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고승우 공동대표는 "총체적 모순이다, 세월호 살인사건에 언론은 책임이 없는가"라면서 "초기에 제대로 보도했다면, 그리고 정부 대응을 제대로 비판했다면 단 한 명이라도 더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규탄했다.

언론소비자주권연대국민캠페인 최용익 대표는 "여러 가지 이유와 조건들이야 있겠지만, 지금의 상태라면 KBS·MBC의 대다수 언론인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냐"라면서 "여러분이 KBS·MBC 기자·피디를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느냐, 국민들로부터 조롱과 비판이 아니냐, 그렇게 비굴하게 눈치 보면서 언론인 생활을 영위하려는가"라고 꼬집었다. 이어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 싸우겠는가, 국민들은 공정보도를 위해 싸우는 당신들을 구해줄 것"이라고 후배 언론인들을 독려했다.

2012년 170일 파업으로 해고된 이후 대법원에서까지 징계무효 판결을 받았으나 복직하지 못하고 있는 MBC 정영하 전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도 이날 호소문 전달에 함께했다.

그는 "또다시 일손을 놓고 밖으로 나오게 만드는 상황이 안타깝다, 살기 위해 나선 것이다"라면서 "현장의 피디·기자·언론노동자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겠는가, 몸과 마음이 피투성이가 돼 있을 것이다"라고 현 KBS·MBC의 양심적 언론인의 마음을 살폈다. 그러면서 그는 "세월호에서 구조 않고 도망간 사람들이나 그 뒤에 있는 세력들, 그리고 무능한 정권의 관료들,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 이런 사실들을 정확히 전달하지 못하는 언론, 다 책임이 있다"라면서 "성난 민심 앞에 제대로 된 자성과 반성을 하지 않으면 공영방송의 미래가 없다"라고 호소했다.

한편, 권오훈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위원장은 호소문을 전달받은 후배 언론인으로서 반성과 다짐을 밝혔다. 권 위원장은 "길 사장 퇴진을 위해 천막을 쳤고, 신임투표를 진행 중이다"라면서 "총파업 준비를 하고 있지만 이것은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길환영 사장 퇴진은 시작일 뿐이다, 반드시 청와대에 공영방송을 헌납한 길 사장을 퇴진시키고, 공영방송을 국민을 위한 방송으로 돌려놓겠다"라고 말했다. KBS 함철 새노조 부위원장도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신다면 나아진 KBS로 만들어내겠다"라고 다짐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원로ㆍ해직 언론인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기자회견을 마친 후 원로ㆍ해직 언론인들이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 박병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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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하고, 행동합시다
[전문] 현직 언론인들에게 보내는 호소문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가 침몰하는 참사가 일어난 지 오늘로 꼭 한 달입니다. 정부가 발표한 실종자 304명 가운데 20명이 아직도 차가운 바다 속에서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1948년 8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단일한 사고로 그렇게 많은 고등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들과 같은 배를 타고 가던 이름 없는 시민들의 죽음과 실종도 잊어서는 안 될 일입니다.

한국사회는 지금 '국상' 중입니다. 봉건왕조 시대에 임금이 죽었을 때 치르던 국상이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책무를 지닌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의 무능과 독선 때문에 참혹하게 희생당한 주권자들의 영정 앞에서 통곡하며 치르는 장례입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뒤 사고 현장에서 희생자 유족과 실종자 가족들이 가장 통탄한 것은 박근혜 정부의 '무정부적 대응'과 그것을 비호하는 언론의 보도 행태였습니다. 특히 '공영방송'인 KBS 기자들은 '기레기'(기자 쓰레기)라는 모욕을 받으면서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지난 5월 7일 KBS의 젊은 기자 40여 명이 발표한 '반성문'은 눈물로 쓴 글입니다. '반성'에 참여한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우리 뉴스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건가요? 이 나라는 대통령은 없고 물병 맞고 쫓겨나는 총리, 부패하고 무능한 총리, 구원파만 있는 건가요? 대통령은 찬사와 박수만 받아야 하고 책임은 없는 건가요? 정권을 감시하고 비판해야 하는 언론은 어디로 간 겁니까? 왜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않는 건가요?"

MBC 보도국의 젊은 기자 121명이 지난 12일 오전에 발표한 '참담하고 부끄럽다'라는 제목의 '양심선언'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신뢰할 수 없는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쓰기' 한 결과, '학생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냈는가 하면, '구조 인력 7백명' '함정 239척' '최대 투입' 등 실제 수색 상황과는 동떨어진 보도를 습관처럼 이어갔다. 실종자 가족에게 더 큰 고통을 준 것은 물론, 국민들에겐 큰 혼란과 불신을 안겨줬으며, 긴급한 구조 상황에서 혼선을 일으키는 데도 일조했다."

5월 13일 18개 MBC 계열사 기자모임인 '전국 MBC 기자회'가 세월호 참사 보도에 대한 반성문 성격의 성명을 낸 뒤 한 기자가 한 말은 오늘 그 '공영방송'이 서 있는 자리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역설적이게도 세월호 침몰 사고 보도 이후 KBS에는 항의도 오고 분노 표출도 있지만, MBC에는 항의도 없고 손가락질도 없다. 아예 기대도 관심도 없는 것이며 언론사로서의 신뢰가 무너져가고 있다."

우리는 무고하게 죽음을 당한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유족, 그리고 생사는커녕 시신조차 확인되지 않아 진도체육관에서 한 달 동안이나 비통한 나날을 보내온 실종자 가족들 앞에 무릎을 꿇고 언론이 저지른 직무유기와 권력에 대한 비굴한 복종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를 드립니다.

우리가 현업에 있던 때 언론사의 사유화와 권력에 대한 예속화를 막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확고하게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후배 언론인들이 저런 굴욕과 모욕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미 KBS에서는 길환영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언론노동자들의 천막 농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가 물러나지 않으면 방송 제작을 거부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KBS 사장은 물론이고 이번 세월호 참사 보도를 둘러싸고 가장 후안무치한 행태를 보인 MBC 사장도 마땅히 사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는 KBS 사장, 여당이 지배하는 방송문화진흥회와 대통령이 실질적으로 운영권을 쥐고 있는 정수장학재단이 '선출'하는 MBC 사장이 물러난다고 해서 두 방송이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그 후임으로 '낙하산 사장'이 다시 임명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임명하거나 실질적으로 지명하는 공영방송 사장 선출 제도를 혁파하지 않는다면 그런 사장들이 임명하는 보도본부장, 보도국장은 이번에 드러났듯이 '청와대의 나팔수' '대통령의 언론 친위대' 구실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런 문제를 모를 리 없는 제1야당은 진보적 언론단체들과 협력해서 공영방송의 '중립화'를 위한 법을 제정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관영화한 방송' 중심으로 한국 언론의 참담한 현실을 아파하는 이 순간, 속으로 웃고 있는 언론사 경영주들과 언론인들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대표하는 보수언론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과 실종자 가족들이 주로 KBS 경영진과 보도부문 간부들에게 퍼붓는 비판을 보면서 '우리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여기고 있는 듯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주류 신문'이라고 자처하는 조·중·동은 이번 세월호 참사에서 KBS나 MBC보다 훨씬 더 교활하고 '교묘하게'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감싸고,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에 박수를 보내는 보도와 논평을 계속했습니다. 그들은 실종자 '구조'가 신속히 이루어지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나라 안팎에서 "무능하고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받는 대통령을 '구조'하는 데 앞장을 섰습니다.

우리는 보수언론의 이 파렴치한 작태를 보면서 박정희 유신독재시대인 1974년 10월 24일 동아일보사 기자들이 발표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상기합니다. 살벌하고 엄혹한 시절에 박정희가 긴급조치로 언론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린 상황에서 나온 그 선언은 민중의 반독재투쟁에 불을 댕기는 획기적 동인이 되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언론노동자들이 '제2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해야 할 때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1980년 5월 전두환이 이끄는 '신군부'가 광주 항쟁을 총칼로 억누르면서 시민들을 학살하던 때 전국의 여러 언론사에서 '진상 보도'를 요구하며 과감하게 검열 및 제작을 거부하던 언론인 수백여 명이 강제해직을 당했습니다. 오늘 이 호소문을 함께 발표하는 언론인들 가운데는 그런 투쟁의 뒤를 이어가다가 이명박 정권 시기에 해직당한 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가 언론계에 가한 충격을 계기로 다음과 같이 결의를 다지려고 합니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 때문에 겪고 있는 고통스런 현실을 진실 되게 보도하지 않는 언론은 그 자체가 폭력의 도구이다. 공익에 봉사해야 할 언론매체를 사유화하면서 권력에 빌붙어 사익만을 추구하는 언론은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하루속히 거세해야 한다."

우리는 언론노동자들에게 간곡히 호소합니다. 2012년의 언론대투쟁 이래 온갖 역경 속에서 좌절과 무기력에 빠져 있던 날들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이제 자유언론, 공정방송 건설을 위해 하나가 되어 떨쳐 일어나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의 고뇌와 아픔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우리는 그 길을 기꺼이 함께 가겠습니다.

언론노동자 여러분! 사랑하는 후배 여러분! 노동자의 힘은 굳센 단결과 동지애에서 솟아납니다. 지금은 여러분이 소속 회사를 가릴 것 없이 전국적으로 하나가 되어 자유언론과 공정방송을 이루기 위해 어깨동무하고 나서야 할 때입니다. 그것은 나라를 민주화하고 민족공동체의 평화적 공존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적 과업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 때문에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줄 진정한 민주정부의 출현을 열망하는 대중과 함께 우리 모두 손을 굳게 잡고 나아갑시다.

2014년 5월 16일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 김동현 김양래 김유주 김종철 김창수 김태진 문영희
박노성 박종만 성유보 송재원 송준오 신정자 신해명 양한수 오봉환 오정환 윤석봉
윤활식 이기중 이명순 이문양 이부영 이영록 이종대 이종덕 이종욱 임부섭 임학권
정동익 정연주 조강래 조양진 한현수 허 육 홍명진 황의방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 신홍범 성한표 최정학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 정남기 윤후상 유숙렬 고승우(합동통신) 현이섭 홍순권 백맹종(현대경제) 이원섭(조선) 손정연(전남매일) 윤덕한(경향) 박동녕 최성민 이희찬(KBS) 노향기(한국) 정상모(MBC)
언론광장 / 김중배 장행훈 김학천 김광원(동아) 김영호 김주언(한국) 박인규(경향)
장재열(중앙) 김철수(KBS) 김현수(한겨레) 백병규(미디어오늘) 임정훈(EBS)
엄주웅(방통심의위원회)
새언론포럼 / 조성호 박래부 신학림(한국) 권영길 최홍운 정운현(서울) 이광호(레디앙) 박강호(출판) 김기담 마권수 전영일 현상윤(KBS) 손문상(프레시안) 박영규(연합뉴스)
강기석 강병국(경향) 옥시찬 김평호 최용익 이완기 안성일(MBC)
방송독립포럼 / 박동영 최성민(KBS)
YTN 해직자 / 우장균 노종면 현덕수 조승호 권석재 정유신
MBC 해직자 / 박성제 최승호 이채훈 정영하 박성호 강기웅 이용마 이상호



태그:#KBS, #MBC, #길환영 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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