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종영한 드라마 <개과천선>

지난 26일 종영한 드라마 <개과천선> ⓒ mbc 누리집 갈무리


지난 26일 <개과천선>이 종영했다. 이 드라마의 종영과 함께 상반기 드라마의 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던 이른바 '장르물'의 약진도 함께 마무리 된 듯하다. SBS <너희들은 포위됐다>가 방영 중이지만 이건 장르물이기보다는 신참 형사들의 성장기와 멜로에 초점이 맞춰진 양상이다. 타 방송사의 후속드라마 역시 <트로트의 연인>(KBS) <운명처럼 널 사랑해>(MBC) 등으로 약속이나 한듯 사랑 이야기들이 대부분 포진했다.

시청률로만 설명할 수 없는 작품성...현재를 말하다

돌아보면 동시간대에 서로 시청률을 벌이며 장르물들이 파이를 나눠가지던 2014년 상반기와 같은 때가 있었던가 싶다. 덕분에 장르물에 목말라 했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축제와도 같은 시간이었지만 그 외의 시청자들에게는 장르물의 대중성 자체를 폄하하게 만드는 계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올 상반기 장르물들의 등장은 표절 논란을 불사하고 개연성은 무시한 채 한류 인기에 편승했던 우리나라 드라마 흐름에서는 긍정적일 것이다. 지난 3월 방영된 <쓰리데이즈>는 대통령의 본분을 강조하고 사라진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 가는 모습으로 정의의 문제를 들고 나왔다. 단순히 피상적인 정의가 아니라 정의는 곧 지금 당신이 살아가는 대한민국과 당신의 직업, 일의 문제라고 말한다. 밥을 벌어먹기 위한 호구지책이 아닌 당신의 선택에 따라 나라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면서 말이다.

<쓰리데이즈>에서 돋보인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강직한 모습뿐만 아니라, 주인공 한태경(박유천 분)을 비롯한 그저 대통령을 지키는 일개 경호관일 뿐이었던 '갑남을녀'들의 사명감 넘치는 헌신이었다. 드라마가 직업적 사명감과 정의를 논하던 시기에 공교롭게도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고, 드라마가 제기한 문제는 현실의 가장 절박한 문제가 되어 큰 공감을 자아냈다.

이렇게 2014년 상반기의 장르물들은 막연한 가상이 아니라 우리가 바로 전에 겪었거나 지금 부딪히고 있는 현실의 사건을 길어 올렸다. 세월호 사건을 두고 회자됐던 음모론들은 <쓰리데이즈>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전혀 낯설지 않다.

<빅맨>을 보면 재벌 기업이 자신의 상권을 위해 시장 바닥에 목숨을 건 상인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과정과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 이야기가 등장했다. <골든크로스>는 상위 1%가 벌이는 은행 합병과 침탈을 그렸으며, <개과천선>은 재벌 그룹의 경영권 싸움과 해외 비자금을 이용한 부당 파산 선고 등을 그렸다.

 <빅맨> 포스터

<빅맨> 포스터 ⓒ KBS

이렇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사건들을 드라마를 통해 불러들인 상반기 장르물이 바라본 대한민국 사회는 어땠을까? 이전의 장르물들이 드라마의 극적 모순 고리를 억압적인 사회와 국체 체제로 바라본 것과 달리 올 상반기 장르물들은 부도덕한 자본의 자기 증식 과정에 짓밟힌 사회라고 우리나라를 바라봤다.

즉, 고도 성장기였던 1980,90 년대 대한민국의 구조적 모순이 자본의 성장을 강조하는 억압적 형태의 국가 자본주의였다면, 2014년의 대한민국은 국가조차도 자본에 복무하는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극대화된 사회라고 드라마는 본 것이다.

앞서 소개한 작품과는 약간 궤를 달리한 <갑동이>는 10여 년 전에 일어난 연쇄 살인 사건을 현재로 끌어온다. 하지만 과거의 연쇄 살인범과 그를 흠모하는 현재의 카피캣을 '사이코 패스'로 설정하고 그들의 심리를 그려내는데 천착했던 이 드라마는 살인을 일삼는 <쓰리데이즈>의 김도진과, <빅맨>의 강동석 등 여타 장르물의 악인들과 연결된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광경을 목격하고도 수습을 먼저 고려하는 <개과천선>의 차영우(김상중 분)나 불리한 위치에 놓이면 '멸사봉공'을 부르짖다가도 돌아서서 비열한 웃음을 흘리는  <골든크로스>의 서동하(정보석 분)의 성정도 그리 달라 보이지 않는다. 각종 장르물에서 종횡무진 활약한 '사이코패스'들은 엄밀히 뇌의 이상에서 비롯된 정신 병리학적 증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의식과 타인 공감 능력의 부재한 '소시오패스'에 가깝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만연한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의식이 이런 악인들을 양산했다는 걸 드라마들이 공들여 설명하고 있다.

단순한 재미 넘어 의미와 위로 전한 주역들

 KBS 2TV <빅맨>의 강지환, MBC <개과천선>의 김명민, KBS 2TV <골든크로스>의 김강우(왼쪽부터)

KBS 2TV <빅맨>의 강지환, MBC <개과천선>의 김명민, KBS 2TV <골든크로스>의 김강우(왼쪽부터) ⓒ KBS, MBC


드라마는 대체적으로 두 가지의 방향을 취한다. <쓰리데이즈>의 이동휘(손현주 분)나 <개과천선>의 김석주(김명민 분)처럼 자본의 '개'가 되어 살아가던 자신을 반성하며 자신의 과오를 바로잡으려 하는 게 첫 번째고, <쓰리데이즈>의 한태경(박유천 분), <빅맨>의 김지혁(강지환 분), <골든크로스>의 강도윤(김강우 분), <갑동이>의 하무염(윤상현 분)처럼 자신과 가족들의 복수에서 행동의 동기를 가진다는 게 두 번째다.

자기반성이나 복수에서 시작된 주인공들의 소극적 동기는 극이 진행되면서 그들이 마주한 거대한 음모를 경험하며 각성과 자각을 거쳐 대승적 자아의 실현으로 귀결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해명하려 했던 한태경은 대통령을 지키는 일에 나서게 됐고, 동생과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던 강도윤은 대한민국을 상위 1%로의 경제 커넥션 골든크로스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친다. 일개 시장판 일용직에 불과했던 김지혁은 거대 기업의 오너가 되어 상생 경영의 새 장을 연다.

보다 전문적으로 우리 사회 현실을 해부하기 위해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피치 못하게 전문직 종사자가 되어 등장한다. 거대 로펌의 실체를 폭로하기 위해 <개과천선>은 바로 그 핵심에 서서 비자금을 관리하던 변호사를 주인공으로 삼았고, 대통령의 암살을 다룬 <쓰리데이즈>는 상위 1%의 청와대 경호관을 등장시켰다. <골든 크로스> 역시 우리나라를 주무르는 경제 커넥션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검사보와, 외국계 펀드 매니저가 극을 이끈다. <빅맨>으로 가면 한 술 더 뜬다. 시장 바닥 양아치 같던 주인공은 하루아침에 대기업 회장의 숨겨진 아들로 둔갑하는가 싶더니, 유통 그룹의 오너를 거쳐 에너지 계열사까지 거느린 회장이 되어야 했다. <갑동이>에서 연쇄 살인 사건의 해결을 형사가 맡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들이 지향하는 해결책은 이상적이었다. <쓰리데이즈>의 대통령은 스스로 과거사를 밝히고 그 과거의 최종 책임자인 재벌, 외국 자본에 대항하며 책임을 지고 하야를 결정했다. <빅맨>과 <개과천선> <골든크로스>에서 노동자들은 당당히 주인이 되어 기업의 경영에 한 몫을 차지했다. 물론 그런 이상만이 있는 건 아니다. <개과천선>의 마지막 부분에서 여전히 거대 로펌의 그림자는 드리워져 있었고, 감옥을 나온 <골든크로스>의 서동하는 다시 시작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2014년의 장르물들은 한태경, 김지혁, 김석주, 강도윤, 하무염 등의 인물들을 정의롭고 고지식하게 그려냄으로써 사회적 갈등이 극대화된 우리 현실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만이 희망'이란 진리로 귀결시켰다. 물론 키스신과 사랑 이야기도 있었지만 여타 다른 드라마들이 쉽게 추구했던 웃음기와 개인기 등을 마다한 채 전하고자 하는 바를 무뚝뚝하게 전달했다.

덕분에 다른 드라마들보다 낮은 시청률로 비교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살기 퍽퍽했던 2014년의 상반기에 이들 드라마들이 전해주었던 진실과 위로는 그 어떤 드라마의 높은 시청률로 대체할 수가 없다. 덕분에 드라마를 멀리했던 젊은 층이 관심을 갖기도 했고, 뻔한 한류 드라마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 것이다. 부디 이후에도 현실의 고통을 망각하거나 판타지를 전하는 게 아는 진심으로 위로를 전하는 장르물이 계속 나오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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