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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 면담후 결정' 이란 문구가 많이 눈에 보인다.
▲ 무료 정보지 '급여 면담후 결정' 이란 문구가 많이 눈에 보인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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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여 면담 후 결정'

당장 가족 생계가 문제였습니다. 가장인 제가 어디라도 뚫고 들어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일자리를 쉽게 찾으려면 지역 정보지를 들여다봐야 합니다. 지역 정보지는 무료로 배포되고 거기엔 구인, 구직이 차고 넘쳤습니다. 한 달 전에도 일자리 해결책으로 정보지를 보았습니다. '급여 면담 후 결정'이란 문구가 유난히도 많아 눈에 거슬렸습니다. 그나마 중소기업 일자리는 출퇴근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십대인 저에겐 더욱 취업 기회가 적습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개인 업소에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부분 개인 영업소나 사업소에서 직원 모집 구인광고를 낼 때 '급여 면담 후 결정' 이란 낱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종업원 사용하는 조건이 어떻길래 면담 후 결정 할까?'하며 찾아간 곳은 어느 목재 영업소였습니다. 인테리어 내부공사용 목재와 자재를 판매하는 곳이었습니다.

"우리는 많이 못줍니다. 월 160만 원에 명절날 떡값으로 좀 줍니다. 4대 보험 들어주고 운전자 보험도 들어 줍니다."

배달기사 직원 모집을 보고  찾아간 곳 업자 대답이 그랬습니다. 업자는 나이가 많아 보였습니다. 귀도 잘 안 들리는지 대답한 걸 또 되묻곤 하였습니다. 저는 당장 가정 경제에 적게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일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식당이나 개인 주택 내부 수리를 할 때 합판 등 목재 자재를 배달처로 갖다주고 송장에 서명을 받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자재를 싣고 내리는 게 힘들었습니다. 대부분 나무로 된 자재는 무게가 많이 나갔습니다. 그것을 수십 번씩 들어 올렸다, 들어 내렸다 하니 땀이 줄줄 흘렀습니다. 운전도 골목골목 다니려니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두 분 사무실 와서 음식 좀 먹고 하시지."

어느날 업자는 퇴근시간이 한 시간이나 지나도록 일한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10여년 경력의 부장님과 제가 같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웬일인가 하고 사무실 들어가 앉으니 냉장고에서 돼지 수육과 시루떡을 내놓았습니다. 젖가락으로 집으니 떡은 말라 있었고, 돼지수육의 냄새는 역겨웠습니다.

"우리가 거지가. 상한 돼지고기와 말라 비틀어진 떡을 먹으라니. 뭐 저런 노랭이 영감이 다 있노."

우린 꺼내 놓은 음식을 그대로 두고 퇴근 준비를 하였습니다. 업자는 오후 6시 퇴근시간을 넘겨 일하니 미안해서 그랬겠지만 오히려 업자에 대한 불신만 쌓였습니다. 5년 동안 업자를 겪어온 부장님은 "이제 정떨어져 여기 있기도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60이니 어디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억지로 붙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인상은 참 좋아 보였는데 역시나 사람은 겪어 보아야 아는가 봅니다.

업자가 종업원에게 점심을 제공해 주는 건 근로기준법에도 나와 있는 기본 의무 사항입니다. 작년에 부장님은 밥 값을 달라 해서 다른 곳에 가서 밥을 먹고 온다고 하니 세금계산서 끊어 오라 했다고 합니다. 그후부터 그동안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던 업자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두분 사무실로 오세요. 오늘은 특식을 준비 했어요."

저와 부장님은 또, 웬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무실로 들어가 보니 비행기 안에서 준다는 전주식 비빔밥이 놓여 있었습니다. 업자가 얼렁 먹으라기에 우리는 영문도 모른채 밥을 비벼 먹었습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분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분은 건강음료 판매하는 영업사원이었습니다. 우리는 별로 맛도 없는 비빔밥 한 그릇 얻어 먹고는, 쉬어야 할 점심시간 내내 별 관심도 없는 흔해 빠진 건강음료에 대한 선전 연설을 들어야 했습니다. 저도 차츰 업자에 대한 신뢰에 금이가기 시작 했습니다.

"무더운데 창고안에 선풍기 하나 넣어주면 얼마나 좋겠노. 선풍기 넣어 달랬더니 뭐라는 줄 아나? 사무실 시원하니 일 없으면 와서 앉아 있으란다. 처음엔 앉아 있어 봤제. 눈치 보여서 못 앉아 있겠더라. 손님이 찾아와 이야기 나누는데 거 뻘쭘허니 옆에 앉아 있으려니 영 가시방석 인기라."

부장님은 그후부터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고 창고 안에서 쉰다고 했습니다. 창고 안은 목재 자재가 많고 미세 먼지가 자욱합니다. 의자가 없어서 합판 위에 앉아 쉬곤 했습니다. 반면 업자는, 푹신한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거나 피곤하면 푹신한 쇼파에 누워 쉬기도 했습니다. 날이 무더워지니 나무 자재로 가득한 창고 안은 찜통 같았습니다. 사무실 안은 에어컨이 틀어져 있어 언제나 시원했습니다.

종업원은 미세 먼지 가득한 찜통같은 창고 안에서 쉰다.
▲ 쇼파에서 누워자는 업자 종업원은 미세 먼지 가득한 찜통같은 창고 안에서 쉰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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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하는 일에 비해 월급도 적고 종업원을 거지 취급 하는 거 같아 갈수록 적응하기가 힘들어 졌습니다. 처음엔 부장님을 도와줄 종업원이 새로 들어오면 그만 두려 했었습니다. 한 달 일해보니 혼자 하기엔 많이 힘든 일이었습니다. 무거운 합판은 한장 들기에도 힘에 겨웠습니다. 그런 나무 자재를 차에 한가득 싣고 가서 또 내려 주어야 합니다. 1년 동안 부장님 혼자 일했다고 하니 내성적인 부장님 성격에 '신경성 위장염'을 앓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작업 현장엔 퇴근시간 30여분 전에 작업을 마무리 하고 씻고, 먼지털고 하며 퇴근준비 합니다. 그런데 우리 업자는 마치기 30분전에 "내일 아침 배달할 물품 차에 싣고 퇴근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날이 여러 날. 그런 날은 토요일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토요일이니 오후 4시경 마치면 참 좋겠더만 주 5일제가 시행된 지 몇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 영업소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아침 7시까지 출근하고 오후 6시에 퇴근했습니다.) 같은 월급에 1시간이나 더 일해야 하니 갈수록 불만이 쌓여만 갔습니다. 급기야 저는 한 달이 되어가는 며칠 전에 스스로 사직서를 쓰고 말았습니다.

'저는 성품이 착한 부장님을 봐서라도 다른 종업원이 오기전까지 일하려고 했으나 '적응불가'로 더이상 일하는게 힘들어 7월 12일까지 일하고 그만 두겠습니다.'

7월 12일(토). 저는 마지막 출근을 했습니다. 오전 오후 제 월급보다 비싼 나무 목재를 여러 곳에 배달하고 17시경 영업소에 도착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업자는 월요일 아침 배달할 물품 차에 실어 놓으라 했습니다. 다시, 퇴근시간보다 늦게 일을 마치고 퇴근 준비 하려는데 업자가 불렀습니다.

"한 달 급여는 월요일 계좌이체 해주겠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사고 낸 거 비용이 80만원 들었습니다. 서로 50% 씩 부담해야 합니다. 160만 원 중 40만 원 제하고 120만 원 입금하겠습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지난 6월 27일(금) 오후 3시 45분경 이었습니다. 부장님이 2.5톤 마이티를 창고 앞에 대라고 했습니다. 싣는 자재가 많으면 작은 트럭으로는 물량이 많아 다 싣지 못하므로 2.5톤 마이티 트럭을 사용했습니다. 저는 마이티 시동을 걸고 조심스레 뒤로 후진하는데 갑자가 뭔가 부디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급 부레이크를 밟고 내려가 뒤로 가보니 중년 여성이 몰던 트럭 운전석 앞이 약간 구겨지고 긁혀 있었습니다. 그 여자분은 제가 차를 앞으로 몰고가니 자기도 그 골목으로 가려는 것이라 큰 길에서 골목으로 들어오고 있는데 갑자기 트럭이 뒤로 후진해 오더라 했습니다. 트럭이 커서 바로 뒤에 있는 승용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제가 입사하고 며칠 후 업자는 저에 대해 운전자 보험을 들었었습니다. 업자는 즉시 그날 사고를 보험으로 처리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용을 저에게 50%를 물린다는 것 입니다. 마지막 날까지 업자는 종업원을 실망시켰습니다. 저에게 손해 비용 물릴거면 왜 보험처리 했을까요? 한 달 동안 부장님과 함께 열심히 일해주었는데 업무상 사고를 그것도 보험으로 처리 해 놓고선 저에게 손해 비용을 물리다니 저로선 억울하고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처음 면접 볼 때 업자는 "오래 다녀라"고 하더군요. 업자님... 종업원이 오래 다니도록 하려면 오래 다니게 해주세요. 노동조건에 비해 급여 조건이나 복지 조건이 엉망인데 어떻게 오래 다닐 수 있겠습니까? 부장님은 그곳에서 5년 일하면서 안전화나 작업복 하나 사준 일이 없다고 하더군요. 업자는 외제 승용차를 몰고, 건강을 위해 명품 등산복을 갖추고 주일마다 산행을 가면서 종업원을 위한 일엔 왜 그리 인색 하신가요? 저는 업자에게 카톡으로 "종업원에 대해 신경 좀 쓰시라"며 문자를 날렸습니다.

근무 마지막 날 업자는 날카로운 얼굴을 하고는 저에게 "당신이나 잘 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업자에게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 말 들으니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은 그만 속으로 되뇌이고 말았습니다.

'업자님, 종업원도 존중받고 싶습니다!'


태그:#종업원, #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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