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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김천시 구성면 복호리 어귀에 세워져 있는 <내칙, 내수도문 비>. 최시형은 도피 생활 중 이 마을에 들러 내칙과 내수도문은 지어 발표했다.
 경북 김천시 구성면 복호리 어귀에 세워져 있는 <내칙, 내수도문 비>. 최시형은 도피 생활 중 이 마을에 들러 내칙과 내수도문은 지어 발표했다.
ⓒ 추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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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2대 교주 해월 최시형(1827~1898)은 스승 수운 최제우의 순교 이후 약 34년에 걸친 긴 도피 생활을 한다. 그래서 해월에게는 '최보따리'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늘 동학경전을 품은 채 전국을 돌아다니며 포교에 힘썼기 때문이다.

그런 해월이, 스승 수운이 일찍 다녀간 바 있는 김천을 방문하지 않았을 리 없다. 게다가 김천은 본래부터 교통의 요지로 큰 장이 섰고, 나라 방방골골의 정보가 집합되는 곳이었으며, 동학 교세가 상당한 지역이었다. 해월이 도피 생활과 포교 활동을 겸하던 중인 1890년 11월에 김천 구성면 복호동에 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김천의 동학 세가 강했다는 사실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지역의 농민군들이 한때 선산 관아를 점령했었다는 사실로 증명이 된다. 선산에 주둔해 있는 일본군 부대를 전멸시키는 것을 목표로 그해 9월 22일 김천장을 출발했던 김천동학농민군의 기세는 정말 대단했던 것이다. 하지만 끝내 일본군의 신식무기를 이겨내지 못한 채 대패하고, 10월 5일에는 조선군 관군까지 밀려와 결국 궤멸당하고 만다.
 지방도로에서 복호동으로 들어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
 지방도로에서 복호동으로 들어가는 길이 갈라지는 지점에 세워져 있는 이정표
ⓒ 추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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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구성면 복호리는 해월이 <내칙>과 <내수도문>을 지어 발표한 역사적 장소이다. 제목의 '내'는 물론 여성을 뜻한다. 즉 <내칙>은 태교에 관한 내용이고, <내수도문>은 여성 중심의 가정생활 지침서에 해당된다.

그래서 1990년 대한천도교여성회는 <내칙>과 <내수도문>이 발표된 100주년을 기려 복호동 어귀에 기념비를 세운다. 비의 이름은 <내칙, 내수도문 비>로, 꼼꼼하게 읽는 답사자들은 그 비를 읽는 것만으로도 <내칙>과 <내수도문>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내칙>과 <내수도문>은 어린이와 여성을 존중하는 평등 사상이 짙게 배어있는 내용이다. 이는 뒷날 천도교가 어린이 운동을 시작한 배경 사상이 되었고, 마침내 방정환에 의해 '어린이날'이 만들어지는 성과를 낳았다.

<내칙, 내수도문>이 세워져 있는 장소가 절묘하다. 비 뒤로는 작지만 우렁찬 폭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쏟아진다. 비 옆에서 서서 기념 촬영하는데, 마치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온몸을 휩싸고 돈다. "어린 자식 치지 말고 울리지 마옵소서"라고 가르치신 해월 선생의 말씀이 폭포처럼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듯하다.

복호리 안으로 들어섰을 때 특별히 아쉬운 점은 마을 안에서 해월의 구체적 유적을 찾을 길이 없다는 점이다. 해월이 머물렀던 동학교도 김창준의 집도 자취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의 후손들도 마을을 떠난 지 오래되었는데다가, 연락조차 끊겼다. 아마도 1894년 김천동학농민혁명군의 궤멸이 그런 결과를 낳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김천에는 해월이 다녀간 유적지가 한 곳 더 있다. 어모면 다남리 참나무골이 바로 그 곳이다. 이 마을에 해월이 다녀간 때는 1893년 7월로 알려진다. 복호리보다 약 3년 뒤에 방문한 셈이다. 복호리 방문을 마치고 나오며 필자도 "오늘은 해가 어두워가니 참나무골에는 다음에, 꼭 가보아야겠다"고 혼자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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