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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동물원에 가봤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 연인 또는 친구와 함께. 그리고 귀엽고 재밌고 신기한 동물들을 보며 즐거워 했을 것이다. 그런데 한 번쯤 동물의 입장에서 '그들이 정말 행복할까?' 자문해본 적 있는가? 혹은 너무 슬픈 표정이나 열악한 환경의 동물을 보고 가엾다 느낀 적은?

많은 동물들이 사람과 마찬가지로 감정과 감각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와 다르지 않은 이 생명이 살아가는 데 동물원 환경은 이상적일까? 나는 이런 물음을 품고 '행복한 동물원을 찾아서'란 탐방 기사를 시작했다. 부디 모든 생명이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바라며... 기자 주

세 번째 '행복한 동물원'을 찾는 여정에는 두 가지 필연 같은 우연이 있었다. 한 가지 우연은 이번 탐방 장소인 경남 김해 'ㅂ동물원'에서 2년 전 인기 걸그룹 2NE1이 무대 퍼포먼스에 등장시켰다 동물학대 논란을 낳은 동종 앵무새를 만난 것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동물원을 다녀온 바로 다음 날(13일), 한 동물보호단체와 해당 지자체 관계자가 이 동물원을 현장점검한 것이다.

필연 같다 함은 앵무새의 유명세(?)에 힘입어 얼마쯤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으리란 기대, 또 같은 시기 한 동물원에 대한 운영자, 동물보호단체, 실무 행정가들이 다각적으로 문제 인식을 같이 하고 긍정적인 의견 조율을 거쳤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생산적 요소와 별개로, 현재 ㅂ동물원 동물들은 그간 내가 본 그 어떤 곳보다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 원숭이 '달몽'은 행복할까? 자연에 사는 원숭이는 본래 가족과 더불어 집단생활을 영위하지만 달몽은 매일 홀로, 자신을 구경하고 만지는 사람들 틈에서 산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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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원 입구, 새끼 일본원숭이 '달몽'이 보인다. 바퀴 달린 나무 모양 조형물 위 목줄에 묶여 있다. 낮은 울타리 외에 따로 가림막은 없다. 녀석에게 다가서니 낯선 나를 겁내는 눈치다. 아이와 함께 온 또다른 가족 관람객도 재밌어 하며 가까이 왔다. 자연의 모든 유인원은 그들 가족과 더불어 집단생활을 하지만, 달몽은 매일 혼자 이렇게 자신을 구경하고 만지는 사람들 틈에 산다.

달몽 옆에는 여러 종의 앵무새들이 있었다. 이들 역시 사방이 열린 아치형 설치물 아래 있었는데, 언제 봐도 신기한 건 이들이 날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육사에 비법을 물으니 "사람에게 익숙하고 훈련을 시켜서"란다. 매번 비슷한 설명을 듣지만 쉬이 납득이 안 된다. 내 옆으로 좀전의 가족 관람객이 오자 사육사가 앵무새 한 마리를 팔에 앉혀주고 기념촬영을 해줬다.

이같이 불특정 다수 사람이 오가는 공간에 상시 노출되는 동물들은 정서나 신체 안전상 크고 작은 위험이 따른다. 극단적으로 인수공통전염병에 감염될 확률 또한 있다. 전문가가 말하는 '동물의 5대 자유'에는 불편함으로부터의 자유, 고통·부상·질병으로부터의 자유, 공포와 고통으로부터의 자유 등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동물에게 쾌적한 온도에서 쉴 만한 장소, 스스로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 질병 예방과 치료에 적절한 환경 등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 설가타 거북의 몸부림(?) 설가타 거북은 밖으로 나오려는 듯 좁은 우리 한 구석에서 계속해 몸을 들려 애쓰다 바닥에 쿵 떨어지는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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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에서 몇몇 동물을 살피고 '실내 사파리'로 이동하려는데 어디서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근처에 있었던 '설가타'란 거북이가 사는 우리에서 나는 소리였다.

칸칸이 나눠진 나무로 만든 좁은 틀 안에 거북이를 한두 마리씩을 넣어두었다. 그 중 체격이 가장 큰 거북 하나가 밖으로 나오려는 듯 몸을 들었다 바닥에 떨어지는 행동을 계속했다. 잠시 후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거북의 눈은 뭐라 말할 수 없이 깊었다.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 좁은 우리 내 가장 높은 나뭇가지에 걸터 않는 수리 부엉이 한쌍.
 천장에 머리가 닿을 듯 좁은 우리 내 가장 높은 나뭇가지에 걸터 않는 수리 부엉이 한쌍.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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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사파리 입구에는 붉은 전구 장식이 달린 대나무 수 그루가 있었다. 혹시 하고 잎사귀를 만졌으나 역시 가짜였다. 그리고 관비둘기를 시작으로 다양한 조류들을 만났다. 안내문에 따르면 관비둘기는 습지가 있는 삼림 저지대에 살며, 떨어진 과일을 주로 먹고, 성격이 예민해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반짝이는 조명 옆 밀폐된 우리, 딱딱한 바닥에 듬성듬성 깔린 건초, 가운데 놓인 인공 사료가 전부였다. 관비둘기 두 마리는 보는 내내 아무런 미동이 없었다.

본격적으로 사파리 관람을 시작했다. 거의 모든 동물들이 비슷한 형태의 공간에 수용돼 있었다. 콘크리트나 샌드위치 판넬로 지은 가건물 형태의 우리였고, 높이는 평범한 키의 성인이 서거나 무릎을 조금 구부려야 하는 정도였다.

관비둘기 다음으로 만난 수리 부엉이 한쌍은 우리 내에서 가장 짧지만 가장 높은 나뭇가지에 걸터 앉아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내부 벽면에는 페인트로 그린 하늘과 숲, 강물이 있었다. 너무나 인공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에 원근감을 살린 자연 그림은 되레 괴리감을 불러 일으켰다.

▲ 청금강 앵무새 청금강 앵무새는 계속해서 아래위로 고개를 흔드는 행동을 반복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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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특별한 이유로 눈에 띈 새 한 마리. 우리 외벽에는 '2NE1 컴백무대에서 CL 누나 어깨에 올라가 있던 그 앵무새'란 홍보 문구가 있다. '이게 무슨 인연인가!' 싶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이 청금강 앵무새는 당시 방송에 나왔던 것과 동종일 뿐 실제 주인공은 아니었다. 녀석은 지켜보는 수분 동안 계속해 고개를 앞뒤로 흔들어댔다. 부산 ㄷ동물병원 수의사에게 현장에서 찍은 영상을 보여준 결과, 스트레스성 이상행동일 수 있다고 답변했다.

의사가 '정형행동' 가능성을 언급한 동물은 더 있었다. 정형행동이란 격리 사육되는 동물들이 특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병적 증세로, 고착행동 또는 상동행동이라고도 한다. 앞서 만났던 설가타 거북을 포함, 실내 사파리에 있는 반달곰, 미어캣, 맹그로브 모니터 등이 그랬다. 아기 반달곰 한 마리는 우리 좌우를 쉴 새 없이 오락가락했고, 미어캣 한 마리는 무리들 중심으로 분주히 뛰어다니다 벽을 향해 점프하는 행위를 반복했다. 맹그로브 모니터는 앞발로 뽀득뽀득 소리가 날 만큼 계속 유리벽을 긁었다.

입구에서 본 아기 일본원숭이와 같이 홀로 갇힌 검은손긴팔원숭이의 경우, 사람들이 먹이를 주는 작은 구멍에 제 손가락을 끼우곤 나를 쳐다보다가, 차갑고 썰렁한 바닥에 놓인 뿌리없는 긴 나뭇가지를 잡고 크게 움직이는 과정에서 유리벽에 펑 소리를 내며 부딪히기도 했다. 좁은 수조에 들어 있는 악어를 촬영하던 중에도 악어 한 마리가 수족관 벽을 입으로 세게 쳐 깜짝 놀란 바 있다.

▲ 우리 좌우를 계속해 뛰어다니는 아기 반달곰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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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더더욱 혀를 내두르게 하는 광경들이 있었다. 하나는 조류 무리 속에 있던 슈가 글라이더. 실내 중앙에 나뭇가지를 세우고, 그 꼭대기에 환한 조명과 함께 걸어둔 새장이 그들의 집이었다. 슈가 글라이더는 주로 나무 위에서 생활하고 야행성이며 하룻밤에도 상당 거리를 활공할 수 있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곳 슈가 글라이더들은 새장 속 너덜너덜한 인조털 손가방 안에서 작은 소리에도 놀라 오들오들 떨었다.

자연에서라면 강기슭이나 늪, 평지 등에 살았을 물왕도마뱀은 물 한 방울 없는 우리 안의 말라붙은 배설물 옆에 몸을 낮추고 있었다. 안내문에는 '물 속에서 30분 이상 잠수할 수도 있다'고 되어 있었다. 내 눈 앞 풍경은 의아함을 넘어 도마뱀 상태가 우려스러울 정도였다. 방문 다음 날 ㅂ동물원 대표와의 전화 통화에서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을 전해들었다.

"방수시설 결함으로 누수가 생긴다. 물을 채워도 빠져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적정한 온도의 물을 받아 2~3시간에 한번씩 (물왕도마뱀에) 주는 긴급조치를 하고 있다." 

방수시설 결함으로 물 한방울 없는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물왕도마뱀
 방수시설 결함으로 물 한방울 없는 우리 안에 갇혀 있는 물왕도마뱀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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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탄식이 절로 나온 곳은 실내 사파리 끝에서 맹수들을 만났을 때다. 정말이지 태어나 지금껏 본 그 어떤 동물원 풍경보다 초라하고 삭막했다. 차갑고 단조로운 콘크리트 바닥에 허접한 가짜 바위와 나무 장식은 이미 익숙했다. 그렇다 해도 여느 동물원의 동물들은 하루의 절반 이상 진짜 햇빛을 쬐고 공기를 들이킬 수 있는 야외 공간에 있었다.

허나 이들은 말 그대로 사방이 꽉 막힌 좁은 실내 우리에 24시간, 매일 갇혀 있었다. 용맹함의 상징인 사자와 호랑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듯한 호랑이는 그늘진 구석에 마치 아픈 고양이처럼 몸을 웅크리고 누워 있었고, 사자 역시 가짜 바위 위에 맥없는 표정으로 힘없이 앉아 있었다. 하이에나 두 마리도 마찬가지였다.

'미안하다…, 정말 너무너무 미안하다….' 내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동물들과 눈을 마주하며 사과만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아픈 고양이처럼 몸을 움크린 채 힘없이 누워 있는 벵갈 호랑이
 아픈 고양이처럼 몸을 움크린 채 힘없이 누워 있는 벵갈 호랑이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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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바위와 하나된 듯 슬픈 표정으로 앉았는 사자.
 가짜 바위와 하나된 듯 슬픈 표정으로 앉았는 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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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국내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가 2013년 7월 ㅂ동물원 측에 전시환경개선 및 관리감독 요청을 한 내용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지난 13일 동물자유연대 활동가 세 명과 관할 지자체인 김해시 담당자 한 명이 첫 동행 현장점검에 나섰다. 그 결과, 일부 개선됐거나 여전히 혹은 새롭게 추가된 문제 사항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1. 동물과 관람객 간의 안전거리 부재 - (현재상황) 달몽이 등 일부 동물 여전히 무방비 노출  
2.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한 사육 공간과 종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사육 환경 - 늑대 등 일부 종은 외부 사파리로 이동. 그러나 사자와 하이에나, 새끼 호랑이 등 추가로 영입. 문제 심화. 
3. 무분별한 번식으로 인한 개체수 이상 증가 - 당시 문제시된 프레리독 개체수 적절히 개선.  
4. 외상이 있는 동물 - 추가 확인 필요   
5. 야생동물의 밀폐 전시 - 동물원 측 '야외 사파리' 시설 확충 공사 중. 그러나 사자, 하이에나, 호랑이 등 추가 영입. 문제 확대 및 심화. 가장 시급하게 개선이 필요한 사안이나 현실적인 여건상 단기간 개선 어려움.  
6. (관람객들이) 사육장을 두드리는 등의 행위를 규제하는 안내문의 부재 - 개선 안 됨.  
7. 동물의 정신적 장애와 과격행동으로 인한 관람객 공포심 조성 - 다수 동물 공격성, 상동성 보임. 
8. 방치되고 있는 동물 - 추가 확인 필요 
9. 식수 공급의 부재 - 일부 개선 

마지막으로 ㅂ동물원 대표 김아무개씨의 입장이다.

"동물보호단체와 지자체에서 지적하는 부분들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고 개선 의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만 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 재정 여건이나 관계 법령에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단박에 개선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 한 가지만 부탁드리면 동물원의 네거티브(부정적인) 요소만 강조해 손님들이 발길을 끊으면 결국 피해를 보는 건 동물이란 사실입니다. 나도 동물이 좋아서 (동물원 운영을) 시작한 겁니다. 전 재산 다 해서. 상업적으로 (동물들) 이용하는 거다 질책만 마시고 내면적인 부분도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의 큰 꿈 하나는 한국에도 태국의 '코끼리자연공원'과 같이 상처입은 동물들을 치유하고, 그들이 타고난 본성대로 행복한 삶을 살며, 인간과 진정한 교류를 할 수 있는 소&돼지자연공원(가칭) 건립입니다. 관련하여 동물 보호와 동물이 있는 공간 운영에 필요한 노하우나 지식을 전수해주실 분들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태그:#2NE1, #앵무새, #동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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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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