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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이제 어둠에서 나와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민 개혁을 전격 강행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1일(한국 시각) 백악관 특별 연설을 통해 미국 내 불법 이민자의 추방을 유예하는 이민 개혁안을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며 우리도 한때 이민자였다"고 강조하며 "새 기준에 부합하는 이민자를 강제 추방에서 구제하고, 이들이 어둠의 그늘에서 벗어나 법적인 권한을 갖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대 500만 명 혜택... 차기 대선 승부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개혁안 특별 연설을 중계하는 백악관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개혁안 특별 연설을 중계하는 백악관 공식 홈페이지 갈무리.
ⓒ 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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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오늘날 미국의 이민 시스템이 무너졌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지난 수십 년간 누구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서 "이번 개혁안은 책임감 있고 상식적이며 중립을 유지하는 접근 방식"이라고 정당성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의 반대를 겨냥한 듯 "미국의 이민 시스템이 잘 작동하게 하려는 대통령의 권한에 의문을 품거나 문제를 제기하려는 의원들이 있다면 내 대답은 하나"라며 "포괄적인 이민 개혁 법안을 어서 통과시키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대규모 사면이 불공정할 수도 있지만, 대규모 추방 또한 실현되기 어렵다"며 "새 이민개혁안이 불법 체류자에게 시민권 취득을 위한 무임승차권을 주는 것이 아니고, 특정 정책에 대한 의견 불일치를 이유로 모든 정책에 제동을 거는 것도 안 된다"고 의회를 압박했다. 

지난 11·4 중간 선거 승리로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은 강력히 반발했다. 존 베이너 하원 의장은 즉각 성명을 내고 "민주주의는 이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마치 제왕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치 매코넬 상원 원내 대표도 "오바마 대통령은 법을 무시하고 국민의 뜻을 저버린 행동을 후회하게 될 것"이라며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행정 명령을 저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 이민법은 미국에서 최소 5년 이상 불법 거주하면서 미국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가진, 자녀를 두고 전과가 없는 부모가 주요 대상이다. 이들은 3년간 미국에서 거주하며 취업 허가증을 신청할 수 있고, 세금을 내야 한다.

이로써 미국 내 불법 체류자 1130만 명 가운데 44%에 달하는 최대 500만 명이 구제 대상이 되며 1986년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공화당)이 270만 명의 불법 체류자에게 합법적·영구적인 신분을 보장해준 대사면 이후 28년 만에 단행되는 가장 대규모의 이민법 개혁이다.

아울러 STEM(과학, 기술, 공학, 수학) 분야의 고급 인력과 학생 등 50만 명도 새 이민법의 혜택을 받아 미국에서 학위를 받고 실무 교육을 통해 새로운 비자 발급 없이 더 오랫동안 일할 수 있게 된다.

'오바마 케어' 혜택은 제외

또한 오바마 대통령은 16세가 되기 전 미국에 불법 입국해 5년 이상 거주한 학생이나 미국 고교를 졸업한 30세 이하의 외국인을 상대로 임시 영주권을 부여했던 2012년에 단행한 행정 조치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27만 명의 청소년이 강제 추방의 공포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백악관의 설명이다.  

대신 연방 정부는 새 이민법을 노린 불법 입국을 막기 위해 멕시코와의 국경 경비를 대폭 강화하고, 새 건강보험 체계인 오바마 케어 혜택도 뺐다. 이민 개혁과는 또 다른 정치적 논란인 오바마 케어를 연결짓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하루 뒤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의 델솔 고교를 방문해 자신의 이민 개혁안을 더 자세히 설명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 1월 히스패닉계 학생이 절반을 넘는 이 학교에서 이민법을 개선하겠다고 연설한 바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의 격렬한 저항을 무릅쓰고 이민개혁안을 강행해 연방 정부는 또다시 셧다운 사태에 빠져들 수 있는 극한 대립이 우려된다. 그럼에도 오바마 대통령이 칼을 꺼낸 것은 2016년 차기 대선 승리를 노린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히스패닉·아시안 등 소수 인종의 선거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특히 미국 내 히스패닉 인구는 이미 흑인 인구를 넘어서 백인에 이어 2위로 올라섰다. 지난 대선에서 전형적인 백인 엘리트 미트 롬니 후보를 앞세웠던 공화당이 패한 이유가 소수 인종의 표심을 잡지 못해서라는 분석도 있다.

큰소리는 쳤지만... 딜레마 빠진 공화당

전날 NBC 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발표한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미국민의 48%가 오바마 대통령의 이민 개혁안 강행이 독단적이라고 반대하면서도 응답자의 57%가 이민 개혁의 필요성은 공감한다고 답했다.

또한 남은 임기 2년을 '레임덕(권력누수)'으로 허비하지 않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의지이기도 하다. 비록 중간 선거 참패로 공화당에 상·하원을 모두 내줬지만, 정국 주도권을 유지하며 민주당에 대선 승리를 안겨주고 떠나겠다는 전략이다.

공화당은 고민에 빠졌다. 이민 개혁안을 저지하겠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대통령의 최종 권한인 행정 명령을 무효화하려면 상·하원 모두 전체 의석의 3분의 2 이상(상원 67석, 하원 290석)을 확보해야 한다. 하지만 공화당이 중간 선거에서 따낸 의석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공화당은 '최후의 보루'인 셧다운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여론의 역풍이 우려된다. 더불어 최종 목표인 차기 대선에서 소수 인종의 표심을 잃을 수도 있어 어떤 선택을 내려도 부담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태그:#버락 오바마, #미국, #이민개혁안, #공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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