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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후 건축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학생들.
 졸업식 후 건축관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는 학생들.
ⓒ 칭다오 이공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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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모 세대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해외여행이 열려있던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졸업할 때는 취업난도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다. 그 무렵 대학가 작은 서점에는 묵직한 정치경제학 대신 유럽의 문화이론 신간이 속속 들어왔다.

'문화과학', '오늘예감', '또 하나의 문화' 같은 잡지가 등장하면서, 신세대, 신인류, X세대, 오렌지족, 서태지... 가 별난 유행거리가 아닌 한 시대를 해석하는 문화코드로 읽혔다. 건축학과 학생들은 건설 대신 건축문화를, 주택 대신 주거복지를 고민했다.

설계에 뜻이 있는 학생은 월급이 센 건설회사나 대형 설계 사무소보다, 박봉이지만 작품을 하는 아뜰리에 사무소를 '멋진' 일터로 꼽았다. 간혹 주택공사 같은 곳에 취직하는 친구가 있으면 그가 선택한 안정성보다 그가 포기한 꿈을 아쉬워했다.

그랬던 우리가 직장 경력이 좀 쌓일까 싶을 때 'IMF 폭탄'을 맞았다. 경기에 민감한 건축계부터 넘어갔다. 대학 동기는 회사가 부도나면서 실직자가 되었다. 결혼을 앞둔 선배는 건설현장이 중단되자 무기한 대기발령에 떨어졌다.

내가 다니던 설계사무소도 모든 프로젝트가 중단되었고, 직원들은 돌아가면서 무급 휴가에 들어갔다. 공기업에서 무슨 재미로 살까 싶었던 사람과 기술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별천지의 존재로 보이기 시작했다. 대학교에 입학할 때 입시 제도가 바뀌었고, 졸업할 무렵에는 IMF를 당한 '94학번'들은 스스로를 '저주받은 학번'이라고 불렀다. 앞뒤가 꽉 막힌 현실 앞에서도 꿋꿋하게 설계를 하겠다던 친구가 결국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두려운 건, 실직이 아니라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야."

우리의 20대는 일장춘몽처럼 사라지고, 코앞에 닥친 30대가 오아시스 없는 사막으로 다가왔다.

'웨광쭈', '푸웡', '컨라오쭈'... 중국의 바링허우 세대

신제품이 나오자마자 부담없이 사는 학생들도 있지만, 학기 시작 무렵 교정 한 귀퉁이에서 헌책들을 사고 파는 학생들도 있다.
 신제품이 나오자마자 부담없이 사는 학생들도 있지만, 학기 시작 무렵 교정 한 귀퉁이에서 헌책들을 사고 파는 학생들도 있다.
ⓒ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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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한 시절을 훌쩍 넘기고 중국에 왔다. 그런데 바링허우(八零后)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 때의 '느낌'이 쓱 지나간다. 펄펄 끓었던 20대와 바싹 오그라들었던 30대로 만든 몽타주, 그 몽타주를 복사기에 갖다 댄 후에 나온 얼룩덜룩한 흑백 그림에서 발견하는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은 느낌.

1980년대에 태어난 바링허우는 이제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 한창 경제활동을 하는 나이이다. 그만큼 바링허우는 소비문화와 라이프 스타일을 주도하고, 그 세대와 연관된 신조어도 많이 생겨났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웨광쭈(月光族), 푸웡(负翁), 컨라오쭈(啃老族). '웨광쭈'는 1990년대 말에 생겼는데, 월급(月薪)을 받으면 다 써버리는(用光)는 소비행태를 꼬집는 말이다. 웨광쭈는 대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고 서양자본주의 문화를 즐기는 바링허우다. 주로 IT, 금융, 출판, 방송, 예술 등 전문직에 종사한다. 유행에 민감하고 명품 옷이나 화장품, 파티, 여행을 위해서 돈을 아끼지 않는다.

수입에 맞춰 소비를 해온 기성세대는 웨광쭈를 마뜩찮게 본다. 신문은 웨광쭈(月光族) 현상을 사회문제로 보고 월급을 관리하는 방법부터 젊어서 낭비하면 늙어서 고생한다는 식의 계몽적인 글을 실어왔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콧방귀를 뀌기 일쑤다. 부모 세대가 부를 일구는 과정을 보아온 그들은 돈과 권력이 따로 놀지 않는 세태를 알기 때문이다.

그들은 근검절약 대신 '권력이 돈을 만들고 돈이 권력을 만든다(权生钱 钱生权)', '인맥과 운이 있으면 돈은 생기기 마련이다'를 더 믿는다. 웨광쭈의 배후에 그만한 부모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학력과 실력이 모두 좋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재산이 딱히 없는 사람은 어떨까? 그런 사람들은 은행 대출로 집과 차를 사고 목돈이 들어가는 물건들을 먼저 산다. 고학력에 고수입을 받는 그들은 은행 빚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갚을 능력이 있지만 은행에 빚을 진(负) 상태이니 푸웡(负翁), 신용카드를 과도하게 사용해서 '카누(卡奴, 카드의 노예)'라고도 한다. 전문가들은 그들에게, 만일 경제 위기가 온다면? 어느날 순식간에 회사에서 밀려난다면? 물가는 오르는데 수입이 준다면? 대출 금리가 갑자기 오르면? 경고 메시지를 보내지만, 대출이 아니면 평생 집을 장만할 수 없는 현실에서 통할 리가 없다.

'컨라오쭈(啃老族)'는 부모에게 빌붙어 사는 자식을 말한다. 컨(啃)은 '갉아먹다'는 뜻이고, 라오(老)는 부모를 가리킨다. 컨라오쭈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경우부터, 직업이 있어도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는 경우, 고학력 고소득자인데도 부모의 돈으로 고가의 주택, 자동차와 사치품을 사는 경우까지 포함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현재 중국에서 컨라오쭈가 아니거나 장차 안 될 젊은이들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실제로 도시 젊은이의 30%가 컨라오쭈 경험이 있고, 65%의 가정이 컨라오쭈 문제를 안고 있다고 한다.

가장 고달픈 바링허우는 '이쭈(蚁族, 개미족)'와 '팡누(房奴, 집의 노예)'이다. 이쭈는 대부분 농촌이나 소도시의 가난한 집안 출신들이다. 대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도 월급이 워낙 적어서 도시생활을 감당할 수가 없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역시 집세인데, 열악하고 비좁은 동네에서 집단으로 거주하며 겨우겨우 살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부모의 기대와 대졸자라는 체면도 그렇지만, 농촌이나 소도시에 간들 마땅한 직장이 없기 때문이다. 평생 집 걱정을 해야 하는 이쭈는 팡누이기도 하다. 특히 남자 이쭈와 팡누는 결혼하기도 힘들다. 그들의 삶은 언론에서 보도되는 소비지향적이고 문화생활을 즐기는 바링허우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오히려 농촌에서 돈을 벌기 위해 도시에 온 농민공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다. 내일을 계획할 수 없는 그들에게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잘 나가는' 건축학과에 공무원 바람이 부는 이유

매주 만드는 모형부터 전시용 모형까지 재료비가 만만치 않은 건축학과,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으로 수입재료를 구매하는 학생과 방과 후 아르바이트로 재료비를 충당하는 학생의 차이는 사회로 나가면 더욱 벌어지게 된다.
 매주 만드는 모형부터 전시용 모형까지 재료비가 만만치 않은 건축학과, 인터넷에서 클릭 몇 번으로 수입재료를 구매하는 학생과 방과 후 아르바이트로 재료비를 충당하는 학생의 차이는 사회로 나가면 더욱 벌어지게 된다.
ⓒ 김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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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설계실에 있는 학생들을 보면서 그들이 졸업 후 어떤 삶을 살까 가늠해본다. 반짝이는 브랜드 제품만 들고 다니는 학생, 원하기만 하면 미국이든 유럽이든 여행이나 유학을 갈 수 있는 학생, 성적은 신통찮아도 부모의 관시(关系)로 쉽게 취직할 수 있는 학생, 웨광쭈(月光族)가 되거나 컨라오쭈(啃老族)가 되어도 무방한 학생들이 보인다.

하지만 설계실에는 그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짝퉁 노트북이 수시로 다운되는 바람에 매번 자료를 날리고 도면을 다시 그리는 학생, 느려 터진 노트북으로 그래픽 작업을 거북이 속도로 하는 학생, 노트북조차 없어서 수업시간마다 기숙사에서 데스크톱 컴퓨터를 들고 오는 학생. 그들의 미래는 어떨까? 그들이 사용하는 노트북처럼 버벅거릴까?

나는 현실적인 수치를 떠올리며 머리를 굴린다.

칭다오에 있는 설계사무소에 취직을 하면 연봉이 얼마라고 했더라? 국제학부 사무실에서 말하길, 신입연봉은 보너스를 합해서 보통 4만8000~6만 위안(한화로 약 840만~1191만 원) 정도란다. 그럼 다른 전공자보다 형편이 좀 낫겠다. 문과계열 전공자라면 월급이 2000위안(약 35만 원)이 안 되고, 물가가 비싸기로 소문난 베이징이나 상하이에서도 대졸자 월급이 3000위안(약 52만 원) 정도라고 하니까. 물론 회사마다 차이는 있겠지. 칭다오 이공대학은 중국에서 명문대는 아니지만 건축학과는 산동성에서 최고라니, 산동성에서 취직을 한다면 그래도 괜찮은 회사에 들어가겠지?

그런데 졸업을 앞둔 5학년들은 설계사무소 취업을 나중 순위로 돌린다. 해외 유학, 중국내 대학원, 공무원 시험을 보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단다. 요즘 중국도 대학졸업자의 취업난이 심각하다던데, 도대체 이건 무슨 이유일까?

답은 바로 중국의 도시화율에 있다. 중국은 G2 국가이지만 도시화율은 아직 50% 정도에 그친다. 그것도 도시 상주 인구를 기준으로 한 것이고 후커우(户口, 호적) 기준 도시화율은 35%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 일본, 유럽의 도시화율이 80%가 넘으니, 중국은 경제발전 속도에 비해 도시화의 속도가 제법 늦은 편이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도시화율과 도시화 수준을 높이고 도시와 농촌의 격차를 줄이는 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개혁개방 후 집중적으로 개발된 동부연안지역의 대도시들은 도시인구를 분산 시키기 위해 인근 지역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있다. 대도시의 구도심에서는 재개발사업이 한창이다.

중소도시 건설도 가속화되고 있다. 그동안 도시화와 거리가 멀었던 서부와 내륙 지역은 정부 주도로 대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어느 도시를 가 봐도 건설현장의 먼지가 안 날리는 곳이 없다. 중국은 날로 달로 도시의 경관이 바뀔 만큼 건축수요가 있다. 중국의 건축시장은 넓고 건축가가 할 일은 아직 많다. 그래서 건축학과 학생은 다른 전공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업난이 덜하고 임금도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5년제 건축학과에 공무원 바람이 부는 것은, 역시 실직할 위험이 없고 연금을 비롯해 사회보장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공무원이 얼마나 인기 있는 직업인지 경쟁률을 보면 알 수 있다. 공무원 시험 응시자가 10년 새 30배가 되었다는 둥, 평균 경쟁률이 70:1에서 90:1이라는 둥, 어떤 직책은 3000:1이라는 둥, 이 엄청난 수치가 공무원 열풍을 대변한다.

공무원 경쟁률은 직종에 따라 다르다. 3000:1을 낸 직종은 국무원 소속 조직이고, 공무원 시험 원서 접수자가 가장 많은 곳은 세관이다. 공무원 열풍에는 안정성과 대우뿐만 아니라, '공무원=권력=돈'이라는 암묵적인 공식도 작용한다. 국무원과 세관 공무원 경쟁률이 가장 높은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람들은 공무원을 부정부패와 연결지어 욕하면서도 자신만은 공무원이 되길 원한다.

학생 당사자보다 세상 물정을 낱낱이 아는 부모가 원해서 공무원이 되는 경우도 있다. 2012년 수석으로 졸업한 여학생은 원래 건축가가 꿈이었다. 하지만 현직 공무원인 부모가 심하게 반대했다. 그들은 딸이 자신들처럼 평탄하게 살기를 바랬고 그러기엔 공무원이 최고라는 거였다. 둘도 없는 자식이 설계사무소에 취직하면 일도 힘들지만,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사회에서 앞날을 장담할 수 없다는 거였다. 결국 딸은 부모에게 졌고 공무원이 되었다. 낙담한 여학생은 졸업 건축전 개막식 날,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 학생 대표로서 연설을 하기로 되었는데도 말이다.

그들에게 내 20대의 낭만적 구호를 읊어댈 자신이 없다

팡누 퍼포먼스 사진
 팡누 퍼포먼스 사진
ⓒ 중국 바이두(百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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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저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장 윤택한 환경에서 자랐다는 바링허우보다 그들의 부모 세대가 더 행복한 청춘을 보내지 않았을까 싶다. 다들 엇비슷한 환경에서 출발했고, 청년의 패기와 도전이 통할 만한 시대에 개천에서 용이 될 수도 있었을 테니까.

개혁개방 초기인 1980년대만 해도 대학생들은 졸업만 하면 정부가 일자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취업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직전에 끝난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대학생은 희소가치가 있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폐지되었던 가오카오(高考, 중국의 대학입시)가 1977년에 부활했을 때, 30만 명을 뽑는 시험에 570만 명이 지원을 했다. 지원자는 공장노동자, 농민, 하방된 지식청년, 제대 군인, 간부, 그 해 고등학교 졸업생 등 다양했다. 과도기에 대학생이 된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움켜잡았고 현재 각 방면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그 시절 대학 졸업자들은 취직도 쉬웠지만 무엇보다 정규직에 평생직장이었다. 중국식 직장 개념인 '단웨이'는 월급뿐만 아니라 주택, 육아, 교육, 의료, 양로 등 생로병사를 책임지는 제도였다. 단웨이의 규율에 복종해야 하는 단점은 있었지만, 어쨌든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 단웨이가 1990년대에 와서 경제개혁으로 점점 해체되었다. 주택과 각종 복리후생제도가 사라지고 월급만 남게 되었다. 국유기업이 민영화되고, 민영화된 회사는 치열한 경쟁에서 도태되면서 실직자들이 생겨났다. 그 때 회사에서 밀려나 재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부모는 그 한을 풀기 위하여 자녀교육에 극성이다.

그런 처지가 아니더라도 서민층 부모라면 하나뿐인 아이에게 "너는 집안의 유일한 희망"을 끊임없이 주입시키게 된다. 아이는 엄청난 부담 속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소황제의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자란 바링허우는 넘쳐나는 대학생 중의 한 명이 되어 취업전쟁을 치르고, 취업을 해도 미래가 불안하다.

나는 다시 설계실의 학생들을 둘러본다. 구닥다리 노트북 때문에 남보다 서너 배의 시간을 들여 작업을 하는 학생, 학교 사무실을 청소하며 용돈을 버는 학생, 피자집 아르바이트로 모형 재료비를 충당하는 학생...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그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내 눈에 더 들어온다.

이번에는 취직 이후의 삶을 생각해본다. 남학생들은 집이 없으면 장가가기도 힘들다던데, 과연 부모 도움 없이 집을 살 수 있을까? 칭다오에서 방 2개와 거실 하나가 있는 68㎡
의 아파트를 사려면 못 줘도 100만 위안(약 1억7500만 원)이 든다는데... 집 없이 결혼을 하면 한 사람 월급을 고스란히 20년 동안 모아야 하고, 그래봤자 아파트 가격은 이미 껑충 뛰어서 살 수도 없다.

그럼 집을 안 사고 월세로 계속 살면? 부부 중 한 사람의 월급이 그대로 월세로 나가겠지. 나머지 한 사람 월급은 양가 부모 부양에 자식 양육과 생활비, 자식에게 물려줄 재산도 좀 챙겨놔야지, 그래야 자식만큼은 덜 힘들게 살지. 결국 은행 대출을 안 하면 집을 살 수가 없으니, 푸웡(负翁)이 되지나 않을까... 한숨이 나온다.

어느덧 심각한 빈부격차와 관시(关系) 문화를 알게 된 나는,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과 <긍정의 배신>에 공감하게 된 나는, 내 30대의 그늘이 얼핏 보이기 시작하는 그들에게, 내 20대의 낭만적인 구호를 읊어댈 자신이 없어진다. 다만 그들이 사회에 나가서 이쭈와 팡누가 되지 않기를, G2가 된 중국에서 먹고 사는 문제로 애태우지 않기를,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어도 돈, 돈하며 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IMF 이후 평생 직장이 동화(童話)가 된 한국에서 사오정, 삼팔선,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등장했다. 개혁개방 후 단웨이가 사라진 중국에서는 웨광쭈, 푸웡, 컨라오쭈, 이쭈, 팡누, 카누라는 신조어가 생겼다. 과거 어느 때보다 돈이 많아진 세상에서, 기회와 비전은 거꾸로 가고, 돈 냄새가 적나라하게 풍기는 서러운 낱말들은 늘어난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쯤 파릇파릇한 신세대 문화와 신조어를 만날 수 있을까.


태그:#칭다오이공대, #바링허우, #신세대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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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 좋다. 길이 없지만, 내가 걸어가면 길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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