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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서울 중구를 가로지르는 도로의 이름이다. 또 '을(乙)을 지키는 길'이라는 의미의 새정치연합 특별위원회의 이름이기도 하다.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2013년 5월 구성된 뒤로 영세 자영업자, 중소상공인,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노동자 등 우리 사회의 수많은 '을'의 옆을 지켰다. 새정치연합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들의 성과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당의 '간판'이 된 을지로위원회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그 방향을 살펴봤다. [편집자말]
지난 22일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우원식 의원이 경기도 양주IC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지난 22일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 위원장 우원식 의원이 경기도 양주IC 톨게이트 노동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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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가 지나갈 때마다 천막 안에서는 진동이 느껴졌다. 작은 난로 하나가 바람이 휭휭 통하는 천막 안을 데웠다. 얇은 스티로폼 위에는 이불이 한 장 깔려 있었다. 잠시 후 비좁은 공간에 사람들이 가득 들어섰다. 차가운 이불 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의 대화는 속도를 높이는 차량들의 소음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일산과 의정부를 잇는 외곽순환도로 중간에 위치한 양주IC, 이곳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농성이 88일째 되는 날이었다.

지난 22일 오전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이곳을 방문했다. 위원장 우원식 의원과 유은혜, 홍종학 의원이 천막 안에서 조합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옆으로는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장과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들이 배석했다. 3개월 가까이 농성이 진행되는 동안 고용노동부에서 현장을 찾은 건 단 한번 뿐이었다고 한다. 비록 야당 소속이지만 국회의원이 현장을 방문하자 해당 지청장이 나오게 된 것이다.

주식회사 서울고속도로가 운영하는 양주IC 톨게이트 수납노동자들은 적은 인력으로 인한 장시간 노동과 최저임금 수준의 처우에 어려움을 호소했다. 또 50개나 되는 평가기준이 적용된 과도한 업무평가와 몰래카메라, 망원경 등을 이용한 사측의 감시에 시달리고 있었다. 노조는 이런 문제를 개선할 단체협약체결을 요구했지만, 하청업체가 운영하는 다른 톨게이트 사업장의 노조와 교섭을 마쳤다는 이유(교섭창구단일화)로 거부당했다.

을지로위원회는 이날 현장방문에 앞서 국회에서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증언대회'를 열었다. 단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운전자를 상대하는 간단한 업무로 보이지만 좁은 공간에 갇혀 매연을 마시며 일해야 하는 그들의 고통은 심각했다. 특히 여성노동자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일부 톨게이트는 화장실에 갈 수 없어 수납부스에 연결된 계단에서 노상방뇨를 해야 했다.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한 을지로위원회가 곧바로 현장부터 찾은 것이다.

"'을'의 부당한 요구까지 편들지 않는다"

톨게이트 노동자들과 면담 후 사측을 만나고 있는 우원식 의원.
 톨게이트 노동자들과 면담 후 사측을 만나고 있는 우원식 의원.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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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을지로위원회와 관련해 현장인터뷰를 하기로 약속한 우원식 의원은 잠시도 기자와 대화를 할 틈이 없었다. 현장에 도착한 우 의원은 곧바로 천막으로 향했고, 한 시간 가까이 조합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의정부지청장에게 "어떻게 고용노동부가 한 번밖에 오지 않았냐"는 질책을 했고, 인권위 조사관들에게도 철저한 조사를 당부했다. 천막을 나와서는 곧바로 사측을 만나기 위해 바로 옆 사업소 건물로 이동했다.

사측과 만난 자리도 쉽게 끝나지 않았다. 대표이사와 하청업체 사장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였다. 단순히 조합원들의 요구사항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양측의 대립되는 주장을 조곤조곤 따졌다. 당장 그 자리에서 결론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 노사가 다시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 최선의 성과였다. 그렇게 또 한 시간 가까이 대화가 오갔다. 다시 천막에 들러 사측과 한 대화 내용을 전한 우 의원은 또 다른 톨게이트 사업장으로 향했다.

우 의원과 본격적인 대화는 모든 일정을 마친 후였다. 장시간 민감한 사안에 집중했지만 피곤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날 있었던 수많은 대화를 정리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는 "쟁점이 세 가지 있는데, 고용승계와 내부평가 폐지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고, 임금문제는 적극적인 협상을 주문했다"라며 "사측이 다음 주부터 다시 협상을 하겠다고 했다, 다시 대화를 시작하면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의원이 가진 권한을 활용하고 있다. 수사나 감사를 할 수는 없지만 예산을 짜고, 법안을 만드는 권한은 있다. 거기에 국민들이 뽑아줬기 때문에 사회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이건 국회의원 본연의 권한이다. 또 여러 국회 상임위 소속 위원들이 포진돼 있기 때문에 다양한 문제에 다각도로 접근할 수 있다.

그런 힘을 불편부당하게 사용하지는 않는다. '을'을 지원한다고 해서 '을'의 부당한 요구까지 무조건 편들지 않는다. 구체적인 협상은 당사자들에게 맡긴다. 그 과정이 누가 보더라도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수준까지 올라오게 하려고 힘을 쓴다. 어느 한쪽의 요구만 지지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권위가 생길 수 있다."

우 의원은 을지로위원회가 지난 1년 8개월여 활동기간 동안 총 112건의 사회적 갈등에 개입해 49건을 타결한 힘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면서 을지로위원회의 활동을 권력의 또 다른 '갑질'로 보는 불편한 시선에는 분명히 선을 그었다. 그는 "'갑' 입장에서는 불편한 게 당연하고, 그런 기득권이 을지로위원회를 불편해 한다는 건 나쁜 일이 아니"라며 "약자의 편에 서면 언제나 기득권에게 공격받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을'은 죽기 직전 아니면 얘기도 못 꺼내"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소속 우원식 의원과 홍종학, 유은혜 의원이 양주IC 톨게이트 노동자들과 면담 후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 소속 우원식 의원과 홍종학, 유은혜 의원이 양주IC 톨게이트 노동자들과 면담 후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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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2013년 5월 '물량 밀어내기'와 본사직원의 욕설로 논란이 된 남양유업 사태를 계기로 구성됐다. 남양유업 사태는 공공연하게 있어왔지만 이면에 감춰져 있던 '갑질'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사건이다. 당시 민주당 체제에서 시작된 위원회는 통합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활동을 해왔고, 현재는 46명의 의원이 속해있다. 전체 새정치연합 130명 의원 가운데 1/3이 넘는 숫자다. 

우 의원은 을지로위원회 구성 당시 막 최고위원에 당선된 상태였다. 그는 "이거(을지로위원회) 하고 싶어서 최고위원에 출마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현장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곧바로 남양유업 사태가 터져서 위원회를 만들고 정신없이 1년 8개월을 보냈다"라며 "눈물 흘리는 사람들 곁에 가서 문제를 풀 수 있는 정치를 하고 싶었는데, 일정하게 성과가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수많은 현장이 있었지만 가장 처음 있었던 남양유업 사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물량 밀어내기'라는 병폐가 고착돼 있었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았다. 결국 회사가 사과하고 점주들과 상생협약을 맺었다. 특히 이후에 롯데그룹과 을지로위원회가 상생협약을 맺은 건 상당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대기업 그룹사가 정치권과 그런 협약을 맺은 건 처음이다.

또 아프리카 노동자들의 노예노동, 또 최근 씨앤앰, 삼성전자서비스, 티브로드 같은 간접고용 문제와 청소노동자, 경비노동자들의 문제를 타결한 게 기억에 남는다. 일정 성과가 있었지만 이곳의 문제가 다 해결된 게 아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우 의원의 말처럼 을지로위원회 초기 활동은 편의점과 각종 가맹점 등에서 벌어지는 불공정한 거래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을'의 고통은 그곳에만 있지 않았다. 주제는 점점 '노동'의 문제로 옮겨왔다. 특히 서비스업계에 확산된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문제가 핵심이었다. 우 의원은 지난해 연말 케이블업체 씨앤앰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벌이던 현장에서 함께 노숙 농성을 하기도 했고, 결국 극적인 노사 협상타결을 이끄는 데 힘을 보탰다.

아쉬움이 남는 현장 역시 간접고용이 문제인 곳들이다. 우 의원은 "엘지 유플러스와 SK 브로드밴드 노동자들이 몇 개월째 노숙농성을 벌이는데 아직 해결이 안 되고 있다"라며 "오히려 사측의 '갑질'이 더 심해지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지 그곳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심각하게 양극화 되면서 '갑질'이 일반화 되고, 그걸 정상적인 사회문화로 받아들이는 모습이 정말 갑갑하다"라고 토로했다. 

"최근 대한항공 사태나 백화점 주차장 사건처럼 욕설이나 비상식적인 행위가 있으면 금방 분노가 일고 여론이 모이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정말 죽기 직전의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얘기도 못 꺼낸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제도로 그런 행위를 막아야 하는데, 경제민주화와 '을'을 보호하기 위한 법안은 새누리당에 의해 꽉 막혀 있다."

우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 그가 주도했던 '비정규직법'이 지금의 비정규직 양산에 책임이 있다는 일각의 비판에 "IMF 이후 비정규직이 확산되면서 근로기준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비정규직법이 나왔다"라며 "그러자 사용자들이 비정규직법을 피해 간접고용을 늘렸다, 더 이상 방치 할 수 없어 또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한 번에 완벽한 법을 만들 수는 없다"라고 덧붙였다.

"을지로위원회가 당의 노선 되는 것이 계획"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 위에서 50일째 고공농성을 벌인 강성덕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비정규직지부 조합원을 데리고 내려가기 위해 올라와 강 조합원을 안아주고 있다.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앞 전광판 위에서 50일째 고공농성을 벌인 강성덕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비정규직지부 조합원을 데리고 내려가기 위해 올라와 강 조합원을 안아주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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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의원은 을지로위원회의 활동이 더욱 힘을 얻기 위해서 '상설화'를 강조했다. 오랜 기간 꾸준한 활동을 벌여온 을지로위원회지만 아직까지는 당의 임시조직일 뿐이다. 그는 "새정치연합이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 '경제민주화를 추구하는 정당'이라고 한다면 내세울 수 있는 건 을지로위원회가 유일하다"라며 "중앙당 조직 내에 '을지원국'을 만들고 인력과 예산을 투입해야 지속가능한 성과를 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합동연설회 등 전당대회 일정을 소화하면서 을지로위원회를 추켜세우는 당 대표 후보들에게도 이 같은 요구를 제기했다. 그는 "당 대표 후보들이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계파 폐지'를 제기하는데, 그건 그냥 되는 게 아니"라며 "을지로위원회에는 여러 계파로 분류되는 40여 명의 의원이 들어와 있는데 이 활동은 계파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런 활동이 계파를 넘어서게 하는 답"이라고 강조했다. 

"특별한 계획은 없다. 우리가 맡은 사안은 포기하지 않는 게 계획이다. 큰 방향은 자영업자들의 어려움과 불공정한 거래 문제,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활동을 우리 당의 전면적인 노선으로 만드는 게 최종적인 계획이다. 거기에 진보냐 보수냐를 논하는 건 의미 없다. 기득권과 맞서고, 약자를 대변하는 것이 진보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게 본질은 아니다. 고통 받는 국민 곁으로 가는 것뿐이다."

우 의원과 인터뷰를 한 그 다음날, 을지로위원회 페이스북 계정에는 카카오톡 화면을 갈무리한 사진이 올라왔다. 이날 우 의원이 두 번째로 방문한 서하남 톨게이트 조합원이 보낸 메시지였다. 한국도로공사가 운영 중인 이곳도 수납노동자들의 근무여건이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마찬가지로 수십일 동안 농성을 하고 있는 와중에 사측이 천막에 전기를 끊는 일이 벌어졌다. 을지로위원회의 이날 방문은 그곳에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기쁜 소식 전합니다. 어제 의원님 다녀가신 후로 오늘 아침 전기 연결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의원님과 보좌관님께 감사드립니다. 앗싸~~"


태그:#을지로위원회, #우원식, #을지로, #새정치연합, #톨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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