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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서 열린 대전 산내 사건 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유족인 박귀덕(75)씨가 오열을 하고 있다.
 23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서 열린 대전 산내 사건 희생자 유해발굴 개토제에서 유족인 박귀덕(75)씨가 오열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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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과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대책위원회'는 23일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서 개토제를 열고, 앞으로 1주일 동안 유해 발굴을 할 예정이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과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대책위원회'는 23일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서 개토제를 열고, 앞으로 1주일 동안 유해 발굴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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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 너무 보고 싶어요."
"얼마나 무섭고 배고프셨어요. 이제라도 많이 드세요."

23일 오전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 목이 쉰 채로 아버지를 부르는 75세 할머니의 울부짖음이 울려 퍼졌다.

10살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평생을 그리워했던 그 아버지를 목이 터져라 부르는 박귀덕(광주시 광산구) 할머니. 유골발굴을 위해 차려진 개토제 제사상에 술 한 잔과 절을 올린 그녀는 한참을 목 놓아 울고 있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아래 공동조사단)'과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대책위원회(아래 대전공동대책위)'는 이날 한국전쟁 전후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희생자에 대한 2차 유해발굴을 시작하면서 '개토제'를 열었다.

이번 유해발굴은 개토제를 시작으로 오는 3월 1일까지 1주일 동안 진행되며 박선주 발굴단장 및 전문가와 시민 등 하루 평균 20여 명이 참여해 진행된다. [관련기사 : 정부 방치 산내 희생자 "시민의 손으로 유해발굴", 7000여 명 학살당한 땅... 대전 산내의 뼈아픈 역사]

발굴지역은 대전시 동구 낭월동 산 13-1번지로, 이 일대에는 1950년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3차에 걸쳐 대량 학살(1차:6.28~30, 1400명, 2차:7.3~5, 1800명, 3차:7.6~7.17, 1400~3700명)된 7000여 명의 국민보도연맹원과 대전형무소 재소자들의 유해가 묻혀있다.

당시 희생자들은 충남지구 CIC, 제2사단 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법적 절차 없이 집단 살해됐다.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1차 유해발굴을 벌여 34구의 유해를 발굴했지만, 대규모 매장지로 추정되는 곳은 여러 이유로 손을 대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발굴예정지는 대규모 희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지역이어서 유해가 어떤 형태로 얼마나 발굴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과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대책위원회'는 23일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서 개토제를 열고, 앞으로 1주일 동안 유해 발굴을 할 예정이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과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대책위원회'는 23일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서 개토제를 열고, 앞으로 1주일 동안 유해 발굴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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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과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대책위원회'는 23일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서 개토제를 열고, 앞으로 1주일 동안 유해 발굴을 할 예정이다.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과 '한국전쟁기 대전 산내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대책위원회'는 23일 대전 동구 낭월동 골령골에서 개토제를 열고, 앞으로 1주일 동안 유해 발굴을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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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들에 대한 묵념과 추모공연으로 시작된 개토제에서 나눔교회 김창규 목사는 "정말 가슴 아픈 날"이라며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7000여 명의 영혼들의 유해가 수습도 되지 않은 채 나뒹굴고 있는데, 국가는 뒷짐만 지고 있고 시민들이 나서서 유해발굴에 나서야만 하는 오늘의 현실에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추모사에 나선 김경훈 대전시의회 운영위원장은 "오늘은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의 유해수습을 시작하는 날이다, 너무도 안타까운 것은 희생자들이 국가권력의 불법행위로 죽임을 당했다는 점"이라며 "더욱 답답한 것은 국가가 불법행위를 공식 인정하고 사과했음에도 아직까지 유해마저 수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뿐만 아니라 오늘은 전국 각지 정의로운 여러분과 대전지역 시민들이 정부를 꾸짖는 날이기도 하다, 대전시를 비롯 지방자치단체를 부끄럽게 하는 날"이라며 "비록 부분적인 유해발굴이지만 이를 계기로 영령들의 억울한 누명과 맺힌 한을 풀어드리는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위원장은 산내 사건 희생자 위령제 지원 조례 제정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내빈 소개와 추모사에 이어 김종현 대전산내사건 희생자 유족회 회장이 대표로 영령들께 '고유문'을 읽고 제를 올린 뒤, 유족들과 시민사회단체 대표, 발굴단 등이 제를 올리며 개토제는 마무리됐다. 개토제 이후에는 발굴예정지 설명과 함께 굴착기를 이용한 발굴이 시작됐다.

한편, 이날 개토제에는 강병현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전국유족회 부회장과 김경훈·김동섭·전문학 대전시의원, 이규봉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김창근 민주민생대전행동 대표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경찰이 들이닥쳐서는 빨갱이 가족이라면서 발로 차고..."
산내학살로 아버지를 잃은 박귀덕 할머니... "빨리 아버지 곁으로 가고 싶어요"

여순사건으로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아버지를 잃은 박귀덕(75) 할머니.
 여순사건으로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아버지를 잃은 박귀덕(75) 할머니.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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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토제를 위해 차려진 제사상 앞에서 목 놓아 울던 박귀덕(75) 할머니는 1950년 6월 산내에서 아버지를 잃었다.

1948년 여수 14연대에 근무했던 박씨의 아버지는 당시 전남 광산군(현재 광주시 광산구)에 있는 자택에 들렀다가 부대에 복귀하던 중 광주에서 연행됐다. 1년 동안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던 가족들은 1949년 9월 아버지가 대전 형무소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대전형무소 옆방에서 함께 갇혀 있다 돌아왔다는 이웃의 말을 듣고 대전 형무소를 찾아간 박 씨는 꿈에 그리던 아버지를 만났다. 자신을 공주처럼 예뻐해 주시던 아버지를 본 것은 또 한 번의 면회가 마지막이었다.

1949년 몹시도 춥던 동짓달 어느 날 어머니가 아버지의 속옷을 만들고, 치약을 사들고서 면회를 했던 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다. 그리고 아버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후퇴하던 이승만 정권에 의해 산내 골령골에서 살해됐다.

"아버지가 잡혀가시던 날 밤. 자고 가라고 붙잡던 어머니와 할머니를 뿌리치시고 가시던 아버지 뒷모습이 잊혀지지 않아요. 이 이름 모를 골짜기로 끌려오실 때 얼마나 무서웠을까."

평생을 그리워하던 아버지. 그러나 박씨는 아버지의 존재를 함부로 말하지도 못하며 가슴 속에 묻고 살아왔다. '빨갱이 가족'이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묻고 온갖 고생을 참고 참으며 이날까지 살아야 했다.

"아버지가 잡혀가시고 1년 동안은 소식을 전혀 알지 못했는데, 경찰들이 우리 집에 들이닥쳐서는 '이 빨갱이 가족들, 어디다 숨겼어?' 하며 발길로 차고 그랬어요. 경찰들이 무명 짜 놓은 것도 다 가져가 버리고, '빨리 말하라'며 윽박질러서... 우리 가족들은 이불 속에서 나오지도 못했어요. 얼마나 무서웠는지 저는 생똥을 싸기도 했어요."

그렇게 아버지의 존재를 가슴에 묻고 살아온 박씨는 2007년 정부가 배포한 '과거사 정리 진실규명 피해자 신청서'를 접수하면서 밖으로 나오게 됐다. 그 뒤 그녀는 유족회 활동을 하며 매년 열리는 산내희생자위령제에도 참여하고 있다.

"항상 아버지가 보고 싶어요. 요즘처럼 몸이 아프면 그저 아버지 곁으로 빨리 가고만 싶어요. 할머니랑 어머니도 얼마나 한이 맺혀 하셨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정말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곳에 오기만 하면 눈물이 펑펑 쏟아져요."

이번 유해발굴을 통해 박 씨는 억울한 아버지의 죽음이 세상에 더 드러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정부가 나서서 모든 억울한 영령들을 위로할 '유해발굴'과 '위령사업'을 진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아버지가 잠든 골령골을 향해 절을 올렸다.



태그:#대전산내사건, #민간인학살, #대전형무소, #유해발굴, #골령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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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나무는 자기를 찍는 도끼에게 향을 묻혀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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