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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서 활동 중인 국제 NGO들이 최근 고아원 기부금 근절을 위한 특별한 캠페인을 시작해 관심을 이끌고 있다. 캐치프레이즈는 'Don't Create More Orphans(더 이상 고아들을 만들어내지 말라)'이다. 성폭력과 학대 등 인권침해의 가능성과 더불어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두루 갖고 있는 고아원이 무분별하게 건립되고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외국 관광객들이 기부를 자제해 달라는 게 캠페인의 요지다.

캠페인을 공동기획·주관하고 있는 유엔 산하 유니세프(UNICEF)와 미국 국무부 산하 대외 원조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 프렌즈 인터내셔널(FI) 등 국제 NGO들은 지난 19일(현지시각) 캠페인 시작을 공개적으로 알리는 동시에, 올해 새로 제작한 포스터를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선보였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활동중인 유니세프, 프렌즈 인터내셔널 등 국제 NGO들이 고아원 건립확산을 막기 위해 공동 제작 배포중인 포스터 모습.
 최근 캄보디아에서 활동중인 유니세프, 프렌즈 인터내셔널 등 국제 NGO들이 고아원 건립확산을 막기 위해 공동 제작 배포중인 포스터 모습.
ⓒ FRIENDS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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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포스터 이미지를 살펴보면, 분홍색 인형 상자 겉면에 '나의 새 고아', '당신이 기부를 더 할수록 당신은 고아를 더 만들어낸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리고 예쁜 인형이 들어 있어야 할 상자 속에 슬픈 표정을 한 어린 소년·소녀가 있다. 포스터 하단에는 '너무 잦은 기부는 고아들을 도와주지 못한다. 그들(고아원들)이 그들(고아들을) 만들어낸다'는 문구도 적혀 있다.

국제 NGO들이 지난 2012년 제작한 '고아관광(Orphanage Tourism)' 반대 포스터만큼이나 이미지가 강렬하다. 현재 이 포스터는 최근 캄보디아의 주요 교통수단 중 하나인 '툭툭(삼륜 오토바이 택시)' 뒷면 광고판에도 붙기 시작했다. FI 관계자 말에 따르면, 곧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를 중심으로 현지에서 발간되는 영문 잡지에도 포스터를 실을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2012년 고아관광을 막기 위해 유니세프 등 어린이인권보호단체들이 함께 만들어 캄보디아 현지에 배포한 포스터 모습
 지난 2012년 고아관광을 막기 위해 유니세프 등 어린이인권보호단체들이 함께 만들어 캄보디아 현지에 배포한 포스터 모습
ⓒ FRIENDS INTER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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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체들이 공동 제작한 동영상 역시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미 유튜브에 올라 와 있는 1분 남짓한 이 동영상에는, '기부'라고 쓰여 있는 거대한 기계 속에 돈을 넣자 가족과 행복하게 살던 한 소녀가 한 순간 기계에 달린 집게손에 의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이 나온다. 스토리는 짧지만 메시지가 한눈에 들어올 만큼 명확하다.



고아인 듯, 고아 아닌, 고아 같은 고아?

국제 NGO들이 벌이는 캠페인에 논란의 소지가 다분한 것은 사실이다. 고아관광의 문제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순수한 취지로 운영되는 좋은 고아원도 많은데 너무 과도한 반응이나 편견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올 만하다. 고아원 운영자 입장에서는 '억울하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십수 년 넘게 캠페인을 전개해온 국제 NGO들의 입장은 단호하기까지 하다. FI 코디네이터 제임스 서덜랜드씨는 21일자 현지 영자신문 <프놈펜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기부금을 낼 생각이라면, (고아원 대신)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지역사회에 근거한 보호단체에 집중적으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며 "도움을 주려는 의도는 좋지만 당신이 실제로 하는 일이 아이들에게는 해로운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유니세프는 1990년대 초반 내전이 종식되던 무렵 캄보디아에 약 50~60만 명의 고아가 발생했다고 추정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로 경제성장과 더불어 의료환경의 개선으로 전체 고아 수는 꾸준히 감소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고아원에서 생활하는' 고아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유니세프는 그 수를 2005년 6254명, 2010년 1만1954명으로 집계했다.

국제 NGO 단체들이 오랫동안 강조해온 것처럼, 캄보디아에는 일명 '가짜 고아'들이 많다. 2013년 유니세프 발표에 따르면 캄보디아 전체 고아원에는 약 1만2000명의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그 가운데 부모가 없는 진짜 고아는 약 28% 수준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고아 아닌 고아들인 셈이다.

지난해 캄보디아 사회부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 정식 등록된 고아원 수는 모두 225개다. 하지만 미등록된 고아원 수를 따지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월드블레틴>이란 인터넷신문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미등록된 고아원 수를 포함한 5개 주요 도시의 고아원 수만 해도 600개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니세프 관계자 역시 기자에게 "무허가 고아원까지 합쳐 최소 600개 이상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고아원 책임자가 기부금 요구... 아이들 앵벌이처럼 시달려"

이처럼 무허가 고아원 수가 많고 '고아 아닌 고아'도 많은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고아원이 점차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로 변질되어 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씨엠립 현지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며 수년째 관광객 위주의 고아원 자원봉사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김진영(가명)씨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봉사프로그램 섭외를 위해 고아원을 여러 차례 방문한 적 있는데, 책임자가 먼저 기부금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경우도 많았다"라고 말했다. 아울러 "상황을 모르는 한국 손님들은 아이들의 재롱잔치를 보며 즐거워했지만, 정작 무대 뒤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공부도 하지 못한 채 매일 밤 압사라 전통춤 연습을 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다"고 덧붙였다.

고아들이 많을수록 외부의 기부금도 그만큼 늘어나기 마련. 그런 까닭에 최근에는 한 명의 아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고아원 운영자가 가난한 부모를 꼬드겨 아이들을 고아원으로 데려가는 병폐까지 생겨났다고 2012년 유니세프의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아이들이 더 좋은 교육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란 가난한 부모들의 믿음도 가짜 고아를 양산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실제로 고아원에서 지내는 아이들 중에는 교육이나 보육 경험이 일천한 초보 자원봉사자들의 손에 내맡겨져 정상적인 교육의 기회마저 박탈당하는 경우도 많다. 2011년 유니세프 아동심리전문가 율란다 반 베스터링씨는 AFP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자격 없는 단기 자원봉사자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돌보는 이들이 끊임없이 변하면 애정이 필요한 어린이들에게 감성적인 상실감을 안겨주게 된다. 이러한 지속적인 감성적 상실감은 어린이들에게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을 일으키고 만다. (아이들이) 이방인들에게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폭력, 인권유린 등이 발생할 위험성도 존재한다. 왜냐하면 이런 단기 자원봉사자들 대부분이 자신들의 이력사항에 대해 아무런 검증도 받지 않은 무자격 상태에서 고아원에 오기 때문이다."

아동 성추행과 구타, 학대 등 아동인권탄압 혐의로 경찰의 수사를 받고 강제 폐쇄조치 당한 고아원도 적지 않다. 2013년 캄보디아 경찰은 호주 여성이 운영하던 무허가 고아원 '러브인액션(Love in action cambodia)'을 급습해 21명의 고아들을 구해내고 고아원에 강제폐쇄 명령을 내렸다.

고아들은 영양실조에 걸릴 만큼 열악한 식사를 하고 있었고 부실한 주거환경이나 아동학대 등이 문제가 됐다. 2014년 미국인이 운영하는 무허가 기독교 고아원에서는 이사 한 사람이 5명의 남자 아이들을 성폭행해 징역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많은 아동교육 전문가들은 캄보디아에서 갈수록 이런 고아원들이 늘어나고 있는 사실에 대해 많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유니세프는 "고아원은 돌봐줄 가족이 없는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보루"라는 구호를 외쳐왔다.

"세상에 '좋은 고아원'은 없다"

캄보디아 현지 고아원을 방문, 아이와 손을 잡은 봉사자. 아동심리전문가들은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더라도 세상에 좋은 고아원은 없다고 강조한다.
 캄보디아 현지 고아원을 방문, 아이와 손을 잡은 봉사자. 아동심리전문가들은 아무리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더라도 세상에 좋은 고아원은 없다고 강조한다.
ⓒ 박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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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고아원 시설이 좋다고 하더라도 좋은 것보다는 나쁜 것이 더 많다. 성적, 인격적 착취의 위험에 처할 가능성에 노출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나은 결정이다." - 케이트 무어 유니세프 호주 대표부 대변인, 2014년 8월 14일 <프놈펜포스트>

"고아원의 증가는 가정의 해체를 부채질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권보호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오히려 해를 더 끼친다." - 제임스 서덜랜드 FI 코디네이터, 2월 21일 <프놈펜포스트> 인터뷰 

유니세프와 같은 국제 NGO들은 고아원의 폐해와 문제점을 알리고자 십수 년째 노력을 기울여왔다. 덕분에 고아원 방문 봉사 관광이 갖고 있는 문제점과 고아원이 늘어나는 것이 사회적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조금씩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고아원 대신 마을 공동체 내에 아이들을 양육하고 교육할 수 있는 가족 중심의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조금씩 형성돼 가고 있는 분위기다. 제임스 서덜랜드 FI 코디네이터는 26일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수년째 펼친 캠페인이 나름 효과를 거두어 세계 각지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용기를 내라는 격려도 받고 있다. 캄보디아 정부 역시 지금은 고아원의 문제점에 대해 이미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상처받기 쉬운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해 좀 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려고 한다. 우선 다른 NGO나 기관들과 협력, 가난한 마을을 중심으로 직업교육을 시키는 과정을 검토 중이다.

향후 계획 중에는 작은 가게를 차려 마을공동체가 나서 직접 상품을 만들게 하고 이것을 관광객들에게 팔아 수익을 다시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돌려줄 계획이다. 이러한 선택이 (고아원을 선택하는 대신) 아이들이 가족들과 함께 지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봉 싸웃(Vong Soth) 캄보디아 사회부 장관은 2월 26일 <프놈펜포스트>와 한 인터뷰에서 "앞으로 2년 이내에 가짜 고아 30% 정도를 가정에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만난 한 국제 NGO 관계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국제 NGO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아원 수는 줄지 않고 있고, 기부금을 보내달라고 호소하는 고아원 홍보 웹사이트 수 역시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구글을 통해 'cambodia orphanage(캄보디아 고아원)'을 검색하면 기부금이나 자원봉사를 원한다는 고아원들의 홍보 웹사이트들이 즐비하다. 그리고 같은 화면에 고아원 기부를 반대하는 국제 NGO들의 웹사이트가 경쟁이라도 하듯 뒤섞여 있어 지금의 상황을 대변해주는 듯하다.


태그:#캄보디아, #고아원, #CAMBODIA ORPHANAGE, #UNICEF, #FRIENDS INTERNAT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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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캄보디아 뉴스 편집인 겸 재외동포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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