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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모와 김신혜가 경찰서 유치장 접견실에서 대화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봤다.
 고모와 김신혜가 경찰서 유치장 접견실에서 대화하는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해봤다.
ⓒ 류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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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러웠다. 김은정(가명, 59세)씨는 나와 박준영 변호사를 보자마자 인상을 썼다.

"왜 자꾸 성가시게 하고..."

그녀는 김신혜의 고모다. 보험금을 노리고 수면제로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수가 된 김신혜. 이 사건 초기부터 핵심 실마리를 쥔 두 인물이 있다. 바로 고모 김은정과 남편 김정한(가명, 62세)씨다. 법원은 김신혜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이들의 증언을 주요 근거 중 하나로 삼았다.

23세 조카를 평생 감옥에 가두는 판결에 일정 역할을 한 고모와 고모부. 법원은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도록 이들의 말을 검증했을까?

사건이 발생한 2000년 3월 7일 이후, 이들 부부는 경찰, 검찰에서 참고인 진술을 했다. "김신혜가 범행을 우리에게 자백했다"고 말이다. 부부는 증인 자격으로 법정에도 섰다. 여기에서도 같은 취지의 말을 했다. 이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수천 페이지의 '김신혜 사건 기록'에 남아 있다. 이 기록부터 살폈다.

'이 사람들, 왜 말을 바꾸지? 법원은 어떻게 이런 사람들의 말을 무기징역 선고의 증거로 삼았지?'

기록을 볼수록 의문은 이어졌다. 거짓말은 물론이고 경찰-검찰-법원에서 하는 말이 일관되지 않다는 게 기록에서 쉽게 보였다. 지난 1월 26일 전남 완도에서 부부를 직접 만났다. 먼저 김신혜의 고모 김은정씨 이야기부터 전한다.

"이번엔 대한변호사협회에서 (김신혜 재심을 위해) 나섰습니다."

"성가시다"며 인상 쓰는 김씨에게 박준영 변호사가 말했다. 

"저것(김신혜)을 어떻게 해버리고 싶어요. 정말 죽겠어요."

박 변호사는 "그래도 김신혜씨가 좀 불쌍하잖아요"라고 분위기 변화를 시도했다. 김씨의 거친 발언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요. 그것(김신혜)은 거기서(감옥) 썩어 죽어야 해요!"
(중략)
"그래도 조카잖아요. 면회 다녀온 적은 있나요?"
"아니요. 그때 이후 면회 안 갔어요."

[거짓말] "혼자 아버지 죽였다고 자백"

기록상에서 김씨의 거짓말은 바로 '그때'부터 시작된다. 그날은 2000년 3월 14일이다. 이날 김씨는 완도경찰서 유치장에 있는 김신혜를 면회한다. 이들의 대화를 당시 유치장에서 근무한 완도경찰서 관계자가 기록했다. 대화 전문을 여기에 옮긴다. 질문자는 고모 김은정, 답변자는 김신혜다.

- 바빠서 못 왔다. 손이라도 잡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안 된대."

- 마음은 어떠냐.
"이상해. 종현(김신혜 남동생, 가명)이에게 이야기 좀 들어봐."

- 말했냐? 있는 그대로 다 말해라. 너 혼자 입 다물고 있으면 너만 괴롭지. 그러니 다 솔직히 털어놔라.
"그런 거 없어. 난 안 했어."

- 겁먹지 말고 다 말해라. 너 머리가 얼마나 비상하냐. 얼른 털어놓고 새 출발 해야지.
"나는 하지 않았어."

- 계획이 있었다면 다 털어놔라. 이 말 했다, 저 말 했다 하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라. 고모가 너 나오면 도와줄 테니까, 거짓말하지 말고.
"어제 저녁부터 거짓말 안 했어. 나도 했다고 말하면 편해. 그런데 이건 아닌 것 같아."

- 고모는 더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사실대로 말해라.
"다 말했어."

- 주변에 누가 있으면 사실대로 말해라.
"그런 거 애초부터 없었어."

- 형사계에 다 말했어?
"응, 다 말했어."

- 마음 정리해서 오늘 밤 안으로 사실대로 털어놔라. 괜찮으니까.
"사실대로 말했는데, 조서를 받지 않아. 더 힘들어졌어. 사람 취급도 안 해."

- (아버지 살해하라고) 시킨 사람 있으면 있다고 말해라.
"누가 시켜. 시킨 사람 없어."

- 있는 그대로, 해지기 전 다 말해라.
"다 말씀 드렸어. 있는 그대로 말한다는 게 지금은 소용없어. 내가 했다고 말한 것이 더 편해."

2000년 3월 14일 완도경찰서 유치인 접견록. 경찰서 유치장 근무자가 작성한 대화록을 보면 김신혜는 시종일관 범행을 부인한다. 또 김신혜가 "사실대로 말했는데, 조서를 받지 않는다. 사람 취급을 안 한다"고 말한 내용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2000년 3월 14일 완도경찰서 유치인 접견록. 경찰서 유치장 근무자가 작성한 대화록을 보면 김신혜는 시종일관 범행을 부인한다. 또 김신혜가 "사실대로 말했는데, 조서를 받지 않는다. 사람 취급을 안 한다"고 말한 내용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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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기면 너만 괴롭고, 손해야. 알아?
"그런 거 없어. 안 숨겼어. 어제 저녁부터."

- 사실대로 말하면 빨리 나올 수 있어.
"아니야. 내가 했다고 해도 똑같아. 그럴만한 이유로 자수를 했다고 해도 믿어주지 않아."

- 너 열심히 살았잖아. 어떻게 살았든지 말이야.
"응."

- 네가 모든 것을 털어놔.
"말해도 이젠 소용없어. 안 믿어줘. 원동 검문소 CCTV 확인해 보면 혼자 온 거 알 수 있잖아.

- 안다. 고모는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숨기지 말고 사실대로 말하고 새 출발 해야지.
"사실대로 말할 거야. 사실대로 말했어."

- 고모, 삼촌 성격 알지? 남에게 피해주지 않는 거.
"알면 말하지."

- 10년, 20년 가도 그때 사실이 다 밝혀진다는 것, 너 알지? 너 머리 좋잖아.
"있는 그대로 말하라며."

- 깊이 생각해서 있는 대로 다 털어놔라.
"깊이 생각할 것도 없어."

- 있는 그대로만 말해라. 해 지기 전까지.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어."

- 누구누구와 왔으면 사실대로 말해. 알았지? 고모는 널 믿는다.
"응. 알았어요."

- 사실대로 말하겠다고 고모하고 약속하자, 알았지?"
"응. 사실대로만 말할 거야."

답답한 대화다. 김신혜는 계속 범행을 부인하고, 고모는 시종일관 "사실대로 말하라"고 추궁한다. 하지만 정작 사실대로 말하지 않은 건 고모 자신이다. 이 면회를 마친 뒤 고모는 경찰에게 참고인 진술을 한다. 경찰이 먼저 묻는다.

- 김신혜를 왜 면회를 하였나요?
"조카인 김신혜가 (저의) 오빠인 김OO을 살해하여 유치장에 있는데, 면회를 와 달라는 연락을 받고 면회를 하였습니다."

- 피의자 김신혜가 아버지 김OO을 죽였다고 말을 하던가요?
"예, 저가 김신혜에게 아버지 김OO을 누구와 함께 죽였는지 물어보니까, 김신혜가 죽였다고 말을 하였습니다."
(중략)

- 그럼 혼자 죽였다고 하던가요?
"저 혼자 죽였다고 말을 하고, 나중에는 '잘 모르겠다'고 하고, 횡설수설하여 제가 '횡설수설하지 마라'고 말을 하자, (김신혜가) '알겠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김씨는 조카 김신혜가 하지도 않은 말을 경찰에게 거짓으로 전했다. 김씨는 2000년 6월 27일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에서 열린 공판에서는 "(경찰서 유치장 면회 때는 김신혜가) 아버지를 살해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라고 다시 말을 바꾼다. 법원은 이런 김씨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다.

고모 김은정(가명)씨는 김신혜를 면회한 뒤 바로 경찰에게 참고인 진술을 한다. 이때 고모는 면 "김신혜가 자기 혼자 죽였다고 말했다"고 거짓으로 진술한다.
 고모 김은정(가명)씨는 김신혜를 면회한 뒤 바로 경찰에게 참고인 진술을 한다. 이때 고모는 면 "김신혜가 자기 혼자 죽였다고 말했다"고 거짓으로 진술한다.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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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말] 자백 이전에 범행 알았다?

"김신혜가 모든 걸 자백했다"는 게 고모, 고모부의 주장이다. 이들의 말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보자. 이 사건에서 시간을 정확히 따지는 일은 중요하다. 물적 증거 없이 수사 기관이 작성한 조서상 자백과 증언이 주된 증거가 되어 김신혜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기 때문이다. 시간 퍼즐을 어떻게 맞추느냐에 따라 사건 실체가 달라진다.

김신혜의 아버지가 사망한 날은 2000년 3월 7일 새벽. 고모부 김정한씨가 완도 대성병원 장례식장에서 김신혜에게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고 주장한 시각은 다음날인 3월 8일 오후 11시 20분께다. 자백 여부를 떠나, 김신혜도 그 시각에 김정한과 이야기 나눈 사실을 인정한다. 

이후 김씨는 김신혜를 차에 태워 자신의 집으로 갔다. 김신혜의 여동생 김수현(가명, 당시 18세), 큰아버지 김용철(가명), 친척 이용구(가명)가 동행했다. 집에는 고모 김은정이 있었다. 김은정은 오후 11시 40분께, 수면제 30알을 갈아서 아버지에게 먹여 죽였다는 김신혜의 자백을 처음 들었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이 시각 이전엔, 김신혜의 범행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김신혜씨의 큰아버지 김용철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지난 3월 8월 오후 완도에서 큰아버지 김씨를 직접 만났다.

"밤 11시 20분에 신혜가 자백했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장례식장에서 사람들 화투 치는 걸 보고 있는데, 여동생이 저를 불렀어요. 3월 8일 오후 9시도 안 됐을 때였어요. 그 시각은 확실해요. 장례식장 앞에 있는 차 안으로 들어갔는데, 거기서 여동생 부부가 저에게 말했어요. 신혜가 아버지를 살해한 것 같다고요."

그의 말이 맞다면, 고모와 고모부는 오후 9시도 안 된 시각에, 김신혜가 자백하기도 전에 그녀의 범행을 알고 있었다. 혹시 70대의 고령인 큰아버지의 착각 아니냐고?

큰아버지는 이미 14년 전인 2001년, 반부패국민연대 국장으로 일하던 고상만씨에게 관련 사실을 이야기했다. 이 내용은 고상만씨가 쓴 책 <니가 뭔데>에 상세히 담겨 있다. 고상만씨는 당시 큰아버지 육성 녹음 파일을 여전히 갖고 있다.

고모 김은정의 말을 반박하는 건 큰아버지만이 아니다. 김신혜 여동생 수현씨도 마찬가지다. 수현씨는 지난 3월 11일 전화 통화에서 말했다.

"2000년 3월 8일 밤 11시 40분 고모네 집에 갔을 때, 언니는 울기만 하고 거의 말을 하지 않았어요. '내가 아버지를 죽였다' '수면제를 먹였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요."

[지어낸 이야기] 김신혜가 살해 계획 밝혔다?

김신혜는 키 155cm에 몸무게 약 38kg으로 왜소하다. 이런 그녀가 혼자 장애인 아버지에게 수면제를 먹여 살해한 뒤 집에서 약 6km 떨어진 외진 곳에 버렸다? 경찰은 물론 검찰도 사건 초기엔 이를 그대로 믿지 않았다. 끝없이 공범을 추궁했다.

주변 사람들도 이를 의아하게 여긴다. 김신혜 큰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이 의문을 단박에 해결해 준 사람이 있었단다. 바로 고모부 김정한이다. 역시 책 <니가 뭔데>에 상세히 담겼다.

"큰아버지는 '아침(2000년 3월 7일)에 동생(김신혜 아버지)을 부검하기 위해 옮기는데, 남자 두 명도 힘들어서 결국 밖에 있는 운전 기사까지 불러서도 간신히 옮겼는데 어떻게 신혜 혼자 그 일을 할 수 있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정한이 새로운 사실을 말했다고 한다. '실은 한 달 전에도 신혜가 아버지를 살해하기 위해 서울에서 남자 두 명을 데리고 왔다가 실패해서 그냥 올라갔다는 말도 하더라.'"

김신혜가 아버지를 살해하려 남자 두 명을 데리고 왔었다? 수사 기관에게 이것만큼 중요한 증언은 없다. 하지만 정작 고모, 고모부는 경찰-검찰-법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결국 사실이 아닌, 지어낸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난 1월 26일, 고모는 나와 박준영 변호사에게 또 거짓말을 반복했다.

"사건 한 달 전에 신혜가 저에게 전화를 해서 '고모, 나 아버지 미워서 죽이려고 남자 두 명 (완도에) 데려왔어요'라고 말했어요. 제가 '그러지 말아라'라고 말렸죠."

아버지 살해하려 사람 데려왔다는 걸 전화로 미리 설명하는 사람이 있을까? 고모는 정작 수사 기관에는 하지도 않은 이야기를 왜 외부 사람들에게 말할까.

[법정에서도 앞뒤 다른 발언] "둘 관계 안 나빠"

고모 말대로라면 김신혜는 사건 1개월 전에도 살해를 시도할 만큼 아버지에게 감정이 안 좋고, 둘의 관계는 나빠야 마땅하다. 하지만 고모는 2000년 6월 27일 증인으로 출석한 법정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했다. 당시 변호인이 김은정에게 "피고인(김신혜)과 사망한 아버지는 사이가 나빴나요?"라고 물었다. 그의 답변은 이렇다.

"아버지는 피고인밖에 몰랐고, 둘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김은정씨는 앞서 진행된 검사 신문에서는 판이한 이야기를 했다. 검사가 "김신혜가 왜 아버지를 살해했는지 이야기한 사실이 있나요?"라고 묻자 김씨는 이렇게 답한다.

"그런 것은 증인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구태여 김신혜에게 직접 물어보거나 확인하지는 않았습니다. 피고인도 말하지 않았으며, 평소 피해자의 행동으로 보아 그럴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검사가 "김신혜와 아버지의 관계는 최근 어떠했나요?"라고 재차 물었다.

"아버지는 딸에 대한 애착이 많았지만 주벽이 심해 김신혜를 많이 때렸고, 그래서 신혜는 학교 다닐 때 몇 번이나 자살을 기도한 사실이 있습니다."

자살 기도 여부는 차치하자. 김은정씨는 법정에서도 왜 모순된 이야기를 했을까? 판사는 왜 이런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을까?

이 밖에도 고모 김은정씨는 사건 당시 김신혜 변호인 선임을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책 <니가 뭔데>의 한 대목을 보자.

"김신혜 애인은, 신혜가 다닌 여행사 사장에게 변호사 선임을 부탁했다. 그러자 이 사실을 안 김은정은 여행사 사장에게 전화하여 '신혜 변호사를 선임하려면 반드시 나와 먼저 만나 상의한 후 해야 한다'고 고집했다고 한다. 여행사 사장은 김은정의 요구에 따라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목포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이러기를 두 번. 이상하게도 김은정은 이 두 번의 만남 약속을 아무런 연락 없이 모두 어겼다고 한다."

김신혜의 남동생 김종현도 당시를 떠올리며 "고모가 자꾸 약속을 어겨서 변호사 선임이 많이 늦어졌다"고 밝혔다.

지난 15년 동안 여러 언론이 김신혜 사건을 다뤘다. 그때마다 김은정씨는 주요 취재 대상이었다. "왜 자꾸 성가시게 하느냐"는 김씨의 말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김씨는 그동안 많이 시달렸을까? 헤어질 무렵 나와 박 변호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신혜 (감옥에서) 나오면 내가 총으로 쏴 죽일 거예요!"




태그:#김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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낸시랭은 고양이를, 저는 개를 업고 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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