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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3교 가운데 서서 바라보는 우두동은 그림 같다.

동네 앞을 흐르는 소양강이 햇볕을 받아 은하수처럼 반짝이며 흐른다. 강물을 따라 한줄로 늘어선 벚나무는 강물 속에도 똑같이 있다. 그리고 그 벚꽃들이 겨울날 함박눈처럼 나에게 달려든다.

강을 따라 늘어선 벚나무 뒤로는 알록달록 지붕들이 흐르고, 그 뒤로 세네 겹의 산이 병풍을 치고 있다. 각각의 산이 머금고 있는 각기 다른 푸른빛이 그 산의 자리를 짐작하게 한다.

한 쌍의 새가 어딘가로 '슈융~' 날아간다. 서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하지만 그 거리를 유지하며 유영하듯 자유롭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할머니, 자전거를 타고 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여기서도 다 보인다.

사랑, 난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소양3교에서 바라본 우두동 모습
 소양3교에서 바라본 우두동 모습
ⓒ 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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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같이 빛나는 소양강
소양강이 나에게 말했다. 
“너도 우리처럼 아름다워! 힘 내라구! 찬란하게 살라구!”
 은하수 같이 빛나는 소양강 소양강이 나에게 말했다. “너도 우리처럼 아름다워! 힘 내라구! 찬란하게 살라구!”
ⓒ 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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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양강이 '반짝 반짝' 내게 말을 건넨다.

"너도 우리처럼 아름다워! 힘내라고! 찬란하게 살라고!"

말소리가 들려오는 그곳을 바라보면서 멍하게 서 있었다.

"왜 그랬을까…. 왜 누군가에게 도움이 돼야만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나이 마흔이 돼서야 누군가를 돕지 않아도,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거다. '아이 착하다. 아이 예쁘다.' 그 말 속에는 '넌 착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말이 숨어 있었다. 아니, 내가 그렇게 느꼈다.

돈을 빌려가서는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이 있어도 '그 사람도 가장인데 내가 자꾸 재촉하면 삶을 비관하지 않을까' 걱정이 돼 달라는 말도 제대로 못했다. 택시를 타도 기사님이 차를 돌려 나오기 어려운 골목길 앞. 택시에서 내려서 비탈길을 걸어 올라갔다. 여럿이 함께 하기로 한 일인데 내가 대부분의 일을 떠맡게 돼 힘들어도 내가 힘든 모습을 보이면 다른 사람들이 미안해할까봐 힘든 내색도 못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생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 편이 돼줄 수 있는 사람은, 나를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헤르만 헤세는 그의 소설 <데미안>을 이렇게 시작한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이제 우두동 안으로 들어가 본다. 우두동은 우두상리, 중리, 하리로 나뉘는데 내가 구경한 곳은 우두상리로 새주소 '우두 상리길'을 따라 이어진 마을이다.

"여기 왜 이렇게 예뻐요?"

우두동에서 만난 아이, 스스럼없이 자유롭게 포즈를 취해주었다.
 우두동에서 만난 아이, 스스럼없이 자유롭게 포즈를 취해주었다.
ⓒ 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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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집 앞에서 놀고 있다.

"안녕? 나 여기 구경 왔어."
"저쪽 좋아요."
"응? 저기가 구경하기 좋아?"
"네~."
"내가 사진 찍어도 될까?"

카메라를 렌즈를 앞으로 내밀며 묻자, 바로 포즈를 취한다. 곁에서 동네 할머니와 이야기 나누던 아이 엄마가 "쟤가 저래요~, 어린이집을 안 다니거든요, 사람들이 오면 저렇게 좋아해"라고 말한다. 동네가 아름답다는 내 이야기에 아이 엄마가 말한다.

"춘천에 이사 온 사람들이 지나다 보고 구경 와서 '여기 왜 이렇게 예뻐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우리 신랑이 여기가 고향인데, 자기가 그래요. 어렸을 때 그림 속을 들어갔다 나왔다하며 살았다고. 땅도 좋아서 열무 심어놓고 20일만 지나면 그냥 먹어요. 아무것도 안 해도 잘 커요."

옆에서 이야기 나누던 할머니도 "여긴 공장이 없어서 살기 좋지"라면서 한마디 거드신다. 땅도 좋고 경치도 좋고 사람도(만난 세 분도) 좋고. 다 좋다!

조금 전 만난 여섯 살 종윤이가 알려준 방향을 따라 조금 더 걸어가 본다. 집을 끼고 있는 밭들이 보인다. 씨앗만 심으면 되게 밭이 예쁘게 갈려 있다. 동네는 고요하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골목에 이따금 한두 명이다. 집들은 집을 지을 때 달았을 나무 대문과 철문을 그대로 달고 있다. 나무 대문은 칠이 나무결을 따라 바랬는데 그게 더 멋스럽다. 집들을 구경하며 골목을 걷는다. 편안하고 신비롭다. 

텃밭을 품은 우두동의 집. 모습이 정겹다.
 텃밭을 품은 우두동의 집. 모습이 정겹다.
ⓒ 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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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두동 앞 '물안개 피어나는 야생화 산책로'를 걷는 엄마와 딸
 우두동 앞 '물안개 피어나는 야생화 산책로'를 걷는 엄마와 딸
ⓒ 설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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왔던 길을 다시 걸어 동네를 빠져 나온다. 강가 산책로를 걷는 엄마와 딸이 보인다. 하늘과 강과 나무들과 어우러진다. 한 폭의 그림이다.

신비로운 분위기에 취해보고 싶다면, 한 폭의 그림 속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춘천의 우두동을 걸어보시라. 운이 좋다면 나처럼 소양강이 당신에게 하는 '인생에 꽤나 필요한'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찾아가려면>
춘천역에서 내려서 역 맡은편 버스정류장에서 소양초등학교가는 버스 탑승.
→ 소양초 하차 → 버스 가는 방향으로 약 50m 직진. 길 끝 횡단보도 건너 오른쪽을 바라보면 소양3교가 보임. → 소양3교 앞으로 강을 따라 펼쳐진 마을.


태그:#춘천, #우두동, #마흔 여행, #춘천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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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 글쓰기를 즐기는 사회복지사, 시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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