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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노래하는마음
 별을노래하는마음
ⓒ 김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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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어느 날 방청소를 하다가 우연히 처음 보는 책을 발견했다. 그 책은 첫눈에 보아도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그것은 윤동주 시인의 <별을 노래하는 마음>이었다. 정리하기 전에 한번 들춰나 보자 하는 마음에 첫 장을 넘겼고, 그 속엔 왠지 모르게 세상에서 가장 짠한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이 아름다운 시집을 이병택군에게 드립니다. 1986년 11월 2일 누나가.

이 한 문장이 왜 이렇게 짠했을까? '이병택군'은 나의 외삼촌이고 '누나'는 나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문장에서 아주 당연하지만 미처 몰랐던 것을 깨달았다. 엄마도 나의 엄마가 아닌 한 남동생의 누나였고, 그전에 한 소녀였다는 것이다.

별을노래하는마음2
 별을노래하는마음2
ⓒ 김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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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이면 엄마가 1970년생이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임은 물론이고 엄마가, 아니 그 소녀가 고등학교 1학년일 때다. 외삼촌, 아니 이병택군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엄마는 어린 시절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수곡2동이라는 아주 시골에서 자랐다.

이곳은 그때도 지금도 학교를 가려면 2~3km를 걸어야 하는 곳이다. 엄마는 3남 2녀 중 첫째이고 외삼촌은 둘째이다. 외삼촌은 어려서 공부를 잘했고 백일장에서 상을 받아올 정도로 문학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런 동생에게 시집을 선물하는 누나의 마음이, 나의 엄마이기 이전에 그 소녀의 모습이었다.

외삼촌은 변변치 못했던 집안 사정에 많은 식구들, 그 외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좋은 교육을 받지 못했고, 아쉽게도 어렸을 적 품은 꿈을 이루진 못했다. 하지만 이 시집의 첫 문장은 외삼촌을 시인으로 만들지는 못했지만, 지금 내겐 이 시집 안의 모든 시보다도 더 내 마음을 울리는 시가 되었다.

별을노래하는마음구절
 별을노래하는마음구절
ⓒ 김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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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엄마와 외삼촌의 통화를 듣는다. 좋은 말만 오가지는 않는다. 돈 이야기로 목소리가 커질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에게 미안하다. 엄마는 나의 엄마이기 이전에 동생을 사랑하는 누나였고, 그전에 꿈을 가진 한 소녀였다. 하지만 지금은 나의 엄마로서, 그때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처럼 지금은 나 때문에 그렇게 얼굴 붉히며 통화하게 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아침 7시에 일어나서 나랑 아침식사를 하고 8시쯤 출근을 한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때에 따라 저녁 6~8시 사이이다. 나는 저녁 10시쯤 학교에서 집에 오는데, 집에 오면 엄마에게 "엄마, 김치볶음밥!"이라고 외치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러면 엄마는 순식간에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준다. 엄마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못하는 나도 천성 무뚝뚝한 아들인가 보다.

나는 장난 반 진담 반으로 "엄마, 보고 싶은 영화나 공연 있으면 돈 아끼지 말고 보고, 가고 싶은 곳 있으면 여행도 다녀와. 그리고 영수증 나한테 줘. 내가 나중에 커서 청구해줄게" 하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웃으며 "웃기고 있네" 한다. 그러고는 나와 내 동생이 필요하다는 물건엔 아낌없이 돈을 쓴다. 아마 엄마는 지금도 본인보다 나와 내 동생을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요즘 엄마는 항상 여행프로그램이 나오는 채널에 TV를 맞춰놓는다. 그곳에서는 자유로워 보이는 출연자가 오늘은 아시아, 다음번엔 유럽을 마음대로 돌아다닌다. 엄마는 TV를 보다 잠이 드는데, 아침부터 출근해서 저녁이 돼야 퇴근하고 피곤한 몸을 누이면 꿈 속에서 자유롭게 유럽을 누비나 보다.

엄마가 나의 엄마이기 전에, 외삼촌의 누나이기 전에, 한 소녀였을 때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세계를 자유롭게 누비는 것은 아니었을까?


태그:#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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