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16일,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응준(45)씨가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이 작가는 '앞으로 자신의 문단 생활을 걸고 신 작가의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한다.

"소설가 신경숙씨가 1996년에 발표한 단편 '전설' 중 일부 구절이 일본의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의 '우국'을 표절했다." 

처음 이 의혹이 제기됐을 때 문단에서는 신 작가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입장과 소설의 한 구절을 두고 표절로 판단하는 것은 섣부르다는 입장이 엇갈렸다. 일부 온라인에서는 신 작가의 표절을 운운하는 것은 전관예우(?) 차원에서 건들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왔다.

사실 신 작가의 표절 의혹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0년, 문학평론가 정문순(46)씨도 문예중앙 가을호에 신 작가의 표절을 주장했지만 알게 모르게 지나갔다. 그러나 그후로 15년이 흐른 지금은 당시의 온라인 상황과 비교도 할 수가 없다. 블로그를 비롯해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으로 인터넷은 초토화됐다.

하루만에 입장 바꾼 창비, 그 이유는?

창비 홈페이지에 올라온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
▲ 창비 홈페이지 캡쳐 화면 창비 홈페이지에 올라온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
ⓒ 이규승

관련사진보기


"해당 작품은 알지도 못한다.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내 독자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게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

처음 표절 의혹이 제기된 다음날 창비를 통해서 신 작가가 입장을 표명했다. 이와 관련해 창비는 한발 더 나아가 보도자료를 배포해 표절 의혹을 일축했다.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 데다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

"표절 시비에서 다투게 되는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나 '부분적 문헉적 유사성'을 가지고 따지더라도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

하루 사이에 표절 의혹은 뜨거운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발표 직후 창비 게시판에는 작가와 출판사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심지어 창비직원이라는 닉네임의 네티즌이 자성의 목소리를 내 화제가 모았다.

"한 동료가 '창비가 아니고 창피다'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회사가 하루빨리 입장을 철회하고 사과할 것을 바란다." (창비직원Z)

"부끄럽고 실망스럽다. 회사의 기괴한 입장 표명이 바로 한국 문학에 대한 갑질이 아니고 무엇이냐" (창비직원A)

창비가 어떤 회사인가. 1966년 계간지 <창작과 비평>으로 출발해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정황과 맞물려 민주화를 열망하던 지식인 사회의 통로 역할을 했다. '창비의 구독은 의리다'라 말할 정도로 단순한 출판사 이상이다.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와 더불어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여길 정도다. 그런 창비는 작품 하나에 수백억 매출을 보장하는 거대 작가를 보호하기에 급급했다. 점점 더 악화되는 여론과 누리꾼들을 인식해 지난 18일 홈페이지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을 게시했다.

"먼저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과 관련하여 6월 17일 본사 문학출판부에서 내부조율 없이 적절치 못한 보도자료를 내보낸 점을 사과드립니다. 이로써 창비를 아껴 주시는 많은 독자들께 실망을 드렸고 분노를 샀습니다.

지적된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독자들이 느끼실 심려와 실망에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야 했습니다.

한국문학과 함께 동고동락해온 출판사로서 이번 사태에 대해 신중하게 판단하지 못한 점은 어떤 사과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제기된 사안에 대해서는 작가와 논의를 거쳐 독자들의 걱정과 의문을 풀어 드리기 위해 노력하는 필요한 후속조치를 마련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19일 급기야 신 작가가 검찰에 고발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루이제 린저의 장편소설 '생의 한가운데' 일부를 표절한 혐의로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이 업무방해와 사기 혐의로 신 작가를 수사해달라며 고발했다. 이뿐만 아니다. 재미교포 안승준의 유고집 '살아는 있는 것이요', 마루야마 겐지의 장편 '물의 가족' 등 신 작가의 표절 의혹이 다시 수면위로 되살아나 이목을 끌었다.

한국 문학의 몇 가지 고질적인 문제점

신경숙 작가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2015년의 신 작가 위상은 2000년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도 없을 정도로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녀는 문단 권력의 맨 꼭대기에 있는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로 내놓는 작품마다 판매 차트의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대형 출판사라 일컫는 메이저 출판사에서 돌아가며 책을 낼 정도로 스타 중에 스타 작가다. 그런 작가를 출판사가 보호하는 것은 '자본의 논리'로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한국 문학의 몇 가지 고질적인 문제점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일단 문학 작품의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정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심지어 인터넷에서는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그만큼 찬반 논란은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음은 절차의 문제다. 표절 여부에 대한 수사권은 문화체육관광부가 담당한다. 표절에 대한 수사는 당사자의 고소가 있어야 수사가 진행될 수 있을 정도로 표절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는 출발 자체가 쉽지 않다. 그것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라면 더욱 어렵다.

이번 일을 지켜보면서 문단 안팎에서 표절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그러나 15년 전과 같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던 상황이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자본이라는 수익구조에 기대해 대형작가와 거대 출판사의 보이지 않는 권력 관계를 침묵하는 것을 분명 잘못된 관습이다. 더 이상 누리꾼들은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라든지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이라는 난해한 용어의 사용으로 판단이 흐려질 만큼 어리석지 않다. 그 다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판단하는 대로 작가와 출판사가 행동하길 기대한다.


태그:#창비, #신경숙, #표절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치는 빼고 문화만 씁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한겨레신문에 예술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사람in예술' 코너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