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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로 토론하는 아이들
 아파트로 토론하는 아이들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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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벌이 6년 차인 우리 부부, 지난 6월 29일엔 오랜만에 아내가 연차를 냈습니다. 아내는 모처럼 방과 후 태권도장에 갔다가 집에 들어오는 아이들을 반갑게 맞아줬답니다. 평소엔 아내가 퇴근하고 올 때까지 집에 아이들만 있었는데 이날은 엄마가 아이들을 기다렸습니다.

첫째는 9살(2학년), 둘째는 7살(유치원생)입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갔을 때 엄마가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을 무척 부러워합니다. 종종 그런 친구들 이야기도 하고요. 당연하다 생각합니다. 그런 아이들이 정서적으로도 안정될 것이고... 또 아이들끼리만 집에 있다가 생길 수 있는 안전사고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형편상 쉽지 않고...

이제 곧 헐리게 될 아파트입니다. 오래된 아파트지만 동과 동 사이의 거리가 넓어 여유있게 산책도 하고 뛰어 놀 수 있는 공간도 충분했습니다. 재건축이 되어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면 옛날의 한적함은 사라질 것 같습니다.
▲ 아파트 사이 길을 걷고 있는 아이들 이제 곧 헐리게 될 아파트입니다. 오래된 아파트지만 동과 동 사이의 거리가 넓어 여유있게 산책도 하고 뛰어 놀 수 있는 공간도 충분했습니다. 재건축이 되어 높은 아파트가 들어서면 옛날의 한적함은 사라질 것 같습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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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첫째가 학원 끝나자마자 집으로 왔는데, 엄마가 있었답니다. 깜짝 놀란 아들은 환하게 웃으며

"엄마! 오늘 회사에 안 갔어요?"
"응, 우리 아들 학교에서 오는 거 보려고 오늘은 안 갔지!"
"엄마! 엄마가 집에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집에 있으면 안 돼요?"

아내에게 이 말을 전해 들은 저는 콧등이 시큰거렸습니다. 아직은 엄마의 품에서 놀아야 할 아이들입니다. 마음이 짠해진 아내가 그랬답니다.

"그래, 엄마가 한 달에 한 번은 꼭 집에서 우리 아들 기다릴게."
"진짜요? 정말요? 네! 좋아요!"

두 아들이 큰소리로 합창을 했답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퇴근하고 집에 오니, 아이들이 굉장히 흥분해 있더라고요. 아이들은 제 얼굴을 보자마자 침을 튀기며 얘기를 늘어놓습니다.

"아빠! 오늘 엄마가 집에 있었어요. 그리고 엄마가 떡볶이도 해줬어요. 너무 좋았어요."
"그래? 우리 아들,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기분 좋았어?"
"네! 좋았어요. 엄마가요, 한 달에 한 번은 집에서 학교 앞에서 저를 기다린대요."
"그렇게 좋아?"
"네, 정말 정말 좋아요."​

마음이 아려오는 건 당연하겠죠? 우리도 맞벌이가 싫지만 뻔한 살림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루 빨리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첫째와 엄마의 학습 토론

무슨 말이 그리도 많은지 재잘재잘. 아들만 둘이어서 아쉽기도 하지만 티격태격 싸우다가도 금세 "형아, 형아"하면서 따라다니는 걸 보면 참 보기 좋습니다.
▲ 떡볶이 먹는 아이들 무슨 말이 그리도 많은지 재잘재잘. 아들만 둘이어서 아쉽기도 하지만 티격태격 싸우다가도 금세 "형아, 형아"하면서 따라다니는 걸 보면 참 보기 좋습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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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아들이 아내와 국어 단원 평가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아들! 이게 아니고 저거잖아."
"아니에요. 이게 맞아요."
"어떻게 이게 맞아. 저거지."
"아이, 제가 맞아요. 이거예요."

아들은 엄마가 가리킨 것이 정답이 아니랍니다. 아내 역시, 이것도 모르는 아들이 답답하다고 생각하며 물러서지 않습니다. 이렇게 팽팽하게 대치하기 10여 초, 아들이 미끼를 던집니다.

"엄마! 제가 맞으면 어떡하실 거예요?"
"네가 맞으면 천 원 줄게."
"네, 알았어요."​

의기양양한 아내는 뒷면의 답안지를 훑어봅니다. 표정이 어두워집니다. 헉~ 아들 말이 맞았던 겁니다.

"어라? 정말이네?"
"엄마 맞죠? 공부 다시 하셔야겠네요."

'시크'한 표정을 짓는 첫째, 엄마에게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그래 미안하다."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뭐. 천 원 주세요."

결국 아들이 이기는 바람에 아내는 천 원을 내놔야 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보면 이것도 맞는 거 아냐?"
"그럴 수도 있는데요, 그래도 답은 이거예요."

아이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던집니다.

"역시 난 아빠하고 공부하는 게 맞나 봐요."
"……."​

너는 할머니랑 결혼할 거냐?

엄마와 문제를 풀다가 이겼습니다. 보상으로 1천원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나서 엄마에게 비수를 꼽는 말을 던졌습니다. "공부 더 하셔야겠네요"
▲ 시크한 아들내미 엄마와 문제를 풀다가 이겼습니다. 보상으로 1천원을 받았습니다. 그러고나서 엄마에게 비수를 꼽는 말을 던졌습니다. "공부 더 하셔야겠네요"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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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두 놈이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조용히 들어봤습니다.

"형아, 나는 커서 엄마랑 결혼할 거야."
"야, 너는 할머니랑 결혼할 거냐?"
"엄마가 할머니야?"
"그때 되면 엄마는 할머니가 되잖아."

아내와 저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한참을 웃었습니다.

"엄마, 엄마가 나중에 할머니 돼요? 정말이에요?"
"응. 엄마는 그때 되면 할머니가 되지."

첫째가 아주 심각하게 동생에게 말을 합니다.

"거봐, 엄마는 나중에 할머니 돼! 그래도 엄마랑 결혼할 거야?"
"…싫어."

그렇지요. 우리도 조금 있으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겠죠? 세월 참 빠릅니다. 어렸던 아이들이 벌써 이런 말을 하는 걸 보니까요.

아이들의 열띤 부동산 토론​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재건축이 결정됨에 따라 올해 10월부터 집을 비워야 합니다. 이리저리 집을 알아보고 있습니다만 10개 동이 넘는 주민이 한꺼번에 부동산으로 몰려나오기 때문인지 쉽지 않습니다. 전세는 물량도 없고요. 그렇다고 지은 지 얼마 안 된 아파트로 들어가기에는 형편이 안 됩니다.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 아이들도 이러쿵저러쿵 얘기가 많습니다. 이제 9살, 7살인데 '전세가 어떻고', '어디 아파트가 얼마네', '저기 아파트가 얼마네' 이러고 있네요. 어느 날, 앞 동에 사는 8살 아들 친구가 놀러 왔습니다. 그러더니 우리 아들에게 말합니다.

"나는 ○○캐슬로 가고 싶다."

우리 첫째가 대답합니다.

"거기는 4억이야."
"4억?"
"응, 내가 봤어. 4억이래."

듣고 있던 둘째가 한마디 더 얹습니다.

"아냐 형아! 5억이라고 쓰여 있었어."

그러더니 놀러 온 애가 눈이 동그래져서 묻습니다.

"5억? 에이, 5천이겠지"
"아냐, 5억이야. 그리고 4억은 ◇◇ 아파트야."

그러더니 마지막으로 둘째 놈이 쐐기를 박습니다.

"형아, 우리는 돈이 없어서 월세로 가야 한대."

아이들이 우리와 함께 부동산을 돌아다니면서 아파트나 빌라 등의 매매가와 전셋값을 보더니 이제 웬만한 아파트 평수의 매매가 정도는 다 알고 있습니다. '웃프'네요. 그나저나 울산의 아파트 가격이 1~2년 사이에 급등했습니다. 3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엄청나게 올랐습니다. 

누구는 미리 집을 장만하지 못해 아쉽다는 얘기도 하고요, 신축 아파트 전매를 해서 돈 좀 만졌다는 사람도 있고요.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 때문에 금리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하우스 푸어를 자처한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집니다. 정부에서는 경제 불황을 타개하고자 일단 거품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 같고... 어떨 때는 무주택자인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아이들 입에서 아파트 전세가 얼마고, 판매 금액이 얼마고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매몰찬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학교 폭력'이니 '왕따'를 들먹이는가 하면, 어느 반 아이가 '메르스'에 감염되었다고 학교 안 가면 안 되겠냐고 아빠 얼굴을 보며 심각하게 이야기 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지나간 발자국입니다. 아이들을 보면 부모들이, 어른들이 어떻게 처신하는지를 볼 수 있고, 사회가 어떤 모습을 만들어 가는지 어림짐작할 수 있습니다. 해답을 찾지 못 한 오늘도 그냥 그렇게 하루가 지나갑니다.

○ 편집ㅣ조혜지 기자



태그:#아파트 재건축, #엄마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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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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