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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21~23일, 삼성의 일방적 보상을 항의하는 피해 당사자들이 강남역 삼성 본관 앞에서 증언을 하고 있다.
▲ 삼성 직업병 피해 노동자 이어말하기 - 삼성의 중심에서 '나'를 말하다 2015년 9월 21~23일, 삼성의 일방적 보상을 항의하는 피해 당사자들이 강남역 삼성 본관 앞에서 증언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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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회사'란 무엇일까? 지난 21일~23일, 지난 3일 동안 강남역 8번 출구에 있는 삼성 본관 앞에 앉아있는 동안 머릿속을 떠다닌 질문이다. 투병을 하는 피해자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아들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들은 지금, 삼성에 문제가 많다고 말하고 있었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아래 반올림)과 피해자들이 개최한 "삼성의 중심에서 나를 말하다 - 직업병 피해자 이어 말하기"에서였다.

고3 때 삼성에 입사한 그녀의 이름은 김미선. 1997년부터 3년 동안 삼성 LCD 라인에서 일하던 중 '다발성 경화증' 진단을 받는다. 납과 유기용제를 취급했다던 그녀는, 마비와 시신경염을 반복적으로 겪는다. 희귀 난치병이다. 약도 없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통증은 그녀가 평생 달고 살아야 한다. 결국, 시력을 잃었고, 시각장애 1급이 되었다. 삼성 본관 앞에서 증언하기 위해,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두드리며 지하철을 타고 강남역으로 왔다.

"3교대로 물량이 밀려 작업을 계속해야 했어요. 창도 없는 회사에서 쳇바퀴 돌 듯 생활한 게 너무 힘들었어요. 일할 때 납땜도 하고 약품도 다루니까, 이곳에서 오래 일하다가는 건강에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결국, 이렇게 평생 달고 살아야 할, 홀로 죽을 때까지 아파야 할 병에 걸렸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진실은 여전히 미궁

9월 21일, 삼성 직업병 피해자 김미선씨는, 삼성 본관 앞에서 삼성에서 일을 하던 당시의 이야기를 했다.
▲ 삼성 직업병 피해자 김미선씨 9월 21일, 삼성 직업병 피해자 김미선씨는, 삼성 본관 앞에서 삼성에서 일을 하던 당시의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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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업체 현장소장이었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을 앓다가 돌아가신 고 손경주씨 아들, 손성배씨의 이야기다. 아버지는, 자신이 왜 병에 걸렸는지 너무도 궁금해하셨다. 그래서 자료를 아주 많이 모아두셨다. 그냥 덮어두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남기고 가셨다. 그는 돈보다 더 중요한 '진실'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는 삼성이 하겠다는 보상에 대해 궁금해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구제하는 평가를 하고 기준을 만들면 어떻게 된다는 걸까. 손성배에게 삼성은, '애증'이라고 했다. 그동안 가족이 생활할 수 있게 돈을 버는 공간이었지만,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했고, 그걸 떳떳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삼성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보상'만 하겠다는 것은 지난 과거를 반성하지 않겠다는 소리이고, 앞으로 재발방지를 안 하겠다는 선언이 아닌가요?"

같은 날 패널로 함께 나온 삼성전자서비스노동자 박성주씨도 말한다.

"삼성은 늘 충분히 안전하게 작업할 시간을 주지 않았어요. 어느 날 산재신청을 하려고 했더니 관리자가 그러는 거예요. 그런 거 다 해주면 삼성이 있었겠느냐? 삼성에는 반도체 관련 특허가 대단히 많더라고요. 글로벌 기업답게,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는 특허를 만들어서 내면 얼마나 멋있을까요?"

지난 23일 마이크를 잡은 피해자는 김희진(가명)씨. 삼성은 기흥 공장에 이어 온양에도 반도체 공장을 세우게 되는데, 그곳의 초창기 멤버이다. 1991년도, 허허벌판에 지어진 공장에서 일하고, 숙소에서 잠만 자는 생활을 8년 동안 했다. 하루도 못 쉬는 달이 많았고, 맞교대였다. 장시간 노동 1위 국가답게, 하루 12시간 동안 일을 했다. 그녀는, 높게 솟아있는 삼성 건물을 보면서 울먹였다.

"저 건물을 지어주려고 제가 그렇게 열심히 일 한 건가요?"

안전교육을 한 번도 받지 못한 그녀는, 어떻게 하면 불량이 안 날 수 있을까 연구하고, 잘못될까 봐 지속해서 시험도 봤다. 3교대로 바뀐 뒤에도, 한 달에 하루 쉬는 일이 아주 가끔만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갑상샘 암을 앓고 있다. 류머티즘도 앓고 있다. 그리고 뇌척수막염도 앓고 있다. 상피내암종은 바로 전 단계까지 와 있다. 한두 개의 병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아들 이야기를 하며 결국 눈물을 터트렸다. 8년을 일하는 동안 결혼을 했고, 임신을 한 채 퇴사하게 되었다. 아이는 선천성 거대결장이라는 병을 안고 태어났다. 지금 고등학생이 된 아들은, 장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 김희진씨는, 공장이 막 지어져 모든 것이 위험한 시절에 삼성에서 일한 베테랑 노동자다. 그녀가 삼성에 묻고 있다. 정말 잘못이 없느냐고.

함께 패널로 나온 이상윤 의사(직업환경의학, 노동건강연대 대표)는 일갈했다. 삼성이 피해자들을 그냥 둔 채, 일방적으로 정한 보상 기준을 두고 하는 말이다.

"상식선에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직업병은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다가, 일과 관련해서, 일 때문에, 일하면서 일에서 나오는 유해물질 때문에 걸리는 병도 직업병이지만, 일 때문에 쉬지를 못해서, 다른 일을 못 해서 생기는 병. 법률적으로 엄격한 정의가 아니라, 상식이 의미하는 바는, 그 직업을 가지지 않았더라면 걸리지 않을 병, 아파한다면 그게 직업병이다. 그게 상식이다."

삼성의 보상 발표와 언론의 받아쓰기

2015년 9월 22일, 강남역 삼성 본관 앞에서 열린 피해자 증언을 하고 있는 손성배씨. 아버지가 삼성 협력업체 소장으로 일을 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다.
▲ 삼성 직업병 피해자 유가족 손성배씨 2015년 9월 22일, 강남역 삼성 본관 앞에서 열린 피해자 증언을 하고 있는 손성배씨. 아버지가 삼성 협력업체 소장으로 일을 하다가 백혈병에 걸려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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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삼성은 그간 진행해오던 조정에 의한 사회적 기구 설립이 아니라, 내부에서 해결하겠다며 보상을 발표했다.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동생이 언론을 보고 연락을 해왔다. "오~ 잘됐네! 이제 뭐가 좀 되는 거야?", "정말 그렇게 보이는 거지?"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다.

삼성 백혈병 최초 피해자로 세상에 알려진 고 황유미씨 아버님 황상기씨와 반올림이 삼성이 위험하다고 세상에 소리 지른 세월이 8년이다. 처음엔, 최첨단 산업 반도체의 클린룸이 위험할 리 없다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피해자 제보가 계속 늘어 2015년 9월 현재, 삼성 계열사 제보를 종합해보면, 293명이 직업병을 앓고 있고, 106명이 사망했다.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고, 세상 사람들도 더는 삼성은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공유할 때 즈음, 정확히는 2014년 5월 14일, 삼성전자는 처음 공식 사과를 하게 된다. 권오현 부회장의 사과 내용 중에는 "제안해 주신 바에 따라 어려움을 겪으신 당사자, 가족 등과 상의하여 공정하고 객관적인 제3의 중재기구가 구성되도록 하고 중재기구에서 보상기준과 대상 등 필요한 내용을 정하면 따르겠다"고 밝혔다.

부회장의 사과 이후 정식 협상이 시작되었다. 피해자 가족들을 대표하는 반올림과 삼성이 협상 테이블을 구성했고, 뉴스를 접한 더 많은 피해자의 제보가 이어졌다. 협상의 내용은 크게, 사과, 재발방지대책, 보상이었다. 이 과정에서, 보상 협상이 먼저 필요하다는 몇몇 가족이 대책위를 꾸렸다.

그렇게 3자 협상이 진행되던 중, 6명 가족 대책위가 '조정위원회'를 두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삼성과 반올림이 이를 받아들였고, 조정위원회가 구성되었다. 김지형 전 대법관과 정강자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초빙교수,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환경보건학과 교수로 구성된 조정위원회는, 2014년 12월 9일부터 5차례의 조정기일을 가진 후 2015년 7월 23일 권고안을 내놓았다.

조정위는 "이번 조정 사안은 개인적 사안을 뛰어넘어 사회적 사안"이라며 보상과 재발방지에 초점을 맞춘 중재안을 내놓았다. ▲ 삼성전자가 1000억 원, 한국 반도체 협회가 '적정 규모 액수'의 기부를 해서 공익법인을 설립할 것 ▲ 공익법인이 환경·안전·보건·관리 분야 등 전문가 3인을 옴부즈맨으로 임명해 삼성전자 사업장을 점검해 개선방안을 권고할 것 ▲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삼성전자 대표이사의 공개 사과 등의 내용이었다.

"조정위는 보상 대상자를 '삼성전자의 반도체 및 LCD 사업장에서의 생산 등 작업공정, 관련 시설의 설치·정비 및 수리 등 업무에 2011년 1월 1일 이전부터 일하기 시작한 근로자'로 정했다. 보상 대상 질병도 1군(백혈병, 재생불량성 빈혈, 유방암 등 업무 연관성이 높다고 인정된 질병), 2군(뇌종양, 유산·불임 등 인과성이 충분하다고 볼 수 있는 질환), 3군(선천성 기형 등 차세대 질환, 다발성 경화증 등 희귀질환, 희귀암, 난소암) 등으로 나눠 설정했다." - <Daum 백과사전> 삼성 백혈병 등 직업병 논란 중에서

한국에는 이미 직업병 싸움을 통해 사회적 기구를 만든 사례가 있다. 1988년, 원진레이온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죽음과 질병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원진레이온은 직업병 문제를 제기한 노동자 4명에게 600만 원을 주며 이를 무마하려고 했다. 결국 "원진 직업병 피해자 및 가족협의회"가 꾸려졌고, 이 싸움으로 "원진 직업병 관리재단"이 만들어졌다. 2003년, 재단은 직업병 전문병원을 설립하고, 17개 진료과를 두고 직업병 문제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현재까지 직업병으로 인정받은 노동자 가운데 163명이 숨졌고, 700여 명의 생존자는 꾸준한 치료를 받고 있다. 피해 노동자들의 삶은 계속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에 따라 만들어진 기구를 통해 이를 지속해서 지원하고, 유사한 직업병을 개발, 재발 방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직도 이야기하는 이유

우리가 사는 시대의 가장 큰 직업병 문제는 글로벌 기업 삼성이 만들었다. 일을 하다가 한 명만 사망해도, 그것은 단순히 한 명의 사망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다. 이 사회 구성원인 누군가가 사망한 문제이다. 더구나 한국의 기업들은 국민의 세금 지원을 통해 덩치를 키워왔고, 공장으로 통하는 도로와 기반시설 모두가 세금으로 지어졌다. 그에 온당한 책임을 져야 함이 마땅하다. 그래서 늦었지만, 삼성도 조정위원회 구성에 동의했고, 이 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단독으로 보상하겠다는 것일까? 조정위원회의 권고안을 거부한 삼성은, 예상대로 사회적 합의도 없는 기준을 만들어 보상한다고 발표했다. 많은 피해자가 그 기준에서 제외되고 있고, 이미 투병을 하는 노동자들은, 더는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55명의 피해자는 "삼성의 독단과 기만에 분노한다"는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이미 외국에서는 직업병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지기 위한 기업들의 기금지원이 이어지고, 합당한 기준을 연구하고 사회적 합의체를 꾸리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한국엔 이미 사례도 있지 않은가. 삼성도 우리 사회의 좋은 회사가 되고 싶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2015년 9월 24일 저녁 7시, 삼성 본관 앞에 피해자들이 다시 모인다. 삼성은 이제라도 그들의 이야기에 제대로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삼성, #직업병, #백혈병,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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