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소셜 미디어(Social Media)의 발달은 오랫동안 한국에 체류하다 본국으로 돌아간 이주노동자들과 소통하는데 더할 나위없는 편리함을 줍니다. 그들 중에는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십여 년 전 사진을 보내오며 소식을 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질문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페이스북 메신저로 노래 가사를 물어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1995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와서 15년 가까이 일했던 인도네시아인 엔다였습니다. 출국 당시 한국어 전공 유학생들보다 훨씬 한국어를 잘했던 엔다는 지금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둔 학부모가 되었습니다.

"설날 노래 가사 줌 번해 주세요."
"설날? 한국어를 인도네시아아로?"
"아니 한국 노래... 같이 같이 설날은, 그거요"

설날 노래를 '같이 같이'라고 하고 있다.
▲ 설날 노래 가사 요청 문자 설날 노래를 '같이 같이'라고 하고 있다.
ⓒ 고기복

관련사진보기


처음 문자를 받았을 때는 한국어를 인도네시아어로 번역해 달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아장아장 걸을 때 귀국했던 딸아이에게 가르칠 노랫말을 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부탁한 노래가 '같이 같이 설날은'이라는 겁니다. 노래 제목이 이상하긴 했지만 일제강점기였던 1927년에 윤극영 선생께서 작사 작곡한 동요 '설날'을 뜻한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와 함께 '같이 같이'라는 말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습니다.

사실 어릴 적에 설날이면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하며 한 번쯤 흥얼거리지 않은 사람이 있겠습니까? 또한, '왜 까치 설날일까?' 하는 질문을 해 보지 않은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그런 의문을 가졌던 사람도 '까치'가 새가 아닐 거라는 생각은 쉽게 하기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설날만 되면 우리는 늘 희망찬 새해를 소망하며 까치가 울기를 기대했으니까요. 그런데 '같이 같이 설날은' 가사를 보내달라는 문자를 받고 보니, 다시금 의문이 생겼습니다.

'왜 까치 설날일까?'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까치 까치 설날은 일제가 강요했던 양력설이고, 우리 우리 설날은 음력설이라고 얼핏 들었던 기억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 봤습니다. 옛날에는 섣달 그믐을 '아치설' 혹은 '아찬설'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아치'는 '작다'는 뜻의 옛말로 아치가 음이 비슷한 '까치'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날을 까치설날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결국 '까치'는 새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이었는데, 점차 그 의미가 변형되어 '새'를 뜻하게 된 것이죠. 그런데 요즘은 길조로 사랑받던 까치가 사과, 배, 포도 등 과일을 쪼아 먹어 농가에 상당액의 손해를 끼치고, 전신주에 둥지를 틀어 합선 사고 등을 일으키는 주범으로 꼽히면서 해조 취급을 당하는 걸 보면 까치 신세도 참 많이 처량해졌습니다.

'까치 까치 설날은' 온 가족친지가 함께 한다는 뜻에서 '같이 같이 설날'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 합니다.

엔다는 15년을 한국에 살면서 설날만 되면 '설날' 동요를 들었을 것입니다. 배우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까치'가 새가 아니라, 사람이 함께 한다는 뜻의 '같이'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왜냐하면, 설만 되면 한국인들은 전국 곳곳에서 고향을 찾아 한 자리에 하는 것을 보았으니까요.

몇 시간씩 고속도로가 막히는 것을 감수하면서 고향에 가는 사람들을 보며 엔다는 '나도 고향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숱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가족이 '같이 같이' 하는 명절을 보내는 상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까치 까치 설날은' 온 가족친지가 함께 한다는 뜻에서 '같이 같이 설날'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닌 듯합니다.

설날
- 윤극영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
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
우리 언니 저고리 노랑 저고리
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아버지와 어머니 호사하시고
우리들의 절 받기 좋아하셔요
우리 집 뒤뜰에는 널을 놓고서
상 들이고 잣 까고 호두 까면서
언니하고 정답게 널을 뛰고
나는 나는 좋아요 참말 좋아요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princeko에도 게재했습니다.



태그:#설날, #까치설날, #이주노동자, #한국어교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