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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냄새."
"샤오린 냄새에요."
"어디서 사 왔어요?"
"농협이요."

아침부터 역한 냄새를 자랑한 '샤오린'은 베트남 사람들이 좋아하는 두리안으로 잘 알려진 과일입니다. 동남아에선 과일의 왕이라고 합니다. 두리안은 '가시(duri)를 가진 과일'이란 뜻인데, 열대 과일 가운데 비싸기로 이름 높습니다.

열매는 약간 눌린 공 모양의 과일로 지름이 20~25cm 정도로, 겉껍질은 단단하고 거친 가시로 덮여 있습니다. 껍질을 두르고 있는 가시를 벌리면 크림 빛의 물컹한 과육이 나오는데 그 맛은 부드럽고 달콤합니다. 하지만 여름철 군화 밑창보다 지독한 냄새는 호불호가 분명하게 갈리게 합니다. 그런 까닭에 동남아 국가에서도 공항과 같은 공공장소엔 반입이 금지되는 과일이기도 합니다.

그런 두리안을 베트남 출신 이주노동자 타오가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사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농협에서 아시안 식품을 둘러보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두리안을 사 온 걸 보면, 입맛 당기는 사람 눈에만 띄게 진열했던 것 같습니다.

두리안을 매장에 그냥 노출하면 역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손님들의 불만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두리안 같은 상품들은 철저하게 밀봉하여 냉장고에 진열하기 때문에 일부러 찾지 않는 이상 눈에 띌 일이 없는 것입니다.

해외 나가면 향신료 가득한 자극적인 음식에도 호기심에 군침을 흘리곤 합니다. 아마 색다름이 주는 매력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다가도, 어느새 고향 음식이 떠오를 때면 혀끝이 얼마나 회귀본능이 강한지 알게 됩니다. 사는 곳이 달라도 입맛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입니다.

비록 고국을 떠나 살지만 고향에서 즐겨 먹던 음식을 해외에서 만났을 때 더욱 즐겁기 마련입니다. 타오는 하나로마트에서 두리안이 후각을 자극했을 때 고향 생각을 했나 봅니다. 이국땅에서 향수를 달랠 방편으로 두리안을 사며 즐거워했을 타오의 얼굴이 선합니다.

수입농산물 천국 농협 하나로마트

영어, 베트남어, 태국어, 인도네시아아 등 각국어로 안내하고 있는 Asia Food( 동남아식품). 근거를 알 수 없는 '다문화식품'이라는 한글 안내문도 보인다. 참고로 인도네시아어는 어순이 틀렸다.
▲ 하나로마트 동남아식품(다문화식품, Asia Food) 코너 영어, 베트남어, 태국어, 인도네시아아 등 각국어로 안내하고 있는 Asia Food( 동남아식품). 근거를 알 수 없는 '다문화식품'이라는 한글 안내문도 보인다. 참고로 인도네시아어는 어순이 틀렸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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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로마트에선 역한 냄새가 나거나 통조림·병에 들어 있는 식품을 제외하고, 수입식품들이 국내산과 함께 진열된 것을 언제나 볼 수 있습니다. 필리핀산 바나나·파인애플·망고, 태국산 파파야·두리안, 중국산 호박씨·콩나물, 베트남산 마른 오징어·쌀 종이 등등, 관심 갖고 살피지 않으면 확인도 어려운 상품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그 중 특이한 것은 동남아에서 흔한 채소인 여주, 바질, 오크라, 줄콩, 공심채 등이 판매되고 있는데, 국내 농가에서 재배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타오가 두리안을 '농협'에서 사 왔다는 것은 지역사회에서 '이주노동자도 소비자'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농협이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민들을 영업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협뿐만이 아닙니다. 요즘 도농복합도시 덩치 큰 마트들에선 아시안 식품 코너가 따로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도농복합도시에서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민이 중요한 소비자, 고객으로 자리 잡으면서 논란도 없지 않습니다.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르면 하나로마트는 원형 수입 농산물을 팔 수 없고, 수입농산물로 만든 가공품만 제한적으로 취급 가능합니다. 농협의 수입농산물 판매는 매해 국감 때마다 지적되지만 시정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농협에서는 '다문화가정'의 편의를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FTA로 가격이 폭락하고, 판매량마저 줄어 이중고를 겪고 있는 농민들을 생각하면, 농협이 외국산 농산물을 무분별하게 수입 판매하는 것은 전혀 적절하지 않습니다. 다문화가정, 이용자 편의를 위한다는 것은 수익 창출에 골몰하는 대형 유통 공룡인 농협의 궁색한 변명일 뿐입니다.

물론 국내 농가에서 재배한 여주, 바질, 오크라, 줄콩, 공심채 등은 농협이 판매와 생산을 장려해도 될 것입니다. 다만, 내국인이 더 많이 찾는 수입농산물 판매는 다른 마트, 영세 지역 상인들에게 양보했으면 합니다. 국내 농산물 판매에 열을 올리는 것이 향후 하나로마트가 해외로 진출했을 때 도움이 되는 전략적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은 언젠가는 귀국할 예비 소비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오랫동안 하나로마트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는 한 농협 관계자는 '다문화 가족 편의를 위해서 하나로마트에서 다문화식품 코너를 개설하여 수입농산물로 가공한 식품을 판매하고 있지만, 수입 원형농산물은 절대 팔 수 없다'고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그는 "바나나를 팔아보려 한 적이 있지만, 바나나 때문에 다른 국산 과일이 덜 팔리면 그 손해가 바로 농업인에게 가기 때문에 팔 수 없었다"고 합니다.

결국 일부 하나로마트에서 매출 부진과 다문화가정 편의를 핑계로 수입 원형농산물을 팔고 있다는 것입니다. 농협중앙회는 그러한 판매행위를 한 농협에는 자금 지원 중단 등 강력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 https://brunch.co.kr/@princeko 에도 게재했습니다.



태그:#이주노동자, #동남아식품, #다문화식품, #농협, #하나로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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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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