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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스승은 누구에게나 있다. 내겐 안종복 선생(오른쪽)이 그런 사람이다.
 잊을 수 없는 스승은 누구에게나 있다. 내겐 안종복 선생(오른쪽)이 그런 사람이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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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마음 속 '큰 스승'이 한 명쯤은 있다. 지식을 가르친 것이 아닌, 사람이 살아야 할 옳은 길을 가르친. 내게도 꼭 한 명 그런 스승이 있다. 아래는 그와의 만남을 기억하고자 하는 열망과 동시에 '사표(師表) 없는 시대 사표'로 불려도 하등 부끄러울 것 없는 스승을 자랑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큰 스승 앞에 한없이 부끄러운 문장일지라도. 그러나, 선생은 이것마저도 웃으며 용서할 것이 명약관화하다.

[장면 1] <광주항쟁 사진집> 건네던 서른여덟 젊은 영어교사

내게 1988년은 서울올림픽이 아닌 '5공 비리 청문회'와 '광주항쟁 청문회'가 있었던 해로 기억된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던 내게 서른여덟 젊은 영어교사 안종복은 특이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수업시간에 '모의 청문회'를 해보자고 한다거나, 전두환이 어째서 지탄받아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해주던 교사. 군사독재의 어두운 그늘이 채 걷히지 않았던 시절. 당연지사 그런 말을 해주던 선생은 우리 학교에서 그가 유일했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두려움에 어깨를 움츠리던 시절이었다.

친구들 앞에 나서기 좋아했던 내가 그의 눈에 띄었던 모양이다. 어느 완연했던 가을날. 그의 집까지 따라가 사모님과 스승의 아이들 셋을 만났다. 그날, 돼지고기 수육을 얻어먹으며 소주까지 한잔 마신 것으로 기억된다. 귀가하는 내 손엔 스승이 건넨 책 몇 권이 들려있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만든 <광주항쟁 사진집> <들어라 역사의 외침을> <철학의 기초이론> 등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듬해, 이른바 '전교조 사태'가 일어났다. 어제까지 교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적지 않은 수의 교사들이 노태우정권의 결정에 의해 하루아침에 해직됐다. 겨우 열일곱, 열여덟이던 우리가 무엇을 알았을까? 그러나, 스승을 그냥 보낼 수 없었던 학생들은 교실 창밖으로 '선생님을 돌려주세요'라고 쓴 종이를 접어 비행기를 날리고, 교문 밖으로 스승을 끌고 나가던 경찰 앞에 드러누웠다.

'노동조합을 만들어 아이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가르쳐보겠다'는 선언을 했다는 이유로 안종복 역시 학교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가 학교를 구둣발로 짓이기고 다니던 정보과 형사들에게 육두문자를 내뱉으며 저항하던 '용맹한(?)' 선생이었다는 사실은 최근 박종훈 경상남도 교육감에게 전해 들었다.

안종복은 '전교조 사태'로 구속·수감돼 실형을 살았던 경남지역의 교사 2명 중 1명이었다. "영어와 수학을 중심으로 공부하고, 암기과목도 소홀히 하지 마라"가 아닌, "불의에 굴종하는 삶은 아름다울 수 없다"고 말해주던 희귀한 스승. 그러나, 당시의 나는 철이 없었다. 그가 그리웠던 것도 잠시. 1990년 대학에 들어간 나는 안종복을 잊었다. 아니, 잊었다고 생각했다.

[장면 2] 박봉 쪼개 진보 일간지에 기부금 낸 사람... 어디서 봤더라?

1999년 생애 처음으로 직장을 가지게 됐다. 주간 <노동자신문>이 일간 <노동일보>(현재 휴간)로 제호와 발행 방식을 바꾼 해. 그곳 수습기자가 됐다. 아침에 출근해 신문을 펼치는데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다. 이게 누구더라? 안종복 선생이었다. 6년간의 해직기간을 거쳐 복직한 그는 경남 김해의 한 중학교 교사로 다시 일하고 있었다.

당시 <노동일보>는 창간지원 기부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을 지면에 싣고 있었는데, 얼핏 봐도 적지 않은 기부금을 낸 그의 사진과 이름, 직장명이 고스란히 내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는 아직도 자신과 더불어 타자도 행복한 세상을 꿈꾸고 있는 듯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가 재직하던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물었다.

"11년 전 안종복 선생님 제자였던 사람입니다. 지금 자리에 계신가요?"

열흘 후쯤. 우리는 서울의 한 메밀국수집에 마주 앉았다. 메밀국수는 고등학생이던 나와 선생이 더불어 좋아하던 메뉴였다.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 그러나, 선생의 눈빛은 아직 <삼국지> 속 관우처럼 형형했고, 맺고 끊는 것이 명확한 저음의 목소리 또한 여전했다. 내 나이 스물아홉, 스승은 지천명을 목전에 둔 마흔아홉이 돼있었다.

"나는 네가 KBS나 <조선일보> 기자가 된 것보다 <노동일보> 기자가 된 것이 자랑스럽다"는 스승의 치하(致賀)에 잠시 부끄러웠지만,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 자신의 속마음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스승의 진실 앞에 제자는 "저는 그런 큰 언론사에 갈만한 학력도, 능력도 갖추지 못 했습니다"라고 차마 말하지 못했다.

이젠 고교시절처럼 숨어서 마실 필요도 없었다. 삶은 돼지고기를 안주로 안종복 선생과 마신 그날의 소주, 그처럼 술이 달콤했던 밤이 또 있었던가? 그러나, 먹고사는 것에 급급해 일에 쫓기던 나와 전교조의 중진교사로 후배교사들의 어려움까지 챙기느라 바빴던 스승은 또 그렇게 소원해져 갔다. 그랬다. 세월은 언제나 무심했다.

[장면 3] 병약해진 스승과 머리에 서리 내린 제자

그날의 술자리 이후 다시 16년이 흘렀다. 마흔다섯 내 머리칼에도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홉 살 조카 딸아이가 흰머리를 뽑아주고 용돈을 받겠다고 나서니 엄마가 말린다.

"흰 머리칼 다 뽑으면 큰아빠 대머리 된다."

가을이 깊어가던 2015년 10월의 마지막 금요일. 무엇에 홀린 듯 안종복 선생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나와 그는 딱 20살 터울이 진다. 그렇다면 그는 정년퇴직을 했을 테고, 교단을 떠났을 것이다. 전교조 경남지부에 전화를 넣었다. 그리고, 한 3~4분간 스승과 나의 지난 사연을 설명하고 연락처를 알려줄 수 없느냐고 물었다. 수화기를 든 상대편은 선선히 선생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고마웠다.

긴 세월이 무색하게 단 5분 만에 통화가 이뤄졌다. 천우신조였을까? 다행히 선생은 그날 내가 머문 도시에 있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위치한 행사장에서 열린 '시인 이선관 전집 출판기념회'에 참석할 것이라고 했다. 이윽고 짧았던 늦가을 해가 떨어지고, 저물 무렵 스승을 찾아 행사장으로 갔다. 중년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이상스레 가슴이 설렜다.

어둑어둑한 건물의 2층 복도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키가 작은 선생이 나를 먼저 끌어안았다. 갑상선과 위장을 크게 앓았다는 그의 머리칼은 눈에 띄게 숱이 줄었고, 안아본 어깨뼈는 앙상했다. 서른여덟의 젊은 스승을 기억하는 나는 울컥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그런데도, 선생은 제자 걱정이 먼저다.

"야, 너는 젊은 녀석이 머리칼이 왜 그러냐?"

이제는 나빠진 건강 탓에 술을 마시지 못하는 스승은 뜨거운 레몬차를 마셨고, 나는 커피를 마셨다. 퇴직 이후에도 여전히 동분서주하는 선생은 '창원미래연구소 이사장 안종복'이라 적힌 명함을 내게 건넸다. 지역에서 진보적 정치인을 양성하고, 시민운동의 방향을 논의하는 단체라고 했다.

바닷가에 접한 카페 밖으로 겨울을 재촉하는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돌아보니, 그와 서울에서 권커니 잣거니 소주를 마셨던 날로부터도 참으로 오랜 시간이 흘러있었다. 그날 역시 스승은 그다지 자랑스러울 리 없는 제자를 자신의 지인들에게 소개시켜주고자 애썼고, 나는 그의 가르침대로 살지 못한 처지가 부끄러워 내처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이지 자주 연락드리겠다"는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하고 돌아온 그 밤. 아주 오랜만에 일기를 썼다. 이런 졸문이었다.

'38세와 18세였던 사제가 65세와 45세가 돼 다시 만났다.
스승은 반백의 머리에 숱이 줄었고.
제자 역시 듬성듬성 흰 머리칼이.
1989년. 구속돼 실형을 살았던 경남의 전교조 교사 2명 중 하나.
정보과 형사에게 육두문자를 날리던 호랑이는 제자 앞에서 가늘게 손을 떨었다.
그래도 다행이다.
긴 해직 기간과 선생의 수난은 그의 아이들까지를 다치게 하진 못했다.
큰딸은 당신과 같은 선생님이, 작은딸은 박사과정 학생이, 막내아들은 CPA가 됐다니.
선생님, 그만하면 멋진 인생이었습니다.
제자도 당신 삶을 흉내라도 내보려 다시 뛰렵니다.'


태그:#전교조, #안종복, #늙어버린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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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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