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끝', 그 이후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영화 이후의 가상 스토리를 통해 영화의 텍스트는 물론, 콘텍스트를 돌아보는 코너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인물과 상황은 허구이며 실제 인물과 관련이 없음을 밝혀둡니다. - 기자 말

염석진은 살아있다

염석진은 죽지 않았다. 처음 그 사실을 알려온 것은 명우였다. 그는 그동안 좀처럼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흘러다닌 모양이었다. 하기야 혀 잘린 독립 운동가가 자리 잡고 살기가 어디 쉬웠으랴. 일정 때야 혀 없이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왜놈들 밑구멍 핥으며 더럽게 사느니 그 혀 잘라버리고 말겠다는 게 독립 운동가들의 삶이었으니까.

그러나 광복 후에 맞이한 전쟁은 우리가 혀 없이 혼자 조용히 살 수도 없게 만들었다. 세 치 혀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이었다.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잘못 대답해도 죽였지만, 대답을 아예 안 하면 원하는 대답을 만들어 내서 죽였다. 그 때문에 남으로 북으로 토끼몰이 당하던 독립 운동가 중 애매하게 놀린 혀 좌우로 찢겨 죽은 이가 적지 않았다.

휴전 몇 달 후. 전쟁 통에 연락이 끊어졌던 명우를 우연히 서울에서 봤을 때 반가움보다 놀라움이 앞선 것은 그 때문이었다. 혀 잘린 명우가 전쟁 통에 살아남은 것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명우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염석진에게 생을 강탈당하고도 생기만은 잃지 않았던 그의 눈빛이 허망하게 허공을 헤집고 있었다.

"살아 있소?"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 명우는 퀭한 눈으로 그저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갈 데 있소? 여기서 같이 삽시다."

그러나 명우는 신경질적으로 휘갈겨 쓴 쪽지를 내밀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왜 아직도 그 이름을 버리지 않으시오.'

그 이름, 미츠코. 나는 언니의 이름을 버리지 못했다. 언니에게 주어진 집에서 언니에게 주어진 삶을 계속 살았다. 사람들의 손가락질은 두렵지 않았다. 겉으로는 욕해도 속으로는 그들이 내 처지를 부러워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안옥윤으로 살았어도 영웅 취급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겉으로 드러내고 말은 못해도 속으로는 조롱했을 것이다.

'거 봐, 독립운동하면 삼 대가 망한다니까.'

삼대는커녕 대를 이을 생명력도 남아있지 않은 명우에게 나는 그 이상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뒤늦게 친일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명우는 산으로 들어간다고 했다. 평생을 이국의 흙냄새와 화약 냄새 속에서 살아왔던 그다. 평화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방법을 알 리가 없었고, 설령 안다고 해도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평화'를 맨눈으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명우는 경멸 어린 시선과 함께 또 하나의 쪽지를 건넸다.

'염석진은 살아 있소.'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염석진은 명우와 내가 직접 쏴 죽였다. '애국 시민을 쏴 죽인 백주 테러'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도 직접 확인하고 찢어발겼다. 착각한 것이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따져 물으려 했으나, 그 길로 사라진 명우를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염석진이 수호하는 법은 진실과 거짓을 뒤섞어 놨다

영화 <암살> 스틸컷 안옥윤과 미츠코, 엇갈림의 시작

▲ 영화 <암살> 스틸컷 안옥윤과 미츠코, 엇갈림의 시작 ⓒ 쇼박스


십 수 년 후, 명우가 충청도 어디쯤에서 객사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전화 너머로 명우의 사망 소식을 전하는 지방 파출소장의 목소리에는 은밀한 흥분감이 묻어있었다.

"이 사람 소지품에서 선생님 연락처가 나왔습니다."

그는 혼자 떠돌아다니다 죽은 늙은 거지와 명망가의 연결고리를 남몰래 추측하며 설레 있었다. 파출소장은 "대학병원으로 가거나 화장하는 것보다는 어떻게든 매장하는 것이 낫겠지요?"라고 말했다. 나는 파출소장의 바람대로 그에게 돈을 몇 푼 쥐여 주고 공식 기록 없이 조용히 명우의 시신을 확인했다.

그의 손가락만 봐도 얼마나 힘들게 살았을는지 짐작이 갔다. 약지와 소지는 한 마디씩 잘려나가 있었고 다른 손가락들도 끝이 닳아 뭉툭해져 있었다. 혀 대신 쓰는 손가락도 제 기능을 하지 못했으니 말년에 그가 세상을 향해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생각했다. 찰흙을 뭉개놓은 듯이 제멋대로 늙은 그의 얼굴에는 수십 년 전 염석진에게 당한 흉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위에 수많은 상처가 덧대어진 탓이었다. 나는 넝마처럼 구겨진 명우의 시신을 보고 직감했다.

"이건 염석진의 짓이다."

일제의 앞잡이 염석진이 독립 운동가들에게 범한 악행은 무섭지만 평범한 것이었다. 염석진의 비범한 악행은 오히려 광복 이후에 절정으로 치달았다. 그는 광복 조국에서도 경찰 제복을 입었다. 그건 그 자체로 독립 운동가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굴욕이었다. 반공 혐의로 염석진에게 붙들려갔던 동지 A는 기어이 앓아누웠다. 일정 때 염석진에게 모진 고문을 당하고도 대차게 걸어 나온 그에게 대체 무슨 짓을 했던 것일지 궁금했다. A는 울분을 참지 못하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무 짓도 안 했소."

염석진은 그저 취조실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었다고 했다. 여주인공의 이름이 책 제목으로 붙은 시답잖은 책이었다. 그는 조용히 책을 읽다가 간혹 차를 마시고 창문을 열어 따사로운 봄 햇살을 올려다보기도 했다. 책장을 덮을 무렵에는 고개를 떨며 조용히 책의 감흥을 즐겼다.

"됐다. 그만 가라."

염석진이 그 말을 하는 순간 A는 뼈마디가 무너지고 피가 다 마르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염석진이 여유롭게 앉아 책이나 읽는 세상이, 그 맞은편에서 죄인처럼 고개나 조아리고 있어야 하는 이 세상이 그를 옥죄고 있었다. A는 악에 받쳐 소리쳤다.

"심문하지 않나? 고문이라도 하란 말이다."

염석진은 그저 잔인하게 웃더니 A에게 책을 내밀며 이죽거렸다.

"읽을 텐가? 고문이라니. 자네는 아직도 야만의 시대에 살고 있군."

A가 유치한 제목의 책을 밀쳐내며 화를 내자 그는 심히 유감이라는 듯이 말했다.

"내 진심을 곡해하지 마. 자네가 조국과 민족을 생각한다면 더는 법을 어기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야. 이제 우리는 우리 민족의 법대로 살면 돼. 좋은 세상이잖나. 나는 그 법을 수호하려는 거야."

경찰서를 나온 A는 제 명대로 살지 못했다. 거기에는 가난, 전쟁, 사상, 권력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불분명하게 섞여 있었다. 국가에서는 그를 찾지 않았고, 독립운동밖에 모르고 살아온 그가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고, 가난은 자식에게 대물림됐고, 이승만의 정부를 지지하지 않게 됐고, 전쟁에서 '빨갱이'인 동시에 '반동분자'로 몰리게 된 것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A가 그런 삶을 살고 마침내 비참하게 죽어간 데에는 염석진이 수호하는 법의 안내가 주효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염석진이 수호하는 법은 생과 사, 진실과 거짓, 현실과 악몽을 뒤섞어 놨다. 무엇보다 이 법은 반민특위를 해산하고 친일 행위자를 중용함으로써 친일을 영원히 사면했다. 이 법이 만든 거짓과 악몽 속에서 많은 사람은 도리 없이 죽음을 맞이했다. 명우도 염석진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

미츠코와 나의 역사는 이대로 끝이 나는가?

영화 <암살> 스틸컷 염석진은 다른 '앞잡이'들과 달리 어둠과 침묵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이다

▲ 영화 <암살> 스틸컷 염석진은 다른 '앞잡이'들과 달리 어둠과 침묵 속에 잘 어우러지는 사람이다 ⓒ 쇼박스


염석진은 살아있다. 삶에 큰 미련은 없었지만 적어도 그의 손에 죽고 싶지는 않았다. 염석진이 섞어놓은 거짓 속에서 진실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비참하게 죽어간 A와 명우의 경우를 떠올렸다. 염석진에게서 살아남는 방법은 진실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것뿐이었다.

언니 미츠코의 거짓된 이름에 점점 심취해갔다. 안옥윤이라는 이름에 담긴 진실은 중요치 않았다. 마침 일제가 민초들에게 빼앗아 미츠코에게 건넨 재산은 여전히 내 수중에 있었다. 그 재산으로 더 많은 재산을 벌어들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광복 조국의 유력 인사 중 미츠코와 안면 있던 자들을 밑천 삼아 일을 진행했다. 돈이 권력을 벌고, 권력은 다시 돈을 벌어들이는 기회의 시절이었다.

재산이 불어날 때마다 마당을 넓히고 담을 높였다. 그 자리는 일꾼과 경호원들로 가득 채웠다. 처음에는 강인국과 미츠코의 커다란 저택의 손가락질 대상이었다. 협박 편지는 예사고 테러를 가하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높은 담을 넘고 우락부락한 경호원들을 나에게 해코지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염석진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해 결코 허물 수 없는 권력의 성채를 쌓았다.

한편으로는 매일 남몰래 그 성채에서 빠져나왔다. 거대한 문을 밀고 집을 나설 때마다 빛이 바랜 가벼운 코트를 입고 주둥이 긴 워커를 신었으며, 무엇보다 성치 않은 안경다리를 위태롭게 귀에 걸었다.

'지금 이 순간만은 미츠코가 아니라 안옥윤이다.'

나는 속으로 쉼 없이 되뇌며 길을 나섰다. 목적지는 종로 경찰서. 나는 광화문 대로를 지나 경찰서 앞을 배회했다.  대명천지에, 대한 천지에 염석진이 숨을 곳은 종로경찰서 뿐이었다. 그의 역사를 바꿔놓은 곳이자 내 역사를 바꿔놓을 그곳에 숨어서 일을 벌이는 게 틀림없었다.

쏘아죽이리라. 그리고 진실된 삶으로 되돌아가리라. 저격수의 마음가짐을 되새기는 동안 감당할 수 없는 공포 또한 되살아났다. 미츠코의 이름으로 마음대로 경성을 배회하던 무렵 거기에는 광화문을 경복궁 동문 쪽으로 쫓아내고 자리를 빼앗은 조선총독부가 있었다. 나는 그것만은 차마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광화문의 빈자리를 허망하게 훑을 뿐 그 뒤에 자리한 조선총독부는 애써 무시해야했고, 지금의 SC 제일은행 본점 자리에 있던 종로경찰서는 아예 쳐다보지도 못했다. 조선총독부와 종로경찰서에서 수탈당하고 고문당한 동료들의 넋이 내 이름을 무어라 부를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앞을 지날 때 마다 나는 주문처럼 '나는 안옥윤이다'고 되뇌었다.

염석진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조선총독부 앞을 지나 종로 경찰서로 가는 풍경과 그걸 지켜보는 내 마음의 풍경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광복 직후는 전과 다름없이 혼란스런 나날이었다. 조선총독부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되었고 광화문은 여전히 빈터만 남았다.

나는 아직 그 앞을 지나며 조선총독부와 광화문을 마주할 용기가 생기지 않았으나, 나라에서는 한일청구권협정을 맺으며 일제가 휘둘렀던 서슬 퍼런 폭력을 국립중앙박물관의 낡은 유물처럼 전시하고 값싼 전시료와 비싼 관람료를 받아 챙겼다. 우리가 무엇을 지불하고 있는지 깨닫지도 못하던 그 시절, 나는 낙원동, 공평동, 경운동 종로 경찰서에 나갔다.

1968년 광화문이 새로 섰다. 운현궁 쪽 종로 경찰서로 나서던 시절이었다. 광화문은 옛것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광화문의 위치나 각도,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부재 따위도 그랬지만 현판이 특히 달랐다. 대통령이 한글로 쓴 '광화문'이라는 글씨에는 빛처럼 쏟아지는 덕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무겁고 날카로운 글월을 차마 바라보지 못해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 거짓된 이름으로 살아야 하는 나는, 거짓된 이름을 내건 광화문의 운명이 어쩐지 안쓰러웠다. 자유, 평등, 행복, 국민이라는 이름이 모두 같은 운명을 감내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1995년. 이미 나이를 헤아리기도 어려워졌을 때쯤, 그래서 '염석진은 당연히 죽었겠지'하고 생각할 즈음 조선총독부 건물이 폭약 더미에 묻혀 사라졌다. 풍문여고 맞은편 종로 경찰서로 가는 차 안에서 그걸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진실을 찾기 위해 미츠코라는 거짓된 삶을 사는지, 거짓 된 삶을 살기 위해 진실을 참칭하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하던 무렵이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허물어진 조선총독부 건물처럼 일제도 끝이 나고, 친일파도 끝이 나고, 미츠코와 나의 역사도 끝이 났는가?

아니었다. 허물어진 조선총독부 앞에 여전히 날카롭고 무거운 '광화문' 현판을 보고 깨달았다. 조선총독부 건물이 허물어진 그 자리에도 역사는 제각각으로 흐르고 있었다. 일본군관 출신 대통령이 쌀밥에 고깃국을 먹여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가 민주주의의 미래를 헤어 나올 수 없는 빚으로 옭아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로부터 빛을 돌려받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제에 빚지는 세월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제 염석진을 찾으면 죽이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저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우리는….

우리는 아직도 싸워야 한다

영화 <암살> 스틸컷 안옥윤에게 노란스카프는 피아식별띠와 같다.

▲ 영화 <암살> 스틸컷 안옥윤에게 노란스카프는 피아식별띠와 같다. ⓒ 쇼박스


광복 70년. 나는 유령 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종로 경찰서 앞을 배회하고 있었다. 광화문의 모습은 예전 모습을 많이 회복했지만, 옛 대통령의 현판을 대신하여 내걸린 새로운 광화문 현판은 자주 갈라졌다. 사람들도 이처럼 갈렸다. 옛 대통령의 뒤를 이은 또 다른 대통령이 '역사는 왼편에서 보면 굴욕이요, 오른편에서 보면 자부심이 된다'는 이상한 생각을 하는 탓이었다.

역사는 이쪽에서 보면 여전히 미츠코고, 다른 쪽에서 보면 틀림없는 안옥윤인 내 운명과 같은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대통령과 과거 그 대통령은 먼 시간을 두고 끊을 수 없는 인연으로 단둘이 엮여, 그 이외의 모든 사람을 갈라놓고 있었다.

시간을 마음대로 넘나들고 거스르는 블랙홀과도 같은 그 분열의 틈에서 헤매던 어느 날, 드디어 염석진을 발견했다. 종로 경찰서 앞에서 운전기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멋들어진 콧수염을 가진 노인 하나가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세상 거칠 것 하나 없다는 듯 세차게 내딛는 걸음. 상대의 상처를 무시로 헤집는 송곳 같은 눈빛. 염석진이었다.

나는 허겁지겁 그의 뒤를 쫓았다. 내 몸의 한계를 넘어선 느낌이었다. 염석진 역시 청년처럼 성큼성큼 걸어서 인사동 골목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의 뒷덜미를 거의 잡아챘을 때였다. 염석진이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

"이 나라 말아먹을 것. 썩 꺼지지 못해?"

내 쪽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길 복판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거기에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어디론가 행진하고 있었다.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길 가장자리의 상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상점의 쇼윈도 너머로 염석진의 뒷모습이 보였다. 절로 고개가 숙어지고 어깨가 움츠러들어서 차마 그의 뒷모습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가 등을 들썩일 때마다 계속 상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어린 놈의 새끼들이 뭘 안다고 나와서 시위야, 시위는?"

염석진의 고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손에 든 '대한민국 역사교육은 죽었다'는 현수막의 문구는 흔들리지 않았다. 학생들은 고개를 숙이지도 어깨를 움츠리지도 않았다. 반면 나는 도무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다 무너져 내린 콧잔등 위의 안경테를 잡아 안경다리를 귀 뒤쪽으로 끌어당겼다. 오래된 버릇이 마음을 진정시켜주었는지 흥분이 조금 가라앉고 시야가 트였다. 상점 쇼윈도 위에 어른거리는 염석진의 상 너머로 진열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에는 색색의 스카프들이 걸려 있었다.

'참 곱다.'

내 주름진 손은 어느덧 물결처럼 부드러운 스카프를 훑어 내리며 쇼윈도를 더듬고 있었다. 그러나 물기 하나 없이 말라붙은 손가락은 말끔한 유리에 지문도 남기지 못했다. 내 시선은 아무런 삶의 흔적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손의 궤적을 멍하니 따라갔다. 가게 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상점 주인이 나와서 말했다.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어르신?"

필요한 게 있는가. 지문 하나 찍어내지 못하는 유령 같은 나에게. 그때 진열장 한구석에 색 바랜 노란 스카프가 눈에 들어왔다. 선명한 봄 빛깔의 스카프들 사이에서 혼자 겉돌고 있는 것이었다.

"저거 주게. 저 노란 스카프."

얼마인지도 모를 값을 치르고 스카프를 받아들여 여몄다. 늙은 나무 위에 노란 꽃이 피어오른 듯한 모습이 제법 어울렸다. 쇼윈도 위에 피어오른 노란 꽃잎을 바라보고 있자니 염석진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생겼다. 쇼윈도 너머에서 여전히 성을 내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엄지와 검지를 편 채 손을 들어 올려 겨눴다.

아니, 이런 것은 구식이지. 멋쩍게 팔을 내리고 있는데 염석진이 길 한가운데로 달음질치는 것이 보였다. 그는 맨 앞에서 행진하고 있던 학생에게 다가서더니 손에 들려있던 현수막을 발로 걷어찼다. 부욱 소리를 내며 현수막 한쪽 귀퉁이가 찢어졌다.

염석진은 곧 주변 사람들의 제지를 받아 행렬에서 밀려났다. 아니 그는 염석진이 아니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폭력은 염석진의 방법이 아니었다. 그 불쌍한 노인의 행동은 그저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공포와 분노를 담은 투레질에 불과했다. 염석진은 남몰래 그 공포와 분노를 부추겼을 뿐이다.

나는 아직도 멍하니 서 있는 학생에게 다가갔다. 찢어진 깃발의 한 귀퉁이에 노란 스카프를 묶어 학생에게 내밀었다. 어설프게 이어진 스카프와 현수막을 다시 한 번 단단히 동여매는 학생의 손은 가냘팠다. 그 여리고 강단 있는 손동작에 나도 모르게 목이 메었다. 문득 거짓 속에 사느라 숨기고 미뤄둔 회한이 한 번에 몰려왔다. 미츠코와 안옥윤 그리고 저 어린 학생은….

"아직도 싸워야 하는가?"

근 70년 만에 입 밖으로 꺼내놓은 진실이었다. 그동안 그 한 마디가 버거워 미츠코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가. 독립을 위해 동료와 가족의 목숨을 내어놓았는데 광복 조국은 내 삶을 뒤틀어놨고, 70년을 뒤틀린 채 숨어 살았건만 이제 와 시간은 어째서 거꾸로 돌아가는가. 속에서 들끓는 말들을 채 꺼내놓지 못하고 있는데 학생이 고요히 웃으며 내 손을 맞잡고 말했다.

"싸우는 거 아니에요. 그냥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알려주려는 거예요."

학생은 포근하게 웃고는 종종걸음으로 시위대를 따라갔다. 하기야 자유로운 생각을 품는 것만으로는 싸움거리가 안 되는 세상이다. 아니 그런 세상이었으나, 그런 세상으로 발전해 가고 있었으나 이제 거꾸로 돌아가는 시간을 타고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지 모른다.

무릎에 힘이 빠져 바닥에 주저앉았다. 주변에서 몇몇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가왔지만, 별일 없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죽지 않을 것이다. 염석진이 아직 살아있으므로. 미츠코와 나는, 우리는 아직도 싸워야 한다.

암살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지현 이정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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