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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기한테 동화책 읽어줄게요."

둘째 효동이(7살)가 방문을 열고 엄마에게 얘기합니다. 엄마 배 속에 있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겠답니다. 지금 아내는 몸이 안 좋아 누워있습니다.

"늑대는 할머니를 잡아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할머니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할머니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

더듬더듬 거리며 엄마 옆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둘째.
▲ 엄마에게 동화책 읽어주는 둘째(7살) 더듬더듬 거리며 엄마 옆에서 동화책을 읽어주는 둘째.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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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안에서 동화책 읽는 소리가 잔잔히 들려옵니다. <늑대와 삼형제>입니다. 열심히 읽어줍니다. 둘째는 한글을 완전히 아는 게 아니라 그런지, 손으로 글자를 짚어가며 더듬더듬 천천히 끝까지 읽어줍니다.

둘째는 배 속에 있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 좋다는 걸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머지않아 태어날 동생이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며 읽어주고 있습니다.

지금 하는 행동을 보면 아직 아기 소식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저려 옵니다. 저는 밖에서 둘째가 동화책 읽는 소리를 들으며 눈시울이 불거졌습니다. 방에서 막내가 읽어주는 동화를 듣고 있는 아내도 그런 심정일 겁니다.

"고맙다, 효동아."

나지막이 아내의 말이 들립니다. 그리고 막내는 계속해서 동화책을 읽어나갑니다.

"아기 심장 소리가 안 들리네요"

지난 11월 14일, 아내와 저는 올해 9살과 7살인 두 아들들과 함께 산부인과에 갔습니다. 두 달이 넘어가니 초음파 검사해 보면 아기 심장소리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초음파 검사를 하고 나왔는데 의사선생님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금방 찍은 초음파 사진을 이리저리 보시더니 고개를 갸웃 갸웃 거립니다.

"이상하네요. 임신 5주차에 처음 초음파 찍었는데, 그때와 비교해서 아기가 전혀 자라지 않았네요. 심장소리도 안 들리고요."

우리는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냥 별거 아닌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첫째와 둘째를 임신했을 때, 그다지 어려운 일 없이 잘 지나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의사선생님께 여쭤봤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언제 다시 와야 하죠?"
"일단 다음 주 토요일에 오시구요, 만약에 주 중에 통증이 있다거나 하혈을 하게 되면 바로 병원으로 오세요. 이런 상태에서는 유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는 느낌이었습니다. 유산이라니 설마!

오랜만에 시내에 나와 가족끼리 오붓하게 외식을 하려 하였으나 영 기분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아내 역시 많이 놀라고 긴장된 얼굴입니다. 두 아들들은 병원을 나와서 우리에게 물어봅니다.

"엄마, 우리 동생 잘 큰대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아내는 그냥, "응 잘 큰대" 하고 말을 끊었습니다. 이럴 땐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이틀 후 오늘(11월 16일), 아내는 병원에서 수술을 했습니다. 임신 8주차에 유산을 한 것입니다. 아이는 2주 전에 이미 사산되었다고 합니다. 아내 나이 41살입니다. 젊은 20대처럼 산모와 아기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었을까요?

아침 일찍 일어나 밥도 하고 세탁기도 돌리고, 아이들 깨워 학교랑 유치원에 보낸 후 직장으로 가는 일상이 힘들었을 겁니다. 쌀쌀한 출퇴근길과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한몫 했을 테구요.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대"

의사 선생님의 설명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 초음파 사진 의사 선생님의 설명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 김승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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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가기 전에도 아내는 가끔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다 11월 중순을 넘어서면서 아프다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14일 토요일에는 병원에 다녀온 후, 그날 저녁과 일요일 내내 아프다며 배를 자주 만졌고 자리에 눕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월요일 출근길(16일) 아침엔 하혈을 하였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운전대를 잡고 회사로 향하는 마음이 몹시 두려웠습니다. 출근준비하다 아프다며 자리에 주저앉던 아내의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분주한 월요일 아침, 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나, 수술해야 한대"
"왜? 어떻게 됐어?"
"음, 아기는 이미 2주 전에..."
"......"
"그래서 통증이 심했었나 봐. 지금 바로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대. 피가 너무 많이 엉겨 붙어 있대."

그리고 아내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아내는 지금 혼자 병원에 있습니다. 남편 따라 내려 온 울산엔 일가친척이 한 명도 없습니다. 더구나 저는 아내와 같은 회사의 사무실에 근무를 하는지라 대체 인력이 없어 자리를 비우지도 못합니다. 해서 같은 교회 지인에게 연락을 하니 한 분이 병원으로 가겠답니다. 감사했습니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아내는 수술 후 회복실에서 두어 시간 마취가 풀릴 때까지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인의 부축을 받아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미역국으로 속을 채워주었고 집까지 데려다 주었답니다. 저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습니다.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여보세요?"
"응, 서동이니?"
"아빠, 아기 죽었대요."

이 녀석은 어디서 들었는지 심장을 찌르는 말을 합니다. 다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알고는 있지만 너무 적나라하게 '정답'을 듣게 되니 다시 한 번 마음이 저려옵니다. 아내가 걱정되었습니다.

"엄마는? 자고 있어?"
"예, 방에서 자고 있어요."
"응, 알았어. 아빠 바로 갈게."

무겁게 현관문을 열었습니다. 거실엔 불이 켜져 있고 첫째가 숙제를 하고 있습니다. 안방엔 불이 꺼져 있습니다. 아내가 자고 있을 겁니다.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피곤한 얼굴로 이불을 덮어 자고 있는 아내. 불쌍했습니다.

좀 더 편안하게 해주었으면, 스트레스 덜 받게 해주었으면, 아이도 아내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 텐데.... 아내의 이마에 손을 얹었습니다. 아내가 인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습니다.

"언제 왔어?"
"음, 지금."
"애들 밥 좀 챙겨줘. 샤워도 시켜주고."
"그래 알았어. 몸 좀 괜찮아?"
"모르겠어. 배가 너무 아파."

그 와중에도 아이들을 챙기는 아내입니다. 햇볕이 드는 날엔 빨래가 잘 마르겠다고 좋아하는 아내, 비가 오면 아이들 학교 가기 힘들겠다고 걱정하는 아내, 단 둘이 외식하다가도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아이들 주려고 싸서 가자는 아내입니다.

전에도 주위에서 임신 중 유산했다는 소식을 종종 들었습니다.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했지만, 막상 우리에게 이런 일이 닥치니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지금의 아내와 결혼할 것을, 20대에 결혼을 했다면 지금보다 다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저도 대학 졸업 후 심각한 취업난으로 기본적인 경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다보니 감히 결혼이란 꿈을 꿀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조금 일찍 퇴근해서 아내와 두 아이들과 조촐하게 외식이라도 해야겠습니다.

○ 편집ㅣ박혜경 기자



태그:#유산, #초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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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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