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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열 화백의 작품 <동백꽃과 눈(90.9×65.1cm, 2014)>입니다.
 강종열 화백의 작품 <동백꽃과 눈(90.9×65.1cm, 2014)>입니다.
ⓒ 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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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오늘 뭐 해?"
"내가 말 안 했나? 오늘 딸하고 전시회 데이트 있는데."
"지인이 '진짜 열정을 바친 전시회가 있다'고 꼭 보라던데, 그 전시회인가?"
"우연히 본 동백 그림이 참 좋더라고. 오늘이 전시회 마지막 날이라 꼭 가야 해. 당신도 같이 가게?"

지난 일요일(14일), 뭐에 홀린 듯이 여수시 웅천의 예울마루로 향했습니다. 전시회에 가면서 지인의 말을 잠시 떠올렸습니다.

"예전에 내가 살기 힘든 예술가(강종열 화백이 어려웠을 당시)를 위해 그림을 샀는데, 그 그림도 함께 전시한대. 이렇게 과거에 팔린 다른 작품들도 함께 전시하더라고."

지인이 달리 보였지요. 역시 그는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가슴이 넉넉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림을 사고 전시회나 공연을 보는 건 있는 예술가를 위한 배려 속 나눔의 한 방법입니다. 그래, 전시회 가겠다고 마음먹었지요. 그럼, 강종열 화백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강종열 화백의 전시회 <빛의 속살을 그리다>

강종열 화백의 첫 국선 입상작품인 <정오(145.5×97.0cm, 1977)>입니다.
 강종열 화백의 첫 국선 입상작품인 <정오(145.5×97.0cm, 1977)>입니다.
ⓒ 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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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종열 화백의 전시회는 <빛의 속살을 그리다>란 주제 아래 '21세기 인상주의를 열다'란 부제로 마련된 그의 회화 40년 기념전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전시 기간은 1월 15일부터 2월 14일까지였는데, 오는 21일까지로 1주일 늘렸더군요. 지방에선 드문 입장료(1500~3000원)가 붙은 전시회지만 돈이 아깝지 않았지요.

강종열 화백의 기획 초대전은 네 가지 소주제로 나뉘었대요. 첫째, 어촌 여수의 풍경과 노인과 어부라는 서민의 삶을 표현한 초기 작품 구성. 둘째, 그가 자신을 대하듯 꾸준하게 그려왔던 동백꽃. 셋째, 신생 독립국 동티모르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그들의 아픔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동티모르 그림. 넷째, 예전 전시회에서 팔았던 그림 전으로 구분되더군요.

강종열 화백의 작품 <남산동과 봉산동 사이(53.0×90.5cm, 1989)>입니다.
 강종열 화백의 작품 <남산동과 봉산동 사이(53.0×90.5cm, 1989)>입니다.
ⓒ 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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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다가왔던 건 여수 토박이의 시선으로 암울한 시대를 가감 없이 표현했던  <뒷골목(145×112cm, 1984)> <남산동과 봉산동 사이(53.0×90.5cm, 1989)> <바닷가 이야기(슬픈 하루, 97.0×130.3cm, 1991)> <밥(45.0×53.0cm, 1986)> <향일암 가는 길(임포마을, 97.0×130.3cm, 1993)> <조씨 영감(어부시리즈)> 등이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풍경은 늘 접했던 친숙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굴곡진 삶의 한가운데에 내팽개쳐진, 친근한 서민이라는 이름의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강종열 화백의 첫 국선 입상작품이었던 <정오(145.5×97.0cm, 1977)>는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강종열 화백의 작품 <향일암 가는 길(임포마을, 97.0×130.3cm, 1993)>입니다.
 강종열 화백의 작품 <향일암 가는 길(임포마을, 97.0×130.3cm, 1993)>입니다.
ⓒ 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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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기상천외한 작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30m에 달하는 대작 '동백'이었지요. '저걸 어떻게 그렸을까?'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어서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작가에 따르면 "대작 '동백'은 여수의 상징인 동백 숲을 매개로 생명의 잉태와 삶의 질곡을 빛으로 묘사한 거"라 합니다. 그래선지 힐링을 불러오는 묘한 매력이 가득했습니다. 정말이지 작가가 일냈지 싶었습니다.

강종열 화백이 동티모르의 암담한 현실을 그린 <불안한 미래(72.7×53.0cm, 2004)>입니다.
 강종열 화백이 동티모르의 암담한 현실을 그린 <불안한 미래(72.7×53.0cm, 2004)>입니다.
ⓒ 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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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 그림도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 강점기에서 벗어나 2002년 독립을 이룬 동티모르의 암담한 현실이 화폭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해방을 얻기까지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민들의 삶과 풍경들은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컸습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남북이 분단된 현실에 사는 우리에게 평화를 되새기게 했습니다. 암튼 우주 속 존재에 대한 성찰의 기회였습니다.

마지막 전시실에는 개인전 66회, 단체전 500회를 거치면서 팔렸던 작품들을 다시 모아 전시 중이대요. 그 작품들 옆에는 소장가들의 이름이 적혀 있더군요. 이들은 40년 전, 스물일곱 나이에 지역에서 험난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선 배고픈 그에게 작은 힘을 보탰던 아름다운 사람들 명단이었습니다.

강종열 화백의 대작 '동백' 앞에서 드러누운 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이를 동백 숲에 누워 힐링한다고 표현하대요.
 강종열 화백의 대작 '동백' 앞에서 드러누운 딸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는 이를 동백 숲에 누워 힐링한다고 표현하대요.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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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 이를 보고 옛날 선비들이 사랑방을 두고 자기 집을 찾는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 살리던 공존공생의 현장을 떠올렸습니다. 이런 거룩한 상생의 문화를, 돈만 좇는 졸부들이 감히 어찌 알겠습니까. 그림 한 점이, 있는 사람에겐 별거 아니지만 없는 사람에겐 꿈과 목숨을 좌우하는 생명의 발아점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암튼, 아내와 딸과 함께 전시장을 두 번이나 꼼꼼히 둘러보았습니다. 지금껏 전시회에서 한 번 본 걸 다시 둘러보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말입니다. 디자이너가 꿈인 딸은, 그래서 미술학원에서 고강도 수업 중인 딸은 대작 '동백'이 달랐나 봅니다. 글쎄, 대작 '동백' 앞에서, 치마를 입은 채로, 전시실 바닥에 앉더니 그대로 드러눕지 뭡니까. 이심전심일까. 이를 본 강종열 화백, 놀라며 그러더군요.

"그게 바로 동백 숲 속에 누워서 힐링하는 거다."

대작 '동백' 구상과 스케치 및 완성까지 2년 걸려

작품을 설명하는 강종열 화백.
 작품을 설명하는 강종열 화백.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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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강종열' 화백과의 인터뷰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 동백꽃의 작가로 불린다. 동백이 주는 의미는?
"동백은 여수의 상징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뿌리 같은 거다. 왜냐하면 동백은 겨울을 참고 견디는 힘이 있다. 이는 강인한 정신력이지 싶다. 반면에 동백은 고우면서도 수줍은 구석도 있다. 한편으로 동백꽃은 한 잎 한 잎 떨어지지 않고, 깨끗하게 통으로 떨어진다. 이런 게 나와 닮은 것 같다. 그래 '동백=나'로 본다. 동백을 그리는 건 내 자신을 그리는 것이다."

- 입이 쩍 벌어질 규모다. 대작 '동백'의 크기는?
"200호짜리 10개를 붙였으나, 실제 크기는 3700호다."

강종열 화백의 대작 <동백>입니다. 길이만 30m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강종열 화백의 대작 <동백>입니다. 길이만 30m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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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작 '동백'을 그리는 데 걸린 기간은?
"그림 그리기 위해 여수에서부터 전국 유명 동백 숲을 찾았다. 심지어 대마도에 있는 동백 숲에도 다녀왔다. 그러니까 동백 숲을 보고 구상하며 스케치한 후 그림 그리기까지 합하면 2년이 걸렸다. 순수하게 붓을 댄 기간은 1년 2개월이다."

- 대작 '동백'을 보면 물감이 엄청나게 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용한 물감 양은?
"사람들이 재미삼아 물어보곤 한다. 사실 물감이 엄청 들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물감이 두껍게 사용돼 깊이가 있다. 물감이 얼마나 들었냐고 물어오면 여수 시세로, 아파트 한 채 값은 들었다고 대답한다."

"동백 숲은 생명이 산란하는 느낌이어서 참 좋다!"

대작 <동백>의 일부입니다. 어두운 동백 숲 속의 빛을 캔버스에 옮겼더군요. 이름하여, 화가 강종열이 선보인 '21세기 인상주의'의 시발점입니다.
 대작 <동백>의 일부입니다. 어두운 동백 숲 속의 빛을 캔버스에 옮겼더군요. 이름하여, 화가 강종열이 선보인 '21세기 인상주의'의 시발점입니다.
ⓒ 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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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작 '동백'은 왜 그리게 되었나?
"화가 '모네'의 대작 수련을 유럽 전시회에서 봤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더라. 그래서 빛을 다른 각도에서 한 번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정신적 뿌리 같은 강인한 동백 숲의 빛을 그리면서 인상주의 그림과 다른 식의. 빛의 모형을 표현하고 싶었다. 더불어 한국 미술사에 영원히 남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화가의 욕망이랄까."

- 대작 '동백' 그림 완성 후에 느낌은?
"하루에 10시간씩 꾸준히 육체적 정신적 노동 끝에 얻은 그림이다. 그림 그리는 동안 팔다리가 성한 곳이 없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다. 그래선지 완성 후 신비스러웠고, 자부심과 희열도 느꼈다. 후회 없고 만족한다."

강종열 화백은 “동백 숲은 생명이 산란하는 느낌이어서 참 좋다!”고 합니다. 관람객들은 그가 표현한 동백 숲에서 감동에 몸서리 칩니다.
 강종열 화백은 “동백 숲은 생명이 산란하는 느낌이어서 참 좋다!”고 합니다. 관람객들은 그가 표현한 동백 숲에서 감동에 몸서리 칩니다.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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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백 숲이 대체로 어둡다. 이유는?
"실제로 동백 숲에 들어가면 어둡다. 동백 숲은 더 어두워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왜냐하면 다른 숲도 그러겠지만, 특히 동백 숲은 검고 촘촘해 다른 세계에 온 느낌이다. 어두운 동백 숲은 생명(빛)이 산란하는 듯한 느낌이어서 참 좋다. 뿐만 아니라 동백 숲 속의 동백 잎은 어둠 속에서 빛의 파장에 따라 수 만 가지 색깔로 변한다. 이 느낌이 좋아서 어둡게 표현했다."

- 대작 '동백'에 대한 관람객의 반응은?
"입소문이 나서 지역 사람뿐 아니라 외지 사람들도 갈수록 많이 온다. 한 번 전시회를 보고 간 사람들이 두세 번씩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시 기간을 1주일 더 연장했다. 아마, 이런 크기의 그림은 안 보다가 보니 생소해서 그렇지 않나 싶다. 어떤 관람객은 작품 '동백'에서 진한 녹색과 푸른 바다의 느낌이 함께 난다고 한다. 맞다. 나뭇잎의 녹색과 바다색의 깊이를 조화롭게 표현하려 했다. 다들, 관심있게 봐 줘서 감사하다."

강종열 화백의 작품 <동백(162.1*259.1, 2009)>입니다. 통으로 떨어진 동백꽃의 아름다움에서 죽음 이후의 또 다른 삶을 느낍니다.
 강종열 화백의 작품 <동백(162.1*259.1, 2009)>입니다. 통으로 떨어진 동백꽃의 아름다움에서 죽음 이후의 또 다른 삶을 느낍니다.
ⓒ 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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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SNS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태그:#강종열 화백, #강종열 개인전, #동백, #21세기 인상주의, #동티모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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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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